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르네 데카르트 Rene Decartes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이 빚어졌던 16세기 후반 1596년 3월 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의 고등법원 법관이었고 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생후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Giordano Bruno)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의 길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개의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통해 이를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서 파리로 향한다.... 신교도와 구교도의 갈등이 빚어졌던 16세기 후반 1596년 3월 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데카르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의 고등법원 법관이었고 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이었지만, 생후 일 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Giordano Bruno)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의 길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개의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통해 이를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서 파리로 향한다. 이어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델란드군에 입대했으며 다시 이를 떠나 신교도의 군대에 지원하였다. 이 시기에 물리학을 연구하던 수학자 이사크 베크만을 만나 공동 연구에 몰두하고 『보편수학』의 구상에 이른다. 1620년 군대를 떠나 독일, 네델란드,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다가 1625년 파리 체재기에는 기하광학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 다시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온 데카르트는 처음 9개월간은 형이상학의 짧은 논문의 집필에 종사하다가 1629년 3월 제자인 네레리로부터 이탈리아에서 관찰된 『환일현상)』의 해명을 부탁받고 도중에 자연연구로 방향을 전환. 모든 자연학을 포괄하는 『우주론』의 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완성단계에서 갈릴레이의 유죄 판결로 인해 출간을 보류하고(1644년 출간), 대신 1637년『방법서설』및 이를 토대로 하는『굴절 광학』『기상학』『기하학』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시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전통을 접하고 플라톤주의와 병존하게 된다. 원자론적 세계를 지성의 직관에 의해 실재로서 직접적으로 파악하려는 요구를 가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원리가 도출되기에 이른다. 1641년『성찰』에 이어, 1644년에는 자신의 철학을 집대성한『철학의 원리』를 출간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나, 칼뱅파 신학자들의 박해로 학문적 자유가 위협받던 네델란드를 떠나게 되었다. 1643년 데카르트를 사숙(私淑)했던 엘리자베스 왕녀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2년 후 그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1649년 책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평소에 몸이 약해 아침 늦게까지 취침을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매일 이른 아침 만나 대화를 하길 요청하는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로 인해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이듬해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명증한 진리를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사유의 확신자를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근대적인 철학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