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베스트셀러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하버드 박사 이만열 교수가 전하는 삶의 본질 ● 급변하는 미래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 교육의 가치 ● 무라카미 하루키, 노암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이클 푸엣, 헨리 로소브스키 세계 석학들과의 대화, 한국 사회를 향한 의미 있는 담론 ● 지금의 이만열을 있게 한 유대인식 교육법과 동서양 대표 고전 이야기 “이 책은 속도에 치중하다 방향을 잃어버린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은 기적 같은 압축 성장을 이뤄냈지만, 상대적으로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는 퇴보했다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의 부활과 한국 전통문화의 재해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그의 제안에 깊이 공감한다.” -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한국 문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소개하며 세계 속 한국의 위상과 역량을 재조명한 베스트셀러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삶과 한국에 살면서 겪고 느낀 한국 문화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21세기북스)는 저자가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 예일대와 하버드대를 비롯해 도쿄대, 대만 국립대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을 다니며 맺은 석학들과의 인연, 인문학 교수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한국에 살면서 느낀 한국 교육의 현실과 대안, 지금의 이만열을 만들어준 독서 습관과 책 이야기를 담은 자전 에세이다. 이 책은 2011년 출간된 책의 전면개정증보판이다. 초판 출간 이후 5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은 저자가 맺은 특별한 인연과 경험을 더해 완전히 새롭게 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의 여정과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내며 속도보다 중요한 방향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이정표를 찾았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독자분들이 책을 다 읽은 뒤 자신이 걸어갈 인생의 목적지와 방향을 찾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_ 프롤로그 중에서 속도에 치중하다 방향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 당신의 이정표는 어디를 향해 있는가 저자는 한국에서 인문학 교수로 지내며 동아시아와 한국 문화에 관한 글을 100편 이상 발표하고, 활발한 집필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 사이 이만열이라는 한국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 앞에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그런 그에 눈에 비친 한국은 ‘왜 사는가’의 문제보다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경제 성장에 치중해 지난 수십 년간 ‘속도’를 내는 데만 박차를 가한 결과 ‘방향’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목적지와 방향을 찾을 방법으로 저자는 인문학 교육의 부활을 제시한다.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인문학이야말로 급변하는 미래 시대에 가장 필요한 학문이며, 깊이 있는 토론과 독서, 상상력을 넓혀주는 글쓰기가 대안이라는 것이다. 세계 석학들과의 위대한 대화 한국 사회를 향한 의미 있는 담론 : 무라카미 하루키, 노암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먀, 마이클 푸엣, 헨리 로소브스키 동서양을 아우르며 폭넓은 인문학적 행보를 보여온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꾸준히 지적 교류를 해왔다. 그중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5인 - 무라카미 하루키, 노암 촘스키,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이클 푸엣, 헨리 로소브스키 등 세계 석학들과의 값진 대화록을 공개했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식인에게 주어진 사명’, ‘세계 속 아시아의 위치와 역할’, ‘아시아 교육의 어제와 오늘’, ‘아시아 대학에 주어진 과제’ 등 더 나은 미래 한국을 위한 대안과 가능성을 담았다.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인 저자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특별한 교육법도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인문학적 소양을 다지고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유대인식 교육법과 동서양 고전 읽기가 그 비결. 교육의 핵심은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실천으로 옮기는 저력을 쌓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낯선 이방인 ‘임마누엘’에서 한국인 ‘이만열’로… 大한국 표류는 계속된다 이 책은 중국인 친구들 앞에서 젓가락질 솜씨를 뽐내던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관심은 대학에서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이르고, 한국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뤄 이만열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다. 그를 이 낯선 한국 땅까지 오게 한 한국의 매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의 방향은 뚜렷하게 한국을 향해 있었고,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만열 교수의 궁극적인 꿈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져가는 동아시아에서 지식인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大한국 표류기’라는 부제 역시 한국 문화를 내부인의 시선이 아닌 외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저자의 바람을 담고 있다. 그의 시선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추천사를 쓴 이한우 교수(단국대 인재아카데미)의 말처럼 “어느새 이만열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됐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그의 표류기가 반가운 이유다. ◎ 본문 중에서 간접적인 체험이긴 했지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가진 기억의 파편과 마주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종종 인도의 풍경과 차 농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힌두 사원에 대해 들려주곤 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어느새 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꾼 셰에라자드 같았다. 어쩌면 아시아에 대한 동경은 그때 이미 마음속에 싹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24쪽)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과장을 보탠다면 20억 인구의 중국인보다 더 찾기가 쉽다.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 생생한 경험들이 한국 사회에 축적되고 있다. 이것이 김치처럼 발효되면 나중에는 엄청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76쪽) 한국에서 느낀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일본에서 느낀 상호작용의 차이는 바로 마음이 오가느냐의 여부였다. 내가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받은 선물은 이러한 마음의 감동이었다. (110쪽) 며칠 후 친구로부터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 “대통령이 너의 책을 언급했어!” 오바마 대통령이 한글로 된 내 책을 읽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그때는 도무지 박 대통령이 왜 내 책을 언급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약 두 시간 후 나는 대통령이 하계휴가 이후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내 책을 ‘창조경제’ 후반기 정책에 관한 논의의 중심 과제와 연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 대통령에게 내 책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영광이었다. 나처럼 고전문학과 유교철학을 전공한 학자의 생각을 현실 정책 분야에 받아들였다는 것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한국과 중국의 유교 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그랬듯 현실 정책에 관해 문학 분야의 지식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138쪽)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부합하기 위해 필요한 학교는 사막과 같은 비인간적인 교육이 아닌 인간다운 교육을 해주는 곳이다. 인간의 본질과 철학, 문학, 예술 등 학생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커리큘럼에 투자해야 한다. 결국 교육이라는 것은 돈벌이가 목적이 아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다. 대학이 진정한 교육을 추구한다면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단지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수업 이해 능력을 재는 것은 인간을 기계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두뇌는 실리콘이 아닌 물과 탄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 이런 잘못된 비교는 결국 비극만을 가져올 뿐이다. (147쪽) 교육은 장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소비자가 아니다. 물론 제품도 아니다. 교육은 모든 곳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국 교사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란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돈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162쪽) 인문학 교육은 개개인이 사회나 세상을 복잡한 형상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아가 어떠한 가치나 권위가 문화, 사상, 경제, 기술 등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부터 형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예컨대, 기술 전문가는 차세대 스마트폰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사회학, 인류학 등에 관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 학생은 이와 같은 기술이 사회 기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188쪽) “소설을 위해 작가는 많은 관찰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현실에 대입해 문학이라는 틀 안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이름은 변할 수 있고, 글의 맥락도 은유적으로 표현됩니다. 반면 학문에서는 각주를 달고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목요연하게 그것이 진실이라고 입증하지요. 하지만 누군가가 각주를 동원해 모든 소설을 분석하려 한다면 문학적 생리를 차단하는 게 아닐까요?” 소설은 그 안의 일상생활 그대로 살아 있는 표본을 가진 동물원과 같지만, 학술적인 글은 박제된 동물만이 가득한 박물관과 같다는 것이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211쪽) 집 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책과 잡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결정적인 순간에 작용하는 것은 독서였다. 그것도 주로 어릴 때 읽었던 책이었다. 독서를 통해 얻은 것을 주제로 부모님들과 자주 대화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하고 차이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세대를 훌쩍 넘어 친구처럼 이해하며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281~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