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불과 일 분 후에 닥쳐올 일들을 예측할 수 있을까? 파스칼은 “그것은 오로지 그것을 만든 분만이 알 수 있다”고 말했고,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짐 비숍은 “일 분 전만큼 먼 시간은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다.
시간을 확대해서 ‘미래’를 논한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 역시 자명해진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공포는 불안감을 증폭한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었다. 다가오는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은 인간의 ‘미래 예측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최고의 피터 드러커 연구자인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 역시 단호하게 답한다. “미래는 알 수 없다”고.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1964년 《창조하는 경영자》(원제 : Manager for Results : Economic Task and Risk-Taking Decision)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저자 이재규는 드러커의 입을 빌려 ‘지식’을 강조한다. 현대의 지식사회에서는 토지와 자본, 노동 등이 주요한 생산요소가 아니라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엮어서 통합적으로 응용이 가능한 ‘지식들’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피터 드러커 역시 이미 반세기 전 지식사회의 도래를 점치며 지식을 강조했다. 그는 “지식은 오직 응용을 위해 존재한다”며 실용적인 지식의 습득을 권장했다. 그리고 그 역시 100년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항상 사색하고 집필하는 데 정력을 쏟았다.
미래를 만드는 기술, 문사철예 지식경영
사실 피터 드러커 역시 단순한 경영학자는 아니었다. 세상은 그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경영학의 구루(guru)’라고 이름 붙였다. 이 말은 명백한 사실이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 호칭은 드러커의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의 저자는 드러커야말로 교양인의 표본이며, 인문예술에 통달한 사상가였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피터 드러커는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을 끊임없이 천착했다. 드러커는 경영은 인문예술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미래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은 새로운 사회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경영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사회기능을 폭넓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영은 인간에 관계되는 것이며, 인간의 가치관이나 성장이나 발전에 관계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인문예술이다. 경영은 사회구조나 지역사회와도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준다. 이 점에서도 경영은 인문예술이다. 경영은 인간의 정신, 즉 좋든 나쁘든 인간의 본질과 깊이 관련되는 것이다.”
미래는 지금 당장 만들어라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는 드러커와 오랜 기간 학문적 교류를 이어 온 저자의 역작이자 ‘유작’이다. 이 책은 그동안 경영학을 인문예술로 파악하고 끊임없이 학습한 드러커 사상의 정수를 담았다. 생전 경제학, 역사학, 사회이론, 법학, 과학, 예술 등을 섭렵하면서 경영학의 재료를 추출하려고 시도한 드러커답게 이 책은 그의 다채로운 지적 편력을 보여주고 있다.
2장 ‘경영과 문학’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린체우스를 언급하며 자신의 소명을 내비친다. “보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바깥을 내다보기만 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뜻이야.” 이 사회에서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다. 5장 ‘경영과 음악’ 역시 흥미롭다. 모차르트 애호가로 알려진 드러커는 모차르트의 업무 수행 방식을 빗대어 현대의 직능인에게 필요한 모습을 조언한다. 6장 ‘경영과 미술’ 역시 독특한 장이다. 천착했던 일본화와 중국화를 수학에 빗대어, “일본화는 위상수학적이고, 중국화는 대수학적이다”라고 결론 짓는다. 이런 차이는 공간을 먼저 보고 선을 구사하는 일본 특유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모든 주체들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강조하는 중국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반영물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10장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에서는 자신을 예언가로 만드는 사회 분위기에 손을 저으며 넌지시 말한다. “나는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창문 밖을 내다보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것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미래는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미래는 지금 당장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