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수 47만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 <리뷰왕 김리뷰>
흙바닥에서 턴업한 김리뷰의 아주 사소한 고백
리얼리즘보다 더 리얼한 대한민국에서 흙수저로 산다는 것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고 한다. 기침, 사랑, 가난. 전쟁통에 먹을 것이 없어 나무뿌리를 캐먹던 보릿고개 세대에게 가난은 보편적이었다. 잘사는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던 그 시대의 가난은 힘든 일이지만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중산층인 시대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가진 자에게는 게으름의 상징이 되었고 못 가진 자에게는 창피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서 작년부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수저 계급론은 금수저, 은수저와 흙수저의 차이에 대한 자각과 자조적인 풍자에 기반을 둔다. 그 예로 온라인에서 한때 유행했던 ‘흙수저 빙고’, 즉 자신이 흙수저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체크리스트에는 ‘집에 TV가 브라운관이거나 30인치 이하 평면 TV이다’, ‘1년에 신발 한두 개를 번갈아 신는다’, ‘집에 비데가 없다’, ‘냉동실에 비닐 안에 든 뭔가가 많다’ 등의 항목이 있다. 이렇듯 흙수저로서의 삶은 우리가 가난을 상상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초가집과 풀뿌리의 이미지가 아닌 금수저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소한 것의 저사양 버전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아예 없는 삶에서 시작된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체감하는 그들과 나의 높낮이 차이는 늘 뻔뻔하게 발뒤꿈치를 들어 조금이라도 키를 맞추게 만든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배불리 먹는 세상에서 나만 겪는 가난은 숨길 수 없어도 숨겨야 하는 것이다. 『개구리가 우물을 기억하는 법』은 구독자수 47만 명, 총 조회수 3억 뷰의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 <리뷰왕 김리뷰>가 이야기하는 흙수저의 삶을 담은 에세이로 본 투 비 흙수저였던 과거를 현재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고백하는 책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노력하면 힘든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식의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닌 거짓말로 숨겨야 하고 남들만큼 사는 척 해야 살아남는 요즘의 가난을 저자 특유의 거칠고 찌질하지만 허를 찌르는 위트로 풀어낸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김리뷰의 잔망스러운 흙수저 이야기는 여느 다큐멘터리보다도 리얼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주어진 것과 내가 갖고 싶은 것
흙수저에게는 안드로메다보다 먼 둘 사이의 거리
『개구리가 우물을 기억하는 법』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선택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옷장에 옷이 너무 많아 무엇을 입을지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식탁 위에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다. 반면 선택지가 적은 삶, 주면 주는 대로 입고 먹어야 하는 삶 또는 더 좋은 것을 알지만 가장 좋지 않은 것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삶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을지언정 행복하지는 않다. 이 책의 저자 김리뷰는 흙수저로서의 자신의 삶을 ‘기호와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 삶’으로 바라본다. 일일 한도 6000원의 식비가 제공되는 복지 카드로 하루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숫자로 이리저리 테트리스를 하는 아이에게 메뉴판 위 그냥 돈가스와 치즈 돈가스의 단돈 1000원 차이는 매순간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관, 매일매일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와 알 수 없는 비명이 들리던 동네, 여자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시집을 가거나 공장에 취직하던 곳. 이처럼 가볍게 풀어갈 수만은 없을 것 같은 과거를 배경으로 어둠의 경로로 받은 인터넷 강의, 날아오는 공을 받자마자 터져버린 가짜 야구 글러브, 수년 전 나온 CD 게임도 실행되지 않던 고물 컴퓨터 등 자신의 일상을 둘러싼 사물과 그에 얽힌 찡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 어떤 이가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또한 저자가 숨기고 싶은 마음의 상처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기게 풀어가는 방식을 보며 수저 계급론에 숨어 있는 자조적 뉘앙스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개구리는 지상에 나와서도 우물을 기억한다
노오력의 신화를 비꼬는 운수 좋은 김리뷰만의 잔망스러운 스웩
이 책은 올해 초 DC인사이드 <흙수저 갤러리>에서 하루 만에 조회수 5만 건에 도달했던 저자의 흙수저 스토리에서 시작되었다. 전동칫솔 사진을 올리며 ‘돈 많으니 XX 좋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잔망스러운 스웩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잘살 수 없을 것 같고, 이제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점차 사실로 증명되는 이 시대에 자신은 운빨로 흙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솔직함은 노력하면 된다는 힐링 신화보다 눈길을 끈다. “밥 굶는 청춘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고상한 채찍질을 하는 꼰대짓”은 하기 싫다며 우울증 약을 먹고, 외톨이였던 과거의 모습을 드러내는 저자의 용기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얻고, 그 처지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우물을 기억하는 법』은 아직도 노력의 신화를 믿는 기성세대에게 발칙하고 당당한 빅엿을 날리며 세상의 변두리에 있는 많은 존재들에게 당신도 빛날 자격이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이제 와서 내가 이렇게 못살았네, 흙수저로 이렇게 고생했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네 같은 얘기들을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애초에 네 권씩이나 책을 쓰고, 수십만 명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게 내 노력과 재능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밥 굶는 청춘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고상한 채찍질을 하는 건 꼰대짓이다. 내게 온 행운을 그따위 말을 하는 데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