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2권

도서정보 : 편집부 | 2013-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서문경과 반금련의 운명의 결말을 보여준다. 정력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비약을 손에 넣은 서문경, 그는 그 약으로, 끝도 없이 성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뭐든지 과도하면 해를 입는 법. 게다가 반금련의 질투로 인해, 그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데. 설상가상으로 형의 복수를 완수하려는 무송까지 청하현에 접근해 온다!! 지금까지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서문경과 반금련. 과연 그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구매가격 : 3,000 원

금병매 3권

도서정보 : 편집부 | 2013-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서문경과 반금련의 운명의 결말을 보여준다. 정력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비약을 손에 넣은 서문경, 그는 그 약으로, 끝도 없이 성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뭐든지 과도하면 해를 입는 법. 게다가 반금련의 질투로 인해, 그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데. 설상가상으로 형의 복수를 완수하려는 무송까지 청하현에 접근해 온다!! 지금까지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서문경과 반금련. 과연 그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구매가격 : 3,000 원

금병매 4권

도서정보 : 편집부 | 2013-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서문경과 반금련의 운명의 결말을 보여준다. 정력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비약을 손에 넣은 서문경, 그는 그 약으로, 끝도 없이 성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뭐든지 과도하면 해를 입는 법. 게다가 반금련의 질투로 인해, 그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데. 설상가상으로 형의 복수를 완수하려는 무송까지 청하현에 접근해 온다!! 지금까지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서문경과 반금련. 과연 그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구매가격 : 3,000 원

금병매 5권

도서정보 : 편집부 | 2013-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서문경과 반금련의 운명의 결말을 보여준다. 정력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비약을 손에 넣은 서문경, 그는 그 약으로, 끝도 없이 성욕을 추구한다. 하지만 뭐든지 과도하면 해를 입는 법. 게다가 반금련의 질투로 인해, 그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마는데. 설상가상으로 형의 복수를 완수하려는 무송까지 청하현에 접근해 온다!! 지금까지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서문경과 반금련. 과연 그 둘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구매가격 : 3,000 원

나관중의 잔당오대사연의 1회-10회 1

도서정보 : 저자 나관중 번역자 홍성민 | 2013-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당나라 말기 잔당의 오대 나라의 역사를 쓴 역사소설로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쓴 소설의 한글번역과 한문이 동시 기재 예시문 가지부족 부부지이율운 노래로는 부족하니 다시 부로써 율을 맞추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唐虞三代皆崇德 降自春秋治不隆. 당우삼대개숭덕 강자춘추치불륭 당나라와 우나라의 요순과 3대에는 모두 덕을 숭상하나 춘추시대부터 융성하지 않았다. 擾擾 ?? [r?or?o] 1) 복잡하고 어지러운 모양 2) 소란한 모양 兵戈無義戰 紛紛謀利詐相攻。 요요병과무의전 분분모리사상공 어지러운 병기로 의로운 전쟁은 없고 어지럽게 이익을 도모하면 속여 서로 공격한다.   漢祛秦暴眞天命 唐統華夷雜?功。 한거진포진천명 당통화이잡패공 한나라는 진나라의 포악함을 제거하며 진짜 천명이니 당나라는 중화와 사이를 통일하여 패업의 공로를 섞었다. 禍亂若無安祿兆 黃巢 黃巢 미상 ~ 884 당 희종(僖宗) 때의 반란군 지도자. 875년 수천 명의 추종자들을 모아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며 879년 광저우(?州)를 점령하고 이후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881년 수도 장안(?安)을 점령하였다. 이후 스스로 대제(大?)의 황제라고 칭했으나 883년 당은 돌궐계 유목 부족인 사타(沙陀)의 도움을 받아 그를 장안에서 몰아내고 이듬해 체포하여 처형하였으나 10년간의 반란으로 당의 지배력은 파괴되었으며 당은 급격하게 쇠퇴하여 황소의 부하 장군이었던 주전충(朱全忠)에 의해 멸망하였다. 중국시사문화사전 焉敢亂僖宗 僖宗 862 ~ 888 당(唐)의 제18대 황제(재위 873~888). 의종(懿宗)의 5자(子).873년 부친이 죽자 환관들에 의해 옹립되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희종은 어려서 정사를 돌볼 수가 없었고 이후 황제로서의 아무런 실권도 없이 유흥에 빠져 환관들이 정사를 전횡하였으며 지방의 절도사들이 세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875년에는 대규모 농민반란인 황소(黃巢)의 난이 발생하자 희종은 장안(?安)을 버리고 촉으로 도피하였으나 884년 반란군의 지도자 황소의 난이 잦아들어 885년에는 장안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정사는 환관 양복공(?復恭) 등이 장악하였고 황제는 허수아비로 왕조의 지배가 전국에 미치지 않게 되어 실질적으로 당(唐)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 화란약무안록조 황소언감란희종 재앙의 혼란이 만약 안록산의 조짐이 없었다면 황소가 어찌 감히 희종을 어렵게 했겠는가?   此後單道隋煬帝 양제의 이름은 양광(楊廣)·양영(楊英). 시호는 양제. 재위중 운하를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거대한 궁전들을 세웠다. 아버지인 문제(文帝) 양견(楊堅)과 황태자인 형 양용(楊勇)을 죽이고 604년 제위에 올랐다. 그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토목 및 정복 사업을 벌였다. 608년 남쪽의 쌀 산지와 북쪽의 베이징[北京] 지역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고 610년 이러한 수송체계를 더욱 확대했다. 이것은 후에 남쪽의 식량을 수도권과 북쪽 변방의 군대에 공급하는 데 이용된 대운하망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내륙 아시아로부터 중국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장성을 수축했다. 더욱이 궁궐을 짓고 장식하는 데 국고를 낭비함으로써 위축되어가는 재정에 더욱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그는 특별히 제작한 수레로 멀리 떨어진 숲에서 잘 자란 나무들을 실어다 정원을 꾸몄다. 후에는 몇 차례의 대외원정을 단행하여 제국의 영토를 남쪽으로는 지금의 베트남 북쪽으로는 내륙 아시아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612~614년 3차례에 걸쳐 벌인 대(對)고구려 원정이 완전히 실패로 끝나자 백성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전국은 반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양제는 강도(江都 지금의 양저우[揚州])의 이궁(離宮)으로 피신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살해되었다. 수의 관료였던 이연(李淵)이 전국을 재통일하고 당(唐 618~907)을 세웠다. 開?河 ?河 중국의 황허강[黃河]과 화이허강[淮河]를 연결하는 운하(運河). 수(隋)나라 양제(煬帝) 때 개통하였다. 당시는 통제거(通濟渠) 또는 어하(御河)라 하였으며 당나라 때는 광제거(廣濟渠)라고도 불렀다. 뤄양[洛陽]과 카이펑[開封]의 중간 지점인 허인[河陰]에서 황허강으로부터 갈라져 남동쪽으로 향하면서 카이펑 ·상추[商邱] 등을 거쳐 쉬치[??]에 이르러 화이허강과 합류한다. 天下群雄?起 六十四處煙塵 煙塵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티끌이라는 뜻으로 전쟁으로 인한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일이나 분위기 反亂 十八處擅改年號。 차후단도수양제개변하 천하군웅병기 육십사처연진반란 십팔처천개연호 이 뒤로 단지 수나라 양제가 변하를 개통한뒤로  천하의 여러 영웅이 함께 일어나며 64곳에서 연기와 먼지를 일으키는 반란이 있고 18곳에서는 연호를 마음대로 고쳤다. 遼東李密、江南蕭銑、幽州劉隆眞、明州竇建德두건덕 창남(彰南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구청[故城] 북동쪽) 사람이다. 원래는 마을의 이장(里長)이었으나 611년 군에 들어가 부하 200명을 통솔하는 대장이 되었다. 후에 손안조(孫安祖)가 군사를 일으킨 것을 돕다가 가족이 수나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에 부하를 이끌고 고사달(高士達)에게 도망하여 수에 반기를 들었다. 고사달이 죽은 후 그 두목이 되어 무리 10만여 명을 이끌고 617년에 낙수(樂壽 지금의 허베이 성 셴 현[獻縣])에서 스스로 장락왕(長樂王)이라고 선포했으며 연호를 정축(丁丑)으로 정하고 백관(百官)을 설치했다. 이후 와강군(瓦崗軍)을 도와 수의 장군 설세웅(薛世雄)의 부하 3만여 명을 멸하여 세력을 크게 떨쳤고 양쯔 강[揚子江] 이북지역을 근거지로 삼았다. 618년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하 연호를 오봉(五鳳)이라 했으며 스스로 하왕(夏王)임을 선포했다. 다음해에 도읍을 낙주(洛州 지금의 허베이 성 융녠[永年] 남동쪽)로 옮겼다. 농사와 양잠을 권장했으며 도적이 없어 상인이 오가는 데 편안했다고 한다. 621년 당(唐)나라에서 이세민(李世民)을 보내 뤄양[洛陽]의 왕세충(王世充)을 공격하자 그는 병사를 이끌고 가서 구하려 했으나 호뢰관(虎牢關)에서 패하여 장안(長安)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河州梁師都、饒州林士弘、源州李軌、湖州沈法興、?州徐圓朗、楚州朱燦、登州李子通、濟州輔公佑、山後劉武周、建州劉黑?、西城韓世充、揚州宇文化及우문화급 선조는 흉노족(匈奴族)이며 대군(代郡) 무천(武川 지금의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自治區]에 속함) 사람이다.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인 우문술(宇文述)의 아들로 양제(煬帝) 때 우둔위장군(右屯衛將軍)을 지냈다. 618년 무분랑장사(武賁郞將司) 마덕감(馬德戡) 등과 함께 강도(江都)에서 정변을 일으켜 양제를 침소에서 교살했다. 이때 양제의 나이는 50세였는데 그후 양제의 일족은 모두 살해되었다. 수의 황족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은 양제의 조카인 진왕(秦王) 양호(楊浩)뿐이었다. 그는 우문화급의 아우인 지급(智及)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목숨을 건져 반란군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고 우문화급 자신은 승상을 맡았다. 후에 우문화급은 10여 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동산(童山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쉰 현[浚縣])에서 이밀(李密)·서세적(徐世勣) 등에게 대패한 뒤 2만 명의 잔여부대를 이끌고 위현(魏縣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다밍[大名] 동쪽)에 숨었다. 후에 양호를 독살하고 황제를 자칭하여 연호를 천수(天壽) 국호를 허(許)라고 했다. 619년 요성(聊城)에서 두건덕(竇建德)과 싸워 패했으며 우문화급과 그 일족 전부가 죽음을 당했다. 、蘭州薛擧。 18곳은 요동의 이밀 강남의 소선 유주의 유융진 명주의 두건덕 하주의 양사도 요주의 임사홍 워주의 이궤 호주의 심법흥 연주의 서원랑 초주의 주찬 등주의 이자통 제주의 보공우 사후의 유무주 건주의 유흑달 서역의 한세충 양주의 우문화급 난주의 설거이다.   當時那十八處煙塵 皆被唐太宗掃滅 混爲一統天下 建號大唐 其世系: 당시나십팔처연진 개피당태종소멸 혼위일통천하 건호대당 기세계 당시의 이 18곳 전쟁터는 모두 당나라 태종에게 소멸당해 섞여 하나로 천하를 통일하고 대당이란 호칭을 세우니 대대로 계통은 다음과 같다. 高祖 太宗 高宗 中宗 睿宗 玄宗 肅宗 代宗 德宗 順宗 憲宗 穆宗 敬宗 文宗 武宗 宣宗 懿宗 傳至懿宗已十六代 共二百五十餘年。 고조 태종 고종 중종 예종 현종 숙종 대종 덕종 순종 헌종 목종 경종 문종 무종 선종 의종으로 의종까지 전해짐이 이미 16대이며 모두 250여년이다. 欲知後事 且看下回分解。 뒷일을 알려면 잠시 아래 2회 분의 해설을 들어보라

구매가격 : 4,900 원

한국 근현대 소설 모음집 12: 삼대

도서정보 : 염상섭 | 201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색다른 읽기의 즐거움, 한국 근현대 소설.
염상섭 장편소설.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총 215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1947년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삼대에 걸친 가계의 전개를 통하여 식민지시대인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변천과 정신사의 이면을 함께 묘사한 1930년대 가계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대지주이며 재산가인 할아버지 조의관은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족보까지도 사들일 정도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봉건적 인물이며, 구세대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 상훈은 새 시대의 주역으로서 교육과 교회 사업에 힘쓰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봉사를 꾀하려고는 하지만, 그의 아버지 조의관의 거대한 재산을 이용하여 축첩과 애욕에 사로잡힌 이중인격적 생활에 빠져 있는 과도기적 인물이다. 조의관의 손자 덕기는 경도(京都) 삼고(三高)에 다니는 지식 청년으로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에 있어서 공평성과 정의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용기가 없고 소극적이며 도피적 반응밖에는 나타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이들 삼대의 이야기는 마침내 할아버지의 죽음이 몰고 온 재산상속 문제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 인물들의 엄청난 추악상으로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구매가격 : 6,000 원

황금우산

도서정보 : 김병총 | 2013-06-30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김병총 소설집『황금우산』. 억압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비인간화와 세계에 맞서 원초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해온 원로작가 김병총의 소설집이다. 잠바는 하늘의 맑은 별무리가 폭포 같은 소나기가 되어 내린다는 착각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는 갑자기 우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황금우산이었는데…….

구매가격 : 7,800 원

사랑, 장마로 오다

도서정보 : 이설 | 2013-06-30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설 장편소설 『사랑, 장마로 오다』. 사랑을 얻는 순간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원수 집안 소년의 치열한 사랑통을 그려낸 작품이다.

구매가격 : 7,800 원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영어로 읽는 세계문학 15)

도서정보 : 루이스 캐럴 | 201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문판.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속에서 토끼굴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로 여행하면서 겪는 신기한 일들을 그린 동화이다.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눈물의 연못에 빠지기도 하고 기묘한 동물들과 만나는 등 우습고 재미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구매가격 : 2,000 원

성암의 길

도서정보 : 김동인 | 2013-06-2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김동인의 친일 소설이다. 덕천가강(德川家康 ― トクガワ イヘヤス)이 풍신(豊臣) 정부를 꺼꾸러뜨리고 ‘에도(江戶)’에 막부(幕府)를 연 지도 어언간 삼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개의 정치 생명(政治生命)은 삼백 년을 그 장기(長期)로 한다. 삼백년이면 한 정치생명은 이미 늙어서 다른 새롭고 싱싱한 정치의 출현을 기다린다. 한(漢)이 전한(前漢)과 동한(東漢)을 합하여 사백 년 당(唐)이 삼백 년 명(明)이 또한 겨우 삼백 년 ― 이것이 정치 생명의 긴 자〔長者〕들이다. 지금 삼백 년 가까운 정치 생명을 누려 온 자가 지나에는 애신각라 씨의 청(淸)이 있고 동방에는 덕천막부가 있다. 하늘의 법칙은 여기도 움직이어 청(淸)은 아편 문제의 영국 대포 한 방으로 그 사직의 경중(輕重)이 이미 저울질받았으며 ‘덕천’막부 역시 삼백 년 안일의 꿈은 밖으로는 아메리카의 페리 제독(提督)의 인솔한 함대의 위협과 안으로는 차차 존황심(尊皇心)에 눈뜬 지사들의 움직임으로 그 존재의 흔들림을 보기 시작하였다. ‘덕천’막부는 자기 생명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대책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때의 막부의 대로(大老 ― 총리대신 격) 이이 나오스케(イイ ナホスケ·井伊直弼[정이 직필])에게 그의 막하 나가노(ナガノ)모가 진언한 바가 “경도(京都)조정의 공경(公卿)들의 들먹거리는 것은 마치 민요 같은 것으로 한 번 탄압하면 잦아 버릴 것이오이다. 귀찮고 성가신 것은 소위 지사(志士)들의 준동인데 ‘우메다 움삥(梅田雲濱[매전운빈]) 라이 미끼(賴三樹[뇌삼수]) 이께우찌 다이가꾸(池內大學[지내대학]) 야나가와 세이강(梁川星巖[양천성암])’ 등이 그 괴수요 ‘요시다 쇼잉(吉田松陰[길 전송음])’도 악모(惡謀)가 빼난 사람이외다.” 이러하였다. 막부에서는 곧 포리를 보내어 그 소위 괴수들을 잡아올렸다. 그런데 성암(星巖)을 잡으러 가니까. 성암은 행인지 불행인지 막부의 손에 붙잡히기 며칠 전에 칠십 세의 그의 천수(天壽)를 다하여 세상 떠났다. 막부의 손에 붙잡히기 이틀을 앞하여 칠십 세라는 그의 천수를 다하고 자기 집에서 운명한 성암은 당대의 이름 높은 시인(詩人)이었다. 그런지라 세상이 그의 죽음을 찬송하여 가로되 ‘시니(シニ?死ニ 혹은 詩ニ) 쟈우즈(上手?ジャウズ)’라 하였다. 성암을 잡으려다가 그만 염라대왕에게 빼앗긴 막부 포리들은 하릴없이 성암의 안해로 시 서 화(詩書畵)의 삼절(三絶)로 이름높은 홍란(紅蘭)여사를 잡아올렸다. 운빈(雲濱)이하의 지사들도 잡아올려 그들에게 사련(辭蓮)된 다른 지사들도 육속 잡아올렸다. 그들을 문초하매 그들의 입에서 여출일구로 나오는 말이 가로되 “우리의 수령은 양 시선(梁詩禪 ― 성암)이오.” 하는 것이었다. 과연 ‘시니(詩ニ)上手[상수]’였다. 막부의 검거가 이삼 일만 앞섰든가 성암이 이삼 일만 더 장수하였더면 그는 옥사(獄死)든가 형사(刑死)를 면치 못하였을 것이었다. 지사들이 여출일구로 ‘우리의 수령’이라 일컫는 성암 ― 그는 어떤 사람인가. 평범사(平凡社)판 ‘대백과사전(大百科事典)’의 ‘야나가와 세이강’을 찾아 보자. ‘양천성암(梁川星巖) (1789~1858) 시인. 처음의 이름은 묘(卯) 자는 무상(無象). 통칭 신십랑(新十?). 그의 사는 읍에 성강(星岡)이 있으므로. 성암(星巖)이라 호하였다. 천곡(天谷) 백봉(百峯) 노룡암(老龍庵)등의 호도 썼다. 미농국(美濃國) 안팔군(安八郡) 증근촌(曾根村) 사람으로 관정원년(寬政元年)에 났다. 일곱 살에 고향(花蹊寺)에 들어가서 자구(字句)를 대수화상(大隨和尙)에게 배웠는데 본시 명민하고 강기하여 남에게 칭찬을 받았다. 열두 살에 양친을 여의고 침식을 잊도록 슬퍼하였다. 형화(亨和) 삼 년 열다섯 살(사실은 열아홉 살)에 집을 동생에게 맡기고 학업을 닦으러 에 도(江戶)로 나와 고하정리(古賀精里) 산본북산(山本北山) 등에게 배우다가 얼마 뒤에 다시 고향에 돌아갔다가 문화(文化) 칠 년에 또 에도로 나와 산본 북산(山本北山)의 문하에 들었는데 학업이 크게 떨치고 더우기 시(詩)에는 놀라운 천품을 보였다.’ 이상이 그의 전반생이었다. 백과사전은 다시 그의 기사를 전개하여 가로되 ―당시 ‘ 대와천민(大窪天民)은 성암보다 앞서 시명(詩名)이 장안에 떨쳤는데 간다(神田) 오다마가(オタマガ) 지(池)에 강호시사(江湖詩社)를 열고 천하에 시객들을 청해 가지고 즐기는 성암도 그 축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 그후 성암은 그의 생애의 짝 홍란(紅蘭)을 맞아 천하를 우유하며 시상(詩想)을 닦기를 이십 년 천보(天保) 오년에 에도로 돌아와서 옛날의 강호시사의 자리를 찾았으나 잃어진 자취 찾을 바이 없어 그 근방의 땅을 사서 새로이 한 못을 파고 옥지음사(玉池吟社)를 열었다. 그의 명성이 떨치고 문하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홍화(弘化) 일년에 경도(京都)의 압천(鴨川)가의 압기소은(鴨沂小隱)에 옮아 운하(雲霞)를 벗하여 음영(吟?) 홀로 즐겼다. 그의 시 고아청기(古雅淸奇) 고취(高趣)하고 기품높아 세상에서는 그를 일본의 이백(李白)이라 하였다. 근세의 시인 관다산(菅茶山) 광라담창(廣瀨淡窓) 대와천민(大窪天民) 국지오산(菊地五山) 등 선배도 오히려 성암의 명성보다 눌리어 당시 글에서는 뇌산양(賴山陽)으로 마루〔宗〕를 삼고 시로는 성암을 북두(北斗)로 삼았다. 안정(安政) 오년 가을 막부 각로 간부전승(閣老 間部詮勝)막부의 명령을 받들고 양이근왕론자(攘夷勤王論者)들을 일망타진하려 할 때에 성암은 강개하여 시 이십오 편을 지어 시사를 평하고 그리고는 구월 이튿날 병으로 세상 떠났다. 나이 칠십. 근황지사들을 잡아 문초하매 모두 성암을 수령이라 하여 성암의 안해 홍 란(紅蘭)을 옥에 내렸다. 대소침산(大沼枕山) 원산운여(遠山雲如) 삼춘도(森春濤) 노송당(?松塘) 강마천강(江馬天江)등 모두 성암의 문하에서 난 사람들이다. 명치(明治) 이십사년 사월 정사위(正四位)를 추증하였다. 요컨대 백과사전도 그의 가다가끼(カタガキ ― 직함)를 ‘시인’이라 하였지 ‘지사’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사들은 성암을 수령이라 일컬었고 서향융성(西鄕隆盛) 길전송음(吉田松陰) 교본좌내(橋本左內) 구판현서(久坂玄瑞) 등 쟁쟁한 지사들이 모두 그의 문을 두드려 혹은 스승으로 혹은 선배로 그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그 일생을 한낱 초야의 시인으로 보낸 그에게 죽은 후에 지사로서의 욕이 돌아오려 했고 더 세월이 흐른 뒤에는 ‘순난지자’의 대우로서 정사위의 작이 추증되었다. 말하자면 칠십년 전 생애를 시인으로 보낸 그가 때때로 시사에 분개하여 써 던진 불붙는 노래가 때의 열혈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충격하여 드디어 그를 맹주로 우러르게 한 것이었고 그의 노래가 원동력의 하나이 되어 명치유신의 위업을 달성케 한 것이었다. 화조(花朝)를 찬송하고 월석(月夕)을 노래하는 당시(唐詩)에 적을 두고도 이 구각을 깨뜨리고 존황(尊皇)을 고취하며 양이(揚夷)를 외치며 시사를 통탄한 그의 노래의 힘 ― 이런 노래를 산출한 그의 정신의 힘 얼마나 세차고 위대한 것이냐. 당시인(唐詩人)의 통례에 벗어나지 못하여 성암도 숭당(崇唐)사상은 적지 않게 가졌었다. 그 위 본 성씨 도진씨를 버리고 ‘양천(梁川)’씨라 통칭한 것도 요컨대 지나식의 이름 양맹위(梁孟緯) 혹은 양시선(梁詩禪)등을 일컫기에 편리키 위해서였다. 일청전쟁 이후의 천당심(賤唐心)이 배양된 뭇 평가(評家)들은 이를 부인하기 위하여 각자각양의 설을 지어내어 그 새 성씨의 곡절을 부회(附會)하지만 이들은 한낱 억설이요 성암이 자기의 안해(역시 본시 도진(稻津)씨 경완 여사(景婉女史)를 장씨 경완(張氏景婉) 혹은 장씨 홍란(張氏紅蘭)이라 한 것으로 보아도 그의 의도한 바를 알 수 있다. 이 양성암(梁星巖)이 장경완(張景婉)을 안해로 맞은 것은 벌써 서른두 살이라는 중년의 때였다. 경완은 그때 열일곱.

구매가격 : 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