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초고령 노인을 "관리"하고 길들이려는 의료환경에 좌절하고, 현실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묵묵히 갈며, 언젠가 내게도 무심히 닥칠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며 보낸 3년 반의 기록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급격히 허물어진 아버지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겪어보았다.
나는 삼 년 반 동안 고령의 병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사그라져가는 육체의 추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내 속에 생생하게 자국을 남기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자국들은 아버지가 흙에 묻힌 뒤에도 아무런 신호도 없이 불쑥 재현돼 나를 괴롭히곤 했다. 밥을 먹을 때 우연히 내 입에서 나는 후루룩 소리가 또렷이 의식되면서 아버지가 식사하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거나, 혹은 늦은 밤 불면으로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당기고 모로 누울 때, 아버지 역시 이런 동작으로 힘겹게 돌아누웠었는데 하는 기억과 그 감각이 내 몸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식이었다.
삶의 긴 여로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직접적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어떤 웅장한 사상으로도, 어떤 창의적인 관념으로도,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 으로도 그 슬프고 추한 몰락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한 인간과 밀착해 보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는 분이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