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07
第 1 部 유년 시절 ~ 월남할 때까지
出生과 유년 시절 14 중학 시절 18 日本의 태평양 전쟁 패망 23 8·15 해방과 피난길 27 歸鄕 길에서 31 확대되어 버린 감정싸움 36 신의주 학생 사건과 越南試圖 37 신의주 반공학생 사건의 전말 41 두 번째 월남 길 43
第 2 部 대한민국 국군 생활
대한민국 육군 자원입대와 하사관 교육대 48 여순 반란사건과 공비 토벌작전 52 정보참모실 요원으로 56 金容과 金洪麗와의 만남 58 6·25 전쟁 발발 62 金仁根과의 재회 67 전쟁터에서 만난 간호원 71 중공군의 춘기 대공세 73 민간 화물차 징발 74 소복단장한 여인들의 장례식 76 군량미와 식용유 부정유출 사건 80 휴전이 되던 1953년 83 결혼 88 헌병 근무를 하면서 94 군 복무를 마치고 명동을 방황하던 시절 97 해동 탄광과 러시아 선박 인양사업 100 關西開發 105 六和建設 주식회사 107
第 3 部 한호육우목장사업협력회 수입 사업
韓濠合資事業 112 金善煥 博士와의 만남 114 브라이언 S 케이셔 씨와의 만남 116 진드기 사냥과 驅除백신 開發 118 韓濠肉牛牧場協力會의 創立 124 갑둔리 목장과 노란반장 126 어려웠던 첫 育成牛 輸入 136 호주로 가는 길 144 Cork Station과 Mr. D. Dunn 147 한우 사육의 실태와 육우 消費 실태 153 競走馬의 수입 158 수입 소 분양 163 호주 소 2차 도입 165 호주 소 3차 도입 169 브루셀라 騷動 171 輸入窓口의 一元化와 새마을본부 173 해외투자와 Cork Pastoral Company 183 해외투자 허가 취득 187 開拓計劃 191 회장직 사퇴와 새 회장 영입 194 한호합자회사의 폐업 197
第 4 部 濠洲로의 移民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202 새로운 개척의 꿈을 안고 205 무너져 버린 꿈 212 이민 보따리를 풀어놓기는 했지만 215 그때로부터 1년 후 220
第 5 部 中國 進出
연변 자치주의 초대를 받고 226 김진경 박사와의 인연 228 민족대학 설립 233 白城子 鎭南 種羊場 訪問 236 延邊科學技術大學校 시범 목장 239 黃牛를 찾아서 241 黃牛의 對北 지원 244 몽골 오지에서 만난 탈북 여성 256 친구가 찾아오다 258 敎材 편찬과 황소 지원 사업 260 어머님과의 꿈같은 만남 264 2차 황우 지원과 단동으로의 이전 271 남한의 광우병 소동 278 소의 충성 281 추억 속의 단동 282 鴨綠江牛開發硏究所의 설립 284 북한 결식아동 지원 시작 286 빵을 굽는다는 것 293 홀트아동복지회와의 인연 300 金香蘭 보좌역 306 김향란이 시집가는 날 311 對北 결식아동 지원 사업 313 홀트재단의 초청 317 옥수수 한 줌의 가치 319 중국에 찾아왔던 남한 사람들 322 믿을 수 없는 중국 상품 326 대북 지원 사업의 百態 328 이중간첩이라는 누명 334 아동 보호시설 보수와 자재 지원 335 북한 아이들의 실상 340 북한의 아동 보호 실태 343 소와 英雄稱號 348 평양에서 신의주까지 350 아파트 안의 닭장 그리고 성불사 353 옥수수 보급 투쟁에 나선 북측 인사들 355 두 번째 옥수수 지원 361 북한의 식량 사정 363 북한 서민의 살림 사정 367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370 허사가 된 양돈 지원 377 친북 조선족이 구하는 신랑감 380 북송에 대한 小考 384 갈 길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387 모든 일을 내려놓으면서 390 吾道一以貫之 397 끝을 맺으며 397
後記 400
부록
1. 이력서, 학력경력 404
2. 해외투자허가증 사본 406
3. 사진 407
출간후기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