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깨부수기
도서정보 : 저자명 : 마르타 브렌, 옌뉘 요르달 역자명 : 손화수 | 2022-06-13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칸트, 니체, 헤겔, 프로이트, 다윈, 우디 앨런…
가부장제를 공고히 해온 ‘남성의 시선’을 고발하고
인간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들의 투쟁’을 조명하다!
★ 여성학자 권김현영 추천·해제 ★
“모르는 게 약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성차별과 싸웠던 여성들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자!”
◎ 도서 소개
역사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는 누구인가?
가부장제를 공고히 해온 남성의 시선을 고발하고,
성차별에 저항한 세계 곳곳의 여성을 조명하다!
‘가부장제’는 여성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 등에서 단순히 ‘가족 내에서의 남성 지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지배를 유지하는 생산양식과 가치체계 전반’을 이르는 확장된 개념이다. 『가부장제 깨부수기』도 바로 이 관점에서 가부장제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이 책은 ‘남성이 지배력을 지닌 제도’로 가부장제를 정의하며, 서구 문명이 탄생한 고대 그리스부터 그 기원을 살핀다. 고대의 많은 철학자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고, “여자는 선천적으로 핸디캡을 가진다. 여성은 음란하고, 게으르며, 나약하다”라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당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남성과 여성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 플라톤의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책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부장제가 어떻게 공고하게 뿌리내리고 진화해왔는지를, 역사 속 남성들의 언급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이며 묘사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도 익히 배웠던 위대한 남성 학자들과 고전적 반열에 오른 남성 작가들이 사실은 얼마나 지독한 성차별주의자였는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가부장적 남성 지식인에 대한 고발’에 더해 이 책은 ‘성차별에 저항한 세계 곳곳의 여성’을 조명하는 것을 또 하나의 주요한 축으로 하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페미니스트들은 전 세계에서 조롱과 괴롭힘을 당했다. 많은 뛰어난 여성들이 시대의 반격에 부딪혀 생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올랭프 드 구주를 포함한 혁명적 페미니스트들이 단두대에서 참수되었고, 19세기에는 참정권을 주장하는 서프러제트들이 감옥에 갇혔다. 현재에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수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수감되어 있다. 이 책은 성차별에 저항한 여성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가부장제의 억압에 맞서 그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섬세한 필치와 생동감 있는 그래픽으로 묘사한다.
『가부장제 깨부수기』의 필자 마르타 브렌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 중 한 명으로 자국뿐만 아니라 독일, 영국, 러시아 등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여성문제를 주요한 주제로 탐구해왔다.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터 옌뉘 요르달과의 협업을 통해 2018년에 출간한 『시스터즈』는 27개국에 수출되는 등 전 세계적 반응을 얻었으며, 『가부장제 깨부수기』 또한 “가부장제의 역사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으로 소개되며 프랑스, 스페인 등지로 수출되었다.
마르타 브렌은 노르웨이 문화부상을, 옌뉘 요르달은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을 수상했으며, 이 책이 채택한 그래픽 노블의 콘셉트는 유머러스하고, 호쾌하다. 최악의 성차별주의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논하고, 여성이 마주한 시대의 반격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묘사하는 데 적합한 개성을 담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북이십일의 책들
▶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수전 팔루디 지음 | 황성원 옮김 | 아르테 | 2017년 12월 출간 | 38,000원
▶ 다크룸: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 수전 팔루디 지음 | 손희정 옮김 | 아르테 | 2020년 1월 출간 | 33,000원
▶ 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 | 에리카 밀러 지음 | 이민경 옮김 | 아르테 | 2019년 5월 출간 | 24,000원
◎ 출판사 서평
‘가부장제’와 ‘여성 투쟁’의 역사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
여성학자 권김현영 추천
“모르는 게 약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성차별과 싸웠던 여성들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자!”
『가부장제 깨부수기』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루소, 칸트, 니체, 헤겔, 프로이트, 다윈, 현재의 우디 앨런에 이르기까지 남성 지식인이 ‘남성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묘사한 방식이 얼마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풍자적 어조로 풀어낸다. 칸트의 “여자가 교육을 받게 되면 매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라거나, 니체의 “여자를 만나러 갈 때는 채찍을 가져가야 한다”라거나, 다윈의 “여성은 열등한 인종에 속한다”, 프로이트의 “여성은 남성 성기에 질투를 느끼는 거세된 남자”와 같은 발언을 마주하면, 우리가 고전으로 배워온 이들이 공고하게 쌓아 올렸던 성차별의 역사를 실제로서 체감하게 된다.
결론부에는 이들을 모아두고 역사상 최악의 성차별주의자가 누구인지를 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관전 포인트를 이렇게 제시한다. “각자 자신만의 성차별주의자 올림픽을 개최해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피타고라스에게 한 표를 주었는데,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도 성차별 문제 앞에서는 논리적 사고 능력을 잃어버렸구나”라고 한탄했다. 피타고라스는 이런 말을 했다. “선한 원칙은 질서와 빛과 남성을 창조했고, 악한 원칙은 무질서와 어둠과 여성을 창조했다.”
이 허황하며 전혀 근거가 없는 그들의 발언과 시선은 현재까지도 별다를 것 없이 이어지는데, 이를 두고 권김현영은 해제에서 “예전의 성차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같다는 소리를 하는 ‘성차별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이들이었다면 요즘은 버젓이 눈앞에 성차별이 존재하는데도 없다고 단언하는 ‘성차별 부인주의자’들의 궤변이 기세등등하다”라고 지적했다.
책 말미에 제시된 성차별주의 ‘입선자’의 목록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도 이 책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온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여성과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성별에 따른 불공평함은 자연 그 자체가 그런 것이라고 발언한 ‘조던 피터슨’까지 깨알 같은 글씨로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파블로 피카소, 잭 케루악, 커트 보니것, 멜 깁슨, 엘비스 프레슬리, 고타마 붓다에서부터 성폭력 및 성추행 범죄자, 임신중지 반대자 등 유명 인사들로 빼곡하다.
“구조적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
성차별주의와 싸웠던 다양한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들
“구조적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의 말이다. 이에 권김현영은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외신에서는 이 발언을 크게 보도했는데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의 인류학자들이 대거 한국에 와서 가부장제 몰락 이후의 사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신에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성차별주의자라는 사실만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한편으로 가부장제를 깨부수기 위한 ‘투쟁력을 모으는’ 텍스트로도 읽히고, 성차별주의와 싸웠던 여성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속해서 투쟁한다면 가부장제는 몰락할 것이라는 ‘희망의 의지가 담긴’ 텍스트로도 읽힌다. 책의 구조는 저자 ‘마르타 브렌’이 일러스트레이터 ‘옌뉘 요르달’에게 가부장제의 기원과 남성 지식인의 황당한 발언, 여성 투쟁의 에피소드를 풀어 소개하는 형태로 짜여 있다. 각 에피소드에 대한 마르타 브렌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를 위해 가부장제를 타파해야 한다!’ ‘가부장제를 깨부수는 데 동참하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을 펼치면 앞표지 면지에 성차별주의와 싸웠던 다양한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60인의 얼굴들이 인쇄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여성의 고군분투를 에피소드를 통해 자세히 다룬다. 권김현영은 “이들의 존재와 활동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20대와 30대를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언급하며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자고 독려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여성 비하와 혐오 표현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따져보는 데 유용한 참고서
"우리 모두를 위해 가부장제를 타파해야 한다!"
남성 지식인들의 어이없는 발언들을 탄식하며 읽다 보면, 금세 가부장제와 성차별에 저항한 여성들의 투쟁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나폴레옹에게 정치적 조언을 했다가 추방당한 ‘제르맨 드 스탈’, 파라오의 역할을 위해 남장을 했던 고대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뛰어난 지적 능력 때문에 남성으로 의심받아 약 300년 뒤에 부검을 당한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 자코뱅파의 마라를 살해한 혐의로 처형당하고 숫처녀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역시 부검 당한 ‘샤를로트 코르데’, 『여성의 권리 옹호』를 펴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러시아혁명에 가담하고 일련의 급진적 제도를 마련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 그들의 용감함이 시대의 비참함과 대조되어 더욱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활동을 그래픽 노블이라는 사실적인 묘사로 실감나게 접하다 보면, “어떤 남성도 여성 위에 군림할 수 없고, 어떤 여성도 남성에게 복종할 수 없다(비비 카눔 아스타라바디, 이란)”라는 호소와 “세상 사람들의 반이 억압을 받는다면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라는 선언이 들리는 것 같다. 끝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상은 곧 도래할 것이다(아룬다티 로이, 인도)”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가부장제 깨부수기』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가부장제의 역사를 압축적이고도 풍성하게 전하며,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여성 비하와 혐오 표현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따져보는 데 유용한 참고서가 된다. 성차별의 역사를 심도 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에서부터 중고교생 자녀와 함께 볼 성평등을 위한 학습 자료, 기존에 배워온 지식을 비판하고 심화하고자 하는 독자에게까지 가성비 좋은 책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다.
◎ 추천/해제 발췌
미래가 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혐오 없이 욕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없는 미래가 오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교육받을 권리, 정치활동에 참여할 권리, 돈을 벌거나 계약할 수 있는 권리, 이혼할 권리, 피임과 임신중지의 권리 등을 차례로 쟁취해왔다. 그럴 때마다 이제 여성 개인이 노력하기만 하면 여성이라는 성별은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호들갑이 이어졌다. 마치 노예제가 폐지된 즉시 인종차별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성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고 차별받지도 않는다는 주장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가부장제가 변화했듯이 성차별주의자들 역시 변화했다. 예전의 성차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같다는 소리를 하는 ‘성차별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이들이었다면 요즘은 버젓이 눈앞에 성차별이 존재하는데도 없다고 단언하는 ‘성차별 부인주의자’들의 궤변이 기세등등하다.
이 책에는 위대한 남성 학자들이 얼마나 지독한 성차별주의자였는지에 대한 긴 목록이 나온다.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소포클레스, 사도바울은 국적과 시대와 사상이 모두 다른 이들인데 여자들이 제발 입을 다물고 남자의 말을 순순히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은 비슷하다. 사도바울은 “여자들은 묵묵히 가르침을 받고 모든 일에 복종하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 결과 성차별주의자의 올림픽에서 당당히 동메달을 수상해 시상대에 올랐다. 나는 피타고라스에게 한 표를 주었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도 성차별 문제 앞에서는 논리적 사고 능력을 잃어버렸구나 싶다. 독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성차별주의자 올림픽을 개최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는 성차별주의와 싸웠던 다양한 인종과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이 나오는데, 이 여성들의 역사를 기억하자. 여성들 간의 차이가 우리를 서로 만나기 어렵게 할지라도 이것만은 기억해두자.
― 여성학자 권김현영 추천/해제에서
권김현영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며,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 편집팀장 및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재직했다. 2020년 양성평등문화지원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전문위원, 서울시위드유센터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여자들의 사회』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가 있으며,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 〈한겨레〉 〈씨네21〉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매가격 : 13,600 원
반란의 매춘부
도서정보 : 몰리 스미스 주노 맥 저/이명훈 역 | 2022-06-0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정작 성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양극단 사이에서 지워지는 현실
“형법으로 성판매를 막기는 매우 어렵다. 범죄화는 성판매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며, 국가는 성판매 및 성매매에 필요한 인간 역량을 물리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다. …… 생계를 위한 성노동은 아마도 위험하고 춥고 무섭겠지만, 굶주리고 집 없고 약물에 빠져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들에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곤궁에 빠진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인 셈이다. 성노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매춘을 둘러싼 논의는 같은 자리를 맴돌아왔다. 소위 ‘반성매매론’ 대 ‘성노동론’이라 불리는 입장의 각축전일뿐이었고, 둘 중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지를 묻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할 때는 완전 범죄화 모델, 합법화 모델, 노르딕 모델, 비범죄화 모델 등 특정 법제화 모델을 선택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이항대립적 논의가 매춘을 노동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매몰되어 진행되어왔으며, 매춘은 ‘성을 사고파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 ‘대가를 받는 강간(페이 강간)’이며 따라서 매춘은 정당화될 수 없고 특히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즉 매춘 자체가 범죄라는 ‘반성매매론’은 페미니즘 내 매춘을 둘러싼 주류의 목소리로 자리 잡아왔다.
‘성노동(sex work)’이라는 단어는 성노동자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캐럴 리에 의해 고안된 말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포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위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매춘이 곧 강간이라는 시각하에서는 폭력으로서의 성 접촉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성노동자가 강간문화에 공모하는 이로 취급되고 그들이 당하는 폭력은 당해도 싼 것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매춘부는 피해자로서 인정되어야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성매매 범죄화에 찬성하는 생존자로서의 ‘탈성매매 여성’만이 매춘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다. 또한 매춘을 자발적으로 했는지 강제적으로 했는지 따져 물으며 그에 따라 매춘 여성을 달리 여기는 태도 역시 존재해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산업 현장에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없다며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면서 성노동을 찬미하거나, 성노동이 성노동자의 권능을 강화한다는 식으로 ‘행복한 창녀’ 신화를 앞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역시 성노동자의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특히나 섹스 긍정주의 정치는 성노동자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실제로 성노동의 현장에서 겪는 성노동자의 폭력과 부당함을 도리어 부정하게 만든다. 이 역시 페미니즘의 지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매춘 비범죄화를 옹호하는 성노동자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에게 부인되고, 성노동을 하며 폭력과 착취를 경험하고 있는 성노동자는 섹스 긍정주의자들에게도, 탈성매매자나 탈성매매를 할 사람들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생존자라고 여기는 감금 페미니즘(carceral feminism, 여성 정의를 세우기 위해 치안 유지와 범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찰력을 환영하는 페미니즘) 지지자들에게도 부인된다.
하지만 현실은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논의 속에 ‘정작 매춘부의 삶,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작 매춘부들의 구체적인 삶과 안전, 성노동자 당사자의 요구는 뒷전이 된 채 현재 성노동자가 아닌 탈성매매자, 성노동 경험이 없는 비매춘부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온 ‘매춘부 없는 매춘부 담론’, 즉 추상적 논의만이 난무해왔다는 비판이다.
“매춘부와 비매춘부, 그리고 현직 성노동자와 전직 성노동자 사이에는 단지 정체성이 아니라 성을 판매하고 거래하는 것을 둘러싼 ‘물질적 조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91쪽)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성산업의 노동조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현직 성노동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매춘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탈성매매 여성이나 비매춘부 페미니스트의 시각이 중심이 되어 성노동자의 목소리는 부속품처럼 취급되어왔으며, 당사자인 현직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혀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들이 쓴 책으로, 비매춘부들의 추상화된 언어에 가려져 왔던 현직 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들에 기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한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그것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추상적 논의 속에서 성노동의 현장, 구체적이고 다양한 성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매춘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 여성’도 아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매춘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산업의 분석은 이제 추상적 논의에서 벗어나 성노동자의 복잡다단한 경험에 기반해 물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노동자를 성산업에서 구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방식, 성노동을 찬미하고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실제로 성노동자의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바로 성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구조인 섹스, 노동, 국경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이어서 성노동자와 성산업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들의 사례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살펴본다.“누구의 삶도 ‘불법’이어서는 안 된다”: 섹스, 노동, 국경
이 책은 매춘을 둘러싼 섹스와 노동에 대한 논의가 그간 매춘과 매춘을 하는 당사자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추상적으로 이해되어왔음을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노동과 섹스가 좋은지 나쁜지, 이에 근거해 매춘이 좋은지 나쁜지에 골몰하는 동안 노동과 섹스, 매춘과 매춘부에 대한 추상적 이해는 그 실제적 이해를 압도해왔다”(400쪽)라는 것이다.
유독 매춘을 다룰 때만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며 ‘매춘은 노동이 아니라 착취’이고 ‘성노동은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것’이라는 인식, 돈 거래 없이 고객과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고 성노동자에게 따지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를 보라. 이때 노동은 끔찍하지 않은 것, 착취당하지 않는 것, 돈을 받지 않고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적 성취를 위한 것으로 소환된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 노동 현장은 어떠한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하에서 많은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은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며 성차별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매춘을 노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춘이 다른 노동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며 매춘을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을 판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주변화된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의 방편으로 선택하는 것이 매춘이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좌파들이 매춘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것은 성매매가 범죄화가 되면 성판매자들의 삶이 불법이 되기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약 시장이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범죄화된 시장에서 가장 가혹하게 작동한다.”(113쪽) 저자들은 성노동이 필요한 자원을 얻는 하나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을 판매하지 않고도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면, 성산업 폐지에 반대할 성노동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직업이 나쁘다는 말은 그것이 진짜 직업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노동은 노동이라는 주장은 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동이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이라거나 심지어 해롭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노동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것도, 더 크고 수익성 있는 성산업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118~119쪽)
섹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창녀’라는 신화를 앞세우는 집단이자 성산업의 부역자로 상상되는 프로-섹스 페미니스트와 매춘의 범죄화를 지지하는 집단이자 피해 여성,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로 상상되는 섹스 부정주의적 페미니스트가 서로의 안티 테제로서 적대적 공생을 지속하는 사이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자’도 아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실재하는 매춘부는 사라지고 만다.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범죄화를 옹호하는 생존자들은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성노동을 통해 비참해지고 폭력에 시달리며 착취를 당했던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프로-섹스 정치 때문에 성노동자 운동에서 밀려나 정치적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로 여겨지거나, 탈성매내자 혹은 곧 탈성매매할 사라들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생존자라고 주장하는 감금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비가시화(혹은 전략적으로 부인)된다.”(88쪽)
이 책이 국경, 이주의 문제를 다루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매춘은 ‘인신매매’라는 ‘절대악’의 ‘피해자’로 상상되어왔다. 이런 이유로 우파뿐 아니라 좌파와 페미니스트들마저 경찰력을 동원해 미등록 이주민 여성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을 해결책으로 주장하고, 이것은 미등록 이주민을 추방하거나 국경을 봉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빠져 있는 질문은 어째서 누군가는 빚을 지면서까지 국경을 넘는 것인지, 어떻게 미등록 이주 문제가 성 인신매매 문제가 연결되는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하고, 밀입국을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성산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범죄의 피해자로 상상되는) ‘인신매매’와 (자발적) ‘밀입국’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매매를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민의 이동권과 노동권을 박탈하는 국경 정책을 타격해야 하지만, 한편에서는 상업적 섹스가 인신매매를 일으키며 매춘은 인신매매와 결부된다는 전제하에서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길 원하고(반성매매 감금 페미니스트 진영), 다른 한편에서는 성노동과 인신매매가 동일하지 않다며 방어하는 바람에 이주와 성산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착취를 경험하는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다(성노동자 권리 운동 진영)는 것을 우려한다. 이 책이 계속해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중첩되고 교차하는 복잡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이다.“성노동자의 성판매 욕구는 고객의 성구매 욕구보다 훨씬 더 크다”: 성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법제화 모델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섹스를 교환하는 것은 특정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인간 행위이며, 이것이야말로 성노동의 핵심이다. 성노동 금지는 성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해 도망가거나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어 그들을 더 주변으로 내몰고 더 해로운 상황에 노출시킨다.”(339~340쪽)
이 책은 특히 국경 단속의 강화와 경찰력이 강화되는 경향이 형법의 변화에 따라 성노동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매춘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분석한다.
1)거리 성노동처럼 눈에 띄는 몇몇 성산업을 불법화하는 법제화 모델로 섹스를 직접 사고파는 것은 합법이나, 그 밖의 호객행위, 동료와 함께 운영하는 실내 성매매, 성매매 알선 등은 모두 불법인 ‘부분 범죄화 모델’(영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 따름),
2)성노동자, 고객, 제3자(관리자, 운전기사 등)가 모두 범죄화되어 있는 ‘완전 범죄화 모델’(우간다,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 중국 등에서 적용하는 모델이며 한국 역시 이 모델을 따름),
3)표면상 성판매자를 비범죄화하고 성구매자, 제3자를 처벌하는 모델인 ‘스웨덴 모델’(노르딕 모델, 수요 근절, 섹스숍스라겐 등으로도 불리며, 스웨덴, 프랑스, 아이슬란드, 북아일랜드 등이 이 모델을 따름)
4)의무적인 건강검진, 특정 장소 내에서의 고용, 매춘부 공식 등록 등의 다양한 행정적 요건을 충족할 수 없거나 충족하지 못하는 성노동자에 대한 범죄화를 유지하면서, 합법화된 성산업 부분에 대해선 엄격히 규제하는 법제화 모델인 규제주의 모델(합법화, 허가제 등으로도 불리며, 독일, 네덜란드, 미국 네바다에서 따름),
5)성노동자, 고객, 제3자를 비범죄화하고 노동법을 통해 성산업을 규제하는 법제화 모델인 ‘완전 비범죄화 모델’(뉴질랜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호주 노던테리토리에서 따름)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 다섯 가지 법제화 모델을 다루며 각각의 모델이 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세히 분석하며, 가장 주변화된 성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어떤 형사 법제화의 방향이 필요한지를 분석한다. 여기서 핵심은 성산업에 참여하는 행위자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범죄화 제도(그것이 부분적이든 아니든)는 성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들의 처지를 더 악화한다는 것을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법제화 모델이든 성산업은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주변화된 이들의 방편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상 성산업을 범죄화하고 그 직업을 없애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그 일로 먹고사는 이들을 돕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노르딕 모델’(구매자와 관리자를 비롯한 제3자는 처벌하되, 판매자는 비범죄화해 처벌하지 않는다는)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장은 중요하게 참고할 만하다. 성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노르딕 모델은 이상적 지향일지 모르나, 성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르딕 모델이란 자신을 노동현장과 조건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고객이 범죄화되면서 고객의 수가 줄어들게 되면 성판매자는 콘돔 없는 섹스나 폭력적인 고객을 거부할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난한 성노동자일수록 위험한 고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성노동자의 성판매 욕구는 고객의 성구매 욕구보다 훨씬 더 크다.” 결과적으로 고객을 범죄화하면서 성노동자와 고객 사이의 권력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성노동자에게 수요(고객)가 줄어든다는 것은 매우 해로운 영향을 준다. 수요 감소로 더욱 열악해진 그들이 쉽게 성산업을 탈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성매매 혹은 노르딕 모델의 지지자들 역시 주지하고 있듯 탈성매매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며 오랜 기간이 필요한데, 성노동자는 스스로 탈성매매를 원하더라도 그동안 고객 범죄화로 인해 더욱 열악해진 성산업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며, 탈성매매를 위한 사회적 서비스 역시 제대로 지원되고 있지 않다.
나아가 노르딕 모델이 성노동자를 비범죄화하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 역시 실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스웨덴 가정법원은 2013년에 성노동을 직업이 아니라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성노동자인 재스민이 아닌 폭력적인 그녀의 전남편에게 자녀들의 양육권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그녀의 전남편은 아이들을 만나러 온 그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게다가 성노동자를 비범죄화한다고 하지만 이들에게 벌금을 물리고 거주지에서 퇴거를 시키며, 주변화된 집단(트랜스 여성, 이주 여성, 유색인종 여성 등)의 성노동자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법을 집행한다. 가령 비자를 소지한 이주 성노동자일지라도 추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노동자는 경찰을 찾는다는 것은 “총에 겨눠져 강도를 대신 홈리스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일”(296쪽)이기 때문에 그들은 경찰을 찾지 않게 되며, 위험한 고객들에게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착취적인 상황에 처한(즉, 인신매매의 피해자로 여겨지는) 성노동자의 경우 역시 경찰을 찾을 경우 추방당하게 되므로 그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매춘부들이 승리하면, 모든 여성이 승리한다
“우리의 입장은 성산업이 그 자체로 가치 있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성매매를 하며 겪은 여성혐오와 폭력을 불쾌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성노동을 인도적으로 폐지하는 일은 주변화된 사람들이 더 이상 성산업을 통해 스스로를 지탱할 필요가 없을 때, 즉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성산업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저자들은 섹스, 노동, 국경 등 성산업을 구성하는 주요한 축들의 교차적 분석을 바탕으로 여러 법제화 모델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성노동과 관련한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규를 아예 폐지해버리는 완전 비범죄화 모델에 주목한다. 이는 매춘부를 통제나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독일, 네덜란드 등의 규제주의·합법화 모델과는 다른 것으로, 성노동을 범죄로 전제하지 않고 성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들은 성노동자들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는 열쇠로 비범죄화 모델을 지향한다. “금지론이 퍼져 있는 현실에서 성노동 범죄하는 상업적 섹스를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된 적이 없으며, 폭력은 성노동이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 정도로만 여겨진다. 성노동 범죄화가 전달하는 실제 메시지는 명백하다. 바로 성판매자들이 안전, 권리, 정의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것”이지만 성노동 비범죄화는 “성판매자들의 즉각적이고 경제적인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완전 비범죄화 모델을 따르고 있는 뉴질랜드의 경우, 뉴질랜드매춘부단체(NZPC)라는 성노동자 단체가 주도해 성노동자들이 직접 매춘개혁법 제정에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비범죄화를 ‘만능열쇠’로 보는 것은 경계한다. “임신중지 합법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재생산 정의를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범죄화 역시 성노동자 정의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법제화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에만 매몰되어서는 성노동자의 실제 삶에 어떤 물질적 변화를 가져오는지 실용적이고 세밀한 질문을 던질 수 없게 된다.
가령 (완전 범죄화 모델하에서는 물론이겠지만) 완전 비범죄화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구호만으로는, 비범죄화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성을 획득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지금의 한국의 노동 현실에서 성노동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노조의 협상력이 낮은 한국에서 과연 다른 직종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성노동자들이 제대로 협상력을 가질 수 있을지와 같은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떤 법제화 모델을 선택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완벽한 제도는 없기에 누구도 버림받지 않으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세밀한 질문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산업은 페미니즘 안에서도 언제나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어내는 주제였으나, 그 사이에서 언제나 빠져 있던 것은 먹고살기 위해 위험하고 취약한 조건 속에서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구체적 개인들의 삶이었다. 또한 매춘부들은 페미니즘 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헌신해왔으나, 그 역사는 주목받지 못해왔고 심지어 페미니즘 운동과 매춘부들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매춘부들의 목소리는 지워져 왔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성매매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성매매를 범죄화해야 하느냐 비범죄화해야 하느냐라는 추상적 질문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을 정작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들어야 한다. “이제는 성노동자들이 말할 차례다.” 그랬을 때 저자들의 말처럼 “매춘의 정치는 여성 간 불화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될 수 있으며 “안전하고, 수입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요구하는 매춘부들의 배짱 있는 태도에 페미니스트들의 반란와 저항이 더욱 고양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구매가격 : 15,400 원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도서정보 :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 2022-06-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朝鮮史編修?事業?要)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朝鮮?督府朝鮮史編修?) 편(1938 刊)
<범례>
-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는 비록 그 모든 사명을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조선사(朝鮮史)》 35권과 《조선사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20종, 《조선사료집집진(朝鮮史料集眞)》 3책의 발행을 완수하여 그 개요를 공포하였다.
- 본서(本書)는 조선사편수회의 개요와 그 전신인 조선사편찬위원회의 경과를 서술하고, 나아가 총독부 최초의 편사(偏史)사업인 중추원(中樞院)의 《반도사(半島史)》 편찬의 대략을 서술하여 편사(偏史)사업에 대한 본부의 근본방침을 명확히 하였다.
- 위원회의 경과 및 편찬방법 등에 관하여 다소 장황한 부분도 상세히 기술하였으며, 역사 사업에 대한 본부의 방침, 각 자문위원 등의 노력 및 본회 직원의 집필에 대한 태도 등을 명확히 하여 조선사를 읽는데 참고하도록 하였다.
- 본회는 특히 사료 채방(採訪)의 기록과 수집한 사료의 해제(解題) 등에 주력하여 후일 기회를 택하여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며, 이 책에서는 생략한다.
- 사업 진행 상황을 명확히 하기 위해 각종 내부 규칙, 통계 등을 가능한 한 수록하여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참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 책 말미에 성적(成績)일람표와 적요(摘要)연표가 첨부되어 있어 사업의 개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생략함. 원본 참조)<범례 중에서>
구매가격 : 10,000 원
집으로 가는, 길
도서정보 : 홍은전 홍세미 이호연 이정하 박희정 강곤 정택용 장애와 인권발바닥행동 인권기록센터 사이 | 2022-06-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닫은
최초의 시설이 되기까지,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함께 통과한
놀랍고, 치열하고, 아름답고, 험난했던 연대의 기록
“더 이상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마십시오. 여기서 당신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2021년 4월 30일, 한국사회 최초로 장애인 거주시설이 문을 닫았다. 관할 지자체 등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닌, 오직 시설/법인 측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한 ‘자발적인 폐지’였다. 이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이 시설은 경기 김포에 위치한 ‘향유의집’이다.
발단은 한 장애 당사자 거주인(한규선)이 시설 내부의 비리를 최초로 고발하고 공론화한 사건이었다. 시설을 운영하는 석암재단 측이 거주인 개인에게 지급되는 장애수당을 오랫동안 갈취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거주인은 대부분의 일상을 같이 보내는 직원(생활재활교사)들에게 비리 폭로에 함께해줄 것을 부탁하고, 거주인과 직원들이 합심해 재단의 각종 비리를 증명할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투쟁의 물결은 급속도로 확산된다. 직원들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같은 외부의 장애운동단체 및 탈시설운동가들과 접촉하며 비리 문제를 세상에 터뜨린다. 거주인들은 향유의집 관할 지자체인 양천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서울시청과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며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알렸다.
시설 내부 비리를 척결하자는 취지였던 애초의 투쟁이 탈시설운동으로 확장되고, 시설이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닫게 되기까지는 탈시설 장애운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투쟁이 단지 비리 사실 폭로에 그치지 않고 시설 자체를 폐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 시설 내부로 들어가 임원/운영진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설을 해체하러 온 시설 운영진(장애운동가), 거주인, 시설 직원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탈시설’과 ‘자립’을 일궈내기까지, 그 치열하고 아름답고 험난했던 연대의 과정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한국사회 최초의 자발적 시설 폐지라는 이 전례 없는 사건은 ‘시설사회’와 ‘시설 vs 탈시설’ ‘가족 vs 시설’ 따위의 이분법을 뒤흔들며 탈시설운동의 대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와 재벌 사회복지법인이 공고히 해온 침묵의 카르텔과 그것이 만들어낸 전제(‘장애인이라면 당연히 시설에 살아야 한다’)를 이제는 깨부술 때가 되었다. 향유의집 거주인과 임직원이 보여준 뜨거운 투쟁은 앞으로 무수히 많은 탈-시설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사회 최초의 장애인 거주시설 폐지 사례: 비리·인권 침해 고발에서 탈시설운동까지
한국사회 최초로 스스로 문을 닫은 시설이 되기까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구 석암재단) 산하 시설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 거주인과 임직원은 장장 12년에 걸친 투쟁 과정을 통과했다. 그 결과 2021년 3월 3일 모든 거주인이 탈시설을 마쳤고, 4월 30일 향유의집은 설립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향유의집을 폐지하기에 앞서) 탈시설 장애운동가들은 2009년 옛 비리 세력을 몰아내려 애쓰며 석암재단을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탈바꿈했다. 새로이 운영권을 쥔 이들은 시설 내부로 들어가 거주인들의 탈시설을 적극 지원했다. 그저 ‘탈시설’만이 아니었다. 거주인은 물론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직원들까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한때 120명 이상의 거주인을 거느렸던 대형시설이 폐지되기까지의 과정은 놀랍고도 험난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싸움이 시설 자체를 거부하는 지난한 투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재단 측의 비리와 횡령, 인권유린 행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시설에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나리오였다. 실제로 2007~2008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거주인과 직원들은 거주인의 장애수당을 오랜 시간 갈취하고 각종 학대 행위를 일삼아온 석암재단 운영진 일가를 퇴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내부에서는 장애 당사자 조직 ‘석암재단 거주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석암 비대위)와 직원 조직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공공노조 사회복지지부 석암재단지회’(석암 노조)가 꾸려졌고, 외부에서는 시민사회 연대조직인 ‘석암재단 비리척결과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석암 공대위)가 조직되어 비리 책임자 1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거주인들을 둘러싼 세계는 이미 손쓸 수 없이 달라지고 있었다. 2009년, 비리 척결과 인권 보장, 재단 이사진 전원 교체를 요구하며 싸우던 일부 거주인들은 문제가 해결되자 보란 듯 시설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시설은 인권이 보장되는 곳으로 거듭났고 장애인들은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라는 결말로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이날을 기점으로 급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향한 이들의 진짜 투쟁이 시작되었다.
세계가 달라지는 시간: 집을 만드는 싸움을 시작하다
“그때 우리 내부에서는 형님들을 계속 시설에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모이고 있었어요. 아무리 싸운다 해도 그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투쟁을 하면 할수록 결국 대안은 시설에서 찾을 수 없다는 걸 더 절실히 알아갔어요.” (김정하)
2009년 6월 4일,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살던 장애인 여덟 명이 시설을 퇴소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했다. 탈시설을 위한 노숙농성 채비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들을 맞이한 건 장애운동가들만이 아니었다. 수백여 명의 사복경찰들이 공원을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들의 이삿짐을 확인한 경찰들은 금세 물러난다. 장롱 두 짝, 작은 냉장고 하나, 전자레인지 하나, 서랍장 하나, 옷가지와 이불, 자잘한 가재도구를 담은 종이박스가 전부인 초라한 세간들이 공원 한복판에 끌러졌다. 앙상했던 시설생활을 증언하는 살림살이였다. 훗날 ‘마로니에 8인’으로 불리며 두고두고 회자될 이들의 이름은 김동림(48세), 김용남(51세), 김진수(59세), 방상연(38세), 주기옥(63세), 하상윤(37세), 홍성호(56세), 황정용(53세). 대부분은 시설에서 20년 이상을 산 이들이었다.
2009년 당시 마로니에공원 농성을 조직했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겸 프리웰 법인 이사장 김정하는 탈시설운동은 곧 ‘주거권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활동지원서비스, 소득, 집 세 가지인데, 이 중 가장 중요함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주거 공간이었던 것이다. 전장연과 힘을 모으기로 한 김정하 활동가는 석암재단 투쟁 당사자들에게 그 ‘집’을 함께 만들기 위한 싸움을 제안한다.
2009년의 마로니에공원 농성은 바로 그 연대의 산물이다. 동시에 이는 먹고 자고 씻는 사소한 일상생활이 전부 문제가 되는 무모하고 전례 없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될 때까지 한다는 모두의 의지는 결국 ‘기적’을 이뤄내고 만다. 이들은 오세훈 시장과 접촉해 한국사회 최초의 탈시설 정책을 마련한다. 이로써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체험홈과 최대 5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자립생활주택 도입 계획이 발표되고, 여덟 명의 중증장애인들은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자립주택 평원재에 정식으로 입소하게 된다. 장애 당사자들과 비장애 활동가들이 노숙농성을 하며 매일 함께 밥을 지어 먹은 두 달의 시간이 일궈낸 쾌거였다.
탈시설을 주도하는 시설의 탄생: 석암재단에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바깥에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마로니에 8인이 박차고 나간 시설 내부에서도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탈시설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영향력 행사 끝에 2009년 석암재단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로 이름을 바꾸고 과거의 역사와 단절할 수 있게 된다. 장애 당사자들의 인권과 사회 통합을 기치로 내건 진보적 운영진들이 석암재단 측 비리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한 것은 2013년에 들어서였다. 그 후 프리웰은 거주인의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탈시설운동을 최전선에서 이끈 김정하 활동가는 2018년 이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산하 시설인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 거주인 전원의 신속하고도 안전한 탈시설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3년이 지난 2021년, 그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향유의집 폐지 직전부터 폐지 이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에서 거주인들은 한층 더 자유롭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황인현은 투쟁을 같이했던 거주인 한규선과 (김동림을 포함한) 마로니에 8인방이 자립해서 나갔을 때, 서운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2010년 향유의집 산하 체험홈을 통해 자립생활에 도전한 그는 현재 김포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을 합친 101만 원 남짓의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꾸리긴 어렵지만,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으며 자신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2011년 그는 동료들과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을 통해 김포시 장애인 콜택시 확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21년 3월 3일 향유의집 마지막 탈시설 대열에 합류해 시설을 나온 양남연(71세)과 문영순(60대)도 장애인 지원주택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양남연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아직 적응이 필요하다면서도, “갇혀 사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문영순 역시 “징글징글”한 시설에선 가질 수 없었던 자신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데 크게 기뻐했다. 그는 가족들을 초청해 마음껏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탈시설: 시설 직원들의 탈시설 이야기
이러한 대전환 뒤에는 탈시설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아픔도 있었다. 거주인과 수십 년을 함께 생활해온 시설 직원들이 그랬다. 2008년 일부 거주인(마로니에 8인방)이 석암재단 측과의 투쟁이 끝난 뒤에도 복귀하지 않고 시설을 나갔을 때, 그 후 2009년 석암재단의 비리 세력을 몰아내고 새롭게 태어난 프리웰이 거주인 전원을 대상으로 한 탈시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 직원들은 크게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거주인들의 세계가 급격히 변할 때, 직원들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모든 거주인이 떠난 향유의집에서 시설 폐지 과정을 마무리한 마지막 사무국장 강민정은 2002년 향유의집이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던 시절 입사했다. 생활재활교사로 일을 시작한 그는 식사, 목욕, 여가 등 가장 가까이에서 거주인들의 생활을 지원하며 호흡해온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에게 ‘탈시설’이라는 말은 자괴감을 안겼다. “나쁜 기억만 있지는 않을 텐데 향유의집이 그 정도로 싫었나? 내가 근무하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라는 걸 확인하니 종사자로서 죄짓는 느낌도 들었어요. 우리가 거주인을 가둬놓고 있는 건가?”
20년차 생활재활교사 박종순과 김만순 역시 그랬다. 억압적인 시설 환경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봐가면서도 최대한의 힘과 마음을 쏟아 거주인을 지원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거주인들에게 자행되어온 학대와 인권유린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고, 그런 행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거주인들이 석암재단과의 싸움을 시작했을 때 함께 투쟁 현장에 나서 물심양면 도운 것도, 거주인에 대한 깊은 존중과 애정, 연대의식 때문이었다. 거주인의 투쟁에 동참하며 직원들 역시 노조를 꾸릴 수 있었고, 그 활동을 통해 재단의 케케묵은 검은 진실들을 파헤쳤다.
그러나 재단 이사진을 겨냥했던 투쟁이 탈시설운동으로 확장되자, 직원들은 더 이상 거주인들의 싸움에 함께할 수 없게 된다. 거주인들의 탈시설을 이끌며 2018년 프리웰의 이사장이 된 활동가 김정하는 그 분열과 갈등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그러니까 보이는 게 달라지는 거예요. 구체적 사건과 계기를 통해 분열하고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장애 당사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시설 직원들과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없는 시기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탈시설운동가들과 시설 직원들은 그럼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탈시설운동가들은 직원들에게 투쟁에 나서지 않아도 좋으니 뒤에서 지켜봐달라고 부탁했고, 직원들은 자립한 거주인들의 삶이 바뀌는 것을 목도하며 탈시설에 회의적이었던 자신들의 태도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자신과 거주인이 오랜 시간 함께 겪어온 시설생활 전체를 곱씹는 과정이기도 했다.
향유의집이 폐지된 이후 열린 집답회 자리에서 직원들은 탈시설한 거주인들에게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표정을 보았다고,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근황을 주고받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저분 표정이 달라졌다고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그러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내가 계약한 집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른 삶인 거죠. 그분 얼굴 표정만 봐도 그냥 알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강민정)
프리웰은 끝내 직원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정하 이사장은 시설을 폐지하면서도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위해 애썼고, 세 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생활재활교사들은 시설 밖 활동지원사로 직무를 전환했고, 프리웰 산하의 다른 시설이나 체험홈, 지원주택으로 일자리를 옮긴 이들도 다수 있다. 프리웰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탈시설을 오직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이루어냈다.
반대 혹은 두려움의 진짜 이유: ‘시설-탈시설’의 이분법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은 마지막까지 탈시설을 반대했던 거주인, 탈시설을 통해 자립을 이루고도 여전히 시설과 탈시설에 반반의 마음을 두고 있는 거주인의 목소리에도 주목했다. 이들의 발화는 한층 더 세심하고 복합적인 독해를 요한다. 일례로, ‘아무래도 시설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장애 당사자 이정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이것을 과연 문자 그대로 탈시설에 대한 반대 혹은 시설 예찬론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그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기차 사고를 당해 중도장애인이 된 이정자는 46세에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했다. 그는 시설을 비리와 폭력, 인권침해가 들끓는 곳으로 만든 주범인 옛 비리 세력 이부일 이사장/회장을 지나치게 찬양하는 한편, 그런 사실을 세상에 알리며 투쟁을 조직한 거주인들에 대해서는 무섭고 삭막하다며 거리를 둔다. “회장님이 이 요양원 안 해놨으면 우리는 어디서 살았겠어.” “그 돈(장애수당) 타고 나서부턴 식구들이 아주 야박해지고 다 나갔어요. 애들이 건방져지고 이상하더라고. 무서워.”
그러나 이부일 회장에 대한 이런 식의 찬양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시간 그가 겪어온 노동착취에 기인한다. 시설 측은 중도장애인인 그에게 더 중증인 장애인들을 케어하도록 시킴으로써 일손을 덜었고, 실질적으로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 직원으로 등록해 그 앞으로 나오는 월급을 다른 직원에게 심부름값으로 주곤 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겨우 외부 업체에서 후원한 물품이나 식료품 일부뿐이었다. 다시 말해 ‘돈 생각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일했다’던 그의 발화 안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의 돌봄노동을 무상으로 착취한 시설 측의 행태를 확인하게 된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 없던 자신에게 시설이 노동을 통한 회복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믿는 그가 탈시설을 두렵고 번거로운 변화로 인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는 노동에 대한 그의 자긍심과 별개로 다뤄져야 하는 심각한 인권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 탈시설에 대한 두려움은 시설 밖 지역사회,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사회 자체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시설은 곧 감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이 덧붙여지지 않는다면, 이 말은 절반만 옳다. 시설 이전에 지역사회, 즉 이 사회 자체가 감옥이라는 점이다. 애초 시설을 만들어낸 것은 지역사회이며,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소수자에게 취해지는 분리와 통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것이다. 시설 내부에서 발생하는 억압과 폭력은 다름 아닌 시설 밖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거주 공간’이 아닌 ‘관계’를 바꾸는 운동: 앞으로 탄생할 무수한 탈-시설들을 위하여
“시설에서 거주인과 직원이 맺는 관계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맺는 관계이다. 그 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홍은전)
결국 탈시설은 단지 거주 공간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탈시설은 곧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맺고 있는 차별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운동이다. 《집으로 가는, 길》 역시 바로 그 관계에 관한 책이다.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용감하게 탈시설을 감행했던 장애인의 이야기는 물론, 시설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탈시설을 거부했던 장애인의 이야기, 거주인의 자립과 행복을 응원하지만 ‘탈시설’이라는 단어엔 자괴감을 느끼고 시설 폐지에 끝내 흔쾌할 수 없었던 직원의 이야기, 이 모든 갈등들을 조율하며 시설 안팎의 변화를 견인했던 탈시설운동가 겸 시설 운영진의 이야기가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이런 구성은 시설을 그저 ‘감옥’이 아닌 그 내부에서 복잡다단한 관계가 작동하는 곳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 관계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만큼이나 시설 직원의 목소리가 귀중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거주인이 바꾼 것은 자기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관계들이었다. 가장 먼저, 시설이 일터였던 직원들이 바뀌었다. 이들은 자립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신과 같은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한 뒤 거주인의 탈시설을 진심으로 응원했고, 스스로가 얼마나 큰 편견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기쁘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견고했던 차별과 억압의 성 하나가 마침내 허물어졌다. 200년은 걸릴 줄 알았던 그 꿈 같은 일을 단 12년 만에 실현시킨 것은 다름 아닌 관계였다. 시설 안의 관계가 변하자, 시설도 변했다. 향유의집 폐지는 앞으로 더 큰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동료 시민들의 차례다. 여덟 명의 장애인이 개척한 길을 따라 “모험과 자유의 여정”을 시작해보자. ‘집으로 가는 길’이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한때 120명이 빽빽하게 살고 있던 향유의집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 모두 지역사회로 돌아와 자기만의 집에서 자유롭고 위태로우며 기쁘고도 슬픈 자기만의 삶을 향유하고 있을 것이다.” (홍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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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전쟁
도서정보 : 어딘 | 2022-06-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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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전쟁
할머니는 한국 전쟁 당시 피난 생활을 하며 낙동강이 핏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대신 다섯 식구의 살림을 책임졌다. 할머니는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할머니의 그 문장을 들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몰라. 전장에 있지 않았잖아.”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자인 내가 이십 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전쟁과는 동떨어진, 심지어 군대도 가지 않는 ‘어린 여자’라는 것 말이다. 궁금해졌다. 여성의 시각으로 그전쟁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그렇게 공적 언어가 아닌 사적 언어, 비남성적 시선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기억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것은 통계와 수치가 아니었다. 기존의 공적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사적 기억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전쟁 서사와 공적 기억에 대항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비로소 전쟁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을 어떻게 기억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 역시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을 읽는다는 것, 그 한가운데 있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것은 가려져 있는 전쟁의 수많은 얼굴을 마주하고 평화를 논할 수 있는 움직임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성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쟁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일에 말이다.이길보라(작가, 2018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기억의 전쟁> 감독)
구매가격 : 12,800 원
말말말 말속에숨은차별
도서정보 : 하루 | 2022-05-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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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
인터넷 댓글에는 남녀, 나이, 인종, 장애인 등을 차별하는 말들이 넘쳐나고, 신문 기사나 노래 가사에도 혐오의 단어들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어린이들은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 책은 사회에 깊숙이 박혀 있는 차별의 용어들을 어린이들에게 알려 주고, 비판적 사고를 키워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책을 읽으며 사회 곳곳에 쓰인 차별과 혐오 표현들을 알고, 그런 표현이 왜 쓰이면 안 되는지, 그 표현 대신 어떤 말을 쓰면 좋을지 함께 고민해 보세요. 이해하는 만큼 아이들의 언어 습관 또한 달라질 거예요.
이 말도 차별 표현이라고요?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단어에도 인종, 나이, 남녀, 장애인 차별이 숨어 있습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같은 속담이 여전히 아이들이 읽는 속담 책에 나오고, 운전이 미숙한 사람을 '김 여사'라고 부르며 욕하기도 합니다. 또 신문 기사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에게 '미망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운전은 남자가 잘하는 거고, 미망인이라는 표현은 교양 있는 표현이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망인의 뜻은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부인'이라는 뜻으로 써서는 안 될 남녀차별 표현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짱깨, 쪽바리, 조센징 등의 인종차별 표현도 넘쳐납니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가 혐오 표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흑형'이라는 표현은 칭찬의 말이라 생각하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형'이라는 표현이 붙어서 그렇게 느끼게 하지만, 흑인들은 그런 표현이 싫다고 합니다. '흑인은 모두 운동을 잘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표현 또한 인종차별입니다. ‘동양인은 모두 수학을 잘한다’라는 말이 잘못된 것처럼 말이에요.
책 속에는 백여 개의 차별과 혐오 표현을 담았습니다. 왜 이런 말이 차별 표현인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언어 습관을 점검해 보아요.
차별과 혐오 표현, 우리가 바꿔요!
이 책에는 우리가 알면서, 혹은 정말 모르고 사용하는 인종 차별 언어들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에는 어떤 혐오가 들어 있는지 알려 줍니다. 여기서 끝내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혐오가 들어 있지 않는 표현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 책을 읽는 아이들 중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그런 표현에 어떻게 맞서면 좋을지도 함께 고민합니다.
구매가격 : 8,500 원
안전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도서정보 : 문광수·이종현 | 2022-05-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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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안전은 인간 천성과의 싸움이다! ㅣ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안전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불안전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 안전은 마이너스 게임이다
사고율, 재해율만 보는 목표가 0(제로)인 안전은 마이너스 게임이다.
안전도 결과만이 아닌 과정을 중요시하는 플러스 게임으로의 전환을 해야 할 때다.
# 게임을 못하게 하면 공부를 할까?
불안전한 행동을 못하게 하면 안전하게 행동 할까?
불안전 행동에 초점을 두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소통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안전 행동에 초점을 맞춘 긍정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 안전 리더십의 기본, 현장에서의 리더십이 어려운 당신에게
경영진의 안전 리더십은 조직의 안전문화 확립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년에 1~2회의 선언만으로는 경영진의 안전 리더십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가시적인 안전 리더십(visible safety leadership) 행동과 모범적인 역할 모델 수립이며, 이를 통해 인식의 변화까지도 가능해진다.
- 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10,200 원
지구를 위하는 마음
도서정보 : 김명철 | 2022-05-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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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사라지고 있고, 이상기후로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산불이 나고, 갑자기 더워지거나 추워지는 날씨가 이어지면서 우리는 기후위기 문제를 더 가깝게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지구가 당장 망할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그룹이 있다. 이러한 공포와 낙관 사이에서 우리는 지금의 환경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구를 위하는 마음: 오늘보다 내일을 만드는 심리학 수업》은 오늘날의 기후변화 문제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친환경 행동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을 깨부수고, 지금 당장 지구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행동 지침까지 담은 심리학책이다. 책에는 어떤 심리가 작동해 지구를 위하는 행동을 가로막는지, 또 사람의 어떤 습성을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과 식물, 지구를 살리기 위한 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지, 지금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 담겨 있다.
구매가격 : 11,900 원
인싸를 죽여라
도서정보 : 앤절라 네이글 저/김내훈 역 | 2022-05-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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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새로운 공론장’이 될 거라던 곳을 점령한 반동 극우의 목소리
키보드로 결집한 세대의 기이한 정치 감수성이
모니터를 넘어 거리로 번지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며 환희로 뒤덮였다. 버락 오바마가 전했던 ‘희망’의 메시지는 주류 매체를 통해 열띠게 보도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널리 공유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향한 열렬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리버럴 진영과 거리를 두는 민주당 내 좌파들도 ‘평등주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인 그 순간만은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이 같은 스펙터클을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그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라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시기, 오바마에서 트럼프 사이의 기간 동안 일어난 정치적 급변의 궤적을 기록한다. 성 혁명 이후 1990년대 미국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사이에서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주의 등을 놓고 격렬하게 벌어졌던 문화전쟁은 소셜미디어 사용이 정점에 이른 2010년대를 전후해 인터넷을 전장으로 삼으며 다시 한번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쪽에는 백인민족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행정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에서 극우의 셀러브리티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그리고 끝없이 밈(meme)을 생산하며 언제든 ‘온라인 전투’에 참여할 태세를 갖춘 ‘트롤 군단’이 하나로 결집한 ‘대안우파’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올바름 과시 행위’로 팔로워를 이끌며 정체성의 인정과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낙인과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는, 또 다른 면의 공격성을 표출하는 진영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앤절라 네이글은 문화정치비평 격월간지 『배플러』, 미국 최대 극좌 성향 매거진 『자코뱅』, 이십 대 젊은 필진이 모여 만든 정치 격월간지 『커런트어페어스』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좌파의 관점에서 우파와 리버럴의 문화정치학을 비판하고 민주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접합을 도모하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문화연구자다.
그의 첫 저작인 이 책은 인터넷문화와 하위문화의 관점에서 2010년대 격렬하게 벌어진 온라인 문화전쟁을 추적한다. “한 세대의 정치적 감수성을 형성한 온라인 문화전쟁의 궤적을” 그림으로써 “컬트적이고 모호한 하위문화의 문화와 사상이 어떻게 일반 대중과 정치의 영역으로 주류화되었는지”를 이해하고자 시도한 이 책의 목표는 온라인에서 성장해 거리로 흘러나온 혐오주의 문화정치에 대응할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자고 촉구하는 데 있다.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과 ‘대안우파’의 관계
앤절라 네이글은 2000년대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온라인 문화전쟁이 “1960년대나 1990년대의 문화전쟁과는 다르다”고 단언하며,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1960년대와 1990년대의 문화전쟁은 젊은 세대가 일으키는 문화적 세속화와 자유화의 물결을 문화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기성세대가 가로막으려는 전쟁이었다. 지금의 온라인 백래시에는 십 대 게이머, 스와스티카[만자(卍) 모양]를 게시하는 익명의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 아이로니컬한 〈사우스 파크(South Park)〉 보수주의자, 반페미니즘 테러리스트, 사이버 추행꾼, 밈을 만드는 트롤(troll) 등으로 구성된 기이한 전위부대가 동원된다.” (9쪽)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의 한구석, 특정 집단의 하위문화 안에서 표출되던 혐오는 2016년 트럼프 당선을 전후로 인터넷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캐릭터인 개구리 페페가 수십만 개의 밈으로 만들어지며 극우의 상징이 되었고, 유튜브에는 각종 음모론과 반페미니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와 주로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인신공격성 콘텐츠가 넘쳐났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안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대안우파(alt-right)’는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온갖 증오의 메시지를 대량으로 흩뿌렸고, 이러한 메시지의 ‘얼굴’이자 그 자신이 곧 ‘밈’으로 기능하며 추종자들을 끌어모으는 그들만의 ‘젊고 쿨한’ 셀러브리티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논리와 이성을 상실한 혐오의 목소리가 ‘팩트(fact)’를 운운하며 현실 세계에서까지 증폭되기 시작하자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트럼프의 경쟁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이들의 “개탄스러움”을 말하며 직접적으로 대안우파를 호명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스티브 배넌과 같은 기득권 백인민족주의자가 제도 정치를 통해 대표하는 게 ‘대안우파(alt-right)’라면, 마일로 이아노풀로스 같은 극우의 ‘셀럽’과 그를 추종하며 문화전쟁에 뛰어드는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알트라이트(alt-light)’로 구별한다. 저자가 보기에 알트라이트는 “대안우파의 가장 바깥 궤도”를 구성하지만 유머로 위장한 혐오 메시지를 끝없이 생산하고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트롤링의 장본인들이라는 점에서, 그것으로 대안우파가 ‘청년 집단’과 연결되도록 만들고 결국은 주류로 부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대안우파 내의 주류 세력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새로운 온라인 우익의 현상이 그 자체로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진지한 목적을 가진 이들, 즉 트럼프나 대안우파를 대표하는 스티브 배넌과 같은 인물들이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쓸모 있는 바보”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반도덕적 위반’과 ‘반문화적 전복’을 말하는
온라인의 극우주의자들
대안우파의 대표적인 주장은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으로, 이들은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이 ‘문명의 쇠락’과 ‘문화적 퇴폐’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을 대체할 ‘대안’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안우파는 기독교적 윤리를 따르는 전통 보수주의를 좌파보다 더한 강도로 비난하며 명백히 선을 긋는다.
이에 따라 저자는 “새로운 우파의 감성을 여타의 우익 운동이나 보수주의”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과 거리를 두며, 그 대신 페페 밈을 올리는 인터넷 트롤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반도덕적 행위’를 합리화하는 이들의 감수성이 18세기 사드의 저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위반’의 전통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온라인 극우의 도덕적 감수성을 ‘위반’이 차지했다면, 문화적 감수성을 차지한 것은 ‘반문화’다. 저자는 광범위한 온라인 혐오 집단이 결집한 세력화가 ‘반문화의 공백을 극우주의가 차지한 결과’라고 본다. 1960년대와 1990년대 문화전쟁에서, 사실상 언제나 진보의 형식이었던 ‘반문화’가 이제 온라인 극우의 형식이 되었다고 보는 저자는 반문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형식일 뿐 그 내용은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진보가 반문화와 맺은 관계도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책 전체에서 ‘반문화적 위반의 기만’을 말하는 저자의 입장은 중요한 축으로 서 있으며, 앤절라 네이글의 온라인 문화전쟁 추적은 바로 이 반문화의 무원칙적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극단적 우익 정체성 정치로 발현되었는지를 파고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반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찬이 가져온 결과의 책임을 물으며 좌파의 성찰을 유도한다. 무원칙적 반문화라는 형식을 그 자체로 ‘혁명적인’ 무언가로 착각해온 탓에 그 내용이 정반대의 사상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는 데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문화에서 뚜렷하게 반문화적 양태를 띠었던 익명성의 커뮤니티 초기에 좌파의 많은 이들이 ‘우호적 편견’의 시선으로 ‘리더 없는 익명성의 네트워크’를 옹호하며 찬사를 쏟아냈다는 점을 공들여 지적한다. 앤절라 네이글은 “역사의 어느 순간에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반문화를 낭만화한 좌파의 비판적 성찰을 촉구한다.
“반문화적 위반이라는 것은 지극히 공허하고 기만적인 개념이다. 이는 주류의 가치와 취향을 무시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공백을 만든다. 모든 끔찍한 것들 앞에 취약해져버린 문화를 진보파가 저항 헤게모니적 힘으로 낭만화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공백이었다.” (205쪽)
온라인 극우가 ‘반문화적 위반’의 형식을 차용한 데는 ‘반항적 남성성’과 ‘순응주의적 여성성’이라는 고루한 이분법과 ‘저급한’ 대중문화를 여성성과 연결하고 ‘고급의’ 엘리트문화를 남성성과 연결하는 아주 오래된 여성혐오 또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여성혐오가 현대 인터넷문화에서 하위문화적으로 발현될 때, ‘주류’와 ‘대중문화’의 자리를 차지한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이 ‘비주류적’ ‘하위문화’의 경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반항적 남성성’이라는 환상을 자극하고, 온라인의 남성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자신들의 경계를 수호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 현상으로 앤절라 네이글은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트롤링으로 유명한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풍자’로 설명하는 인터뷰, 수많은 남초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이 대중문화적 시금석으로 삼는 영화 〈파이트 클럽〉이 드러내는 반항적 남성성, 인종분리주의의 귀환을 ‘쿨하고 멋진’ 것이라 말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과 경멸을 담아 ‘인싸’로 지칭하고 비난하는 왕성한 극우 활동가 리처드 스펜서의 말 등을 언급하며,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억압에 저항하는 ‘반문화적 투사’로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혐오의 정치가 권력을 잡은 이후, 분열하는 좌파
대안우파라는 세력의 부상과 이에 힘입은 트럼프 당선 이후, 앤절라 네이글은 광의의 ‘좌파’가 “전례 없는 분열을 겪었다”고 서술한다. 미국 양당 정치에서 민주당을 광의의 좌파로 놓고 본다면,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로 나뉘는 지지자들 사이에 서로를 향한 모욕적 언사들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리버럴 좌파는]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에 원통해하며, ‘버니라면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브로셜리스트’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오만한 ‘백인놈들’이라 불렀고, 이에 맞서 [경제적] 좌파는 리버럴이 설교적이며 자신들이 ‘깨어 있음’을 과시하는 텀블러 스타일의 정체성 정치가 좌파를 망가뜨렸다고 비난했다.” (138쪽)
반페미니즘적이고 백인민족주의적인 온라인 남성-극우 커뮤니티 포챈(4chan) 이용자들을 온라인 우익 정체성 정치의 자리에 놓는 앤절라 네이글은 이들의 거울상으로 극단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며 정체성의 다양성 인정에 몰두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텀블러(tumblr) 이용자들을 배치한다. 젊은 세대로부터 출현한 온라인 우익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게 포챈이라면, 온라인 좌익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곳으로 텀블러를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해 온라인 좌익 정체성 정치의 문화적 얼개를 그리고, 이곳에서 나타난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위문화적 행위와 이들이 표출한 “극단적인 악랄함과 공격성”을 기록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비평가 마크 피셔가 〈뱀파이어 성에서 탈출하기〉라는 글을 통해 온라인 좌익 정체성 정치를 비판했을 때 나타난 공격성과 같이, 정체성의 인정과 정치적 올바름을 중심으로 ‘소환하고 낙인찍고 숙청하는’ 문화를 비판하며 이로 인해 젊은 세대 내의 좌파 감수성에 일어난 분열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망친다’
: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의 연결고리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대안우파’라는 보다 진지한 정치 세력과 연결되며 그것의 가장 바깥 궤도를 구성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반페미니즘이었다. 온라인에서의 페미니즘 번성 이후, 미국에서는 기이한 ‘남성 운동’의 목소리들이 온라인 백래시를 주도했다.
다양한 남초 커뮤니티를 관통하는 여성혐오와는 또 다르게, ‘남성 인권’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여성에 대한 적대를 선동하는 것으로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는 이러한 백래시는 한국에서도 ‘신남성연대’와 같은 단체를 통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온라인 문화전쟁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온라인에서 번성한 반페미니즘과 ‘남성 운동’의 전개를 다루며, 여성과 함께 전통적 성 역할에 저항하고자 시작되었던 초기의 남성 운동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적대를 선동하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남성 운동 내에 “전통적이고 제한적인 남성의 성 역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와 함께 그러한 비판은 “남성성 자체의 찬양으로 변질”됐고, 이에 따라 페미니즘은 정치적 적대 세력이 되었다. 진보적이면서도 성찰적인 시각으로 여성 운동과 발을 맞췄던 남성 운동은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한 백래시 아래 다양한 분파로 갈라졌고, 그 이후 과격파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때부터 “남성 특권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남성 운동이 공식화되며 반페미니즘을 선동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이전 시기의 가장 전투적이었던 남성 운동조차 오늘날 온라인에서 부상한 반페미니즘에 비하면 지극히 온건해 보일 정도라며 현재의 심각성을 역설한다.
앞서 포챈과 텀블러 등 온라인 문화전쟁의 전초기지로 깊숙이 들어갔던 저자는 이번에도 반페미니즘 재부상에 영향을 미친 온라인의 곳곳을 파고든다. 대안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백인민족주의와 반페미니즘을 외치며 온라인의 젊은 극우주의자들을 자신들의 궤도로 흡수한 상황, 즉 남초 커뮤니티와 대안우파의 교류가 이토록 활발해진 상황에서 어떤 남초 커뮤니티든 여성혐오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노출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종종 ‘실생활’의 비극적인 사건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포챈 이용자였던 엘리엇 로저가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의 여학생 기숙사 주변에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은 ‘베타메일’과 ‘알파메일’을 구분하는 남초 커뮤니티의 지배적인 정서와 여성혐오가 현실 세계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오프라인으로 번지는 문화전쟁
온라인에서 시작된 문화전쟁은 이제 오프라인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충격을 경험했고, 한국은 제1야당 대선후보가 남초 커뮤니티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해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두 번째 저서로 『급진의 20대』를 펴내기도 한 이 책의 역자 김내훈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을 경유해 한국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총기난사만 없을 뿐 현재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혐오와 범죄와 퇴행은 이 책에 나열된 망동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앤절라 네이글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온라인 문화전쟁은 우리의 상상 범위 이상으로 끔찍해졌고, 그것이 도래케 한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며 절망감을 내비치지만, 그럼에도 이 혼란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정치라고 믿고 있다.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트롤을 트롤링’하려는 시도로 이러한 새로운 우익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거나 그들의 온라인문화를 모방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보다 우리는 훨씬 더 깊숙한 곳의 무언가를, 온라인 우익이 드러내고 있는 그것을 거부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공론장’이 될 거라던 인터넷을 점령한 반동 극우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들이 성장하고 세를 키운 그곳을 ‘공론장’으로 되돌리기 위해 애쓰는 대신 ‘표심’으로 계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정치의 문제를 돌아봐야 할 때다. 온라인 극우주의가 드러내는 혐오와 증오와 차별과 배제를, 한국 사회와 정치가 부디 거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그 거부에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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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 사회
도서정보 : 정인규 | 2022-05-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데이터 중심 ㆍ 노출 중심 시대가 낳은 인간관계의 단절,
정체성 상실과 자유의 억압, 그리고 확증편향…
진실의 조종과 왜곡이 불러온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다
시선의 횡포 속, 당신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일대 철학과,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인 90년대생 젊은 철학도가
‘시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관계의 회복’을 말하다
최근 사회문화적 갈등의 성격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소통의 도구도 다양해지고 일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간편해졌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은 물론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은 제각각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의 등장은 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수많은 시선만 난무하는 사회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시선의 변화는 무궁무진해졌다. TV 화면 속의 정치인을 보는 시선,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훑는 시선, 유튜브의 댓글 창을 읽는 시선 모두 전에 없던 시선들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관계망이 확산되고 생활의 면적이 비대하게 넓어짐에 따라 현대인의 시선에는 정리하고 파악하는 시선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때로는 환영하는 이 새로운 시선들 사이에서 우리가 뭔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다’의 의미는 걷잡을 수 없이 돌변해버린 것이 아닐까?
저자는 책 《시선 과잉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 즉 인터넷에 만연해진 디지털 관계가 오히려 관계의 단절은 물론 진실을 왜곡하고 조종하는 문제를 아이콘택트, 시선을 통해 진단한다. 특히 돌연변이 시선, 관음, 조명 중독, 뜯어보기, 전문가의 시선 등 시선에 관련된 일상적인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함축적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관계는 곧 아이콘택트를 통해 얻는 ‘우리’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마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해법으로 자신이 안에서부터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관계와 진실. 이 두 개념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개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시선’이다. 저자는 ‘시선’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며, 나 한 사람의 시선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관계와 진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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