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년 라인란트의 트리어에서 유태인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과 베를린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헤겔 철학과 기독교 혹은 기존 국가와의 화해 가능성을 거부하는, 가장 급진적 성향을 지닌 청년헤겔학파에 들어갔다. 급진주의적 성향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저널리스트가 된 마르크스는 곧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프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갔다가 다시 브뤼셀로 옮겨 가 1848년까지 체류했다. 1844년 그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의해 실현될 공산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이론의 개요는 『공산당 선언』에 훌륭히 제시되었다. 마르크스는 쾰른에서 신문사 에디터로서 1848년 혁명에 참여했다.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추방된 마르크스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과 여러 다른 신문들에 기고를 하여 생활하려 했으나, 결국 엥겔스에게 재정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영국 대영 박물관에서 그의 연구는 자본주의는 일시적인 경제 형태로서 붕괴될 운명이며, 계급도, 사유재산도, 국가 권력도 없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할 것이라는 역사 이론으로써 공산주의 개념을 뒷받침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연구는 미완으로 끝났지만, 1867년 『자본론』으로 출간된 제1부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주요 이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883년 런던 자택에서 평생의 동지였던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으며 하이게이트 묘지에 안치되었다.
저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년 베스트팔렌에서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이미 공산주의로 전향한 엥겔스는 1842년 가족 기업을 대표하여 영국 맨체스터로 건너갔다. 방적공 메리 번스와의 관계와 지방 오언주의자들과 차티스트들과의 우정은 그의 유명한 초기 저작 『1844년 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에 영감을 주었다. 1844년 마르크스와의 공동 작업이 시작됐고, 1847년 『공산당 선언』의 초안들을 작성했다. 독일 혁명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후, 엥겔스는 맨체스터로 돌아가 1870년까지 일하다가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르크스를 재정적으로 도왔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마르크스와 입장을 같이함으로써 그 입지를 강화했다.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는 『자본론』 출간을 준비했다. 1895년 런던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