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기의 화첩》은 저자의 창작 추리소설집으로 해방 전후에 발표되었던 원고를 모아 발간한 유일한 추리작품집이다.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던 대표작 5편을 실었으며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장·단편 작품으로, 그의 열정이 담긴 탐정 문학의 귀추라고 할 만한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집은 처음 발간하는 것으로 수록작은 ‘무마(霧魔), 복수귀(復讐鬼), 제일석간(第一夕刊), 광상시인(狂相詩人), 가상범인(假相犯人)으로 독자들에게 이목을 끄는 걸작으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한다면 바로 선택한 이 책, 김내성의 탐정소설 문학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탐정 괴기소설의 원작 작품으로 출현하는 낯선 이야기의 세계와 새로운 상상력을 맛보기에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에는 뤼팽이라면 우리나라에는 탐정 문학의 거장 김내성이라는 일대기를 장식한 그의 탐정소설을 고스란히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평>
나는 깊고 깊은 안개의 담을 뚫고 아내의 어리광부리는 환영(幻影)을 그 속에다 그리면서 정거장 대합실 문을 안으로 밀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바로 두 시──
3등 대합실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있었고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보따리에 몸을 기대고 코를 고는 시골부인네들도 몇이 보였으나, 내가 앉아보고 쓸어보기를 원하는 이등 대합실 벤치에는 어두운 암록색 우단 위에 하─얀 먼지가 뽀─얗게 깔려있을 뿐이요, 텅 빈 실내에는 손님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편 컴컴한 한 모퉁이에 커다란 트렁크가 하나 놓여있을 뿐이었다.
나는 구두 소리를 높여서 대합실 안을 한 바퀴 천천히 돈 후에 내가 아내와 신혼여행을 떠나든 그날 무릎과 무릎을 나란히 하고 닥쳐올 행복을 마음으로 헤아려보던 그 자리에 나는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앉아보았다.<광상시인 중에서>
미미는 점점 교만하여 간다. 사십에 가까이 이 사나이가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자기의 드로어즈를 희희낙락한 태도로 빨고 있는 꼴자구니를 바라볼 때마다 저것도 사나인가 하는 코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그저 기쁘다. 사십이 가까워서 비로소 그는 이 세상의 행복이란 것을 안듯 싶었다.
아니, 그가 미미를 위해서 냄비 밥을 끓이고 양말을 빨아주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다 타이르는 것이다.<무마 중에서>
그것은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죽었던 사람이 소생하였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철수로 말하면 자연사(自然死)가 아니고 목을 매어 죽이었던 만큼 다시 살아나올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그러나 범죄자에 심리로서는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것이 사실인가 어떤가를 직접 무덤을 파헤치고 자기 눈으로 보아야 되겠다고 그들은 생각했다.<복수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