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느껴지던 생명의 고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덜덜덜.
시리도록 추웠다. 떨림을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너무나 추웠다. 시안을 뒤에서 끌어당겼던 설의 온기가 등 뒤에 있긴 했지만, 그 앞에 있는 시우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너무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넋이 나가 있던 시안의 눈동자가 위를 향했고, 은발에 푸른 눈을 지닌 용제, 시안의 남편이기도 한 자와 마주쳤다. 그는 시안과 시우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지만, 시안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건드리지 마.”
시안은 분명 눈앞의 용제, 카이디안에게 흔들렸다.
시우가 홀로 싸우고 있을 동안, 시안은 카이디안에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또한.
“건드리지 마라, 서의 용제.”
시우를 죽인 용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떤 상황, 어떤 이유라도, 나의 비(妃)가 죽게 놔두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너에게 원망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시우를 잃은 슬픔만을 느껴도 모자랄 상황에, 카이디안을 잃게 된 상실감마저 느끼고 있는 자신이, 그 잔인한 여자의 마음이 저주스러웠다. 찢겨 나가는 심장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품 안에 있는 시우를 끌어안고도 이런 자신이 저주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비(妃)? 비(妃)라니 누가 누구의?”
시안은 차가운 조소를 날리며 카이디안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동의 일족을 다스리는 왕(王)을 감히 비(妃)라 칭할 수 있다 생각하는가, 서의 용제여?”
“…….”
카이디안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을 보며, 시안은 더욱 진한 비웃음을 날렸다.
“그대의 손으로 직접, 방금 나를 왕(王)으로 만들지 않았나?”
유일하게 남은 청룡.
그토록 거부하고자 했던 왕좌가 결국 시안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시우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지금 시안은 동의 일족의 왕, 용왕의 이름을 짊어지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지존의 이름을 소유하게 된 시안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왕의 소유나 마찬가지인 용제비라는 이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거부하고자 발버둥을 쳤으나, 그래서 오히려 시우를 힘겨운 길로 내몰았고, 결국은 시안 때문에 시우는 목숨을 잃었다. 시안이 거부하던 운명에 휘말려 고생만 하던 동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말았다.
가슴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은 이 한을 어찌하면 좋은가.
“가라, 용제여. 내 동생을 죽인 너는 나의 원수. 다시 만나거든 널 죽이고야 말 테니, 가능하면 내 눈에 띄지 마라.”
바람이 시안의 눈물을 훔쳐, 마치 자신의 눈물인 것마냥 허공에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