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1~1881
1828년 8월 부유한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마저 잃는다. 잇따른 부모의 죽음 후 친척 집에서 자라면서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1844년에는 카잔 대학에 들어갔으나 자유분방한 생활 끝에 퇴학당하고 고향 영지로 돌아가 농사 개혁을 생각하는 한편 문학에 정열을 쏟기 시작한다. 이상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였던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도박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는데 톨스토이는 이 때문에 평생 자괴감을 느꼈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과 사상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장교로 참전해 활약한 그는 돌아와 작가로서 순조로운 길을 걷다가 1857년 유럽 여행길에 올랐고, 귀국 후에는 농노제 폐지를 주창하고 농민학교를 개설하는 등 자유방임주의 교육을 실천하며 농민 계몽에 힘쓴다. 1862년에는 열여덟 살 어린 소피야와 결혼하고, 아내의 내조 덕분에 안정을 찾아 불멸의 거작 《전쟁과 평화》(1864∼1869)를 쓴다. 1870년 초부터 톨스토이는 다시 교육 활동에 힘을 쏟았고 또 하나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1873∼1876)를 내놓는다. 이 시기 주위 사람들의 잇단 죽음을 겪은 톨스토이는 삶과 죽음, 종교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고백록》(1879)은 이러한 내적 성찰이 집약된 책으로, 톨스토이 사상의 분기점으로도 여겨지며 이후 그의 사상은 기독교적 아나키즘으로도 평가되는 ‘톨스토이주의’라 일컬어진다.
1880년대에는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중편 《크로이처 소나타》(1889) 등의 수작을 내놓았으며, 1908년 80회 생일에는 전 세계에서 축하 인사를 받을 정도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주의자로서, 무정부주의자이자 인도주의자인 남편의 이상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아내와 저작권 포기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대립했고 이는 톨스토이의 말년에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소피야의 히스테리가 극에 달할 무렵인 1910년 톨스토이는 마침내 장녀와 주치의를 데리고 가출을 감행했다가 급성 폐렴을 일으켜 숨을 거두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