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대습격

도서정보 : 앤드루 니키포록 | 2015-07-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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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신종플루, 광우병, 조류독감, 사스 그리고 메르스까지…
평범한 바이러스는 어떻게 세계를 위협하는 살인마가 되었을까?

세계를 공포로 들끓게 한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사스 그리고 신종 플루를 기억하는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찾아오는 이들은 지난 공포까지 되새기며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갖 바이러스를 생물학적 ‘침입자’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침입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인류의 건강과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 책 《바이러스 대습격》의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은 머잖아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그것이 인간 유행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가 추진해온 세계화가 본의 아니게 세계를 궁지에 몰아넣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1997년 홍콩에서 최초의 인간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서 18명이 발병하고 6명이 사망한 뒤 홍콩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3년 12월에는 한국에서도 가금류에서 H5N1이 확인되었다. 같은 해 이미 사스의 대유행으로 공포는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당국은 ‘안심’하라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했지만 양계 소비는 큰 폭으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가벼운 오한, 발열, 기침에도 공포에 몸서리쳤다.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며 가급적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잊지 말고 손발을 깨끗이 닦으라는 지침을 따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무방비 상태였다.
경제 행위의 일환으로 시도되는 모든 일에는 그에 상응하는 생물학적 거래가 수반된다. 이제는 곰팡이나 박테리아가 세계를 누비면서 눈에 띄게 불안정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광우병이 버젓이 세계 시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은 국제무역과 방만한 권력 덕분이었다. 여행이 용이해지면서(아울러 무엇이든 식재료로 삼는 광둥성의 식습관에 힘입어) 비교적 게으른 바이러스에 속하는 사스까지 해외여행에 나섰고 결국 전염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각국 병원의 심히 유감스런 현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침입자들은 가는 곳마다 원색적인 사회 비판을 퍼붓는다. 지난 20년 간 (조류독감부터 구제역까지) 600종이나 되는 가축 질병이 불안스럽게 만연한 것으로 보아 ‘가축 혁명’과 농업계에 만연한 규모 지상주의 사고방식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문명과 함께 들어온 바이러스,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바이러스는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위대한 생태학자 찰스 엘튼은 50년 전에 이미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수천 종의 유기체들이 한데 뒤섞여 자연에서 무시무시한 ‘전위’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식의 난장판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인류에게 내린 최악의 저주는 환경이 아무리 끔찍해도 습관화되면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의 한 저명한 병리학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또한 루돌프 피르호는 “개인의 생명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고 표출하는 것이 질병이라면 유행병은 대중의 불안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생물학적 유행병이라는 폭넓은 주제를 설득력 있게 총망라한 이 책은 일촉즉발의 불안정성, 예측 불가능한 미래, 우리 모두의 문 앞에 매복해 있는 미생물 테러리스트에 대처하기 위한 가이드북이다.
우리에게는 여분의 침대와 장비, 백신이나 의약품을 생산할 ‘여분의 능력’이 전혀 없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과 재채기는 반드시 가리고 하세요’라는 식의 첨단 과학기술과 거리가 먼 저급 기술적 메시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지금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성대한 바이러스 파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구매가격 : 10,800 원

정당한 전쟁과 핵무기시대의 한반도 시대의 평화

도서정보 : 기석호 | 2015-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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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공존 안에는 전쟁과 평화가 지향하는 가치의 양면성과 그에 담긴 각각의 정의와 진리가 서로 대립하면서 혼돈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전쟁과 평화에 담긴 정의와 진리, 그리고 반론이 지닌 힘 사이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구매가격 : 12,000 원

걷기만 하면 돼

도서정보 : 강상구 | 2015-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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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기후행동의 만남, 그 즐거운 혁명을 꿈꾸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20대든 60대든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의식주에 관련된 것들이다. 의식주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최소한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아이디어가 바로 ‘기본소득제도’다. 사회구성원이라면 소득이나 재산이 있든 없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나이나 성별·지역 등 어떤 차이에도 상관없이 일정 액수의 돈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개념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실험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시행 중이기도 하다. 이란과 알래스카가 현재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는 시범사업을 벌였고,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거나 할 예정이다.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도가 국민투표에 부쳐져 부결된 일은 한국 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는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이 책 《걷기만 하면 돼》는 기본소득제도의 취지에 찬성하며 그 기본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러나 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은이는 점점 악화되는 환경문제와 기본소득을 연계시킨다. 환경문제 해결 없이는 기본소득제도가 실현된다 해도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중독사회에서 벗어나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것만이 기본소득제도의 본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뿐더러 진정한 복지를 이끌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사회에 꽤 많은 돈이 풀립니다. 돈은 자동차의 기름과 같아서 경제를 움직입니다. 돈이 풀리면 경제도 빨리 움직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제 걱정은 ‘경제가 성장하면 더 많은 석유, 더 많은 석탄을 소비할 텐데 그래도 되나’ 하는 것입니다. 화석연료 중독경제는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는 결국 분배 그 자체마저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전 세계는 환경문제, 곧 기후변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후변화 자체의 심각성만큼이나 문제는 ‘속도’다. 그러나 한국 정부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대응은 매우 미흡하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이 바로 ‘기후행동’인데, 기후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지은이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개념인 ‘참여소득’을 제안한다. 곧 일정한 행위에 참여한 사람에게 조건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인데, 그 조건이란 바로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다. 지은이는 이 구상을 ‘녹색기본소득’이라 일컫는다. 녹색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통해 기후행동을 촉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소득 재원의 출처가 이란이나 알래스카처럼 석유를 판 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는 결국 화석연료에 중독된 경제체제를 지속시켜 종국에는 기본소득의 정당성마저 훼손할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지은이가 녹색기본소득의 조건으로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내세운 것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수요를 줄임으로써 얻는 환경 및 삶의 질 개선 효과가 사회 전반에서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녹색기본소득이 조건 없이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철학에 반하는 것이며, 시민의 참여를 측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행정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등 여러 반론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걷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기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급받을 자격이 있다는 기본소득 철학에 크게 반하는 것이 아니며, 또 스마트폰을 이용한 측정시스템이 이미 정부와 민간에서 개발되어 시행된 적이 있기에 이를 잘 활용한다면 행정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외 여러 반론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구체적 사례를 들며 반박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지은이는 녹색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개인과 사회, 더 나아가 전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책 전반에 걸쳐 세세히 분석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녹색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는다.
정책에 대한 제안인 동시에 사회운동에 대한 제안인 녹색기본소득을 통해 지은이는 한국 사회가, 그리고 전 세계가 인간 중심의 생태사회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

구매가격 : 8,500 원

숫자가 된 사람들

도서정보 :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 2015-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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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곳에서
등록번호, 또는 몸값으로만 존재했다”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생생한 고통 속에서 길어올린, 인간 존엄에 대한 목소리

이 책의 출간 소식에, 기쁨보단 겸허한 마음이 크다. 끔찍했던 야만의 역사보다 더 끔찍한 건, 진실을 숨기고 밝히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부당하고 결핍된 정의를 보면서 더 열심히 듣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오늘부터라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의 출발은 생존자들 스스로의 목소리다. 말하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에 머물지 않고 치유의 시작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들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들어주는 일, 생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 진실과 정의를 향해 더불어 한 걸음 걷는 일일 것이다.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의 진실

19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인근을 비롯한 개인의 악마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던 ‘국가폭력’의 산실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피해생존자들 11명의 이야기를 인권기록활동 저자들이 재구성해낸 결과물이다.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서, 피해생존자들 삶에 깊이 각인된 그날들의 흔적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사회에 전달하고자 결성됐다. 약 반년에 걸쳐 인터뷰이 탐색과 설문조사, 두세 번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간의 언론 보도가 미처 다루지 못한 생존자들 각각의 세세한 삶의 결, 감정의 파동까지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오롯이 재조명하고 특별법 제정을 포함해 책임을 촉구하고자 기획되었으며, 독자들은 폭력이 삶을 규정지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백 속에서 인간 존엄과 자기치유의 목소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숫자에 갇힌 사람들, 그러나 너무 인간적인 고통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을 일컬어, “형제도 복지도 없는 지옥 그 자체” “국가가 위탁이라는 형식으로 만든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말한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2년 동안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됐던 형제복지원은 당시 약 3,146명을 수용하고 있었고, 납치·감금·강제 노역·학대·성폭력 등으로 유지됐으며, 밝혀진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했다. 피수용자들에게는 몇 년도에 몇 번째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78-374, 80-3038, 82-2222, 82-4714, 86-1360…… 식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운영 당시 매년 20억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았는데, 그 액수의 기준이 되는 것은 피수용자들의 ‘머릿수’였다. 이들의 존재가 박인근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재산이었던 것이며, (그들을 검속해 형제복지원에 넘긴) 경찰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짭짤한 근무 평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기보다 등록번호, 몸값, 누군가의 점수 등 ‘숫자’로 취급됐다. 반면 이들이 형제복지원 안에서 겪은 고통은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이었다. 11명의 생존자들 이야기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수용자들이 일상적으로 견뎌야 했던 폭력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구술자 박경보 씨는 더없이 차분한 어조로 “형제원 안에서 맞고 기합받는 건 일상이었어요. 손가락을 잡고 부러뜨리는 건 흔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연약한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도 열외가 없는 군대식 점호와 기합, 구타는 그의 말대로 일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지는 증언들에 정작 듣는 이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 ‘일상’은 때로 사망까지 이르기도 했지만, 목격자들은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희곤 씨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성인 소대장에게 가슴 100대를 가격당했던 일을 회상하며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와 나란히 맞았던 다른 아이는 다음날 식사하러 걸어가던 길에 쓰러져 그대로 사망했다. 남자 아동소대의 경우에는 밤에 소대장이 와서 소년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사무실에서 원장이 피수용자의 배를 형광등으로 가르더니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인간의 상식으로 믿기지 않는 폭력에 대한 증언은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은 낚시 용품, 봉제, 건축, 나전칠기 등 다양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나 이로 인한 수익은 전혀 배분되지 않았다. 일당 300~500원, 요양원은 3일에 토큰 1개(100원) 상당의 임금 기준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임금을 받았다는 증언은 없다. 너무나 집요한 폭력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꿈꾸기조차 힘든 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환경 속에서도 존엄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여러 증언들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박경보 씨는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도망을 쳤어요. 왜 그랬을까요”라고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숟가락, 면도칼 따위를 스스로 삼키거나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경우들도 많았다고 말한다. 하안녕 씨는 오직 탈출을 위해서 일부러 소대의 서무직을 자청하고 동료들과 계획을 짜 탈출에 성공한 과정을 생생히 들려준다. 다시 잡혀온다면(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많았다) 더 큰 보복과 폭력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탈출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황송환 씨는 “사회에선 죄를 짓더라도 형량이 있고 만기가 있는데 형제원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영영 나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들의 갈망을 자극했고 탈출은 계속됐다. 한 시설을 탈출해도 곧 다른 시설에 잡혀들어가고, 또다시 탈출하는 일을 반복한 경우도 많았다.

국가의 위탁으로 운영된 지옥

그 모든 인권유린이 ‘사회복지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업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단순히 ‘복지시설’에 돈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부는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발령해 소위 ‘부랑인’ 단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훈령에 따르면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해하는 모든 부랑인”(제1장 제2절)이 단속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역 앞이나 거리에 있는 아무 사람들을 애매하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잡아다 감금하고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수호하라는 명령이다.

박인근 자서전에 자랑스럽게 실린 한 사진(전두환 대통령과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형제복지원 운영은 국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총리에게 지휘서신을 보내 전국적으로 부랑인 검속을 강화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일명 ‘시찰’이 나올 때마다 벌어졌던 해프닝들을 자세히 그려낸다. 원장이 허울 좋게 보이기 위해 형제복지원 내에 각종 ‘부서’들을 신설하면 부산시에서 견학을 왔다. 그런 날만 옷이나 신발 등이 더 깨끗한 것으로 지급되고(시찰이 끝나면 다시 뺏어간다), 돌계단을 닦아내고 줄을 서서 박수를 치는 등 ‘갖은 쇼’를 해야 했다. 매년 운동회 때 보여줄 공연을 연습하는 시기에는 한 달 동안 잠을 못 자고 혹사당했다. 교양 있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박인근의 아내는 자주 친구들을 데려와 “우리는 이렇게 밖에서 동냥하는 애들을 데리고 와 교육을 시켜서 사람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렇듯 형제복지원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섬 같은 것이 아니라, 국가와 부산시 공무원 사회가 충분히 인지하고 드나들 수도 있었던 곳이다. 마찬가지로 박인근은 인간 사회와 분리된 악마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업가였다.

1987년 울주 작업장에서 발생한 폭행 치사 사건 당시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 중 168명을 울주 작업장으로 보내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숙소 외부에서 문을 잠갔으며, 도주하는 경우 구타한 행위에 대해 특수감금죄로 기소됐다.

으로 인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본 시설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았고, 울주 건에 대해서마저도 3년 동안 대법원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났다. 결과적으로 박인근은 횡령죄로 2년 6개월 형만을 받았고 출소한 뒤에 대를 이어 ‘복지사업’을 계속했다. 지상에 현존했던 지옥에 대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셈이다. 국가는 아직까지 정당한 법과 순리에 따라 박인근 개인을 처벌하지 않고 있으며, 제대로 된 진실 규명과 공식적인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들어진 ‘부랑인’의 존재

형제복지원 자체는 사라진 지금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절대 피해 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시설에 강제 수용되는 전제였던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역 앞에서 잡혀가는 ‘부랑인’ ‘노숙자’라고 했을 때,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집이나 가족이 없어 보이고, 추레하고, 술에 취해 있고, 냄새가 나고, 행인들에게 빈손을 벌리는 어떤 사람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잡아가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 또한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정부와 경찰 및 공무원 사회가 손잡고 벌였던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화’는 사실상 ‘인간 청소’에 가깝다. 독일 나치하의 아우슈비츠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킨 것처럼,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시설들도 임의적인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또한 어떤 면에서 ‘인종’으로 취급됐는지도 모른다)을 정상의 세계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11명의 이야기들을 읽어가다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잡혀왔는가 들여다보면 그 방식이 훨씬 더 악의적이고 마구잡이다. 여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7곳의 고아원을 전전한 박경보 씨, 열 살에 친구들과 서면로터리에 놀러 나왔다가 잡혀간 김희곤 씨, 부모님이 장사하러 나가고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파출소 아저씨’가 데려다준다는 말에 따라간 하안녕 씨,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20대 중반까지 시설에 갇혀 산 황송환 씨, 엄마 찾으러 제주에서 부산까지 배 타고 혼자 왔던 이상명 씨, 몇 월 몇 일생 추정에 어느 고아원에서 ‘인수’했다는 서류로써만 자신의 ‘발생’을 추측하는 김영덕 씨,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가 잡혀간 김철웅 씨, 자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아버지에 의해 직접 파출소에 인계된 이향직 씨, 중학생 때 멀쩡히 하교하는 길에 파출소 순경이 가방을 뒤지더니 급식으로 받은 빵과 우유를 훔쳤다며 끌고 간 최승우 씨, 생의 기억이 시작된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놀러 나왔다가 다섯 살 때 형제육아원(형제복지원의 전신)에 납치된 홍두표 씨,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서 살던 중 구박받는 것이 싫어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가 같이 끌려간 이혜율 씨……

이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랑인’이 존재해서 그들을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랑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만한 이들을 잡아다가 부랑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만만한 이들이란 물론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김희곤 씨 이야기의 제목), 그리고 가장 힘이 약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집 나온 아이들’이었다. 여러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박인근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들에게 ‘너희는 부랑인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식의 정신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이 또한 부랑인이 실제로 존하는 것이 아니라 납치, 감금, 세뇌 등의 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반증이다.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시설’ 입장에서는 피수용자 머릿수당 돈이 되니까 사업의 필요로 운영했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가 좀 더 집중해 밝혀야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는 왜 시설을 ‘필요로’ 했냐는 점이다. 구술프로젝트 서중원 작가는 김영덕 씨의 구술 기록에서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비친다.

“알다시피 당시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이 부랑아 사업으로 폭압과 독재 형태의 권력을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위 이 사업이 전국적 규모로 먹혔다는 데 있다. 다소 위험한 가설이긴 하지만, 당시 아직 성숙기를 맞지 못한 시민사회는 독재라는 큰 폭력에는 맞서지 못한 채 부랑아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대체 낙인으로, 자신의 분노를 약자 청소의 제노사이드에다 무의식적으로 분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작가의 말대로 조금 무리한 가설일지 몰라도, 분명한 것은 사회가 ‘우리’와 다른 부랑인의 존재와 그들을 격리시킬 시설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적어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폭력 사건이긴 하지만, 시민사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황송환 씨(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듣고 계십니껴?), 김영덕 씨(서류철 하나에 집약된 인생), 홍두표 씨(혼자 살 수 없는 이 삶 자체가 어디서 왔나) 등의 이야기는 인생 전체가 그러한 시설과 시민사회의 무관심에 희생당한 비극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중 자신의 발생과 존재를 오직 서류로 추적해가는 김영덕 씨의 이야기는 인간 존엄을 희생양으로 삼는 시설의 근본 문제를 상징적으로 꼬집는다. 그는 사람이 단지 ‘연고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구 다뤄지는 인권유린에 분노하며, 스스로 자신과 같은 무연고자들을 찾아다니며 연고를 찾아주고 수급을 받게 해주는 등의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한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문을 닫았고 전두환의 독재 정권도 막을 내렸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혐오와 격리와 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10년 11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노점상 강제철거 시도, 외국인 범죄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 2011년 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행위를 처벌하고자 2013년 통과시킨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이묘랑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권력이나 자본은 다수의 이익과 안전이라는 그럴싸한 외피를 두르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골라낸다. ‘쓸모’가 없음이 확인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격리해왔다. 시설 수용은 교화와 복지, 그리고 일반(?) 시민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품은 채 유유히 맥을 이어간다. 지금은 노숙인, 고아나 장애인으로 표적이 달라졌을 뿐이다. 얼굴을 바꾼 내무부 훈령 410호와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주세요”

기존에 형제복지원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는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와 전규찬 교수,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함께 쓴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으로는 《숫자가 된 사람들》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피해생존자들이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피해생존자모임을 스스로 찾아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거나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11명의 목소리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지속적으로 당한 성폭행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김철웅(가명) 씨, 박인근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게 사과받고 싶어하는 이향직 씨 등 대부분 피해생존자들에게 이것은 말 그대로 인생을 건 고백, 최고의 용기를 낸 증언이었다. 구술자들은 하나같이 인터뷰 작가들을 앞에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데 자신은 이렇게 살아 있고, 그렇다면 말해야만 했으리라.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가 가능해진 데는 구술프로젝트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 결성됐다. 구술 기록이 단순히 인터뷰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라는 세간의 몰이해 또는 왜곡과 달리, 이들이 재구성한 11편의 구술 기록들은 하나하나 온전한 개성을 띠며 저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끌어내는 일은 그 자체로 그 어떤 인권활동이나 연구 작업 못지않게 중요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여 사회에 전하는 기록활동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이번 작업을 감내한 이유는 한 가지다. 온 마음을 다해 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이야기를 듣다보면 종종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야기, 예외적인 일로 믿고 싶은 사실들을 만나지만 외면하지 말고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인 일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했는지,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봐줬으면 좋겠다. 이 불편함을 딛고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듣기, 그이들의 말할 권리가 가능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고대한다.”(들어가는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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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방문 안내지도 제작법-계획ㆍ디자인ㆍ출력

도서정보 : 허갑중 | 2015-05-27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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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물결 바이오차

도서정보 : 우승한 | 2015-05-0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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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바이오차(Biochar)를 낱낱이 해부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물결 바이오차』는 ‘바이오차’를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교양서적으로서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적 이론들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집필됐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농업, 환경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핵심이슈와 사진 및 도표 등 풍부한 자료들 포함은 물론 바이오차를 실제로 활용해볼 수 있는 사례를 담고 있어 미래의 환경과 사회적 문제해결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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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음

도서정보 : 윤백남 | 2015-05-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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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음』은 ‘2천만 우리 농민에게 드리는 글’로 우리 조선의 광복을 맞이한 감격과 희망을 농촌의 민중과 모두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폐습을 버리고 새로운 신 농촌건설과 행복한 생활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자기완성이 필요함과 동시에 모두 일치단결함이 필요하다고 하는 민족의 염원과 당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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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여지도

도서정보 : 박점규 | 2015-05-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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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구호 뒤에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노동의 맨얼굴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지도는 크게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해고자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그러나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넘기고 사정이 나아져도 고용을 전과 같이 늘리지 않았다. 남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법원은 해석했다. 이제 노동자는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 앞에서도 해고될 수 있다. 지난 15년간 진행된 ‘노동 유연화’의 실상이다.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나쁜 일자리마저 ‘갑질’ 앞에 무릎을 꿇고 지켜야 하는 사회, 이것이 한국의 평범한 일상이다. 경쟁과 도태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삶을 옥죄는 막연한 불안에 일상적으로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런 곪은 상처를 표피적으로 관리하려고만 해왔을 뿐, 정작 당사자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는 일은 도외시해왔다. 환부를 직시하고 정밀하게 진단해야 가장 유효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문제를 살피고, 그곳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정책과 통계치, 구호와 숫자 뒤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사회문제는 삶의 문제로 바로 설 수 있다. 《노동여지도》는 바로 그런 얼굴들, 오늘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맨얼굴을 찾아나섰다.

당신이 사는 도시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노동여지도》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실제를 보여주는 한 편의 르포르타주이자 역사서다. 20여 년을 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해온 저자가 2014년 3월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시작해 2015년 4월 ‘책의 도시’ 파주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 28개 지역을 발로 뛰어 ‘오늘 이 땅의 노동여지도’를 그려냈다.
모아 펼친 풍경은 신산하다. ‘18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 서민들에게는 일상이 세월호의 선실과 다를 바 없’었다(송경동 시인, 추천사 중). ‘사람장사’가 기승을 부리는 안산의 하청노동자들은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의 부모였다. “직영이세요?”라는 맞선 자리 질문에 모멸감을 곱씹어야 하고, 청춘을 바친 공장을 지키기 위해 고공의 굴뚝에 올라야 하고, 열차에서 일하지만 사고 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저자의 여정을 이어가게 한 것은 곳곳에서 싹 트고 있는 희망들이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로 전환하고 흑자로 돌아선 시내버스회사, 노조와 병원장이 함께 일궈낸 행복한 공공병원, 성과급을 받는 대신 후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선배 노동자들…. 21세기 한국 노동 현장에서 발견한 희망은 아직 작지만 분명 또렷하다.
세밀한 희망을 발굴해 기록한 행간에는 골목을 뒤지며 분투한 저자의 땀이 뜨겁게 배어 있다. 자동차 부품사, 조선소, 시멘트회사, 의료기기 제조사, 음료 제조사, 연구소, 병원, 증권사, 출판사, 공항, 호텔, 식물원, 패스트푸드점 등, 다종다양한 일터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기꺼이 육성을 들려줬다. 그곳에 정직한 땀의 대가를 찾는 사람들,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 상처를 보듬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여지도》가 만난 ‘보통의 노동자’들은 고단함을 나누고 힘을 더할 때 비로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말’이 아닌 ‘삶’이 실증하는 21세기 노동사의 한 장면이다.

다시 현장에서, 노동자의 연대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다수 한국인이 노동자일진데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노조는 어째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OECD 최하위권 수준이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꼴찌다. 노조가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자기 삶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지 못한다. 《노동여지도》의 여정에서도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의 목소리가 가감 없이 전해진다.
노동조합 일반을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일부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노동여지도》가 현장에서 만난 ‘작은 노조’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이 질문을 다시 무겁게 생각하도록 한다. 더 나은 일터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자긍심, 일터 밖의 사회와도 연대하는 정의로운 삶에 관한 성찰이 그들의 목소리에 배어 있다. 그래서 다시, 현장을 보고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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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

도서정보 : 정희선 | 2015-04-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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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종이 넘는 마약 검사 끝에 사인을 밝혀낸 가수 김성재 사망 사건
프랑스의 콧대마저 꺾어버린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혈흔을 분석해 완전범죄를 막아낸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공소시효 1년을 남기고 검거한 성폭행범


정의를 향한 국과수 사람들의 집념과 열정의 기록!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34년간 몸담았던 정희선 전(前) 국과수 원장이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남대문 방화 사건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과수 연구원들의 뜨거운 열의와 집념, 그리고 구체적인 과학수사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정희선 원장은 국과수의 역할은 “진실을 밝혀서 사망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인권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첫 여성 수장,
정희선 원장이 말하는 국과수 이야기
현재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정희선 원장은 1978년 국과수에서 약무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과학수사 분야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 당시 국과수 직원 100명을 통틀어 여자는 본인을 포함해 3명뿐이었을 정도로,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직업군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혈흔이 묻은 옷가지, 시신의 머리카락, 변사자의 토사물 등 사건 현장에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해 실험해야 했고, 조직폭력배를 앞에 두고 법정에 서서 감정 결과를 증언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희선 원장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과학수사 분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본인의 기대와 달리 출근하자마자 실험 기구만 닦고 8개월 내내 실험 보조만 하게 되자,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으니 주도적으로 감정을 진행하게 해달라고 상사를 설득했다. 이후 소변을 이용한 마약 검사법을 확립하는 등 10년 동안 약독물을 전문으로 다뤄오다가, 외국의 체계화된 마약 검출 시스템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영국 외무성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선정되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처음에 연구소에서는 난색을 표했지만 정희선 원장이 일일이 부서장들을 찾아다니며 허락을 받아냈고, 그 결과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법과학 전공으로 박사후 과정에서 수학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다시 국과수에 복귀해서도 영국에서 맺은 인연을 이어갔고 영국문화원의 협조 아래 한-영 공동 법과학 심포지엄을 추진해, 다른 후배 연구원들도 영국의 선진적인 과학수사 시스템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에 나타난 그녀가 유가족인 줄 알고 기자가 다가왔다는 에피소드에서 체감할 수 있듯이, 과학수사 분야에서는 드물게 국과수 최초로 여성 소장이 되었고, 소장을 지내는 동안 연구소가 연구원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원장까지 지냈다.

방독면과 실험복을 입고 1층 옷가게를 통해 2층으로 들어갔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장이 전소되었고 화재 잔사만 남아 있었다. 화재연구실 직원들은 전형적인 화재 냄새와 분진이 가득한 곳에서 벌써 3일째 꼬박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화재 현장을 둘러보고 시장 길을 걸어 나오는데, 대기하던 기자 중 한 명이 급하게 다가와서 나에게 유가족이냐고 물었다. 한 여성이 화재 현장에서 나오니 기자 입장에서는 누구인지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본문 142쪽 「잿더미를 가지고 사건을 규명하다」 중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는 사람들》은 정희선 원장이 국과수에 입사해 여성 법과학자로서 활약한 개인의 기록이자, 0.1%의 가능성에 매달려 온 힘을 쏟아내 미제의 사건을 해결하는 국과수 전 연구원들의 집념과 열정의 기록이다. 1장 [오직 진실을 향한 뜨거운 집념]은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등 국과수에서 해결한 굵직한 사건을 모았고, 2장 [수사는 과학이다? 수사는 창조력이다!]는 창의력을 발휘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 사건들을, 3장 [사회의 어두운 조각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미세물질실, 영상연구실, 유전자분석실은 물론, 평소에는 잘 접하지 못했던 최면수사를 진행하는 범죄심리실이나 총기연구실 등 과학수사의 세세한 분야를 짚었다. 마지막 4장 [국과수에서 불량식품을 조사한다고?]에서는 가짜 참기름 판별, 프로포폴과 위조 다이어트 약물, 비아그라 등 바로 우리 곁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과수의 사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략-

구매가격 : 9,100 원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도서정보 : 구광렬 | 2015-04-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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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보는 체 게바라의 삶
체 게바라의 펜을 통하여 그를 알아가고 이해해 나간다

-‘여는 글’ 중에서-
국내 출판된 체 게바라 관련서적들은 일기나 자서전 등 주로 그의 개인적 기록물들을 번안한 것들이다. 특히 체 게바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적은 국내출판본이 없는 걸로 안다. 더욱이 체 게바라를 문학도로서 조명한 서적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펜과 칼을 동시에 들고 싸웠던 체 게바라의 펜 부분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 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녹색노트 속의 시들에 관한 분석은 세계최초인 만큼 한국인인 필자가 느끼는 감회엔 남다름이 있다. 하지만 겨우 첫발을 디뎠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필사시기 등, 추정에 그치고만 부분을 확정, 단언할 수 있을 날까지 견마지로를 다해야하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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