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녀가 전해주는 따뜻한 기운에 오랜만에 모처럼 즐거웠다.
즐겁게 사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흘러가는 시간이 아주 자연히,
그가 굳이 억지로 의도하지 않아도, 즐거움으로, 아쉬움으로 물든다.
이 간단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다정하고 멋진 이혼남 장현성. 그의 귀여운 딸 수정이.
그리고 수정이의 과외선생님 김순정.
그와 그녀와 아이가 만들어가는 가슴 따뜻하고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
“나는? 싫어?”
“밤도 좋고, 별도 좋지만, 오빠가 곁에 있어서 더 좋은걸요.”
머리 위의 가로등이 그녀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를 만들어내었다.
동시에 그녀의 두 눈을 더욱더 빛나게 만들었다.
맑고 고운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며 새물새물 웃는다.
그래, 틀림없이 별빛이 내려앉은 거야.
아니면 이렇게 반짝일 리가 없어.
본문 발췌글
“더 많이 좋아해주면 되는데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그럴게…….”
내 평생을 다 바쳐 더 많이 사랑할게.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많이 사랑할게.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더 많이 사랑할게.
“그러면,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나 용서해 줄래?”
“응. 바람 난 것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너무 쉽게 대답을 한다. 그는 억지로 착잡한 심경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적어도 오늘은,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의 행복만 만끽하자.
깊어진 가을밤의 정취가 별빛 아래 걷고 있는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위치한 호텔로 통하는 길은 양옆에 노랗게 물이 든 은행나무가 우거져 한결 아늑한 기운을 자아낸다. 잎은 이미 거의 떨어져 내렸지만 발밑에 밟히는 수북한 낙엽은 어딘가 낭만적인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사락사락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가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에 이따금 머리 위에서 우산모양의 은행잎이 한들한들 춤을 추며 날아 내린다. 바람에 늦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현성은 깍지 낀 손을 행진하듯 앞뒤로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밝은 여자, 빛나는 여자, 맑은 여자를 내가 감히 욕심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