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램 (Charles Lamb) 법학원 간부의 서기 존 램과 엘리자베스 필드의 아들로 1775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7세가 되던 해 크라이스츠 호스피틀 학교에 입학했고, 평생의 친구가 될 S. T. 콜리지를 만났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1789년 학교를 자퇴하고 남양상사라는 곳에서 잠시 근무하다, 1792년부터 동인도회사의 회계원으로 취직하여 1825년 은퇴할 때까지 근속했다. 1795년에는 정신착란증으로 6주간 입원했는데, 이 증상은 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누이 메리가 심한 발작을 일으켜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 사건 후 램은 메리의 후견인이 되어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돌보며 살았다. 램은 콜리지를 가까이하면서 문학적으로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1796년에 콜리지가 낸 시집에 네 편의 소네트를 발표해 등단했고, 이미 문명을 떨치고 있던 워즈워스 남매, P. B. 셸리, 윌리엄 해즐릿, 리 헌트 같은 문사들과도 교유했다. 1798년에는 첫사랑 앤 시먼즈와의 불행했던 관계를 넌지시 비치는 《로사먼드 그레이》를 써서 호평을 받았다. 시로 쓴 비극 《존 우드빌》(1802), 소극(笑劇) 《H 씨》(1806) 등 몇 편의 극작품도 발표했으나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 후 메리와 함께 셰익스피어 희곡을 산문으로 번안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1807),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아동서적으로 번안한 《율리시스의 모험》(1808) 등을 출간했다. 1820년부터는 엘리아(Elia)라는 필명으로 월간지 《런던 매거진》에 에세이들을 기고했는데, 이것들을 모아 1823년 《엘리아의 수필》, 1833년에 《마지막 엘리아의 수필》을 출간했다. 자전적 소재에 절묘한 유머와 페이소스를 섞어 우아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에세이들은 영국 산문문학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1834년, 산책 중에 입은 낙상으로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에드먼턴의 올세인츠 교회 묘역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