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자의 반야심경은 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경전 불교에서는 수많은 불경 가운데 반야심경을 으뜸으로 꼽는다. 마치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를, 유교에서는 논어를 최고의 경전으로 삼는 것과 같다. 8만4천여 권에 이르는 많은 불경은 이 반야심경을 풀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반야심경처럼 불교의 모든 것을, 그리고 부처의 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은 없다. 반야심경의 원전은 ‘마가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라는 경전으로 수백 년에 걸쳐 대략 600권으로 편찬되었다. 속칭 이것을 대반야경이라 하는데 현장법사가 한역한 경전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반야심경 소본小本은 사리불의 질문에 관자재보살이 답하는 문답 형식으로 전개된다. 반야심경의 정수만 담아 260자밖에 되지 않지만 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전의 이름 가운데 마가는 산스크리트어의 ‘마하’를 음역한 것이며 ‘위대한’, ‘이상한’, ‘크다’는 뜻이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다. ‘반야’는 진실의 지혜를 말한다. ‘바라밀다’는 피안에 이르는 수행법의 총칭이다. 그리고 ‘심’은 정수, 즉 심장을 뜻한다. 그러니까 ‘반야바라밀다심경’이란 피안에 이르는 완성된 지혜의 정수를 가르치는 성전이라는 뜻이다. 반야심경의 중심사상은 ‘공空’이다 반야심경의 중심사상은 ‘공空’이다. 공의 세계를 반야심경에서는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라는 여덟 글자로 압축해놓았다. 형체(물질)가 바로 공이며, 공이 바로 물질이다, 라고 풀이하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은이는 현대적인 비유와 해설로 쉽게 풀이한다. ‘공은 무가 아니다. 유도 아니다. 그것은 무와 유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공은 인도인이 발견한 숫자 ‘0’의 개념에 가깝다. 어느 숫자라도 0과 조합하면 무궁한 변화를 일으킨다. 10에 0을 더하면 100이 된다. 어느 수나 모두 0을 곱하면 무가 된다. 0에 0을 더하거나 빼거나 해도 변함이 없다. 공은 숫자의 0, 즉 공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반야심경을 읽는 이유는 부처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알기 위함일 것이다. 반야심경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경전이지만, 그 내용은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깊고 넓고 어렵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수십 년 동안 반야심경을 공부한 지은이도 “반야심경의 세계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자신이 없다. 심경의 세계는 지금도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반야심경 해설에 나선 이유에 대해 중국의 유명한 무협소설의 작가인 김용(중국명 자량융)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름 있는 고승이라 해도 과연 정말로 심경의 세계를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심경은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다만 번뇌의 세파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반야심경의 지혜를 통해 조금이라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