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대학생들의 특별한 강연 ‘망치’ 스피치 모음
‘인문학하는 광고인’ 박웅현이 젊은 대학생들을 마이크 앞에 세우고 있다. ‘망치’라는 이름의 스피치 프로젝트다. 벌써 2년 넘게 진행되어왔다. 처음에는 ‘성공한 사람들만 할말이 있을까?’ ‘젊은 대학생들이라고 할말이 없을까?’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대학생판 TED’라는 별명을 얻었고, 회를 거듭할수록 청중의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이 책 『망치』는 바로 그 강연 시리즈를 통해 발표된 대학생 54명의 발언을 고스란히 옮겨담은 것이다.
1인당 7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할말을 압축적으로 해야 하는 형식, 거기에 젊은 대학생 특유의 위트와 감성이 더해져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되는 망치 강연 현장의 재미가 책에도 그대로 살아 있다. 54명이라는 발표자 수만큼이나 화제도 화법도 다양하다. 기발한 제안, 용기가 필요한 고백, 맹랑한 의견, 깊은 성찰, 유머와 웃음, 그리고 어쩌면 세상을 바꿀지도 모를 생각들까지 같은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나같이 작지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던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을 ‘망치’로 삼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시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무엇에 열중하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같은 세대 젊은이들에게는 공유와 공감의 장, 기성세대에게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다.
다채로운 발언 속에서 드러나는 젊은 그들의 모습
이 책에는 사소하지만 독특한 경험들에서부터 은근히 날선 현실 비판까지 참으로 넓고 다양한 범위의 발언들이 담겨 있다. 공감 만점의 다채로운 발언 속에서 드러나는 젊은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짐작하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아프니까 청춘’도, ‘88만원 세대’도 아니었다. 스펙 쌓기 대신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그러면서도 당당히 자기 자신을 찾고, 고민과 아픔을 드러낼 때도 냉소 대신 미소를 지을 줄 안다. 세상과 다른 속도로 살려는 주체성도 강하다.
한 학생은 고등학교 때 경쟁의 압박에 숨이 막혀 단지 ‘그냥 놀기 위해서’ 용감하게 1년을 휴학했다. 무리에서 벗어난 불안감과 해방감이 기묘하게 뒤섞인 그때의 경험이 성숙시켜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며, 가다가 힘들면 그냥 한 1년쯤 푹 쉬었다 가도 아무 탈 없더라고 너스레를 떤다(김가현, ‘+1’). ‘광속, SNS, 인증샷’의 시대에, 한 학생은 진한 여름의 추억을 자신밖에 볼
사람이 없는 아날로그 그림책으로 만들기 위해 몇 달을 바치기도 한다(정재윤, ‘8월, 흔적’).
한 학생은 과제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디자인 아이디어 하나를 그냥 버리지 않고 발전시켜 마침내 청와대에까지 들이미는 사고를 친다. “여기서 끝낼까? 끝내서 뭐하게?”라는 작은 생각 하나가 일으킨 연쇄반응의 결과였다(박성희, ‘여기서 끝낼까?’).
아르바이트로 ‘야설(야한 소설)’을 쓰다가 뜻밖의 바람직한 결실들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웃음을 선사하는가 하면(김승용, ‘여자친구, 알바, 성공적’), ‘혼전 순결’을 다짐하고 실천하는 특이한 남자 대학생이 묘하게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신동혁, ‘병신 아닙니다’). 그림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미술대학에 입학할 요건을 갖추기 위한 그림,
그리고 대학에서 성적을 얻기 위한 그림을 그리느라 오히려 그림의 행복을 잃어버리고 만 학생도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했다가, 아무 기준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작정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자신 속의 화가를 되살려내기도 한다(고민주, ‘민주 미술사’).
흥미로운 일화 가득한 수필집으로 읽어도 좋을 책
이 책은 강연집이라기보다 흥미로운 이야기 가득한 수필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어떤 글을 읽어도 재미와 의미를 건질 수 있다. 각각의 글이 가진 밀도와 완성도, 전달력이 기성 문필가의 글 못지않다는 것도 느끼게 될 것이다. 말로 했던 강연을 글로 다시 한번 다듬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피치 자체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달의 공들인 준비 과정을 거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준비 과정을 박웅현을 비롯한 창의적인 광고인들이 멘토가 되어 도왔다. 물론 멘토들이 내용을 대신 구성해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기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절벽 끝으로 스스로 걸어나가게 만드는’ 어미새의 위치를 고수했다. 스스로 극한까지 생각을 밀어붙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대중 앞에서 말로 할 수 있도록 담력을 키워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잘만 인도해주면 누구나 이런 비범한 발언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것, 이는 망치 프로젝트가 입증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각각의 글에는 그렇게 발표자들이 자신을 깨트리는 망치질로 이루어낸 성숙의 흔적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