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고전 063] 우물 안 학문을 버려라 - 홍대용의 《의산문답》

홍대용 | 이펍코리아 | 2013년 11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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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의산문답(?山問答)》은 주자학적 명분론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청나라의 새로운 학풍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洪大容)이 쓴 소설 형식의 글이다.
가상의 인물인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대화록이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소설적인 장치나 기교 등은 거의 없는 내용 위주의 글이기 때문에 소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글에 나오는 허자는 전통 학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전형적인 조선의 선비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깨달은 듯이 중국에 가서 실력을 뽐내보려 하다가 비웃음을 사고 실망해 귀국하는 길에, 만주 의무려산(?巫閭山)에서 실옹이라는 은둔자를 만나 자신이 전혀 상상치도 못한 새로운 학문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는다. 그 내용은 서양의 자연과학 지식이 가미된 새로운 세계관들이다. 홍대용이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바로 실옹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그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 책에서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 순으로 서열화된 전통적인 사물 인식을 뒤엎어 사람도 동식물과 똑같은 생명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지구를 다른 수많은 별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며(물론 지동설도 들어 있다), 중국과 주변 민족들 사이에도 중심과 주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북학파라면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가 먼저 떠오르지만, 북학파의 좌장은 박지원(朴趾源)이었고 홍대용은 박지원보다도 몇 년 위의 선배였다. 단순히 나이만이 아니라, 이 《의산문답》은 북학파 인사들이 받아들이고자 했던 청나라의 신학문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으니, 홍대용과 《의산문답》은 바로 북학파의 선구였다고 할 수 있다.

저자소개

홍대용 (洪大容, 1731∼1783)
홍대용은 18세기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자로,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수촌(壽村) 마을에서 뒤에 나주 목사가 된 홍력(洪?)과 청풍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에 벌써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고학(古學)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남양주의 석실(石室)서원으로 김원행(金元行) 선생을 찾아가 10년 넘게 공부했다.

20대에 들어 스승 곁을 떠나서는 고향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스물아홉 살에는 아버지가 목사로 있는 나주로 내려가 나석당(羅石堂) 선생과 자명종과 혼천의 두 대를 만드는 데 여러 해를 보냈으며, 고향집에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세워 이 기계들을 설치하고 천문에 힘을 쏟았다. 서른다섯 살 때 연행사의 부사가 된 작은아버지의 자제군관(子弟軍官)이 되어 북경에 가 두 달을 머물면서 천주당과 관상대를 견학하고, 관상대장인 독일 신부를 만나 담화했으며, 남천주당(南天主堂)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선교사를 놀라게 했다.

특히 북경 문화 거리인 유리창(琉璃廠)에서 만난 엄성(嚴誠) 등 항주의 세 선비와의 교우관계는 그를 사로잡아, 이들과 나눈 필담을 박지원(朴趾源)의 머리말을 받아 ≪회우록≫으로... 만들어 널리 읽혔고, 이 일은 북학파의 젊은 후배들을 자극하여 줄줄이 연행에 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뒤에 북학파로 이어졌다.

연행록을 정리하여 한문본 ≪담헌연기(湛軒燕記)≫를 이루고, 따로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은 2600여 쪽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여행록으로 남겼다. 이 밖에 심성론 등 유학을 다룬 ≪담헌서(湛軒書)≫,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저서를 남겼다

목차소개

1. 허자, 실옹을 만나다
2. 사람과 만물은 똑같은 존재
3. 땅은 둥글며 돌고 있다
4. 천체의 운행과 우주
5. 여러 별들의 실상
6. 천체의 징후는 믿을만한가
7. 기상 현상의 진실
8. 기후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
9. 땅의 이치와 장례문화
10. 중심과 주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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