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자'를 뼈에 새긴 채
살고 있는 악바리 그녀 "박유림"
'귀여워, 귀여워'노래에
세뇌당해 그녀를 좋아한 그 "정윤수"
좋아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들의 전쟁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본문 발췌>
책을 훑어본 윤수는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강의실 안에 철저하게 혼자였다. 윤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눈 깜빡할 새에 잠에 빠졌다. 암전 된 것처럼 깊은 잠에 빠졌던 윤수가 깬 건, mp3의 음악이 시끄러운 록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깊은 수심에 빠졌다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느리게 정신 차린 윤수는 버릇처럼 mp3 음악을 넘기며 부스스한 꼴로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는 데 귀에서 생판 처음 듣는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mp3에 이런 노래를 넣을 사람은 자신의 여동생뿐이라는 걸 알고 있는 윤수는 다른 노래로 넘기려다가 귀찮은 마음에 내버려두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휴대폰을 열었다. 몇 시간 잠들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고작 몇 분 지난 상태였다. 윤수는 뻣뻣한 자신의 뒷목을 감싸 쥐었다.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넘어가야 하는 목이 멈췄다. 목은 멀쩡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목이 아니라 시선이 한 곳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산, 그리고 봄빛을 배경에 두고 여학생이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아까 전 분명 책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던 그 자리였다. 처음엔 강의실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쳐다보게 됐고, 책의 주인인 것 같아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이유 없이 쳐다보게 되었다.
귀에서는 귀여운 여자의 목소리가 귀엽다는 가사를 연발하고 있었고, 열린 창가에선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봄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시야에는 바른 자세로 편하게 책 읽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시력, 청력을 빼앗겼다. 넋이 빠지는 기분.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윤수는 여학생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여자애는 책을 보다 펜을 다부지게 쥐고서 연습장에 무언가를 옮겨 쓰기도 했고,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지 작게 인상을 쓴 채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제 머리를 긁적거리며 책에 코를 박을 듯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귀엽다는 노래 가사에 세뇌당한 것일까.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