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권6 85. 『후한서』와 『삼국지』의 서술방법이 같지 않은 부분 86. 『삼국지』의 서술 방법 87. 『삼국지』에는 말을 돌려 비호하는 것이 많다 88. 『삼국지』에서 실상을 얻어 일을 기록한 내용 89. 『삼국지』에서 열전을 만드는 데에 번잡하고 간략함이 같지 않은 내용 90. 『삼국지』에서 틀린 내용 91. 순욱전 92. 순욱과 곽가의 두 열전에서 억지로 갖다 붙인 부분 93. 제갈량에 대한 진수의 평론 94. 배송지의 『삼국지』주석 권7 95. 한나라에서 옛 아홉 주를 다시 두다 96. 관우와 장비의 용맹 97. 형주를 빌려주었다는 주장의 잘못 98. 삼국의 군주들은 용인술이 각각 같지 않았다 99. 선대(선양을 통한 왕조교체) 100. 위나라와 진나라의 선대는 같지 않았다 101. 구석문 102. 한 사람이 두 사서에 각각 열전이 있는 경우 103. 『진서』 104. 『진서』2 105. 왕도, 도간 두 사람의 열전은 포폄에 마땅함을 잃었다 권8 106. 팔왕의 난 107. 『진서』에 기록된 괴이한 이야기 108. 동진에는 어린 군주가 많았다 109. 진나라 황제는 형이 죽고 아우가 잇는 경우가 많았다 110. 민제와 원제의 즉위 111. 멋대로 제위에 앉은 여러 군주들에게 학문적 재능이 있었다 112. 구품중정 113. 육조시대 청담의 풍습 114. 청담에는 주미를 썼다 115. 추우번 116. 건업에는 세 성이 있었다 117. 남조에서는 한인이 기밀을 장악하는 경우가 많았다 118. 무덤자리를 살피는 법 119. 당나라 사람들이 피휘한 방법 권9 120. 『송서』에는 서원이 지은 구본이 많다 121. 『송서』에서 동진·송 혁명 무렵에 대해 쓴 것 122. 『송서』에서 송제 혁명 무렵에 대해 쓴 것 123. 『송서』본기의 서술 방법 124. 『송서』『제서』의 대서법 125. 『송서』에서 북위의 일을 기록한 것은 오류가 많다 126. 『송서』와 『남사』에는 모두 심전자, 심림자 열전이 없다 127. 『제서』구본 128. 『제서』에서 없어진 한 권 129. 『제서』서술 방법에서 신경을 쓴 부분 130. 『제서』에서는 유서법이 가장 좋다 131. 『양서』는 모두 국사에 의거해 열전을 지었다 132. 『양서』열전 편찬에서 올바른 법식을 잃은 부분 133. 『양서』에는 죽음을 아름답게 꾸미는 조칙을 실은 것이 많다 134. 『양서』에는 지족전이 있으나 방기전이 없다 135. 고문은 요찰로부터 비롯했다 136. 『진서』에는 피휘한 것이 많다 137. 소자현과 요사렴은 모두 아버지를 위해 열전을 지어 정사에 넣었다 138. 여덟 왕조의 정서는 송대에 이르러 비로소 널리 퍼졌다 권10 139. 『남사』는 진수가 쓴 『삼국지』의 체례를 모방했다 140. 『남사』와 『북사』에서 열전에 자손들을 덧붙인 예 141. 『남사』에서는 『송서』를 삭제한 것이 가장 많다 142. 『남사』에서 지나치게 간략함을 추구한 실책 143. 『남사』에서 틀린 부분 144. 『남사』에서 『제서』를 증보한 부분 「왕검전」 「저연전」 「정경아전」 「왕경칙전」 「유세륭전」 「장괴전」 「주봉숙전」 「왕광지전」 「예장왕 (소)억전」 「무릉왕 (소)엽전」 「강하왕 (소)봉전」 「의도왕 (소)갱전」 「하동왕 (소)현전」 「경릉왕 (소)자량전」 「어복후 (소)자향전」 「진안왕 (소)자무전」 「건안왕 (소)자진전」 「남해왕 (소)자한전」 「파릉왕 (소)자륜전」 145. 『남사』와 『제서』가 서로 다른 내용 146. 『남사』에서 『양서』에 보태거나 삭제한 내용 147. 『남사』에서 『양서』를 삭제한 부분 148. 『남사』에서 『양서』를 증보한 것 가운데 중요한 부분 「무제기」 「원제기」 「서비전」 「소명태자전」 「남강왕 (소)회리전」 「무릉왕 (소)기전」 「임하왕 (소)정덕전」 「소의전」 「소조전」 「임천왕 (소)굉전」 「남평왕 (소)위전」 「파양왕 (소)회전」 「심약전」 「범운전」 「임방전」 「서면전」 「주이전」 권11 149. 『남사』에서 『양서』에 보탠 잡다한 내용 「무제기」 「간문(제)기」 「원제기」 「치황후전」 「정귀빈전」 「소명태자전」 「남강왕 (소)회리전」 「여릉왕 (소)속전」 「무릉왕 (소)기전」 「임가왕 (소)정덕전」 「소앙전」 「소업전」 「소조전」 「영양왕 (소)부전」 「남명왕 (소)위전」 「범운전」 「강엄전」 「임방전」 「왕승유전」 「호승우전」 「음자춘전」 「두안전」 150. 『양서』와 『남사』두 사서가 서로 다른 부분 151. 『남사』는 『진서』에 대해 심하게 더하거나 삭제한 것이 없다 152. 『남사』와 『진서』가 서로 다른 내용 153. 송나라와 제나라에는 방탕한 군주가 많았다 154. 송나라 궁중 여인들의 무례함 155. 송나라 황실 자손들이 도륙된 참혹함 권12 156. 군주는 즉위하면서 하얀 비단 모자를 썼다 157. 제나라와 양나라 군주들은 재주와 학식이 많았다 158. 제 명제는 고제와 무제의 자손들을 죽였다 159. 제나라 제도에서는 전첨의 권한이 매우 중요했다 160. 남조에서는 꿩을 쏘는 것으로 사냥을 했다 161. 강좌의 권세 있는 가문에는 공신이 없었다 162. 양 무제는 제나라 황실의 자손을 남겨두었다 163. 진 무제는 적장을 많이 등용했다 164. 제, 양나라 때 대사의 폐해 165. 육조시대에는 반어로 참언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166. 애책문 167. 남조에서는 진나라의 땅이 가장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