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소개
누가 감히 우리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있다면 앞으로 나와 우리의 담을 뒤흔들어 보라고 하라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창래가 ≪생존자≫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그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올해 1월 발표 즉시 <뉴욕 타임스>에 특집 기사가 실리는 등 미 문단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 소설가’ 이창래는 2011년 그간 발표한 단 네 편의 장편소설만으로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등 지금껏 세계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이민자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적 특이성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운 문체, 깊은 통찰력, 인간사에 대한 섬세한 시선, 탄탄한 드라마 등으로 도스토예프스키, 가즈오 이시구로,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 등과 비교될 만큼 독자와 미 문단의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이창래는 이번 작품 ≪만조의 바다 위에서≫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가상의 미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직조해 낸 것. 참고로 작품의 원제인 ‘On Such a Full Sea’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제4막 제3장에 나오는 브루터스의 대사 일부분이다. 브루터스는 전쟁을 앞두고 그들의 전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데, 최고조라는 것은 이제 곧 내리막을 걷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러기 전에 당장 진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진격’은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상의 미래 미국 사회는 크게 세 지역(상급 정착지(차터), 하급 정착지(B-모어·D-트로이 등), 자치주)으로 나뉘었고 지역 간은 상급 지역인 차터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높은 담으로 가로막혔다. 차터 사람들은 지역과 지역 사이에 높은 담을 세워 지역과 (무형의) 계급을 구분함으로써 사회에 안정을 부여했다. 차터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만 먹고 자식들에게 과외를 시킨다. 반면에 과거 볼티모어라고 불렸던 B-모어나 디트로이트라고 불렸던 D-트로이의 사람들은 특별히 몸에 더 좋다고 알려진 음식만 먹는다거나 자식에게 과외를 시킬 수는 없지만 먹고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차터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 대신 안정감을 제공받는다. 그들은 공원을 어지럽히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주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일을 하며,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직업 정년을 보장받는다. 모두가 똑같은 집에 살고, 예측 가능한 패턴대로 살아간다. 자치주는 거의 무정부 상태로 버려진 옛 도시들이며, 황무지에 가깝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타 지역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서로 닮은 곳은 조금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세 지역 사람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아직 완전한 치료법은커녕 발병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C-질환을 두려워한다는 것. 물론 대부분의 차터 사람들은 여러 번 치료받을 재산을 가지고 있다(어느 정도 치료는 되는데 뒤이은 합병증으로 대부분 사망하기는 한다). B-모어 사람들은 한두 번 정도 치료받으면 거의 파산한다. 대부분의 자치주 사람들은? 치료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 판은 B-모어 지역에서 살며 차터 지역에 납품하기 위해 수조에 들어가 물고기를 키우는 17세 중국계 잠수부 소녀이다. 어느 날 그녀의 남자 친구 레그는 C-질환에 걸리지 않는 체질로 판명되어 차터 지역으로 불시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잡혀 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익숙한 B-모어 사람들은 굳이 레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에 판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를 찾아 정문 밖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B-모어 사람들에게 안정을 깨뜨리고 정문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행위는 B-모어 지역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이제 몇몇 사람들은 연못에 쓰레기를 던지고, 시위를 하고, 머리를 박박 민다. 그리고 이 사회가 맞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옳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바깥세상으로 나간 판은 몇 번의 위기, 그리고 몇 번의 아름다운 만남과 함께 자치주에 살고 있는 기이한 사람들과 차터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겪으면서 이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의 어떤 진실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한 소녀의 환상적이고도 기이한 모험담을 그려 낸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 속에 최첨단의 기기나 테크놀로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현 시대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노트패드나 터치스크린 등이 등장할 뿐이다. 이창래는 흥미롭고도 독창적인 서사와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문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메스로 해부하듯 날카롭게 짚어 내고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 계급 사회, 정치, 돈, 생명 존중, 음식, 교육 및 진학, 의료, 고용 안정, 고독, 애정 결핍 등의 문제는 현재 우리의 삶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즉 이 작품은 작품의 배경을 바꾸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현대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내고 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서 하나의 관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어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트롱프뢰유인 것이다. 독자들은 떠나간 판의 여정을 추적해 나가면서 작품 속에서 현대 사회를 정신없이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창래는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 도전하는 ‘우리들’을 응원하고, 차마 그러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들’이 지켜야 할 단 한 가지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인간사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법
밀물을 타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
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
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겠지
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
지금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
우리의 시도는 분명 실패하고 말 거요
_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5쪽)
골든 에이지의 그림자들 속에서
한 세대가 새벽을 기다린다
용기가 불러일으킨
대담함 그리고 그 강인함
오직 젊은이만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자유
동일한 욕망의 공유가
들불처럼 타오른다
_조너선 케인, 스티브 페리, 닐 숀, <오직 젊은이만이>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