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얼의 탄생, 누구의 탓인가? 그들은 세상과 싸우거나 혹은 세상에 무릎 꿇었다. 서얼은 시대의 개혁가인가 아니면 운명에 순응한 자인가? 태어나면서부터 하자가 있던 결격품. 서얼은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을까? 무엇을 서얼이라 부르는가? 신분제도의 굴레에 갇힌 채 갖은 제약을 받았던 조선의 어두운 그늘 서얼. 그들은 항상 피해자였으며, 사회를 일그러뜨리는 비틀린 존재였다. 조선 시대 역사의 대부분은 양반을 위한 것, 혹은 양반이 남긴 것이다. 당대의 위대한 역사적 위인들은 모두 양반이었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을 보며 양반과 왕족의 잘잘못만을 보아 왔다. 그렇다면 역사는 항상 계급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것일까?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것을 남겼을까? 뛰어나고 고귀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많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뛰어나고 고귀한 자들에게 열광하며, 그 관심을 곧 기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들과 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 서얼, 중인, 천민, 잡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양반들이 남긴 문집이나 야담집, 민답집에 가끔 등장하지만, 글로 풀기에는 턱없이 사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서얼들의 역사, 글과 일화들을 망라한 책이 있다. 바로 조선 철종 때 간행된 [규사(葵史)]이다. [규사]의 첫 장에 실린, 서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에서 선조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는 것은 본가지든 곁가지든 가리지 않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는 것이 어찌 적자여야만 하겠는가”라는 답을 내린다. 여기에서 서얼의 역사를 ‘해바라기 역사’, 즉 규사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저자 이한은 이 책을 비롯하여,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아주 작은 조각들을 찾아내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책이 바로 그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