일상 속 ‘의심’을 깨워라!
인문학이란 의심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생활 속의 인문학』
‘코와 입은 왜 튀어나왔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 마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눈이 세 개라면’이라는 질문. 당신은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가? 혹자는 시시껄렁한 질문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들이 모여 ‘인문학’이 될 수 있다.
여기저기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인문학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단순히 유명 철학자, 문학작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달달 외운다고 인문학을 깨우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인문학을 진정 안다는 것은 일상 속 작은 물음에서 사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저자 이득재는 인문학을 부채에 비유한다. 인문학이란 부채를 펴면 그 안의 부챗살마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이 놓여있고 부채를 접으면 세상의 모든 학문이 통섭 된다고 말이다. 결국, 인문학은 한마디로 규정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인문학을 결정짓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바탕에서 끊임없이 의심하며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는 것이다. 『생활 속의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인문학적 사고’의 실재이며, 일상 속 다양한 의심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인문학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20세기 비극적인 역사는 그래서 생겨났다. 인간과 세상의 현재, 과거, 미래를 알 수 있는 라플라스의 도깨비는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 머리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무감사회(無感社會)’를 보여주고 있다. 약을 먹으면 굴욕, 고통, 분노, 공포 같은 감정이 억제되며 어떤 감정도 불가능한 사회이다. 오직 섹스와 행복, 태평성대만이 존재하는 사회, 눈물도 위안도 참회의 감정도 불가능한 사회이다.
『멋진 신세계』는 20세기에 쓰인 미래소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1세기인 지금, 우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 12. 멋진 신세계는 유토피아인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