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소개
전세계에 북한 인권의 참상을 알린 탈북 여대생의 용감한 고백
“살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14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
★한국 ㆍ 미국 ㆍ 영국 ㆍ 독일 ㆍ 프랑스 ㆍ 이탈리아 동시 출간
201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One Young World Summit)’에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참담한 인권유린을 고발한 직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일약 ‘북한 인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탈북 여대생이 있다. 언니를 찾기 위해 TV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박예주’라는 가명으로 출연했던 ‘박연미’다. 연설 이후 《워싱턴 포스트》《가디언》등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의식 변화와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논평을 기고하였고, 다양한 국제회의에서 연설하며 영국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책에는 그녀가 직접 보고 경험한 북한의 참상에서부터 인권유린에 노출된 탈북자의 처참한 삶, 인권운동가가 되기까지 23년 동안의 고된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용기와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다.
◎ 출판사 리뷰
연약한 소녀에서 인권운동가로 성장한 탈북 여대생,
그녀가 밝히는 ‘이 세상 가장 어두운 곳’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이 날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인권(人權)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 권리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이 모든 권리가 한 사람의 독재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나’는 없고 오직 ‘우리’만 있는 곳, ‘선택’은 없고 ‘복종’만 있는 북한의 이야기다.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악몽 같던 그곳을 벗어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만이 소리 없는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 탈북 여대생 박연미가 그렇다. 그녀는 국제무대에 올라 독재 정권에 세뇌 당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과 인신매매, 감금, 폭력 등 인권유린에 노출된 탈북자들의 실상을 알렸다. 그녀는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북한 사람들)는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세 살이던 2007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뒤 탈북자임을 숨긴 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이제 인권운동가가 되어 북한 인권을 위한 활동을 수행해나가고 있다. 2014년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를 시작으로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열린 ‘북한 문제 공청회’와 20개 비정부기구(NGO) 주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인권회의’,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제6차 세계여성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 참석해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증언했다. 또한 강연과 칼럼, 방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 주민과 탈북자에 대한 인식과 인권 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전세계 리딩 언론이 그녀의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북한 인권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꽤 많은 기사가 나오면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인권 문제가 이슈가 되는 듯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2만 5,000명.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수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방북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가 무색하게 국내에서는 북한인권법 통과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다.
거짓·과장 증언 논란을 향한 최초의 답변
다양한 인권 활동으로 국제사회에 널리 이름이 알려지자 북한 당국이 공식적인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친인척을 동원해 ‘인권 모략극의 꼭두가시’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날조된 증언이라며 그녀를 몰아세웠다. 국내 일부 언론 역시 그녀의 증언에 대해 거짓·과장된 이야기라며 논란을 부추겼지만 그녀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스스로도 믿기 힘든 과거를 다시금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여자로서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뼈아픈 고통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과거와 치부를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녀가 아닌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과 온기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희망을 되찾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그 동안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한 최초의 변론이자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북한의 독재와 세뇌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되찾기까지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았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를 향한 본성
북한 또는 탈북자라하면 우리의 일생생활과 거리가 먼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어쩌면 어제 슈퍼마켓에서 마주쳤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녀는 등굣길에 사람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밥 대신 초목과 곤충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사망 전후 1990년대 불어 닥친 기근과 경제 붕괴로 식량 배급 체계가 무너졌다. 북한 주민은 생존을 위해 주도적으로 살 길을 모색했고, 그 결과 외국 물건이나 국가 재산 등을 사고파는 불법 거래가 활성화하게 되었다. 이른바 ‘장마당(암시장)’은 주민의 식량을 책임질 수 없는 북한 정부 역시 허가하게 되었고, 이는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주민의 의식이 변하는 등 북한 정권의 약화를 불러올 변화의 씨앗이라고 시사한다. 북한은 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도 밀수입된 남한의 화장품을 사거나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탐닉하는 등 이중사고에 빠진 상태였다.
그녀의 아버지도 밀수입에 뛰어들어 한때 유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곧 불법 사업이 발각되며 집안이 몰락했다. 아버지의 복역으로 가난에 허덕이다 결국 탈북이라는 위험천만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자유라는 거창한 이념을 따라 북한을 떠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간절했을 뿐이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간 언니를 찾기 위해 그녀는 엄마와 함께 2007년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어쩌면 북한보다 더 험하고 잔인한 세계였다. 눈앞에서 엄마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엄마는 65달러, 그녀는 260달러에 물건처럼 노예로 팔렸다. 다음 알선책으로 넘어갈수록 몸값이 올라갔다. 이후 아버지도 어렵게 중국으로 넘어왔지만 병세가 깊어 곧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그녀가 보낸 2년간의 세월은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기독교 선교단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입국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뼛속까지 시린 추위의 몽골 고비 사막을 거쳐 국경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첫 자유를 경험했다. 15년 만에 경험한 자유는 만약 북송이 된다면 그녀의 목숨을 북한이 아닌 자기 손으로 끊겠다는 최초의 선택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2009년 한국에 도착했지만 운명은 그녀를 편하게 두지 않았다.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이방인에 대한 사람들의 멸시와 무시, 편견이 그녀를 짓눌렀다. 이불 속에 숨어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똑똑하고 용감했다. 지금까지 어려운 역경을 모두 헤쳐 나온 것처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공부에 전념했다. 그 결과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했으며 영어에도 능통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뒤늦게 그녀의 언니도 한국에 정착하여 7년 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되었다. 삶에 대한 그녀의 강한 의지가 자유로 이끌었고, 전세계 사람이 주목하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했다. 그녀는 영하 32도라는 혹독한 추위의 고비 사막을 건널 때,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죽는 것이 두렵지만 세상에 잊히는 것도 두렵다. 여기서 죽어도 세상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겠지.’
그녀는 같은 희생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을 위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이 책을 완성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며, 북한의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날까지 그녀의 용감한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 책 속으로
내가 자란 북한은 부모님의 어린 시절인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북한과 달랐다. 부모님이 어릴 때는 옷이나 의료, 식량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나라에서 전부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북한은 그동안 지원해준 공산주의 국가들에 버림받았고 나라 경제가 무너졌다. 북한은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어린 나는 우리 집이 1990년대 북한의 막대한 변화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동안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알지 못했다. 언니와 내가 잠든 뒤 부모님은 자리에 누운 채로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시름에 잠겼다.
_p.28-29 「01.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에서
엄마는 북한 업자들에게 중국 돈 500위안, 즉 약 65달러(2007년 환율 기준)에 팔려왔고 지팡에게는 650 달러에 팔릴 예정이었다. 내가 북한에서 팔려온 가격은 약 260달러였고 지팡에게는 1만 5,000위안, 즉 2,000달러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렸다. 이처럼 다음 알선책으로 넘어갈수록 몸값이 올랐다.
나는 사고파는 상품으로 전락해 바로 눈앞에서 몇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가격 협상을 들으면서 느꼈던 모멸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이었다. 그저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는 것만 알 뿐이다.
_p.170 「12. 어둠의 반대편」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추워졌고 나는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막에서 죽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 뼈를 발견하거나 무덤을 표시해줄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냥 잊힐까? 세상에서 내가 완전히 혼자라는 깨달음은 살면서 느낀 가장 무섭고 슬픈 일이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김정일을 싫어하게 되었다.
_p.239 「18. 별을 따라서」에서
다른 탈북자들도 같은 문제를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나원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업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었다.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나는 ‘취미’가 뭔지 몰랐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는데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당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누가, 왜 신경 쓴단 말인가? 북한에서는 ‘나’가 없고 ‘우리’만 있다. 자기소개 연습은 나를 영 불편하고 속상하게만 했다.
_p.263-264 「20. 꿈과 악몽」에서
모든 탈북자에게는 남한에 도착하고 5년 동안 담당 형사가 배정되어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도와준다. 그는 나의 안전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북한 정부에 의해 긴밀하게 주시되고 있다는 말이 떨어졌다면서.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위험할 수 있으니 말조심하고 다니라고만 했다.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성공이었다. 북한 당국이 나를 위협이 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리라곤, 나를 위협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 계속 그렇게 놔둔다면 나는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_p.314 「24. 집에 오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