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닉을 넘어서 기품 있는 글쓰기로
현대 사회에서 기술자의 이미지는 ‘장인’보다는 ‘엔지니어’에 가깝다. 즉 어떤 기술의 실천이 전인적인 배경에서 이루어진다기보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만으로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학적 상상력은 기계 문명의 개가를 타고 전 분야에 걸쳐 넘실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전문 공식만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공학일 수 없고, 연애가 공학일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 관련된 기술은 끝내 엔지니어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 《고종석의 문장》(이하 《문장》)은 당대의 대표적인 문장가 고종석의 글쓰기 강의를 녹취 정리한 것으로, 공학적 측면을 넘어선 글쓰기 기술의 심원한 풍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강연은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모두 열두 차례에 걸쳐 숭실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이 책은 앞의 여섯 강을 정리한 것이며, 둘째 권은 뒤의 여섯 강을 묶어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고종석은 매 강연의 절반 이상을 인문 교양과 언어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할애했다. 이는 좋은 글쓰기가 글쓰기 자체의 전문 지식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깊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중에 쏟아지는 숱한 글쓰기 책들은 자잘한 작문 테크닉과 실천적 조언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종석은 그것이 글쓰기 기술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며, 교양과 지식을 좋은 글쓰기의 중요한 조건으로 내세운다(“글쓰기는 분명히 말을 다루는 재주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양과 지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현대 언어학의 주요 개념 및 이론, 한국어의 언어학적 특징, 한글의 원리와 의미, 근현대 역사, 정치/시사 상식 등 핵심 교양 강의가 요령 있게 이루어진다. 이는 이른바 ‘글쓰기 비법’ 류의 견해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며, 글쓰기의 기본에 대해 정직하게 묻는다.
글쓰기의 두 기둥, 논리와 수사
이 책에서 한 강講의 구성은 다음과 같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인문 교양 - 글쓰기 이론 - 글쓰기 실전. “인문 교양” 파트가 품격 있는 글쓰기의 배경이 되는 교양 지식을 담고 있다면, “글쓰기 이론” 파트는 실제 테크닉과 관련된 원리 및 이론, 그리고 “글쓰기 실전” 파트는 실제 테크닉의 적용을 다룬다. 즉 교양 지식에 대한 강조와 함께 실전적인 조언이 이 책의 다른 두 축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종석은 글쓰기 혹은 문장 자체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이 당대의 문장가는 언뜻 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 즉 “글에는 일단 논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에 논리가 없으면 명확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으면 독자와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종석이 보기에 글의 가장 첫째가는 존재 이유는 ‘생각의 소통’이다. 그가 글의 영향력을 회의해 절필 선언한 사실을 고려해보면(“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 〈한겨레〉, 2012. 9. 24.), 이는 여간 무게감 있는 견해가 아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다음과 같은 과감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논리와 수사 둘 중에서 만약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논리를 골라야 합니다. 심지어 문학작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76쪽)
논리성은 모두가 알고 있는 글쓰기의 기본이지만,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다. SNS 글쓰기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종석은 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글쓰기의 밑돌을 묵직하게 내려놓는다.
그가 글쓰기의 실제에서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수사修辭다. 사실 고종석은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비롯한 일련의 한국어 크로키 저술에서 독보적인 한국어 표현력을 보여준 바 있다. 기품 있고 우아한 비유, 재치 있는 표현, 적확한 어휘 사용 등은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이 책 《문장》에서 “수사학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글을 윤기 있게 만드는” 수사의 역할을 조명한다. 특히 그는 수사학을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명료함’의 측면에서도 바라보는데, 이는 그가 글쓰기에서 ‘생각의 소통’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고려할 때 퍽 인상적이게 다가온다.
저는 수사학도 어떤 명료함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눈〉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화자가 “시몬” 하고 부릅니다. “시몬, 눈雪은 네 목처럼 희다./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 시몬은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 화자의 연인입니다. … 보통이라면 ‘네 목은 눈처럼 희다, 네 무릎은 눈처럼 희다’라고 했을 텐데 ‘눈은 네 목처럼 희다,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라고 본 관념과 보조 관념을 도치시켜서 시몬의 목과 무릎이 얼마나 하얀지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나요? (79쪽)
한국어다운 글쓰기란 무엇인가
고종석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어에 애정을 가지고 수많은 책을 탐독해왔으며, 또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이는 곧 그가 정확한 언어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어, 그리고 한국어다운 글쓰기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한국어의 특징을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포착하여 설명한다. 이를테면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인 소쉬르의 시니피앙/시니피에 개념을 경유하여 한국어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또 한 시대를 풍미한 언어학자 사피어와 워프의 언어결정론을 전제한 후 한국어 색채어휘의 풍부함에 감탄하는 식이다. 한국어의 특징에 주목하되, 이를 객관적인 언어학의 지형에서 성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한국어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물론, 그 나름의 한국어 문장을 짜는 데에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책에는 글을 명료하게 해주는 매우 구체적인 조언이 여럿 제시된다. 몇 가지 유용한 원칙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
○ ‘-적的’과 ‘의’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 복수 표현 ‘들’을 남용하지 마라.
○ ‘~ㅁ/음으로써’는 ‘~아/어’로 고치는 것이 좋다.
○ ‘~하는 이유는 ~ 때문이다’는 명백한 오문이다.
○ 단위를 나타내는 불완전명사는 뒤로 빼라.
○ 주어/목적어와 서술어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이 원칙들은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되며, 또 구체적인 사례 위주라 이해하기 쉽다. 특히 ‘~해라’ 식의 독단적 조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차근차근 언어학적인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독자들은 수많은 실전 사례를 통해 난삽했던 문장이 얼마나 간결하게 변화되는지 직접 확인하며, 정확한 한국어 지식에 바탕을 둔 글쓰기의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