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꽃중년 아재들이 에덴동산에 떴다!
일 년 365일 일해서 번 돈은 죄다 이브에게 갖다 바치고
하루 밥 세 끼, 용돈 몇 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아담들의 ‘자유로운 삶’을 향한 통쾌한 반란극!
<21세기문학 신인상> 수상작가 김춘규의 두 번째 장편소설
2004년 해양문학상, 200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2012년 21세기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작가 김춘규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아담의 Y 염색체》가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되었다. 8편의 단편을 실은 소설집 《두 번째 달》에서 바다에 인생을 맡긴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다루는 데 이어, 10년이란 세월을 공들인 첫 장편 《해적의 바다》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상처입고 고통받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담아낸 바 있는 작가 김춘규는 바다를 배경으로 소박한 서민의 삶을 투박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문체로 다뤄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남성성의 문학을 지향하여 앞으로의 기대가 큰 작가이기도 하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남성들의 삶과 반란을 다룬 이번 작품 《아담의 Y 염색체》 역시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요 서사를 이끈다. 화자인 3번 아담은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아 어부의 삶을 살고 있지만 매년 만선은 고사하고 자잘한 생선이 전부라 출어 경비도 못 건지는 형편이다. 가정경제를 책임지지 못하니 에덴동산에서 생선 도매업을 하며 상인들에게 일수를 놓아 생계를 꾸리는 3번 이브를 도와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와 동서 관계인 1번 아담은 장모에게 뒷돈을 든든하게 지원받아 만든 상권 에덴동산을 관리하며 비교적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고, 한때 잘나가는 은행원이었으나 경기 악화로 정리해고 대상이 된 2번 아담은 퇴직 후 에덴동산 한구석에 무화과 농장을 일구느라 온 힘을 기울이지만 매달 적자만 늘어나는 인생이다. 한때는 탄력 넘치는 피부와 꽃미남 외모를 앞세워 여리고 아리따운 여성을 보면 낭만적 사랑도 꿈꾸고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청년이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떠맡게 된 아담들의 삶은 종신 노예와 다를 바 없이 힘겹기만 하다. 자신을 슈퍼맨이라 떠받드는 자식놈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술로 근근이 버텨내지만, 과연 이런 삶이 흔히 말하는 행복인 걸까? 적어도 아담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면 비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느 멋진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의심과 혼란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아담들은 자신들을 상대로 이브들이 은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대 반란을 계획한다. 에덴동산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누군가의 남편으로, 혹은 아버지로 살아가는 아담들의 일상을 통해 한국 중년 남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 이 책 《아담의 Y 염색체》는 특히 작가의 역발상적 사고와 해학적인 입담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10여 년간 남성과 바다라는 화두를 고집스럽게 붙잡아온 작가 김춘규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중년 남성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동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아담들의 반란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서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듣고 그러기로 약속했다. 무슨 의미인진 몰랐지만 그 약속을 잊은 듯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 서약서에 서명하고 종신 노예로 살면서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상처받은 수컷의 모습이 있고 아버지의 상처받은 삶이 있고,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있다. 이처럼 수컷의 가족은, 자신을 무너뜨리며 이룬 것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그렇기에 도피를 주저한다. 이미 결혼하여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라는 도덕적 금기에 의해 좌절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팍으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치받침과도 같은 것이기에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또한 너무나도 애가 타는 것이라 치받침의 감정은 아담의 Y 염색체를 통해 운명과도 같이 번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 이브와 사랑을 나눴고, 그 대가로 가족을 이뤘다. (……) 그래도 그 시절이 아버지에겐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내 추측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가족 사랑은 수컷이라는 디엔에이를 통해 운명적으로 대물림되었다. ?본문 중에서
결혼과 동시에 아내와 자식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강요받은
에덴동산의 아담들이 선악과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인생 소모하며 허무하게 살다 갈 수는 없다!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니까!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권을 거머쥔 남성이 가족 내 권력의 상징이었다면, 소설에 나오는 아담들은 가정경제 하나 책임지지 못해 남성성이 거세당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하루 세 끼 밥 얻어먹고 용돈 몇 푼 받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브들의 눈치를 살피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상납하고, 각종 이벤트를 챙기는 데다 자식을 부양할 의무까지 지는 것은 물론이다. 젊은 시절 한때 기세등등 잘나가기도 했으나, 지금은 과거를 회상하며 재기를 꿈꿔봐도 우울증과 외로움만 늘어가는 현실에 머물 뿐이다.
한 달 동안은 실직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두 달째는 가슴으로 덴바람이 달려들었고, 석 달째는 마침내 우울증이 생겼다. 그러다 2번 아담은 그녀의 패악에 대거리를 시작했고, 시시하기 그지없는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내 생각으론, 싸우다가 결국 항복하고 적당히 타협하든지 아니면 대거리를 하는 시늉만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
삶의 거친 풍파를 자기 홀로 막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 시점에, 막다른 길에는 이혼에 의한 ‘전남편’이 도사리고 있는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간에서, 아담들은 서서히 자신의 삶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다. 관객이 되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서는 순간 종신 노역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허비한 시간을 보상받고 싶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어느 멋진 곳’으로 떠나고 싶다. 즉, 이들이 선택하는 반란은 낙원의 상징인 ‘에덴동산’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던 에덴동산은 낙원이 아니었던 걸까? 이들이 찾아 떠나는 어딘가에는 평소 그토록 바라고 꿈꿔왔던 또 다른 낙원 같은 곳이 존재하는 걸까?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하고 역발상적인 사고는 읽는 이의 통념에 반론을 제기하며 신선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킨다.
아담의 입장에서는, 자기 갈빗대로 빚어진 이브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길 원할 것이고, 이브로서는 아담이라는 시제품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이 새로 빚으신 자신이 아담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을 테니 말이다.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딴 이브는 유혹에 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금기에 대한 호기심과 위반의 과감함을 가진 지혜로운 존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한 가지는,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에서 추방된 뒤로 인간은 다시는 그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낙원은 모두 ‘짝퉁’이거나 사기다. ?작품 해설 중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아내가 결혼했다》 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책 《아담의 Y 염색체》는 남성의 시각에서 사랑과 가족 이데올로기를 정의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이 감정의 문제가 아닌 경제권과 함께 현실적 권력의 문제로 뒤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도 현실적이기에 낯설고도 익숙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공감을 일으키기에 반갑고도 안타깝다. ‘아재’ 세대를 위한 해학적 입담이 빛을 발하기에 유쾌하고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