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백범일지

김구 | 문학세계사 | 1999년 08월 3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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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우리 민족사의 위대한 지도자 김구 선생이 쓴 자서전,백범의 성장과정과 민족의 독립을 위한 고난의 길을 들려준다.

저자소개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에서 극빈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자주 평화통일을 위해 온몸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이었다. 어려서 서당 교육을 받다가 1893년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팔봉 접주(八峰接主)로 임명된다. 황해도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고, 동학농민운동 후 황해도 안태훈(安泰勳)의 집에 머물며 유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유학을 배우다 만주 지역을 순회 후 의병 활동에 가담한다. 1896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본 육군중위 스치다(土田讓亮)를 처단한 후 체포되어 인천 감리서에 투옥된다. 옥중에서 독서로 개화사상을 배웠으며 탈옥 후 승려가 되었다. 1899년 환속한 후에 황해도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고 신교육운동에 노력한다. 1905년 을사조약 무효 투쟁을 벌이며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국권회복운동의 비밀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황해도 총감으로 활동하다 1911년 안악 사건, 105인 사건으로 수감된다. 1915년 출옥한 후 동산평농장의 농감생활을 하며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등을 역임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시정부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진력한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를 일으키게 해 국내외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사건으로 백범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피신생활을 하면서, 한인 청년들을 중국 군관학교에 입학시켜 군사훈련을 받게 하여 독립전쟁에 대비한다.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 후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 활동을 전개하며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이루고, 연합국에게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다.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하며, 자주 민족의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고 반탁운동을 전개한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 소위원회의 결의에 반대한 후, 남북한의 하나 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협상을 제의하여 평양에서 '남북조선제정당 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한다. 그 후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1949년 6월 26일 당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하여 지금의 효창공원에 안치되었다.

역자소개

목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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