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도서정보 : 제임스 S. 게일, H.B.헐버트 | 2019-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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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00년 발표된 학술회의의 기록입니다. 코리아에 대한 번역은 한국도 조선도 적당치 않아 그대로 코리아로 합니다. 표지 그림에 넣었지만 옛날 서당에서 배웠다던 동몽선습 의 결어부분을 보면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고 얕 잡아보던 사대주의 라는 것이 어느 일부 정신이 썩은 양반이라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을 전면적으로 코흘리개 어릴 때부터 광범위하게 만들어온 우리나라 자체의 역사적인 진행방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의 학교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가르치지 않았고 이런 방향으로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말할 때는 이미 120년 전에 쓰인 사실들이기 때문에 현재의 정론과는 다른 부분이 많겠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부분은 표지에 쓰인 동몽선습 의 결어와 같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인 부분이겠지요. 모르고 묻어야 할까요? 알고 우리의 것이 없으면 새로 만들기라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정말 작은 중국 을 추구해야 할까요?

구매가격 : 2,900 원

하루 1분 역사게임_세계사편

도서정보 : YM기획 엮음/유종호 감수 | 2019-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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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매일 1분, 흥미롭고 빠르게 익히는 세계사
‘우리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까지’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하지만 암기과목이라는 편견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역사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려운 역사를 재미있게, 꼭 필요한 내용들만 배울 수 없을까?
《하루 1분 역사게임-세계사편》은 고대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사건들을 재미있는 문제로 구성해, 가볍게 즐기며 역사를 익힐 수 있다. 1Week부터 52Week까지 매일 한 문제씩 구성해 꾸준하게 문제를 풀어보면서 두뇌 트레이닝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현직 역사 교사의 감수를 받아 구성과 내용에 신뢰를 더했다. 재미있는 퀴즈와 함께 역사 공부가 가능한 《하루 1분 역사게임-세계사편》으로 두뇌트레이닝과 지식 충전을 한 번에 끝내보자.

구매가격 : 10,000 원

유럽중세의 사소한 부문.Mediæval Byways by Louis F. Salzmann

도서정보 : Louis F. Salzmann | 2019-12-13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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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풍속/신화 > 서양사
유럽중세의 사소한 부문.Mediæval Byways by Louis F. Salzmann
중세유럽의 여러부분의 사소한 부문을 목체에 있는 것처럼 소개한 책. 알키미 연금술도 소개함.
MEDIÆVAL BYWAYS
BY
L. F. SALZMANN F.S.A.
AUTHOR OF
‘ENGLISH INDUSTRIES OF THE MIDDLE AGES’

ILLUSTRATED BY
GEORGE E. KRUGER

BOSTON AND NEW YORK
HOUGHTON MIFFLIN COMPANY
1913
TO WHOM
SHOULD I DEDICATE
THESE STUDIES OF THE LIGHTER SIDE
OF THE MIDDLE AGES
IF NOT TO
MY WIFE
WHOSE STUDY IT IS TO LIGHTEN
MY OWN MIDDLE AGE?

구매가격 : 22,000 원

인도이야기-한 권으로 읽는 인도의 모든 것

도서정보 : 마이클 우드 | 2019-12-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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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입문서!

인도 곳곳을 직접 발로 밟고 쓴 기록이자, 1만 년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결실 『인도 이야기』. 영국인의 사랑받는 역사가이자 방송인이 만든 화려한 이 책은 역사의 매혹적인 교직(交織)이며, 여행기이자,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인도의 과거-현재-미래의 초상이다. 인도의 비범한 경치, 눈부신 건축물, 관습, 의식, 그리고 축제를 포착한 현혹적인 색채의 사진이 가득하다.

구매가격 : 14,000 원

쉽고 빠른 조선역사

도서정보 : 최남선 | 2019-12-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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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라 함은 ‘하늘같이 거룩한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단군이 자라시매 환웅님은 이 세상일을 아드님께 맡기시고 당신은 도로 하늘 위의 신령이 되셨는데, 단군께서는 세상을 다스리기에 편리함을 취하여 인간 많이 모인 곳으로 처소를 옮기기로 하셨습니다.
통일한 뒤의 신라는 우선 무력 제일의 시기를 지내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문무왕의 다음 신문왕(神文王) 때에는 국학(國學)(곧 국립대학)을 세워서 학문을 권장하니, 신라 시대의 제일 글 잘 짓기로 유명한 강수(强首)와 지나의 서책을 우리말로 새겨 읽는 법을 마련한 설총(薛聰)이라는 이가 다 이때 활동하였다.(중략)<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7,000 원

쉽고 빠른 조선역사

도서정보 : 최남선 | 2019-12-0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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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라 함은 ‘하늘같이 거룩한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단군이 자라시매 환웅님은 이 세상일을 아드님께 맡기시고 당신은 도로 하늘 위의 신령이 되셨는데, 단군께서는 세상을 다스리기에 편리함을 취하여 인간 많이 모인 곳으로 처소를 옮기기로 하셨습니다.
통일한 뒤의 신라는 우선 무력 제일의 시기를 지내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문무왕의 다음 신문왕(神文王) 때에는 국학(國學)(곧 국립대학)을 세워서 학문을 권장하니, 신라 시대의 제일 글 잘 짓기로 유명한 강수(强首)와 지나의 서책을 우리말로 새겨 읽는 법을 마련한 설총(薛聰)이라는 이가 다 이때 활동하였다.(중략)<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7,000 원

세기의 첩보전

도서정보 : 박상민 | 2019-12-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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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첩보 고수들이 벌인 1백 년간의 비밀전쟁

이 책은 근현대 첩보사의 태동과 성장이라는 의미심장한 시기를 보낸 20세기를 중심으로 약 1백년 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첩보 고수들의 비밀전쟁을 엮은 것이다. … “정보는 생명이다”는 말처럼 첩보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 쟁탈전은 이제 국가나 군대 뿐 아니라 기업, 단체 등의 민간 집단, 그리고 개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독립적이면서 핵심 요소로 자리했다. … 이런 맥락에서 독자들이 첩보사의 변화 추이를 살펴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또 과거의 사례를 토대로 넓은 시야를 갖고 우리나라가 미래 첩보 강국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바람도 담았다.
-<들어가는 글> 중 일부

구매가격 : 9,600 원

중국의 서역에서 삼년생활.Three Years in Western China, by Alexander Hosie

도서정보 : Alexander Hosie | 2019-12-0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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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풍속/신화 > 동양사
중국의 서역에서 삼년생활.Three Years in Western China, by Alexander Hosie
중국의 쑤짠 광조우 운난 양쯔강유역 서쪽지역에서 삼년을 여행하고 그지역 생활과 그지역 중국어 방언에 대해서 씀 또한 중국 서역과 인도의 아편에 대해서도 기술.
A Narrative of Three Journeys in Ssu-ch'uan, Kuei-chow, and Y?n-nan
Author: Alexander Hosie
THREE YEARS
IN
WESTERN CHINA;
A NARRATIVE OF THREE JOURNEYS
IN
SS?- CH’UAN, KUEI- CHOW, AND Y?N- NAN.
BY
ALEXANDER HOSIE, M.A., F.R.G.S.,
H.B.M. CONSULAR SERVICE, CHINA.
SECOND EDITION.
LONDON:
GEORGE PHILIP & SON, 32 FLEET STREET. E.C.
LIVERPOOL: PHILIP, SON & NEPHEW, 45 TO 51 SOUTH CASTLE STREET
1897.

구매가격 : 28,000 원

문화유산의 두 얼굴

도서정보 : 조윤민 | 2019-12-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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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의 정수 vs. 후대 왕의 권력 의지
산 자를 위한 죽은 자의 왕릉

한반도에는 고대 이래 지속적으로 왕릉이 조성됐다. 조선시대에 조영된 왕과 왕비의 능만 11기에 이른다. 그중 북한 지역에 있는 2기의 능과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주변 자연경관을 유지한 채 장례 전통과 유교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그 등재 사유였다. 풍수지리 사상이 어우러진 건축미와 엄숙한 제례가 유지되는 왕릉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왕릉이 죽은 권력자의 안식을 위한 의례 공간이라기보다 되레 산 자들의 의지와 열정, 음모와 조작, 땀과 눈물이 배인 치열한 삶의 장소라 본다.

권력 이동, 당파 싸움 등 정계의 파고에 따라 최고 권력자의 무덤은 파헤쳐지기도 했고, 후세의 의지에 의해 이전(천릉)이 이뤄지기도 했다. 집권한 왕에게 선대의 왕릉은 왕권 정당화와 권력 승계의 영속화를 위한 상징적 기제로서 역할을 했다. 반면 신하들은 추존 등의 문제나 왕릉의 위치 등의 사안을 두고 왕권을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했다. 실제로 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폐위된 왕후의 복위와 천릉을 기회로 삼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계를 재편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한편 송시열을 위시한 신하 세력은 효종 영릉을 두고 왕과 면대하면서 갑론을박을 펼쳤고, 왕릉을 둘러싼 문제는 정쟁의 주요 사안이 되어 정치세력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능이 들어선 여주의 위치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릉은 “도성 10리 밖에서 100리 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기준을 어기고 100리가 넘는 먼 곳에 위치해 있다. 국법을 어기고, 게다가 거리가 멀어 능행과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주로 굳이 능을 옮기려 했던 이유가 온전히 풍수지리 때문이었을까? 권세가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새 왕릉을 조성할 자리를 여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닐까?” (64쪽)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의 상징 vs. 민초들의 피땀 어린 건축물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궁궐

조선 초기, 세종은 개국 이념을 담아 왕조의 법궁으로 삼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한다. 명당자리에 경복궁을 지어 왕실 안정 및 왕가 존속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정치 공간으로 삼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 임진왜란 시 불탄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비슷한 논리가 등장한다. 서양의 ‘왕권신수설’과 유사하게 도성 한복판에 산을 등지고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진 궁궐은 왕가의 존엄과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왕과 왕족의 생활공간이자 관료들의 정치공간인 궁궐은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이었다. 왕은 신권 견제를 위해 궁궐 중건을 추진하기도 했고, 궁궐 의례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각인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왕과 신하의 대립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고래 싸움에 터져나가는 새우등은 백성이었다. 궁궐은 그 규모와 상징성으로 인해 건립 및 보수하는 데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조세 및 직접적인 백성들의 부역은 불가피했다. 농번기를 제외하고 밤낮없이 차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말 그대로 죽어나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궁궐에서 행하는 국가의례나 궁궐에서의 삶이 가능하도록 갖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1000여 명의 궁녀나 수백 명의 환관 등 이들 역시 백성이었다. 장엄하게 지어지고 엄정하게 꾸려진 궁궐은 지배자의 권위를 드높이고 왕조의 번영을 꿈꾸게 하는 상징이었지만, 그 그늘에는 항상 민초의 땀과 한숨, 눈물과 피가 어렸다.

“궁궐과 도성 설계자는 경복궁 영역에 진입할 때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통하는 도로망을 치밀하게 조성하고 교차 지점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했다.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바로 통하는 대로를 내지 않고, 동북쪽으로 우회 도로를 만들어 가로로 놓인 종로와 연결되게 했다. 이 우회 도로를 따라 종로에 이른 뒤에 서쪽으로 꺾어 잠시 걸으면 육조거리 앞 사거리(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북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는 순간 경복궁이 그제야 외양을 드러낸다. 궁궐과 산과 하늘이 일직선상에 하나로 묶여 다가오며 웅장함을 연출하고, 시선은 금세 경외감으로 가득 찬다.” (127~128쪽)


행정구역을 나누고 치안을 유지 vs. 사는 곳이 곧 신분이다
분리하고, 차별하며, 통치하라 성곽과 읍치

고종 어진을 그린 외국인으로 알려진 아널드 새비지랜도어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저녁 통행금지가 시작될 무렵 한양 성내로 서로 들어가려는 인파에 휩쓸려 성문을 겨우 통과한 것이다.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애걸하지만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릴 뿐, 대문은 이튿날 해 뜰 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 서울은 이튿날 아침까지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었다.” 성벽은 그저 성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었다. 성내는 왕을 비롯한 권력층, 양반, 중인 등 이른바 신분제의 특권을 누리는 권력자들의 세상이었다. 성 밖에는 대체로 임금노동자, 빈농 등 하층민이 사는 곳이었다. 성곽은 이들을 분리함과 동시에 차별과 배제의 벽이기도 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치의 입지와 건축물 배치 역시 통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충실했다. 한양(서울) 도성은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으로 통치자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냈으며 이를 백성들에게 내면화시키고자 했다. 이 고도의 정치기술은 뒷산을 배경으로 풍수원리에 따라 조성된 읍성에도 반영되었다. 중심부에 자리한 관아나 동헌의 위치 및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 시야를 확보한 길 등의 모습은 한양뿐만 아니라 낙안읍성 등 조선시대 읍성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군사 행정시설이자 지배권력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곽과 읍치는 그 자체로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인조와 정조 등은 성곽 건설과 보수 사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당파 싸움 와중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읍성이 향리 집단과 하급 관속이 생활하는 거처로 정착되면서 읍치지역은 권력에 기대어 사는 향리와 하층민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양반층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면서 읍성 지역은 국왕의 존엄과 권위가 발하는 곳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양반에게 경시당하고 멸시받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변모했다.” (222쪽)


배우고 익히는 선비의 학교 vs. 앎이 곧 권력, 권력자를 양성하라
국가기관인 성균관과 향촌지역의 향교, 서원

조선 사회의 권력 구조는 군신공치君臣共治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왕과 양반 관료는 어느 한쪽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균형을 통해 협치를 해나갔다. 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균관 제도다.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는 것이 성균관 유생에게 표면적으로 주어진 역할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왕)로부터 받는 특권과 조정 대신들과의 정치적 공조 등이 놓여 있었다. 성균관은 주류 지배층을 재생산하는 하나의 정책 제도였고, 유교이념을 내세우는 교육기관이자 의례 공간이면서도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치 싸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파리 대학뿐 아니라 성균관에도 특권이 그냥 주어지지는 않았다. 국왕은 성균관 유생이 정성을 다해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며, 국왕을 받들고 통치에 힘을 보태는 충신이 되기를 기대했다. 특별과거와 사은품 하사는 장차 군주를 옹호할 충직한 신하가 되라는 사전 조치로, 결국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수완인 셈이다. (…) 조선 전기만 해도 성균관 유생의 동맹휴학은 대체로 국왕과의 극단의 대치로 치닫거나 정치세력 간의 격한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하지만 붕당 간의 권력다툼이 본격화되는 17세기 이후엔 동맹휴학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여전히 의리와 도리 등 거창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관계 진출이라는 자신들을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특정 당파의 속내를 대변하거나 유생들 자신의 이익에 급급할 때가 잦았다.” (297~298쪽)

사림 세력은 유학이념과 규범에 따르는 조선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서원과 향교를 기반으로 유교화 작업에 착수했다. 율곡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나 향촌 교화에 진력하고,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사림들이 저마다 서원을 건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원과 향교에서는 교화를 행하고 의례를 치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향촌 지배층의 이익을 담보하는 착취기구이자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 지배층은 불교계 인력과 경제적 기반을 활용해 권력의 토대로 삼았다. 대표적인 예가 절터에 자리한 서원이다. 사찰에 자리잡은 서원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사찰(불교)에서 서원(유학)으로 문화 권력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한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향촌 주민들에게 이를 주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권력과 지배의 창으로 본 문화유산
그 빛과 그림자를 직시하다

이 책은 권력 재현의 매개체로서 건축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특히 조선시대 권력기술자들이 어떻게 당시 백성들의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고 행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건축의 미와 문화적 가치, 이념의 본연과 정신적 유산까지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과 관점을 달리한 문화유산 관찰기는 세월을 담아 살아난 유적이 전하는, 어쩌면 어두워 보일지도 모를 그 아픈 유산까지 보듬으려는 움직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의 말처럼 빛과 그림자, 이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지혜라 믿기 때문”이며 “그건 여전히 명멸하는 이 시대의 빛과 그늘을 껴안으려는 숙연한 다짐”이다. 그리하여 공적功績을 힘들게 지어 올리고 조선의 장엄한 등정을 떠받쳤던 이들, 영광의 발자취 아래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이들, 그 백성의 그늘을 이 시대의 유적 마당으로 기꺼이 초대하려는 것이다.

“사찰시설과 재산은 교육기구의 기반을 넓히는 데도 활용됐다. 향교와 학당을 중창할 때 사찰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 썼으며, 지방에서는 아예 사찰 건물을 향교로 삼은 곳도 있었다. 사찰이 보유했던 전답과 노비를 성균관과 향교, 학당으로 옮겨 교육을 활성화하고 유교 의례를 수행하기 위한 경제 기반으로 삼았다.” (322쪽)

구매가격 : 12,000 원

인도, 암흑의시대

도서정보 : 샤시 타루르 | 2019-1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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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조사와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인도 식민역사의 사실만을 낱낱이 밝혔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의무이다
올해는 인도(India)가 영국 제국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한 지 71주년이 된다.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로, 연도는 다르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날인 광복절과 그 날짜가 같다.
『인도, 암흑의 시대』는 인도 사람의 입장에서 본 영국 식민지 시절의 인도의 이야기이다. 샤시 타루르(Shashi Tharoor)는 현재 인도의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방대한 역사적 기록과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식민 지배 당시의 인도의 모습을 상세히 다루면서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인도인을 대변하고 있다.
지배한 측은 ‘지배 덕에 피지배국이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반대로 지배를 당한 측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인도, 암흑의 시대』는 상세한 근거를 통해 식민 지배에 대한 양측의 아전인수 격의 주장과 해석, 시각을 바로잡고, 보다 객관적으로 식민사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를 가진 만큼, 인도의 식민 지배 당시 상황을 우리나라의 식민지 역사의 모습과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속해 있으나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의무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