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UN 연설의 주인공 오준 대사의 인간과 세계에 관한 생각
2014년 12월 22일 뉴욕 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각국에서 파견된 대사들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적하고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날선 연설을 연이어 내놓는 가운데 14번째, 오준 한국 대사의 차례가 왔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사람들은 그저 ‘아무나’가 아니다(For South Koreans, people in the North are not just ‘anybodies’).” 강력한 규탄보다 울림이 큰 목소리에 각국 대사들이 집중하기 시작했고, 회의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이는 안보리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외교관들뿐 아니라 TV로 그 광경을 지켜본 국내외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매우 큰 감명을 주고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오준 대사는 국내 젊은 세대에게서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로, 국가관, 인생관 등에 관한 많은 질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그는 “생각해보고 회신하겠다”고 답했다. 『생각하는 미카를 위하여』는 바로 그러한 약속에 대한 실천의 의미로 펴낸 책이다. 오준 대사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물이 그들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외교관으로 살아온 37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유엔 대사관저 부근의 부촌을 산책하던 저자는 노숙자들을 보며 세상의 빈부격차 문제를 생각한다. 아침 뉴스를 통해서는 TV로 생중계되는 미국 총기 사건과 IS의 팔미라 유적 폭파 사건, 프랑스 고속철도에서의 테러리스트 제압 소식을 접한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의장으로 주재하는 조찬 회의에서는 세계의 기후변화 문제를 다룬다. 유엔 광장에 있는 ‘꼬여 있는 총(knotted gun)' 조각 동상을 보면서 9·11 테러를 비롯한 전 세계의 폭력과 전쟁 문제를 생각한다. 이렇듯 저자는 외교관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들과 만난 사람들, 참여했던 협상들과 연설들을 소개하면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온갖 문제들을 생생한 느낌으로 전해준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빈곤과 불평등, 지구온난화, 핵, 테러리즘 등을 동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점차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살면서 모두가 꼭 한 번쯤은 생각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외교관으로 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보려 하고,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곱씹어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유리 상자에 갇혀 있던 개미 ‘미카’를 통해 바라본 우리의 모습,
모두가 지켜가야 할 진정한 인권의 의미
책의 말미에는 방 한구석에서 개미를 키우기 시작한 ‘준영’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리 상자에 갇혀 있는 개미들은 준영이가 넣어주는 먹이를 여왕개미에게 갖다 바치고 알을 보호하며 굴을 만든다. 개미들에게 유리 상자는 하나의 ‘세계’이고 매일 먹이를 주는 준영은 유일한 ‘신’이다. 준영은 새로 태어난 일개미 중 생김새가 조금 다른 개미에게 ‘미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던 미카는 친구와 함께 유리 상자의 벽을 넘는다. 그리고 자기 앞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확인하곤 다시 상자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때부터 미카는 끝없는 의문에 휩싸이지만, 같이 갔던 친구는 바깥세상은 잊어버리라며 주어진 현실에 안주할 것을 종용한다. 개미들을 평생 상자 안에서만 살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준영은 개미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하고 유리 상자를 근처 야산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상자에서 흙을 꺼내는 순간 이미 개미굴은 다 무너져 내렸고, 몇몇 개미들은 깔려 죽었다. 살아남은 나머지 개미들은 ‘신’도 없는 이 광활한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개미들과 같은 존재이다. 작은 세계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오다가 여러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세상을 이루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의 결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누구나 최소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권리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운 노인들도, 외출이 두려운 장애인들도, 북한에 있는 동포들도 누구 하나 소외되는 사람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며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인권’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