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1886~1965)
일본 근대문학가. 메이지 말엽부터 쇼와 중엽까지 평생 왕성한 집필활동으로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을 받아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번역을 맡았던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가 생존했더라면 노벨상은 다니자키의 것이었다고 말할 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높다.
1886년 도쿄 니혼바시의 부자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다니자키는 유복한 유년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은사 이나바 선생님의 권유로 가정교사로 입주해 학업을 이어가며 『신시초新思潮』를 창간해 처녀작 희곡 『탄생』에 이어 『소년』 『호칸』 『비밀』 등을 연이어 발표한다. 특히 『문신』은 미타 문학지의 격찬을 받으며 일본 탐미주의의 등장이라는 문단적 지위를 안겨준다. 이렇듯 초기 작품에는 탐미주의의 일파로, 인간의 향락적, 관능적 감각 묘사가 두드러지나 그 후 소재, 문체, 표현 기법이 다양하게 변천한다. 한어漢語와 아어雅語를 비롯해 속어와 방언까지 현란하게 구사하며 걸쭉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작품마다 뉘앙스를 달리하는 게 특징이다.
1911년 등록금 미납으로 도쿄대를 중퇴하고 신경쇠약에 걸리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징병을 피한다. 1915년 지요코와 결혼, 『오쓰야고로시』 『오사이와 미노스케』 같이 당시의 모던한 풍속에 영향을 받은 대중적 소설을 발표하지만 처제 세이코(소설 『미친 사랑』의 실제 모델)와 내연관계를 맺으며 아내 지요코와는 사이가 멀어진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시나리오와 희곡을 쓰던 중,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발생해 간사이로 이주한 뒤 아내 지요코를 친구에게 양도하는 내용을 신문에 실어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두 번째 부인과는 사별한 뒤, 1935년 모리타 마쓰코와 결혼, 그녀의 영향으로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다니자키의 작품은 고전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고 1948년 그의 나이 예순두 살에 출간한 『세설』로 마이니치출판 문화상, 아사히 문화상을 수상한다. 『세설』 『치인의 사랑』 『?킨쇼』는 치정과 시대 풍속을 다루는 통속성 및 문체와 형식의 예술성을 높은 수준으로 융화시킨 순문학작품으로 이로써 ‘대문호’ ‘대大다니자키’라는 칭송을 받는다.
특히 1933년에 발표한 에세이집 『음예예찬』은 아직 전등이 없던 시절의 미적 감각을 담담한 문체로 서술해, 어둠을 쫓는 데 집착하는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는 오히려 어둠과 그늘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일본 고유의 예술적 특징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미학에 대한 통찰은 건축, 조명, 종이, 식기, 음식, 화장, 노와 가부키의 의상에까지 이어진다. 이외에도 에세이로는 공황장애를 겪던 청년 시절에 집필한 「청춘」과 중년에 발표한 「도쿄 생각」 「연애와 색정에 관하여」 「세 가지 경우」와 만년에 발표한 「유년 시절」 등이 있다. 특히 「유년 시절」에서는 그의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유년의 경험을 토대로 옛 도쿄의 정경과 풍속, 문화를 놀라우리만치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의 문학의 기저가 된 경험들을 농축함과 동시에 훌륭한 풍속 자료로서도 그 가치가 높다. 「도쿄 생각」 역시 다니자키의 뒤틀어진 향수가 발현되기까지의 심리를 잘 드러내는 귀한 자료로, 연구자에 의해 도회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다니자키의 문학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유년 시절」과 「도쿄 생각」은 반드시 읽어야 할 에세이다.
옮긴이 | 류순미
1996년 도일, 도쿄에서 일한 통번역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일본 국제교류센터에서 근무하며 통번역사로 활동했다. 영화 「악어」를 비롯한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을 일본어로 옮겼으며, 영화 「빛의 길」 「호타루」 「그는 죽어 있다」 등을 우리말로 번역해 일본 인디영화를 국내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다큐멘터리 「김목경 & BOOGIE CHILD」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셰어하우스』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 등이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번역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