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
도서정보 : 노승대 | 2024-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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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구석구석 숨은 보물찾기 ‘마지막 라운드’!
사찰 속의 흔하고 오래된 것들에 새겨진 놀라운 역사!
누군가는 전국 곳곳에 자리한 사찰을 ‘숲속의 박물관’이라 칭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불상과 불화, 전각 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절집에 자리한 보물이 단지 그뿐이랴. 저자는 우리가 ‘문득’ 찾은 사찰에서 ‘으레’ 지나쳤던 것들, 이를테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를 절 마당의 돌기둥이나 단순한 장식으로 보이는 지붕 위의 오리 조각, 불상 앞에 놓인 탁자는 물론 절집의 일상을 보조하는 계단, 석축도 우리 역사 속의 보물이라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들 하나하나에 거대한 역사적 맥락과 상징적 의미, 옛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절집에 숨어 살던 신기하고도 의외인 존재와 그 역사·문화를 조명하며 절집의 또 다른 모습을 소개해 온 저자는 전작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사찰 속 숨은 조연들』에 이어 절집의 숨은 보물찾기, 그 ‘마지막 라운드’를 펼친다.
총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암벽 위에 새기고, 바위를 다듬어 조성한 사찰의 석조물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 사찰 속 의외의 보물에 대해 다룬다. 그리하여 1부에서는 어느 사찰에서든 만날 수 있어서 관심 가지 않았던 보물로 마애불, 석탑, 석등, 승탑, 그리고 그 용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노주석과 당간지주를 다룬다. 다음 2부에서는 일상적이거나 사소해 보이는 것들로서 수미단과 탁자, 계단과 석축, 절집의 화장실인 해우소, 그리고 전각 지붕의 백자연봉과 청자 기와, 처마 밑에 숨겨진 항아리, 용마루에 앉아 있는 오리 등의 사연을 다룬다.
40여 년간 책상 앞이 아닌 오직 길 위에서 우리 역사와 옛사람들의 문화를 읽어 온 ‘찐’ 답사가의 기록! 독자들은 이 책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사찰 안의 그 무엇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21,000 원
18세기의 사랑
도서정보 : 이영목·김영욱·민은경 외 | 2024-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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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은 18세기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인류 역사의 역동을 이끈 아름다운 힘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과 생각의 새로움을 이끈 사랑의 모험
누구나 사랑을 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이번에는 사랑이다. 일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지만 끝내 탐구해야 할 인간의 조건이다. 학문의 궁극은 인간을 향한다. 인류 역사의 동력인 사랑은 문학과 역사, 철학과 사회에 대한 성찰에도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때론 변화를 이끌었다.
『18세기의 사랑: 낭만의 혁명과 연애의 탄생』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열네 명이 ‘사랑’을 키워드로 18세기 사랑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갈망과 욕망은 사회를 변화시켰고, 반대로 세상의 억압이나 시대의 변화가 사랑이란 관념에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문학가와 철학가의 지적이고도 환희에 찬 연애, 사교계 남녀의 은밀한 유혹, 자화상과 신화화(神話畵)에 나타난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사랑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각자의 사랑 이야기에 계몽주의, 낭만주의의 시작, 개인의 등장과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그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제법 묵직한 주제가 갈피갈피 끼어들지만, 결말이 궁금한 로맨스 드라마 다음 회 재생하듯 어느새 단숨에 읽힌다. 역시 사랑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기 때문일까.
책에 실린 글은 2023년 ‘18세기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 문학동네 포스트에 연재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18세기의 맛: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18세기 도시: 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 『18세기의 방: 공간의 욕망과 사생활의 발견』과 궤를 나란히 하는 한국18세기학회의 네번째 책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혁명
삼자결혼은 행복의 트라이앵글? 우정의 찬미에서 사랑의 합일로
유럽의, 특히 프랑스의 18세기는 ‘빛의 세기’이자 ‘철학자들의 세기’이다. 이 시기 사랑은 혁명적 변혁을 겪으며 도약했다. 유럽 18세기의 위대한 발명품, ‘낭만적 사랑’이란 개념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드디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영혼의 반쪽’을 만나는 합일의 관계를 꿈꿨다.
「낭만적 사랑의 혁명」에서는 슐레겔의 소설 『루친데』를 통해, 사랑과 우정 사이의 우열 관계에 대한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사랑이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총체적인 것이자 가장 배타적인 것”으로 격상하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율리우스를 구원해준 것이 루친데와의 낭만적 사랑이다. 그는 화가 루친데와 같이 밤을 보내면서 그녀와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고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존재의 통일성을 체험한다. 그녀와의 사랑이 개인의 분열된 관계를 극복하는 총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루친데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다. “사랑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우정, 아름다운 사교, 감각적 욕망과 열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랑 안에 있어야 […] 해요.” 여기서 처음으로 육체적 사랑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진정한 사랑은 성적 사랑에서 절정에 이르며, 성적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필수 전제가 된다. 물론 육체적 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낭만적 사랑의 의미는 감각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의 구분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분리를 모르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이란 한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사랑하는 일일진대, 어떻게 연인의 정신과 몸을 분리해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슐레겔은 이렇게 사랑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사랑의 유구한 이원론적 전통을 파괴한다. 낭만적 사랑은 이런 점에서 ‘혁명’이라 불려도 마땅하다. -「낭만적 사랑의 혁명」 63~64쪽
그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그다지 존중받는 감정도,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가치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기 독일에서는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 친구를 두거나 “삼자결혼(die Ehe zu Dritt)”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발견된다. 예컨대 게오르크 포르스터(제임스 쿡의 세계일주에 동행해 유명해진 민속·박물학자이자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공화주의자)는 자신의 아내 테레제의 친한 남자 친구이자 작가인 마이어(F. L. W. Meyer)를 질투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테레제의 형제이자 친구로서 서로 사랑합시다.” 또한 작가이자 여권론자였던 에밀리에 폰 베를랩슈는 소설가 장 파울에게 다른 여성과의 결혼을 권하면서 자신은 그 옆에서 친구로 함께 살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사교계에서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행복의 트라이앵글”로 찬미되기도 했다. 삼자결혼은 친구와 연인, 부부가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고유한 관계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듯 외도나 ‘정신적 바람’으로 쉽게 치부될 수 없었다. 사랑의 진정한 배타성이 형성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다.
욕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갈증, 사랑하므로 인간이다
에로티슴, 자기색정… 사랑을 향한 지적 유희와 탐구
실제로 있었던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와 가난한 가정교사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중세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야기는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비극적 사랑에서 영감을 받은 루소는 『쥘리, 신 엘로이즈』를 썼다. 그 밖에도 많은 문필가의 손 끝에서 당대의 새로운 엘로이즈/엘로이자는 수용되고 변형되면서 낭만적 사랑의 여러 특성을 보여주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는 1717년에 발표된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자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에서 따온 것이다.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먼이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이야기에 깊이 매혹된 흔적은 그의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의 인형극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18세기 문인의 대표인 볼테르의 삶에서 샤틀레 부인은 거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규범에 맞지 않으나 용인되었던 이들 커플은 당대 최고 지성인의 사교계에서 “개인적 삶을 공연히 드러냄으로써 사회라는 무대에 배우로서 등장”했다. 이들의 사랑엔 과학에 대한 순수한 탐구와 지적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떤 철학자들은 “생명을 얻게 된 석상이 점차 지식을 얻고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자기색정’과 ‘에로티슴’은 무슨 말인가? 「피그말리온의 사랑」에서는 피그말리온 신화의 18세기적 변형이 로크의 감각론과 함께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지 추적한다.
유혹과 기록
가짜 점과 부채, 신화 속 사랑, 모차르트의 오페라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가짜 점이 유행했다. 부채를 펼치고 흔드는 동작에도 다 의미가 있었다. 모두 이성을 유혹하는 은밀한 암호였다(「가짜 점, 부채 그리고 사랑의 커뮤니케이션」). 「프랑스 신화화의 장면들」에서는 ‘페트 갈랑트’라는 장르의 유행에서 개인의 존재, 감각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읽어냈다. 「모차르트의 풀리지 않는 사랑 방정식과 그의 오페라에 투영된 성」에서는 모차르트가 계몽주의자라는 신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에서 시작해, 그의 오페라에서 새로운 개인의 성적 정체성의 확립과 혁명 직전의 격동하는 사회의 상징이 있음을 간파했다.
사랑은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의 감정이지만 오래도록 우리에게 여운과 잔상을 남긴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느끼는 사회적 감정의 메커니즘으로서 사랑은 종족 번식을 위한 동물의 교미나 쾌락을 위한 섹스와는 달라야 한다는 18세기의 계몽주의적 태도는, 강박적으로 사랑의 완수를 위한 사회적 과정과 태도에 집착했다. 연애 장면과 성애 장면을 포착해 생생한 감각을 화폭에 담은 회화 작품은 그 자체로 사랑의 완수에 대한 시각적 증거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는데, 찰나의 사랑이 신화가 되는 순간을 기록해 영원으로 박제하는 일은 회화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대한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신화화의 장면들」 104, 106쪽
시대의 사랑
신분을 뛰어넘고 금기를 비웃으며 이념과 제도의 벽을 가뿐히 부수고 달려가는 힘
18세기는 전시대의 ‘지리상의 발견’의 여러 좋고 나쁜 가능성들이 실현되는 시대다.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성찰의 계기는 노예무역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현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잉클과 야리코의 이야기」는 이 불행한 결합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영국의 몰락한 왕당파 라이곤은 신대륙을 찾아 떠났다가 바베이도스섬에 도착해 그곳의 원주민 야리코를 만난다. 원주민 부족의 공격에 노출된 라이곤을 발견한 야리코는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를 동굴에 숨겨주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데…… 실화였던 이 이야기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잉클과 야리코’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의 낭만적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 야리코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의 지배를 받지만 그 현실의 질곡조차 뛰어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어떤 사랑은 기적처럼 세상의 편견과 굴레를 뛰어넘었다. 캐서린(캐서린 데스파드의 어머니는 자메이카의 노예였거나 자유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과 에드워드 데스파드 대령의 결혼은 인종 간 결혼으로 주목을 받았다. 데스파드 대령은 스스로를 “빈민의 친구”라 칭한 평등주의자였다. 점령지에서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동등하게 토지 분할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공분을 샀다. 점령지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캐서린을 아내로 소개했다.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였을까?
사랑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이 수많은 현상, 욕망,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8세기의 사랑’ 프로젝트를 이끈 한국18세기학회장 이영목 교수(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다양한 표현에서 어떤 인간의 본성을 읽기에는 우리의 이성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다만 지금 현재로서는 ‘알려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정원을 경작’할 뿐”이다. 그런 지적 겸손이 어쩌면 사랑을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누구나 사랑을 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혹여 생명을 부지하는 일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하다 한들 숨만 붙어 있고 사랑 없는 삶, 그런 삶은 계속 호흡하고 싶은 삶일까? 이번에는 사랑이다. 일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끝내 탐구해야 할 인간의 조건이다. 학문의 궁극은 인간을 향한다. 인류 역사의 동력인 사랑은 우리가 탐구하는 문학과 역사, 철학과 사회에 대한 성찰에도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때론 변화를 이끌었다. 우리는 사랑을 진지하게 연구했다. 사랑의 마음으로. 볼테르가 말했듯이, “사랑하고 사유하는 데 바쳐진 삶이 진정한 삶”이기에.
유럽의, 특히 프랑스의 18세기는 ‘빛의 세기’이자 ‘철학자들의 세기’이다. ‘낭만적 사랑’은 유럽 18세기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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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나는 세계사
도서정보 : 도현신 | 2024-01-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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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을 일으킨 와인부터 미국을 만든 럼주까지
술에서 탄생한 종교, 전쟁, 문화의 역사 속 결정적 순간들!
“무엇으로 근심을 풀까? 오직 술이 있을 뿐이네.” 삼국시대 위나라를 세운 조조가 지은 시 ‘단가행(短歌行)’의 한 구절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도 잠시나마 술기운에 기대어 시름과 걱정을 잊기를 바란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친구, 애인, 아니면 가족? 사실 주변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한잔의 술일 것이다. 혼자 마시는 술은 하루의 고단함을 조용히 풀어내도록 돕고, 함께 마시는 술은 깊이 담아 두었던 고민을 털어놓고 한줌의 위안을 얻게 만든다. 그래서 술집이 많은 밤거리에는 늘 사람이 많다.
19세기의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신이 만든 물과 인간이 만든 술을 같은 가치로 셈해 술을 찬양한 것이다. 지금보다 약 2세기 전에도 인류 의 술사랑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는 어느 건설 현장에서든 식사를 제공하듯 맥주를 지급했다. 일꾼들의 사기를 증진하고 탈진 증상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덕분에 이집트는 성인의 키만큼 크고 무거운 돌덩이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술을 들이켰고, 술에 기대어 거칠고 험난한 인생을 이겨 왔다.
술을 단순히 일상에 쌓인 독을 풀어 주는 해독제로만 마신 것은 아니다. 지금의 미국은 고작 럼주 하나로 드넓은 북미 대륙을 순식간에 점령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영원한 앙숙 관계가 되도록 만든 백년전쟁은 사실 포도주 생산지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벌인 다툼이었다. 술 덕분에 전쟁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전쟁과 종교 덕분에 부흥한 술도 있다. 이처럼 술과 세계사는 서로 얽히고설킨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 온 역사와는 사뭇 다른 내용일 것이다. 《술맛 나는 세계사》는 성경에 포도주와 관련한 단어가 441번이나 등장하는 이유,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국경을 완성한 술의 정체,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데 소주가 한몫 했다는 사실 등등 술과 관련한 흥미롭고 유익한 역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재미를 쫓다 보면 정보도 함께 따라온다. 책의 흐름을 따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몰랐던 역사 지식을 채우고 세계사의 뼈대를 세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익힌 역사 지식을 주변 사람과의 술자리에서 함께 풀어내어 지친 하루를 전보다 더 유쾌하게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구매가격 : 14,500 원
인생명강 20 - 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
도서정보 : 곽재식 | 2024-01-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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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전쟁, 그 승패의 본질에는 사실 화학이 있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역사 읽어주는 과학자
곽재식의 한반도 전쟁 속 화학의 세계
◎ 도서 소개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전쟁, 그 승패의 본질에는 사실 화학이 있었다!”
곽재식의 한반도 전쟁사 속 숨어 있는 화학지식 수업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교양 지식을 한데 모았다!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 시리즈의 스무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전국 대학 각 분야 최고 교수진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인생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의 삶에 유용한 지식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지혜와 내일을 내다보는 인사이트를 제시한다. 도서뿐만 아니라 온라인 강연·유튜브·팟캐스트를 통해 최고의 지식 콘텐츠를 일상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지식교양 브랜드이다.
힘과 힘이 격돌했던 시대, 한반도는 어떻게 다양한 국가들과 맞서 싸우며 발전할 수 있었는가? 『곽재식의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학전쟁사』는 7세기 삼국통일부터 19세기 운요호 사건까지, 과학자 곽재식 교수가 해석하는 네 개의 화학 지식과 전쟁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간단하게는 포차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밧줄의 화학성분부터 크게는 한반도를 무너뜨린 일본 석탄 군함 운요호의 화학 에너지의 비밀까지, 각종 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술해 나간다. 포차의 화학, 기병대의 화학, 증기 기관의 화학 등 지금-여기를 있게 한 ‘한반도의 화학전쟁사’ 스토리에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들
▶ 『명량, 한산, 노량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콜렉션』 | 김한민 감독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 98,000원
▶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 | 강인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 19,800원
◎ 책 속으로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다툼인 전쟁과 연관된 문제도 화학과 관련이 깊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화학이 얼마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다 생생한 이야기로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 전쟁이 어떤 화학 문제와 관련이 있는지를 풀이해 보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다른 책에서는 비교적 덜 다루는 관점에서 화학과 전쟁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노력해 보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니라, 화학사에서 중요하게 꼽는, 더 중요하고 잘 알려진 사건이 전쟁과 연결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도 사람의 삶은 언제나 화학과 깊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기 위한 주제를 따로 선정했다.
__ 8쪽
조선 시대가 현대와 가장 가까운 왕조이면서 이야깃거리도 많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만큼 자료도 풍부하고, 자료가 풍부한 만큼 작가나 제작진이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드는 데 능숙하고, 하다못해 방송국에도 조선 시대 의상, 조선 시대 무기, 조선 시대 투구 등 조선 시대 소품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투석기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조선 시대에는 이미 화약이 개발돼 대포를 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포를 쏘면 훨씬 간편하고 강력하게 무시무시한 피해를 줄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투석기를 만들고 병사들이 낑낑거리며 돌을 구해서 올리고 적군에게 돌을 날릴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조선 시대가 배경인 사극이 많은 한국 TV에서는 투석기를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많이 사용했고 전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극에서 별로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투석기는 이국적인 무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투석기가 언제 사용되었는지 찾아보면 의외로 곳곳에서 사용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저런 투석기는 안 썼던 거 같은데’라는 오해를 조금 풀어보자.
__ 16~17쪽
도대체 말은 왜 잘 달릴까? 어렸을 때는 한 번쯤 궁금해했을 만한 질문이다. 말은 사람보다 훨씬 잘 달리고 힘도 세다. 사람은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지만 말은 풀만 먹고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힘이 좋을까? (…) 실처럼 되어 있는 근섬유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성분은 마이오신 또는 미오신(myosin)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이 미오신이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를 뿌리면 ATP는 ADP(adenosine diphosphate, 아데노신 이인산)라는 물질로 변한다. 그리고 미오신은 그 영향으로 잠깐 모양이 굽어들 듯이 변하는 특징이 생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운동의 근원이다. 걷고, 뛰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누군가를 껴안고, 즐거워서 박수 치고, 화가 나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심지어 숨쉬기 운동을 하며 조금씩 가슴과 배를 움직이는 것까지. 그 모든 움직임이 ATP가 ADP로 변할 때 미오신이라는 물질의 모양이 굽어드는 화학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
__ 82~83쪽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형태가 바뀔 수 있는 단백질의 성질을 이용해서 물 같은 상태로 보이는 단백질을 여기저기 바른 다음 적절하게 말려서 서로서로 잘 달라붙도록 한 뒤 다시 굳도록 만드는 것이 아교 같은 접착제의 원리다. 특히 단백질이라는 물질이 온도를 달리했을 때 변형되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달걀찜을 만들 때 달걀에 파나 당근을 잘라 뿌려놓고 찜을 만들면 파와 당근이 있는 위치에서 그대로 굳으며 붙어버리는데, 그 원리와 아교의 접착 원리는 상당히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습도가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주변에 수분이 많아지면 엉겨 있는 단백질 사이사이로 수분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나름의 방식으로 꼬여서 연결되어 있는 단백질의 성질을 의도한 그대로 활용하는 데 방해가 된다. 단백질 종류에 따라 꼬여 있는 것이 조금 느슨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성계가 여름철에는 높은 습도로 아교가 느슨해져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요동 정벌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이다.
__139~140쪽
구매가격 : 15,840 원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1: 통합과 수성의 시대
도서정보 : 역사돋보기 이영 | 2024-01-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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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
통합과 수성의 시대가 열리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지만 양 시대를 잇는 고려시대에 대해서는 생각처럼 많이 알지 못한다. 고려는 통일신라 이후 분열된 후고구려, 신라, 후백제의 삼국시대를 ‘태조 왕건’이 통합하며 건국하였다. 이후 500년 동안 고려의 진취적인 문화는 주변국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영향력을 떨쳤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1: 통합과 수성의 시대》는 고려가 분열된 한반도를 다시 통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한 국가가 단명하지 않으려면 영토의 통합을 넘어서 사회적 통합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 책에는 태조 왕건 이후 고려에서 추구한 사회적 통합을 다방면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고려가 왕건의 고려 통합으로 인해 이전 삼국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현종 대에 두 차례의 고려 거란 전쟁을 겪으며, 고려는 국가로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며 대외적으로 국가 질서와 안정을 꾀하였으며, 통합을 견고히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고려만의 개성 넘치는 매력의 문화를 꽃피우며, 지금의 우리를 일컫는 ‘KOREA(코리아)’를 확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으로 지금까지 몰랐던 고려의 진정한 매력에 제대로 빠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구매가격 : 12,500 원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2: 폭발과 이행의 시대
도서정보 : 역사돋보기 이영 | 2024-01-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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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과 이행의 시대를 지나
고려의 멸망
고려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관을 극복하며 건국 후 약 100여 년에 걸쳐 통합의 시대를 일구었다. 그러나 통합을 위해 시행된 제도와 체제는 폐단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계파를 만들고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기 바빴다. 고려는 귀족의 나라인 만큼 귀족들의 권력 다툼에 왕실의 존엄까지 흔들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고려 갈등사 2: 폭발과 이행의 시대》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겪으면서도 바꾸기보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쪽을 택했던 고려를 담고 있다. 이때의 고려는 새로운 시대에 따른 요구를 외면하였고, 근본적인 개혁은 더 이상 내놓지 못했다. 한때 주변국의 조공을 받는 나라에서 조공을 하는 나라가 되었고, 왕권을 위협하는 무신정변과 대몽항쟁을 겪으며 백성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게다가 원나라 간섭기까지 겪으며 더 이상 상처를 부위를 도려낼 수도 없을 만큼 넓고 깊게 곪아갔다. 결국 고려 체제에 대한 변화의 열망은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함께 고려 멸망과 조선 개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폐단을 만들어 무너져 간 고려 왕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굴복하지 않으려 맞선 백성의 열망과 의지를 돌아보고자 하였다. ‘역사는 반면교사’라 했던가, 고려의 흥망성쇠를 통해 현재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매가격 : 12,500 원
사라진 일본
도서정보 : 알렉스 커 | 2024-01-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일본의 잔상, 그 희미한 빛을 주워가며 걷는 책
4세기째 접어든 일본의 빈집에서
아름다움과 추악함의 잔상을 주워 담는 에세이
긴 세월 일본은 외국인들에게 이국정취를 자아내는 나라였다. 특히 서양인들을 향한 일본인의 환대는 그들이 일본 땅에 부드럽게 안착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일본에 푹 젖어든 서양인들은 일본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일본에 대한 경외를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때리기였다. 알렉스 커의 『사라진 일본』은 경외심과 비판, 빛과 어둠 모두를 담고 있다.
1964년, 열두 살 때 일본에 처음 온 저자는 마법에 이끌리듯 이곳에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의 사물은 인간의 결심을 흐려놓기 마련이다. 도시화에 박차를 가해 마을 여기저기가 망가지자 그는 어느덧 이곳은 내가 원하는 나라가 아님을 깨달았다. 짐을 꾸리려던 찰나,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서예를 배우게 된다거나, 불현듯 가부키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는 십대 때부터 일본어를 배웠고, 한자에 매력을 느꼈다. 이는 일본에 오래 살면서도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그는 예일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중국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 책도 일본어로 직접 썼다). 더욱이 그는 다른 여행자들처럼 교토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추하다”고 말한다. 교토 사람들이 콧대가 높다고 말하지 않고, “위축되고 불안해하는 기색”이라고 말한다. 탑처럼 정교한 형식을 쌓은 일본은 사회가 순하게 굴러가는 모양새지만, 그 속에는 타인에 대한 짜증과 질시가 숨겨져 있다고 읽어낸다.
요즘 우리는 일본을 묘사할 때 ‘잃어버린 30년’이란 수식어를 쓴다. 이 말은 경제 선진국의 지위를 잃었다는 뜻이지만, 저자가 보기에 일본이 진정 잃은 것은 풍광과 아름다움이다. 그는 일본의 과거 잔영을 좇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어느 찰나에 그것은 눈 밖으로 사라진다. 그의 시선은 사물과 풍경을 낚아채려 하지만, 현대화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은 움직이는 손발을 갖고 있다. 운동에너지가 없는 눈은 손발을 당해낼 수 없으며, 과거와 현재의 경쟁에서 승자는 언제나 현재다. 따라서 이 책은 미의 상실, 쇠퇴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아름다움이 덜 훼손된 이야 계곡을 찾아 들어가 빈집을 백 군데 넘게 탐험하는 것으로 이 책의 첫 장을 연다. 그에겐 일본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백지 상태이지만, 그것을 상상으로 메울 식견은 있었다. 마침내 저자는 마음에 꼭 드는 빈집을 발견해 구입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집에는 먼지가 10센티미터 넘게 쌓여 있었다. 먼지 1센티미터마다 최소 20~30년의 세월을 응축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닥을 쓸고 광을 낼 때마다 역사는 한 층 한 층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시골 사람들이 등지고 황급히 달아난 그곳에서 한 서양인은 사라진 일본을 목격한다.
그 집에 살면서, 또 일본 사회로 스며들면서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력을 쌓았다. 미술품 수집가가 되기도 하고, 기업에 근무하면서 비즈니스 감각도 익혔다. 한편 주말이면 교외의 집으로 돌아가 동아시아의 문인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일본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구석구석을 담아내다가 이 한 권의 아름다운 문장들로 모였다. ‘빈집 사냥’에서 시작해 도쿄의 파친코 분석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던 일본에 대한 빈약한 경험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을 상당 부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이 책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신초학예상을 받았다. 논픽션 부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데, 심사위원인 시바 료타로가 평가한 알렉스 커의 문장 예찬은 되새겨볼 만하다.
“알렉스 커의 문장은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의 춤을 떠올리게 한다. 모순, 이율배반, 상반하는 감정의 양립으로 두 요소가 얽힌 채 알기 쉽고 밝은 일본어가 짜여나간다. 한쪽 발은 추악함에 걸치고 다른 발은 아름다움을 밟은 채. 이런 유니크한 일본어 문장의 표현은 그가 창조한 것이다.”
빈집에서 본 일본
얼룩진 시골과 전봇대의 나라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이방인이 타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아닌, 빈집에 들어가 그곳에 남겨진 몇십 년 몇백 년 전 일본인의 삶을 엿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에 일본 지방의 집들은 이미 버려지고 있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전망 없어 불안했던 사람들은 싱크대에는 수저를, 화장실에는 칫솔을 남겨둔 채 급히 터전을 떠났다. 그 덕분에 저자는 쓰루기산에서 시작해 가가와현, 고치현, 도쿠시마현 등에서 백 채쯤 되는 집에 들어가 옛 주인들의 일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점점 전통 가옥에 매료된 그는 빈집을 사자고 결심했지만, 웬만한 곳은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덧대어져 볼품없었고, 10년 넘게 방치된 집들은 바닥이 기울고 있었다.
1973년 1월, 이야 계곡 동쪽에 있는 쓰루이 마을에 갔다. 거기서 18세기에 지어진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자신이 찾던 집임을 알아차렸다. 17년째 폐허였던 그 집을 사서 6월에 입주한 뒤 치이오리篪庵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대공사와 청소가 시작됐다. 먼지 제거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집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물건은 1950년대에 조부모와 함께 이 집에 살던 젊은 여성의 일기였다. 거기엔 마을의 궁핍, 어두운 집, 도시에 대한 갈망이 아프게 적혀 있었다. 그러다 일기는 그녀 나이 열여덟 살에 돌연 멈춘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가출했고, 조부모는 손녀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써서 문에 거꾸로 붙여놨다. 그리고 그 부적은 저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집은 가로 네 칸 세로 여덟 칸의 넓이다. 마루, 툇마루, 침실, 부엌, 작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집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다. 젊은 여자가 도시의 형광등 불빛을 쫓아 가출한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하지만 미닫이문을 모두 철거하자 어두웠던 그곳은 환히 빛을 머금었다. 저자는 그곳에 앉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떠올렸다. 다니자키는 그늘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 일본을 애통해하지만, 저자가 치이오리에서 느낀 그림자와 어둠은 너무 밀도 높았다. 이 때문에 일본은 형광등의 나라가 된 것이 아닐까? 형광등과 긴자의 화려한 간판들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영화예술에서 색감 조절을 잘 못하고 단조로운 조명만 사용하는 건 아닐까?…… 시골 집에서 그의 머릿속 회로는 일본 사회 전체로 뻗어나간다.
치이오리의 내부를 복원하자 이제 비가 새는 지붕을 수선할 차례였다. 이 집은 스스키(억새)라는 가야 짚을 엮어 지붕에 올렸는데, 짚과 지붕장이가 모두 사라진 현시대에 지붕 수선 작업은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요구했다. 저자는 거기서 다시 일본의 거대한 단면을 봤다. “일본이 초가지붕을 거부한 일은 비극이다.” 단순히 전통을 외면해서 그렇다기보다 교토의 황궁과 이세신궁의 지붕이 초가로 돼 있는 이 나라가 특수한 자연 소재를 버린 것은 “심장을 때리는 아픔”이라는 인식이다.
그저 집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곳에서 저자는 사회를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이야 계곡에 발을 들여놓았던 때에도 이미 환경은 파괴되고 있었지만, 이상한 점은 시민들의 저항이나 공론화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이다. 파괴에 가속도가 붙자 저자는 “이제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추한 나라”임을 깨달았다. 저자는 친구들이 일본을 방문하면 곤혹스러웠다. 친구들은 이렇게 물었다. “간판이나 전선, 콘크리트가 안 보이는 데는 없어?” 그의 눈에 이제 시골은 얼룩투성이다. 3만 개의 강과 하천 중 단 세 곳만 빼고 모두 댐이 설치됐으며, 해안선도 콘크리트가 덮고 있다. 일본이 산림 관리에 투자하는 수억 달러는 오로지 조림산업에만 쓰이며, 전깃줄을 매설하지 않아 거대한 철탑과 전봇대가 전국 각지의 도시 풍광을 지배하고 있다.
관능성과 형식미 사이에서 잡은 완벽한 균형
가부키에서 다도, 파친코로 펼쳐지는 이야기
일본의 자연과 거리 풍경이 망가지자 저자는 추상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가부키 배우 다마사부로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수년간 가부키 극장만 들락거렸다. 가부키는 일본 문화의 두 축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고 있다. 한쪽에는 에도시대의 자유분방한 성문화 즉 관능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예술과 삶을 순수한 정수만 남을 때까지 다듬고 줄이는 형식미가 있다. 일본 예술은 이 두 경향이 경합을 벌여온 역사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황금 병풍이 인기를 얻다가 다도의 대가들이 출현하자 투박한 흙색 다기가 미학적인 것으로 떠받들여진 것이 그 한 가지 예다. 오늘날에도 이 경쟁은 계속된다. 한쪽에는 정원이란 정원은 모두 갈퀴로 긁어놓는 ‘멸균 과정’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파친코와 외설적인 심야 TV 방송이 버젓이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고 있는 식이다.
가부키에서 얻은 미적 감식안을 저자는 다도와 서예, 그리고 미술품 수집으로 확장시켜간다. 감식안은 일본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되어주지만, 그는 늘 경계인으로서의 자각을 잃지 않았다. 시골 폐가의 바닥을 쓸고 닦으며 한 줌의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다가도, 도시의 세련된 문화 속으로 들어가 가장 정제된 형식미를 간취해내는 것처럼 이 책 전체는 늘 구석과 중심을 아우른다.
한때 비즈니스에 몸담기도 했지만, 저자의 직업은 미술품 수집가다. 본문에는 그가 어떻게 예술 감식안과 물건을 고르는 눈을 갖게 됐는지 그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는 처음 빈집을 구입했을 때부터 그곳을 오래된 톱, 바구니, 바가지, 반닫이, 대나무 조각으로 채워 민속박물관처럼 꾸몄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그는 교토 교외에 있는 가메오카에 폐가 하나를 더 구입했다. 교토로 가니 미술품 수집이 본격화되었다.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아 가격이 저렴했던 시키시와 단자쿠에서 시작된 저자의 컬렉팅은 족자로 올라갔고, 병풍, 도자기, 가구, 불교 조각까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하지만 호주머니가 얇았던 터라 그는 값나가는 작품을 사기 위해 자기가 갖고 있던 것을 지인들에게 조금씩 팔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미술품 거래상이 돼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컬렉션 능력이 오로지 하나의 사실에 기대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의 아시아 미술에 대한 무관심! “그들의 무관심이 지속되는 한 나는 컬렉션을 계속 늘려갈 수 있다.” 그가 던진 농담 같은 이 한마디는 일본인을 향한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 책 9장의 제목은 ‘교토는 교토를 싫어한다’이다. 저자는 과거 영광스러운 수도의 백성이었던 그들의 오만함에 감춰진 자기혐오를 읽어낸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극도의 예의와 형식을 내세워 감추는 속내를 저자가 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장을 읽으면 저자의 시선이 일본을 어떻게 꿰뚫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지금 일본의 전원과 저잣거리에 있다. 이미 50년 가까이 됐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거사처럼 붓글씨를 쓰고, 서예 개인전을 열고, 교토의 아이러니한 골동품 가게와 얼굴을 맞대고 옛 그림을 감정하면서 살고 있다. 일본의 남은 잔상의 희미한 빛을 주워가며 걸으려면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이.
구매가격 : 15,000 원
영혼불멸론
도서정보 :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 2024-01-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저본: 『井上円了 妖怪学全集』 제4권(柏書房)(靈魂不滅論)(통속강의)
세속적인 사람들은 인간의 삶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름이 떠다니듯이 일시적이며, 죽음은 연기가 사라지고 구름이 흩어지듯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죽음 이후의 영혼은 육체와 함께 썩어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별다른 근거나 이치 없이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논리는 오히려 영혼의 불멸을 증명하는 결과를 낳는다. 왜냐하면 구름이나 연기가 한번 흩어져서 형태를 잃어도 결코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날 다시 형태를 드러낼 수 있다.(중략)
우리의 힘으로 죽음 이후의 상황을 명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혼이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대에 걸쳐 불멸해야 하는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죽음 이후 현세의 일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불멸의 문제를 먼저 결정하고 나서 그 후에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영혼이 멸망한다는 주장을 위한 구실이 될 수 없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5,000 원
미신 해석
도서정보 : 이노우에 엔료(井上円了) | 2024-01-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저본: 『井上円了 妖怪學全集』 제4권」 柏書房(迷信解)
일본의 미신과 귀신 요괴이야기!!
일본의 규슈에는 카와타로(河太郎)(갓파河童의 다른 이름)라 불리는 것이 있고 시코쿠에는 원신(猿神), 즉 원숭이 신이 있다고 한다. 또한 비젠 지역에는 이누가미(犬神), 즉 개신이 있다고 한다. 비젠(備前)과 비추(備中)에는 히노미사키(日御崎)라 불리는 것이 있고, 비추와 빙고에는 토뵤(トウビョウ)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고 하는데, 이를 고려해 보면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6,000 원
클래식 아고라 04 - 경연일기
도서정보 : 저자명 : 율곡 이이 역자명 : 유성선, 유정은 | 2024-01-1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조선의 미래를 고민한 실천적 지성의 기록
붕당 정치를 넘어서서 백성과 나라만을 생각하다
★★★ 지성의 광장, 클래식 아고라
지루하기만 한 고전은 가라!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품격의 고전 시리즈!
중역과 낡은 번역으로 점철된 고전이 아니라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의 새 시대가 열립니다.
◎ 시리즈 소개
지성의 광장, 클래식 아고라
지루하기만 한 고전은 가라!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품격의 고전 시리즈!
중역과 낡은 번역으로 점철된 고전이 아니라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의 새 시대가 열립니다.
01 징비록
유성룡 지음 | 장준호 번역·해설 | 368쪽 | 24,000원
02 삼국유사
일연 지음 | 서철원 번역·해설 | 440쪽 | 28,000원
03 의산문답·계방일기
홍대용 지음 | 정성희 번역·해설 | 312쪽 | 22,000원
04 경연일기
율곡 이이 지음 | 유성선·유정은 번역·해설 | 632쪽 | 36,000원
아르테의 고전 회복 운동은 계속됩니다.
(이하 출간 예정)
논어
공자 지음 | 서진희·권민균 번역·해설
목민심서
정약용 지음 | 함규진 번역·해설
하멜표류기
헨드릭 하멜 지음 | 문지희 번역·해설
성학십도
이황 지음 | 강보승 번역·해설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 장준호 번역·해설
삼국사기
김부식 지음 | 기경량 번역·해설
사기열전
사마천 지음 | 김병준 번역·해설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 김현미·김영죽 번역·해설
◎ 도서 소개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꾼 대학자
현실에 발을 붙인 개혁에 몰두하다
아르테의 새로운 고전 시리즈 〈클래식 아고라〉의 네 번째 편인 『경연일기』는 조선의 천재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의 저작으로, 1565년(명종 20년)부터 1581년(선조 14년)까지의 경연 내용을 담고 있다. 경연은 국왕이 학문을 닦기 위해 신하 중에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이를 불러서 경전이나 역사서 등을 강론하던 일을 의미한다. 강론이 끝난 뒤에는 국왕과 신하가 함께 고금의 도의를 논하고, 정치와 국정 현안 등을 토론하기도 했다.
율곡은 흔히 이기일원론을 정립한 유학의 거두로 알려져 있지만,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해 개혁을 주장한 정치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경연일기』는 율곡이 중앙에서 관직을 지내던 당시에 남긴 것으로, 국정 전 분야의 구체적 개혁안이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던 공납 문제는 이이가 제안한 수미법으로 개선되었고, 수미법은 후에 큰 변화 없이 대동법으로 정착되었다.
율곡이 경연에 참석하던 시기는 조선의 크나큰 폐단이었던 붕당 정치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율곡은 붕당 간 대립 해소에 힘썼을 뿐 아니라 정쟁에만 치중하는 붕당을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편들기’를 기대한 이들에게 미움이나 비난을 받음에도 ‘모난 돌’이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지만 불교, 도가 등을 폭넓게 수용했을 뿐 아니라, 실리를 추구하는 실학 정신을 보여주었다. 대학자임에도 대동사회를 건설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방적인 자세로 현실에 발 디딘 개혁안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당파 싸움에 몸담지 않고 백성과 나라만을 고민한 그의 개혁 정신이 『경연일기』에 잘 담겨 있다.
◎ 책 속에서
『경연일기』는 율곡의 나이 30세 때인 1565년(명종 20년) 7월에 시작하여 46세 때인 1581년(선조 14년) 11월에 끝나는 약 17년간의 방대한 기록이다. 당시 조정에서 일어난 왕과 여러 대신들의 정사 집행 내용과 함께 인물에 대한 평론, 그리고 율곡의 생각도 사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경세서이면서 수양서이기도 하다. 또 율곡 자신이 ‘금상실록’이라고 명명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스스로 사관의 위치에서 당시의 역사를 공정하게 이실직서 以實直書 하여 直書, 直筆의 전통을 세우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_서문, 8쪽
삼가 살피건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곧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 것이다. 요순도 이를 어렵게 여겼으니, 어찌 사실이 아니겠는가. (…) 그러나 이준경은 영의정 자리에 있으면서 임금을 도학으로 인도하지도 못했고, 인재들을 널리 불러들이지 못했다. (…) 기대승은 재주는 뛰어났지만 기질이 거칠어서 학문이 정밀하지 못하고 자신만 잘난 체하며 다른 선비들을 가볍게 여겼다. 또한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만 좋아하였다. 만약 그가 임금의 신임을 얻는다면 그의 비뚤어지고 고집스러운 병폐로 나랏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이황 같은 현명함을 가지고서도 그 추천하는 인물이 이와 같으니,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_1569년(기사) 선조 2년, 77쪽
1570년 5월
영의정 이준경 등이 백인걸의 상소를 의논하여 아뢰기를 “상소 중에 학문에 힘쓰고 현명한 사람을 조정에 불러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은 오직 전하의 밝은 지혜로 살펴서 돈독히 실행하기에 달렸습니다. 기타 폐단의 정치에 대해서 상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모두 관리들의 책무이니, 전하께 번거로이 여쭐 것이 없습니다. 그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을사년[1545]과 기유년[1549] 선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하고 그들[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을 성균관 문묘에 배향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을사년의 일은 사실 의논할 여지가 많으니 지금 경솔히 의논할 것이 아닙니다. 기유년의 옥사는 가장 원통하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들을 문묘에 배향시키려는 백인걸의 뜻은 조광조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사실 김굉필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그들을 문묘에 배향시키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전하의 말씀 중에 ‘을사년과 기유년의 일은 지금 논할 것이 아니고, 종묘에 배향하는 일은 경솔히 다룰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신 등이 감히 입을 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안이 이와 같으므로 감히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이 알았다고 답하였다.
_1570년(경오) 선조 3년, 113~114쪽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이를 불렀으나, 이이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여 나오지 않고 상소를 올려 동서붕당의 문제를 논하였다. 그는 동인이 서인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 심하여 억지로 시비를 정하려는 것을 보고서 동서붕당을 타파하고 사림들을 화합하고 한 마음으로 나랏일에 힘쓰게 하도록 청하였는데, 그 말이 몹시 격렬하고 간절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이이의 상소가 적당하지 않다고 하며 이이의 관직을 다시 거두니, 양사와 홍문관에서 앞다투어 임금의 하교를 논박하였다.
_1579년(기묘) 선조 12년, 405~406쪽
율곡은 투철한 우환 의식을 갖고 16세기 조선을 걱정한 실천적 지성이었다. 유학은 본래 나라와 백성에 대한 우환 의식을 근본으로 한다. 율곡은 16세기의 조선을 경장기更張期로 규정하였다. (…) 경장기는 내부적 모순과 부패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혁의 시기를 말한다. 그런데 율곡은 당시 조선의 상황을 경장기로 진단하고 개혁의 당위성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러한 율곡의 우환 의식은 105편에 달하는 상소와 차자로 임금에게 올려졌다. 그는 당시 세도가의 처벌을 기탄없이 주장했고, 오직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해야 함을 주장했으며, 동서 분당의 조짐이 보이자 이를 조화하고 화합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율곡의 상소문은 임금에게 의례로 올리는 안부 인사 수준의 글이 아니라 시국을 명쾌하게 진단하는 글이었고, 임금의 시시비비를 진언하는 비판과 충고의 글이었다. 또한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나라가 부강하고 민생이 안정하는가 하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과 정책 대안은 책상에서 앉아서 이룬 것이 아니라 몸소 청주 목사로, 황해도 관찰사로 지내면서 얻는 경험의 소산이었다.
_해설, 547~548쪽
『경연일기』는 당시 중쇠기로 판단한 조선을 성리학의 가치 위에서 도덕적 이상사회로 만들기 위한 율곡의 구체적 개혁안들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정치·경제·사회·교육·국방 등 전 분야에 대해 시폐·적폐 청산을 위한 개혁안을 제안하였다. 정치 분야의 개혁책은 폐법을 개혁하기 위하여 모든 백성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언로를 활짝 개방할 것, 공평한 법 적용과 공정한 상벌의 방법으로써 공직기강을 확립할 것, 인사제도를 합리화할 것, 감사와 수령이 내실 있는 지방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할 것, 불필요한 관청과 관원의 수는 줄일 것, 적폐 청산 전담 기구인 경제사를 한시적으로 설치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경제 분야의 개혁책은 백성들의 부담을 가중하는 공납제를 개선할 것, 진상 품목을 일일이 조사하여 꼭 필요한 남겨두고 나머지는 없앰으로써 진상품을 축소할 것, 백성들이 예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항산 유지 정책을 실시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_해설, 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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