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1804년 7월 4일에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17세기의 청교도를 선조로 모신 가정이었으므로 청교도 사상, 생활 태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작품을 썼다. 보든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시인 롱펠로와 호라티오 브리지 및 프랭클린 피어스와 생애의 친교를 맺었으며 1828년 최초의 소설 [팬쇼 Fanshawe]를 출판했으나 뒤에 미숙한 작품임을 깨닫고 회수해버렸다. 그 후에 그는 세일럼에 있는 어머니의 조용한 집에 틀어박혀서 문학수업을 했다. 1837년 단편집 [두 번 들려준 이야기 Twice-told Tales]를 발표했으며, 1839년 경제적 불안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보스턴 세관에 근무했다. 그 후 1850년 그의 대표작이 된 [주홍글씨]를 발표했다. 17세기의 청교도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그린 이 작품은 청교도의 엄격함을 교묘하게 묘사하고 죄인의 심리 추구, 긴밀한 세부 구성, 정교한 상징주의로 말미암아 19세기의 대표적 미국 소설이 되었다. 1851년 청교도를 선조로 가진 고가의 자손에게 악의 저주가 걸렸다는 내용의 [일곱 박고의 집 The House of the Seven Gables]를 발표했다. 이듬해 자신이 참가했던 실험적 공동 농장을 무대로 한 [즐거운 계곡의 낭만 The Blithedale Romance]을 출판하여 지상 낙원에 모인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렸다. 1853년 영국의 리버풀 영사로 부임했으며, 그 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이 여행 뒤에 목신이 죄를 짓고 비로소 지성과 양심의 깨달음을 경험하는 [대리석의 목신상 The Marble Faun](1860)을 집필하였다. 귀국 후 영국 체재기를 정리한 [우리들의 고향](1863)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청교도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전통을 계승한 호손은 범죄나 도덕적 종교적 죄악에 빠진 사람들, 자기 중심벽, 고독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내면생활을 도덕, 종교, 심리의 세 측면에 비추어 엄밀하게 묘사했다. 상징적, 우회적 수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수법은 H. 멜빌, H. 제임스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