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마르셰(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 1. 24~1799. 5. 18) 프랑스의 작가. 파리 출생. 시계상의 아들로 태어나 시계제작과 하프 연주의 재주를 인정받아 궁정 출입을 하게 되었다. 또 실업가 뒤베르네의 총애를 받아 투기로 재산을 모으고, 작위(爵位)를 사서 드 보마르셰라고 이름을 붙였다. 희곡 〈으제니〉(1767), 〈두 친구〉(1770)로 극작을 시작하였으며, 뒤베르네의 유산 소송에서 드러난 재판의 부패를 다룬 재기(才氣) 넘치는 〈비망록 (Memoires)〉(1773∼1774)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탈리아 작곡자 로시니의 인기 오페라의 기초가 된 희극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1775 초연)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후 루이 16세의 밀사(密使)로 각지를 여행하였으며, 미국 독립전쟁에도 개입하였다. 또한 프랑스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활약하고, 볼테르 전집(全集)의 감수를 맡기도 하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영감을 준 희극 〈피가로의 결혼(Le Mariage de Figaro)〉(1781, 1784년 초연)은 재치 넘치는 하인이 연애에서 귀족을 이기는 주제에다 사회풍자를 담음으로써, 프랑스혁명 전야의 시민정신에 들어맞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혁명 중에 투옥되었으며, 그 후 혁명정부에 협력했으나 결국은 국외로 피신, 집정관(執政官) 정부시대에 파리로 돌아와(1796), 몇 해 후에 사망하였다. 그 밖의 작품에 철학적 오페라 〈타라르〉(1787)와 〈세비야의 이발사(Le Barbier de Seville)〉, 〈피가로의 결혼〉과 더불어 3부작을 이루는 희극 〈죄 있는 어머니(La M?re coupable)〉(179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