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들려주는 말에 귀기울였다
´계피´라는 예명을 잠시 벗어두고 ´임수진´으로 돌아와 처음,
음악으로는 다 들려주지 못했던 일상의 이야기
참 평범한 행복이고 평범한 괴로움인데
우리의 표정만큼은 참 어마어마하다
그녀에게, 우리에게, 이렇게나 평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엄마, 아빠, 고양이, 강아지, 애인, 남편, 집, 노래, 술, 햇빛, 밤공기, 나이, 기억…….
그녀의 삶에 해시태그(#)를 붙인다면 이런 단어들을 나열해볼 수 있을 것이다.
1983년생, 여자, 대학교 졸업, 대학원 졸업, 앨범 몇 장을 낸 가수인 임수진은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 업으로 삼는 일이 있으며, 결혼도 하게 되는 여성이다. 30대에 접어들기까지 그녀가 경험한 것들과 마주하는 광경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그녀는 그녀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아주 일상적인 시선으로 관찰하여 적어냈다.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마치, 가을이 되면 그물이 촘촘한 잠자리채를 어깨에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소녀의 일기장 같다. 그녀는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턱, 턱, 잡아내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옆집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친근하기도 하다.
그녀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흥얼거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문득 평범해서 놀라운 것들에 대해 깨닫는다. 일상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솔직해질 때가 있고, 노래를 부르다가 가만히 상처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불끈 용기를 내기도 하며, 다친 짐승처럼 내면 깊숙이 숨어버리기도 하고, 때론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부여잡고 구렁텅이로 떨어져버리기도 한다. 부아가 나다가도 금방 또 그게 이상해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은 쓰고 나면 참 평범한 이야기가 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 평범한 일들은 지금 각자에게 처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며 그 사건에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굉장히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렇다. 그녀에게, 우리에게 이렇게나 평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그 일에 이런 감정을 갖고, 저 일에 저런 표정을 짓는 게 결국 나라는 사람이라니, 하고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 아닌가. 정말 평범해서 더 놀라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간다
우리는 평범히 일상을 지내는 만큼, 새로운 것과 관계를 맺는다. 자꾸 자신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상대는 ´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가 된다. 이런 관계 맺음은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애완동물과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애인과의 관계, 애인이었던 남자가 남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존재와 자리에 대한 그녀의 통찰이 드러난다. 그 통찰은 고백으로 쏟아져나오기도 하고 혼자 하는 말로 끝맺음되기도 한다.
그저 강아지를 갖고 싶은 소녀였던 때를 지나 강아지의 존재와 나의 존재, 그 둘의 상관관계를 생각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가끔 소녀의 얼굴과 삼십대의 얼굴 사이에서 오묘한 모습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하지만, 이제 더이상 나이브하지 않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관계를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심지어 아줌마란 어떤 존재인가를 벌써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끊임없이 어떤 상대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겠다. 이 모든 관계에 대한 그녀의 디테일한 통찰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무겁지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모두에게 허밍
그녀의 허밍은 아침이 오듯 일단 시작된다. 아침에 산책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른다. 의도적으로 부른 노래도 아니고 그간 들어왔던 노래도 아니고 평소 좋아하는 노래도 아닌 뜬금없이 떠오른 노랫말과 멜로디다. 딱히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툭 하고 허밍이 흘러나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엄마를 생각하고, 고양이를 아끼고, 지는 목련의 모양새를 고요히 관찰하는 이 일상적인 시간은 끊이지 않는 한 번의 긴 허밍 같다.
그녀가 노래로는 보컬리스트로서의 맑은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곡의 화자와 분위기를 해석해야 했다면, 첫번째 에세이집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는 보다 깊고 디테일한 자신의 감정선을 필터 없이, 허밍으로 들려주고 있다. 가볍지 않게,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와 동시에 아주 디테일하게.
서글픈 것을 그냥 ´서글프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황과 주변 움직임과 그때의 마음을 밀접하고 세밀하게 기록하여 어떤 감정이 덩어리가 되어 전달되도록 노래한다.
너에게 듣고 싶은 말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대신 ´언젠가´ 하는 마음으로, 덩어리를 둥글게 빚어놓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때 아닌 기억으로 허밍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