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변호사였던 헨리 제임스 1세의 아들로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차례 부모를 따라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했고 제네바, 런던, 파리, 볼로냐, 본 등지에서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862년 하버드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뒤 문학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신진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 발표한 것이 최초의 단편 〈실수의 비극〉(1864)이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며 1966년에서 1869년까지, 1871년에서 1872년까지 《네이션》과 《애틀랜틱 먼슬리》에 기고자로 참여하였다.
1875년 고국을 떠나 파리로 갔고 거기서 이반 투르게네프,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알게 된다. 특히 투르게네프에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작중인물이라는 점을 배우는 등 유럽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베네치아와 파리를 여행하는 동안 최초의 소설 《파수꾼》(1871)을 내놓은 후, 《뉴욕 트리뷴》의 기고자로 활동하며 파리에 거주하다 1876년 영국으로 가서 그곳에 정착한다. 그리고 잇따라 《미국인》(1877), 《데이지 밀러》(1878), 《워싱턴 스퀘어》(1880), ‘영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여인의 초상》(1881)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중에서 《워싱턴 스퀘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제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한동안 사회소설에 손을 대어 《보스턴 사람들》(1886), 《카사마시마 공작부인》(1886) 등을 발표하였고, 극작에도 관심을 가져 〈가이 돔빌〉(1895) 등 몇 편의 희극을 썼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다시 소설로 돌아와 《나사의 회전》(1898), 《비둘기의 날개》(1902), 《특사들》(1903) 《황금 주발》(1904)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05년에는 2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을 방문하고 《미국 기행》(1907)을 썼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1912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1916년에는 국왕 조지 5세가 수여하는 명예 훈장을 받기도 했다. 사망하기 바로 전 해인 1915년 영국에 귀화하였다.
쉼 없는 창작열로 23편의 장편, 112편의 단편과 중편, 각종 평론과 여행기, 에세이, 희곡, 자서전 등을 남긴 그는 19세기 문학 리얼리즘에 있어 주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자신의 소설을 직접 해설한 《소설의 기예》(사후 1934년 간행)는 소설 이론의 명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