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공간은 어떻게 문명을 떠받쳤는가
공학적 경험과 지식이 인문적 질문으로 터져나오다
“지하공간은 문명의 역사에 발맞추어 변화되어왔다. 오래전 인간은 천연동굴이나 조악한 손도구로 만든 지하공간에 기거했지만 땅을 파는 지혜가 고도화된 오늘날 지하공간은 인간의 생활공간으로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하공간에 대한 이해나 조사는 물론 쓸 만한 연구 자료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아직 지하공간을 지칭하는 통일된 용어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_책머리에
“어두운 동굴에서는 상반된 두 감정이 교차될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는 안도감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다. 현대의 지하공간을 기획할 때 이 두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하공간은 안온함이라는 이점과 더불어 폐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지상의 개방성을 확보하면서 지하공간의 정적인 요소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_책머리에
지하공간에 대한 최초의 지적 오디세이
지구를 보면 육지와 바다가 어우러진 평면이다. 그 내부엔 멘틀과 용암이 꿈틀거리고 있다. 시야를 좁혀 가까이 관찰하면 맨틀과 지표면 사이에 인간이 뚫어놓은 지하공간이 존재한다. 아주 가까이 가보면 거기엔 마치 개미들처럼 열을 지어 인간들이 오르내리며 지상과 지하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인류의 문명은 지상의 찬란함과 우주로의 뻗어나감뿐만 아니라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아래를 파고들어가서 무언가를 저장하고, 도피로를 확보하며, 심지어는 그곳에 지상과 똑같은 공간을 조성해온 역사적 과정이기도 했다. 처음엔 보조적이거나 약소해보였던 이 공간은 고고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가 태초에 공동생활을 시작했던 ‘동굴’이었고, 그래서 기원으로서 작용하는 측면이 있고, 오늘날의 측면에서는 부족한 공간을 해결해줄 획기적 개발자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하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너무나 미흡하다. 지하공간에 대한 이해나 조사는 물론 쓸 만한 연구 자료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아직 지하공간을 지칭하는 통일된 용어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그런 시점에서 한국인 토목전문가가 깊이 있는 인문적 탐구를 바탕으로 『문명과 지하공간: 인간은 어떻게 공간과 어둠을 확장해왔는가』라는 저술을 펴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아카데미의 어떤 학술적인 흐름에 따라 나온 책도 아니고, 저자가 수십 년의 현장경험에서 하나하나 쌓아올린 질문들이 “왜 우리는 지하공간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커녕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수준의 질문도 던지지 못하는가”라는 일성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비교적 많은 자료로 많은 영역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지하공간 오디세이’에 적합하다. 즉 개론서이면서도 종횡무진 지하의 골목들을 뛰어다닌다. 크게 4부로 구성되었고, 각 부는 ‘지하공간의 개념과 역사, 인간과의 관계’라는 원론적인 부분부터 시작하여 생활문화공간으로서의 쉼, 소통으로서의 길, 미래의 쓰임 등 용도와 기능에 따라 살펴봄으로써 나름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항대립적 논쟁구도에서 벗어나, 지하공간의 확장이 오히려 문명의 독을 빼내는 데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심도 있는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하긴 이 글쓰기 또한 지하공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변변한 도구 하나 만들 수 없었던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단단한 바위를 뚫었을까, 캄캄한 지하에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높낮이를 맞추어 물길을 만들었을까, 저 좁은 지하공간에서 얼마나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까…… 터널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해오면서 생겨난 궁금증은 나를 세상 밖으로 돌아다니게 했고, 글을 쓰게 했다. _ 프롤로그
지상-지하의 순환적 세계는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고대 신화들에는 계절이 순환하듯이 인간의 삶도 지상과 지하를 순환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다. 고대인에게 죽음이란 지하세계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원시 종교에서는 지상의 삶 이후에 지하의 삶이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순환적 세계를 관장하는 자는 바로 여신이었다. 여신의 몸은 곡물과 과일을 생산하는 대지이며, 여신의 자궁은 생명의 씨앗을 보존하고 움트게 하는 지하세계인 것이다. 이때 동굴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문’의 상징이었다. 즉 잉태된 생명이 태어나는 산도産道인 동시에 생명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관문으로서, 분리된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인 셈이다.
미궁迷宮은 자연 동굴에서 나온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지하세계다. 그러나 그곳은 추위와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공간이 아니다.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으며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 없는 공간, 어둡고 음침하며 알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일 뿐이다. 도시가 처음 형성되고 왕궁과 신전이 만들어지던 고대 문명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힘에 걸맞은 거대한 미궁을 짓기 시작했다. 플리니우스Plinius가 그의 저서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전하는 고대 문명의 미궁을 보면 우선 규모의 거대함에 놀라게 되며 설계의 정밀함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4대 미궁은 이집트의 아메넴헤트 3세14가 만든 장제신전葬祭神殿, Mortuary temple,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는 크레타 섬의 라비린토스Labyrinthos, 그리스 동쪽 화산섬에 있는 림노스Limnos 그리고 이탈리아의 클루시움Clusium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이 순환의 법칙을 온몸으로 체득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자연의 순환을 거부해왔다. 힘에 기반한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세 종교21가 수천 년간 직선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오는 동안 인간은 자연에 대한 겸손을 잃었다. 순리, 부드러움, 여성성, 동굴, 지하공간, 겨울, 죽음, 낮은 것을 멸시했다. 동물과 식물을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격하시켰으며 자연세계를 함부로 짓밟았다. 그렇게 자연의 한 축이 떨어져나가는 동안 순환의 고리는 낱낱이 분해되었다.
지하공간의 간략한 역사
자연적인 동굴만 이용하던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거공간을 얻기 위해서이거나 광물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재 인간의 채굴 흔적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동굴은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 있는 라이언 케이브lion cave다. 인간이 한층 더 진보된 동굴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부족의 수가 늘어나고 타 부족과의 갈등으로 인해 피신처를 찾아 나서면서부터였다. 예컨대 중세 시대 로마의 종교 탄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던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Derinkuyu 지하 유적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하기는 했지만 처음 만들어진 것은 신석기시대였다. 인간은 동굴에서 주거와 광물 채취라는 용도 외에 새로운 쓰임을 발견해냈다.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수로 또는 지하 통로를 뚫기 시작한 것이다. 약 7000년 전 고대 도시가 형성될 무렵 신전이나 피라미드 등의 석물을 이용한 대규모 시설이 축조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적들을 살펴보면 당시 지하공간 축조 기술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망치나 정 외에 별다른 도구가 없던 시절에 터널을 뚫는다는 건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대규모 노예노동이 가능했던 로마시대에는 비교적 긴 터널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중세에는 공학적으로 의미 있는 터널이 거의 축조되지 못했다.
중세에는 군사적 필요에 의해 광물질을 채굴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었고 이슬람 문명권 또는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금속이나 소금 등이 매장된 광산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정도였다. 당시의 공학 기술이 집대성된 『모탈리카De Re Motallica』를 보면 터널 기술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듯하다.
17세기 들어 유럽에 운하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터널 기술은 한층 발전되었다. 르네상스 시기 문화 부흥의 물결 속에서 전체적으로 공학 기술도 진보한 것이다. 1679년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에 운하를 건설할 때 처음으로 흑색 화약을 바위틈에 넣고 터널 입구를 뚫었다. 사람이 끌과 망치로 직접 바위를 쪼았던 당시에 이 방식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후 바위에 틈을 내는 작업은 수동식 천공기라는 장비로 대체되었고 발파의 효율도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연소 온도가 낮아 안전성이 떨어지는 화약을 다루거나 도화선을 만드는 기술도 점차 발전하여 안전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우리는 다양한 관점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 지하공간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란 1960년대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NATM 공법과 대형 굴착 장비인 쉴드 TBM 그리고 정밀한 발파기법이 적용된 굴착공법의 발달과 전산기술을 도입한 강력한 장비가 터널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의 개발은 인간이 더 이상 지하공간의 규모나 암반의 강도, 터널 연장 등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를 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히 암반 굴착 기술의 발전만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조명·환기·에너지 등 산업 전반의 변화와 재료·기계·금속·건축 등 공학 제 분야의 발달에 따른 시너지 효과까지 검토된 것이다.
지하를 향한 인간의 꿈은 어떻게 미래를 만들 것인가
지하공간의 역사에서 터널의 발전사는 의미 있는 지표다. 그러나 더 괄목할 점은 지하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전까지 터널은 교통이나 수로 건설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에 불과했으나 현대에는 정적인 안정감을 주는 생활공간으로 그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바위를 파내는 일의 기술적인 어려움이 해소된 뒤에도 한동안 지하공간은 소음이 큰 발전소나 기계 시설을 배치하는 장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공연장, 경기장, 도서관, 연구소, 시험실 등의 다양한 문화시설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술 공학적 발달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작용했다. 예를 들어 도시의 인구 집중에 따른 가용 토지 부족, 대기오염이나 자외선·방사능·전자파·지구온난화의 문제 등으로 인해 지하공간의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지상과 지하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되는 흐름도 있다. 프랑스 파리의 신도시 구축사업인 레 알Les Halles 프로젝트는 도시 기반시설과 생활공간을 지하와 지상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일상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미국 로커펠러 센터의 로워 프라자Lower plaza 지하가로망이나 홍콩 큐어리 만의 스펀SPUN 계획 역시 지하와 지상을 연계한 도시설계다. 난항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용산과 한강 주변을 통합 개발하는 GEO 2020 프로젝트를 보면 이제 지표면을 기준으로 한 지상과 지하의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미래의 지하공간은 어떻게 변모할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1984』나 여러 SF 영화를 보면 미래의 지하공간이 지상에서 추방된 자들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설정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지하가 사자死者의 공간이나 도피처로 인식되어온 탓이다. 현대에 들어 지하공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고정관념은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지하공간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이자 관심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지하공간의 조명·환기·동선 계획을 개발하는 핵심은 ‘지상과 다르지 않은 지하’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지하공간은 지상에 대한 추구보다는 지하공간 자체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생활환경, 교통, 물류 시스템을 모두 지하공간에 갖추고 있는 파리의 라데팡스La Defense 신도시를 보면 앞으로 지하공간이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유추해볼 수 있다. 과거 지하공간 활용이 단일 건축물이나 용도 위주였다면 미래에는 교통, 물류, 녹지 생활공간을 비롯해 도시 기반시설 전반에 대한 폭넓은 관점에서 계획적으로 개발될 것이다. 이미 서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도시화가 새롭게 진행되는 남미나 아시아 지역에서 더욱 활발히 추진될 전망이다. 로마나 파리, 런던과 같은 역사 도시가 지닌 장해물들이 후발 국가에는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미래도시 설계의 관점에서 이들 국가는 ‘빈 서판’이다. 일본의 도쿄 GEO 21 프로젝트나 노르웨이의 지하공간 중심의 복합도시 계획, 국내의 용산 GEO 2020 계획, 남산 지오토피아 구상은 이러한 추세를 살펴볼 수 있는 예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좁다는 것도 이점이 될뿐더러 세계적인 수준의 암반 굴착기술과 축적된 신도시 건설의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한반도의 암반이 대부분 단단한 화강암층이라는 지형 조건 또한 유리하다. 이러한 암반 조건은 터널이나 지하공간을 구축하기에 불리한 장애물이었으나 기술적 문제가 거의 해결된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대규모의 지하공간을 구축하는 데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도심에 바위산이 위치하고 외곽을 둘러싼 8개의 산에 싸여 있는 서울의 경우 그 지형을 활용한 지하공간, 즉 지면 아래의 땅을 파지 않고도 평지 수준의 새로운 공간 창출이 가능하다. 예컨대 중앙정부의 R&D계획에 따라 구성된 ‘지하대공간 연구단’에서는 서울시 서초동에 있는 우면산 지하에 세계 최대 문화공연장을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설계를 시행하기도 했다. 비록 가상 프로젝트이기는 하지만 미래의 지하공간 구축을 위한 기술적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한 국가다. 특히 국토 면적의 0.6퍼센트에 불과한 서울에 20퍼센트가 넘는 인구가 거주하며, 수도권 인구까지 포함한다면 과밀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도시 기반시설의 지하화는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