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된다?
사랑이라 믿었던,
그래서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 그날,
우연히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하필 같은 회사의 부장이라니!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왜 하필 부장에게 그 추한 모습을 들킨 거냐고!
오래전부터 미라에게 관심이 있었던 지욱은,
처량한 모습으로 호텔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녀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그거 아나?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거.
내 손안에 들어온 당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현진이가 책상에 사표 한 장만 달랑 놓고 사라졌대요.”
“그래?”
그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도 자신처럼 놀랄 줄 알았는데 담담하게 구는 것이 미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요.”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그 친구가 애야? 다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그랬겠지.”
“사표를 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거야 그쪽 상관이 알아서 하겠지. 그 일이 당신한테 영향을 미치나?”
미라는 지욱에게서 떨어졌다. 평소의 그라면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줄 사람이 냉정하게 말하니까 이상했다. 게다가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달리 차갑게 식어 있었다.
“당연하죠. 친구잖아요.”
“친구? 친구라고 생각해? 당신한테 어떻게 한 사람인데 친구라는 말을 하는 거지?”
“지욱 씨.”
“이젠 그 친구에게서 신경 끄는 게 어때? 그 친구는 이선 씨의 남자고 당신 아니어도 걱정해줄 사람이 있어. 애도 아니고 무슨 일이야 있겠어?”
“왜 냉정하게 그래요? 내가 현진이를 걱정하는 게 잘못된 거예요?”
“그냥 친구가 아니잖아. 어떻게 걱정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거야. 당신의 마음이 평온하길 바라기 때문에 그 친구를 용서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 하지만 그 친구를 걱정하면서 어두운 표정 짓는 걸 바라지는 않아. 지금 당신에게는 나만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을 차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자와 같이 만나는 쓰레기 같은 짓을 한 친구야.”
“그만해요! 그렇게 말하지 마요.”
“그 친구를 옹호하고 싶어? 또 모자라는 동생을 보듬어주는 누나가 되고 싶어? 그런데 난 별로야. 내가 늘 마음 좋게 받아주니까 다른 남자에 대해 뭐든 그 가슴으로 안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무슨 말이 그래요? 난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친구를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내가 실수했나 보네요. 알았어요. 다시는 당신 앞에서 다른 친구 얘기 안 할게요. 그럼 되는 거죠?”
미라는 반항적으로 말했다. 위로받고 싶어서, 그가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이렇게 차갑게 굴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책임을 깡그리 내던지고 사라진 현진에게도, 그런 친구를 걱정하는 자신을 비난하는 지욱에게도 분노가 일었다.
“내 말이 기분 나빠? 내가 잘못한 거야? 내 기분 따위는 생각 안 해? 언제까지 그 친구 때문에 걱정하고 아파하는 당신을 봐야 하는데? 사무실까지 들어와서 그 친구 얘기를 해야 하느냐고.”
“그러니까 앞으로 안 한다고요. 안 한다고 하잖아요. 그만해요. 나가볼게요.”
“그 친구의 모든 것을 이해해?”
“아니요. 전부를 이해할 수도 없고 전부를 용서한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다시피 내 가슴 속에는 소꿉친구로서의 현진이가 아로새겨져 있어요. 연인에서 친구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라요. 현실로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친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박지욱 씨! 좀 실망스럽네요. 내가 현진이를 남자로 보지 않을 거라는 건 당신이 잘 알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다니요. 다른 건 다 이해하면서 왜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 못해요?”
“나도 남자니까. 내 여자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온통 신경을 옛 연인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기만 하겠어?”
“그렇군요. 당신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어리석게 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