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6 변영로
도서정보 : 변영로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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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 시인은 우리나라 신시에서 기교파의 선구적인 시인으로 기교에 중점을 두고 시어의 선택과 수사, 연마에 빼어난 시인적 재능을 보였으며, 민족의 정서를 섬세하고도 세련된 기법으로 시화시켰다.
변영로 시인은 작품에서 조선의 마음을 ‘님’이라는 실체로 호칭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머잖아 상봉할 님을 위하여 고통과 수난을 참고 견디는 순교자적 소명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소개
변영로(卞榮魯. 1898∼1961)
* 시인. 영문학자. 수필가. 호 수주(樹州). 서울 가회동 출생.
* 1909년 중앙 학교 입학.
* 1918년 중앙 고보 영어 교사.
* 1920년 문학동인지 《폐허》 동인 활동. 문단에 데뷔.
* 1927년 이화여전(梨花女專) 교수.
* 193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대학에서 수학.
*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가정(新家庭)》 편집장.
* 1946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 1953년 서울신문사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
* 1961년 사망.
* 시집 《조선의 마음》(1924) 영시집(英詩集) 《진달래》(1947)
* 시문집 《수주 시문선(詩文選)》(1959)
* 수필집 《명정(酩酊) 40년》(1953) 《수주수상록(樹州隨想錄)》(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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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2 오일도
도서정보 : 오일도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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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도 시인의 작품은 낭만주의적 바탕 위에 애상과 영탄이 서로 얽혀 있는 경향이 주류를 이룬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깃든 애상과 영탄은 그로 하여금 어둡고, 그늘지고, 암울한 정서를 주로 노래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소개
오일도(吳一島. 1901∼1946)
* 시인. 본명 희병(熙秉). 일도(一島)는 아명. 경북 영양(英陽) 출생.
* 1918년 영양보통학교를 졸업.
* 1922년 서울 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
* 1923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철학과 졸업.
* 1925년 《조선문단》에 시 〈한(漢)가람 백사장(白沙場)에서〉를 발표하여 등단.
* 1929년 근화학교(槿花學校)에서 교편생활.
* 1934년 문예지 《시원(詩苑)》을 창간.
* 1942년 낙향, 〈과정기(瓜亭記)〉 등의 수필을 쓰면서 칩거.
* 1946년 간경화증으로 여의전병원(女醫專病院)에서 사망.
* 유고시집 《지하실의 달》
* 대표 시(詩)작품 〈내 창이 바다에 향했기에〉 〈가을하늘〉 〈코스모스꽃〉 〈지하실의 달〉 〈봄아침〉 〈송원(松園)의 밤〉 〈도요새〉 등.
구매가격 : 4,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3 오장환
도서정보 : 오장환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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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를 통해 현대 서정시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세 천재’로 주목받았고 모더니즘 시인과 프롤레타리아 문학가 모두가 극찬했다. 그러나 그는 북을 택했고, 한국 문학사에서 방치되었다. ‘자신의 노래가 끝나는 날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라는 그의 시구처럼, 이제 그의 노래가 암담한 무덤을 딛고 아름답게 꽃필 때다.
저자소개
오장환(吳章煥. 1918∼1951)
* 시인. 충북 보은군(報恩郡) 회북면 중앙리 출생.
* 1930년 안성공립보통학교 졸업.
* 1935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 1936년 《시인부락(詩人部落)》 《낭만》 동인.
* 1937년 《자오선(子午線)》 동인.
* 1938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 중퇴.
* 1938년 《남만서방(南蠻書房)》 경영.
*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 1946년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
* 시집 《성벽(城壁)》(1937) 《헌사(獻詞)》(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 평론 《자아(自我)의 형벌》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1937)
구매가격 : 6,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4 윤곤강
도서정보 : 윤곤강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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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곤강(1911~1950)은 『나비』,『해바라기』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이다. 그리고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우리 문학사에서 두 번째로 시론집 『시와 진실』을 펴낸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카프시절부터 해방 이후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민족적 현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시와 비평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윤곤강에 대한 논의는 그의 문학적 유산의 풍부성에 비해,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간 김기림, 박용철 등에 비해 매우 소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연구가 좀더 활발하고 심도있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 그의 작품집과 누락된 그의 시를 모았다.
저자소개
윤곤강(1911∼1950)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문인으로 김남천, 노천명, 정비석, 안수길, 박영준, 윤석중, 이원수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윤곤강은 이들과 더불어 척박한 한국의 근현대문학을 일군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올해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개최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그의 시 <별과 새에게>가 낭송된 것도 그의 위상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시 <나비>와 <해바라기> 등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점과 그의 시론집 ≪시와 진실≫(1948)이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우리 문학사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점도 한국의 근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적잖은 비중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윤곤강은 우리의 근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윤곤강은 1911년 9월 24일에 충남 서산군 서산읍 동문리 777번지에서 부친 윤병규(尹炳奎)와 모친 김안수(金安洙)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다. 아호 ‘곤강(崑崗)’은 천자문의 “금생려수(金生麗水) 옥출곤강(玉出崑崗)”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1930년에 일본 센슈(專修)대학에 입학해 ≪시인춘추(詩人春秋)≫로 활동하던 그는 1931년 11월에 종합지인 ≪비판(批判)≫(7호)에 <? 성터에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이 ≪비판≫을 비롯해서 ≪조선일보≫, ≪우리들≫, ≪중앙≫, ≪조선중앙일보≫ 등에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한다. 1933년 일본에서 귀국한 그는 ≪신계단(新階段)≫(8호)에 평론 <반종교문학의 기본적 문제>를 발표해 시뿐만 아니라 비평 활동도 같이 한다. 1934년 2월 10일 현실 비판적인 작품 활동을 해 오던 윤곤강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인 ‘카프(KAPF)’에 가입한다. 그러나 몇 개월 뒤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7월에 전북 경찰부로 송환되었다가 장수(長水)에서 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12월에 석방된다. 당시 수감 생활의 모습은 그의 시 <향수 1>, <향수 2>, <향수 3>, <창공>, <일기초>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해에 처음으로 소설 <이순신>을 ≪형상≫(1호)에 발표한다. 이후 그는 충남 당진읍 유곡리로 낙향했다가 1936년에 상경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1937년에 서울의 사립학교인 화산(華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며 그의 첫 시집 ≪대지(大地)≫(풍림사)를 발간하게 된다. 이듬해에 제2시집 ≪만가(輓歌)≫(동광당서점)를 펴낸다. 그리고 1939년에는 제3시집 ≪동물 시집≫(한성도서주식회사)을 발간하게 되고, 다음해에 제4시집 ≪빙화(氷華)≫를 출간하는 등 4년에 걸쳐 시집 네 권을 펴내는 왕성한 모습을 보여 준다. 1943년에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학교 전신)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 시부회(詩部會) 간사로 임명되기도 한다. 1944년 동거하던 김원자와 사별하게 된 그는 충남 당진읍 읍내리 368번지로 낙향한다. 이 시기 일제의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면 서기로 근무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상경한 그는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카프에 가담해 식민지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출하던 작품 세계가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1946년 모교인 보성고보 교사로 근무하게 되고, 이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을 탈퇴한다. 이 시기 문우들과 함께 해방 기념 시집인 ≪횃불≫을 발간한다. 1947년 그는 성균관대 시간강사로 출강하면서 편주서인 ≪근고조선가요찬주(近古朝鮮歌謠撰註)≫(생활사)를 펴낸다. 1948년에 중앙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그는 고독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 준다. 제5시집 ≪피리≫(정음사)와 제6시집 ≪살어리≫(정음사)를 펴냈으며,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두 번째로 시론집 ≪시와 진실≫(정음사)과 찬주서 ≪고산가집(孤山歌集)≫(정음사)을 발간한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1950년 1월 7일 서울 종로구 화동 138?113번지에서 작고하게 되고, 충남 당진군 순성면 갈산리에 안장된다. 제주 조각공원과 보성고교, 그리고 충남 서산시 서산문화회관과 그의 묘소 입구 등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구매가격 : 1,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6 윤동주
도서정보 : 윤동주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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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및 한글창작 혐의로 체포, 조사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지 않고 옥중에서 요절한 민족시인 청년 윤동주. 직접 지은 시처럼 짧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 그는 끝내 별이 되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고 한국어 사용과 창작이 금지되었던 1941년, 우리말 시집 출간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고 일생의 문우 강처중과 정병욱에게 남긴 육필 원고가 기적적으로 보존, 그의 사후인 1948년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은 마침내 출간되었다. 해방을 불과 반 년 앞둔 1945년 늦겨울, 차디찬 형무소 바닥에 누워 외마디 고함을 끝으로 숨을 거둔 지 꼭 3년 만의 일이다.
본 책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등 주옥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몰락한 조국을 마음으로 지켜낸 한 청년, 아아... 그리운 동주! 그의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소개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자화상」「쉽게 쓰여진 시」을 발표하였고 문예지 『새명동』발간에 참여하였으며, 대학시절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중이던 1945년 2월,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출간되었다.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으며, 1985년부터 한국문인협회가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서도 동명의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이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을 빛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적 민족시인"이라는 평가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은 그 댓가로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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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8 이무영
도서정보 : 이무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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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사에서 농민 소설의 한 축을 형성한 이무영(1908~1960)의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실은 작품집이다. 작가가 실제 귀농을 해서 작품 속에 성실한 농민과 귀농한 지식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농본주의적 세계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李無影, 용구(龍九)
본명은 용구. 1908-1960. 소설가. 충북음성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가서 세이조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에서 4년간 문학 수업을 했다. 1929년 귀국해 잠시 소학교교원으로 일했고 1932년 극예술연구회 동인과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했으나 1946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그만두고 조선문학을 주재했다. 서울대, 연세대, 숙명여대 등의 강사를 거쳐 숙명여대, 단국대 교수를 지냈고, 1946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1951년 해군정훈감,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제 4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런던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한국의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농촌을 제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뇌일혈로 별세하였다. 작품으로 "흙의 노예", "제1과 제1장", "농민", "농부전초", "먼동이 틀 때", "명일의 포도", 저서로 "소설작법" 등이 있다.
구매가격 : 8,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0 이상화
도서정보 : 이상화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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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이상화. 그는 죽는 날까지 식민지의 절망적 현실 아래에서 가장 용기 있고 꿋꿋하게 민족혼의 불멸함을 주장하고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던 암흑기 최대 저항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저자소개
호: 상화(尙火), 무량(無量), 상화(想華), 백아(白啞)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 혼으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하고, 그 해 7월 서문로 집을 나서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서울 냉동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와 만나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기 시작,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단조」,「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가회동 이른바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 「나의 침실로」를 《백조》3호에 발표, 1925년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26년, 〈개벽〉 70호에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지만 이 시의 게재로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후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다가,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1948년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
구매가격 : 7,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1 이용구
도서정보 : 이용구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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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안동을 유람하며 유려한 한시를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그의 한시를 통해서 보여지는 간절함을 볼 수 있다.
저자소개
이용구 李容玖 (1892년 ~ 1944년)
한국의 한학자이다. 어렸을 때, 한학을 공부하여 한자로 된 글과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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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2 이용악
도서정보 : 이용악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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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제 식민치하의 비극적인 민중의 삶과 이로 인해 일어난 대규모 유이민 문제를 비극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북방의 시인’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의 시집 <오랑캐꽃>이다.
저자소개
1914에 태어난 이용악은 아버지의 객사 후에는 어머니가 꾸린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8년 함북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의 고분(興文)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33년에 졸업했고 이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1학년을 수료했다. 그 후 약 2년 동안 생활고를 겪으며 막노동에 종사했다. 1936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막노동을 병행해야 했으며, 방학이면 돌아와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리곤 했다. 문학에 꿈을 품은 그는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학지인 도쿄에서 동향(함북 명천)의 시인 김종한(金鍾漢, 1916∼1944)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5∼6회 발행했으며, 형 송산(松山)과 동생 용해(庸海)와 함께 삼형제가 시를 썼다. 도쿄의 산분샤(三文社)에서 두 권의 시집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펴냄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0년대 초반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정주렛응瀁??더불어 “문단의 삼재(三才)”로 꼽힐 정도로 문단 중심에 진입했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최재서(崔載瑞)가 주관한 당대의 문예지 ≪인문평론≫에 기자로 몸담았으나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1년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 귀향해 한동안 함북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자 일본어 신문인 ≪청진일보(淸津日報)≫의 기자 생활과 주을(朱乙) 면사무소 서기 생활을 했으며,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급거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한편 11월경부터 약 1년간 당시의 대표적 좌익지인 ≪중앙신문≫의 기자로 근무했다. 이듬해 2월 8일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서 활동했으며 이 단체가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석하고 <전국문학자대회(全國文學者大會) 인상기(印象記)>를 썼다. 1947년에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雅文閣)에서, 1949년에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李庸岳集)≫을 동지사(同志社)에서 각각 상재했다. 1947년 남로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월북 시인인 배호(裵澔)와 함께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시지부 예술과의 핵심 요원으로 선전렐굘?활동에 종사했다. 1949년 8월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하다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했다. 1953년 임화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할 때 “공산주의를 말로만 신봉하고 월북한 문화인”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집필을 금지당했다. 이후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 제작(1956)과 ≪역대악부시가≫를 번역하고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1971년 58세에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매가격 : 2,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3 이육사
도서정보 : 이육사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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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1923년 20세 때 일본에 건너가 1년 이상을 지내고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1925년 형 원기와 함께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가담했고, 이듬해 북경으로 갔다. 다음해 귀국한 육사는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관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2년 7개월 간의 옥고를 치뤘다. 이때 죄수번호가 "264" 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망국의 나그네 길에서 넓은 세상을 보았고, "들개에게는 길을 비켜주는 겸양을 보이지만,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어 물러서지 않는 것"이 자기의 길이라 여긴 이육사의 작품을 담았다.
저자소개
호가 "육사(陸史)"이고 본명은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 개명은 "활(活)"이다. 경북 안동(安東)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0년에 육사란 이름으로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3년 귀국,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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