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는 1866년, 영국 켄트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크리켓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열세 살 때부터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포목상 도제, 초등학교 교생, 약제사 조수, 백화점 견습사원 등으로 일하며 불운한 시기를 보냈다. 1883년 어머니의 도움으로 힘들었던 도제 생활에서 벗어났고, 문법학교 보조 교사로 지내며 다시 학업에 매진했다. 1884년 사우스 켄싱턴의 과학사범학교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웰스는 T. H. 헉슬리로부터 생물학과 동물학을 열성적으로 배웠지만 다른 과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과정 도중 학교를 떠났다. 얼마간 과학 교사로 일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런던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유니버시티 코레스판던스 칼리지’에서 생물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1893년 첫 번째 저서인 『생물학 교본』을 출판했다. 이즈음 웰스는 건강이 악화되어 강사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앞날이 불확실한 작가였으나, 곧 신문사와 잡지사로부터 무수한 청탁을 받으며 소설가와 비평가로 활약했다. 1895년 『타임머신』 발표와 함께 웰스는 모두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다. 『타임머신』은 시간 여행과 인류 미래 전망에 관한 전에 없던 소설로, 웰스는 사람들로부터 ‘과학소설’의 창시자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이후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모로 박사의 섬』(1896), 『투명 인간』(1898), 『우주 전쟁』(1898), 『달 세계 최초의 인류』(1901) 등은 영국과 미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20세기에 들어 그는 당대 대표적인 소설가로 부상했다.
웰스는 예술 지상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예언자적인 작가였다. 그에게 역사는 ‘교육과 재앙의 줄다리기’ 과정이었으며, 그는 정치적 알레고리로서의 미래 역사소설을 쓰고자 했다. 1922년과 1923년에는 노동당 의회 후보로 나서 정치적 인물로도 유명해졌고, 특히 1920년 레닌과의 대담과 1933년 스탈린과의 대담은 전 세계적인 뉴스였다. 같은 해, 나치는 전쟁을 반대하는 그의 저서를 불태웠고 파시즘 국가였던 이탈리아에서는 방문을 금지했다. 2차 세계대전이 임박하자 웰스는 자신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여겼고, 마지막 저서 『정신의 한계』(1945)에서 인류 미래를 암울하게 묘사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인권 문제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웰스는 1946년 영국 런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