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 조지 기싱이 헨리 라이크로프트라는 가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자기의 이상적인 생활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로 구분하여 그 계절에 맞는 정취와 사상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엮은 것이 이 유명한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이다.
특히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이 주는 인상이 더욱 깊었기에 우선 가을만을 선택하여 번역 발표하도록 하였다.
본 수필집은 1903년에 발간되었다. 파란만장한 조지 기싱의 삶에 비하면 이 글은 섬세하다는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역자는 이루지 못한 그의 꿈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여전히 기싱은 꿈을 꾸는 청년의 자세였다. 적어도 본 수기에서 느낄 수 있는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그렇다. 그가 기싱의 대역이라면 그는 여전히, 그리고 지금도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고독, 방랑, 불행과 역경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역자가 적어도 이 수필을 읽으면서 그에게서 그런 그림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죽음을 수도 없이 예견하지만 그에게서 죽음의 그늘을 느끼기에는 삶의 자세가 너무 진지했다. 버들민들레를 연구하며 이름을 고민하는 그는 마치 인생을 소풍 즐기듯 하는 달관한 삶의 마술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철학세계는 험난했던 삶만큼이나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도 늘 꿈을 끼고 살았다. 그에게 검은 딸기가 준 교훈이 있었다. -검은 딸기가 그에게 준 교훈에 대하여는 부연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반드시 돈이 있어야 허기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검은 딸기송이들. 그것은 그에게 전혀 새로운 체험이었다. 그가 체득한 이 교훈은 그를 가난과 역경으로 몰아넣었지만, 그는 그 이상의 철학적 경지에 도달했다.
사상가는 필연적으로 약한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얘기해 놓고는, 그것을 기싱은 행운이라고 한다. 기싱 자체가 무척 약골이었다. 그는 약한 신체와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니 이 또한 사상가로써의 특질이 아닌가한다.
기싱은 신진 작가들에게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가난과 고난의 삶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독특한 발상이지만, 그는 근검절약과 금욕을 작가가 지녀야 할 기본 가치로 보았다.
특이한 사실은 이 책을 쓸 당시 기싱의 연령이 40대 중반에 불구했음에도 그는 마치 인생을 다 산 늙은이처럼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자라고 말하거나 본 작품을 그렇게 말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글에는 희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