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예술철학, 완당집

도서정보 : 김정희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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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外戚勢道 政治期에 활동한, 모름지기 朝鮮王朝 최고의 書藝家로서 藝術家이다. 다음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에 관하여, 김영한, 정인보, 신석희, 남병길, 민규호, 민노행 등이 기술한 몇 편의 기록이다.
아래의 기록 중에도 기술되었지만, 김정희가 流配의 삶을 살게 되는 情況을 살피면, 조선왕조의 政權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强固한 것인지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추사는 기존의 性理學的 지배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었다. 性理學이란 기본적으로 명나라의 통치 이데올로기다. 반면에 추사는, 北學派 朴齊家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음으로 인해, 중원벌판에서 새로운 覇權으로 자리매김한 청나라의 고증학적 이념체계를 모색하였다. 그런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추사 역시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를 기반으로 하므로, 철저히 중국의 ‘것’을 苦心할 따름이다.
여하튼 이러한 流配的 체험이 추사의 예술세계를 더욱 심오하게 完熟시켰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예컨대, 제주도 유배로써 秋史體가 완성되었음이 바로 그러하다. 이에 추사체는 추사 김정희의 삶 자체의 예술적 品格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顯現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비단 추사체에 의해 제작된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추사체 그 자체가 곧 예술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추사는 學術辨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학술이 天下에 있어, 수백 년을 지나면 반드시 변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차 변하려 할 적에는, 반드시 한두 사람이 그 단서를 엶에 따라, 천백 사람이 시끄럽게 그것을 공격하게 되고, 그것이 이미 변한 뒤에는, 또 한두 사람이 그 이룬 것을 한데 모음으로써, 천백 사람이 모두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시끄럽게 그것을 공격할 적에는, 온 천하 사람이 학술의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되므로, 그 폐단이 드러나지 않지만, 모두가 그것을 따를 적에는, 천하 사람이 학술의 서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므로, 그 폐단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를 당해서는, 반드시 한두 사람이 그 폐단을 바로잡아, 의연히 이를 견지하게 되고, 그 변한 것이 이미 오래됨에 미쳐서는, 국가를 소유한 자가 法制로 얽어매고, 利祿으로 유인하여, 아이들은 그 학설을 익히고, 늙은이들은 그것이 그른 줄을 모름으로써, 천하 사람이 서로 그것을 편히 여기게 된다.
그러다가 천하 사람이 그것을 편히 여긴 지 이미 오래되면, 또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그것을 변개시킬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천고 이래 학술 변천의 대략이다.
…아, 학술이 변할 때에 당해서는, 천백 사람이 시끄럽게 공격하는데, 그들은 모두 용렬한 위인들이고, 학술이 이미 변한 뒤에는, 또 천백 사람이 모두 그것을 따르는데, 그들 또한 용렬한 위인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폐단을 바로잡아 꿋꿋하게 견지할 자가, 그 누구란 말인가.”

여기서 학술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조선왕조야말로 학술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대표적인 政體이다. 그런 학술 자체가 그릇될 것은 없지만, 그것이 어떤 權力體로서 작동하게 될 때, 부득이하게 이데올로기적 폐해가 발생케 됨을, 추사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폐단이 될만큼 권력적이지 못하다면, 애당초 그 학술은 정립될 수 없다. 이야말로 不得已다.
추사는, 그런 학술의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權力機制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21세기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예컨대, 현대의 대한민국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多數決의 集團쯤으로 誤解하는 事態가 그러하다. 輿論이란 것은 실상, 추사의 분석처럼, 자기의 이득을 좇아 용렬하게 작동하는 기괴한 集團的 時流일 따름이다.
變化와 衝突의 시대라면, 응당 그러한 弊端이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흔히 集團의 決定이란 것은, 이데올로기적이기 십상이다. 그런 탓에, 추사 역시 유배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추사는 결국 자기의 길을 간다. 실상 권력으로부터 流離되어버린 상태에서, 추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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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국인 서긍의 고려 여행기, 선화봉사 고려도경 1~15권

도서정보 : 서긍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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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兢과 ‘위안 스카이’와 ‘이토 히로부미’



무슨 까닭에선지, 필자는 熱河日記를 대하는 느낌으로 高麗圖經에 접근했다. 12세기 중국인 徐兢의, 다소 낭만적인 旅程을 상상한 것이다. 그런데 고려도경을 살피면서, 중국인 서긍의 관점이, 조선인 朴趾源의 것과는 전혀 연관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서긍의 시선에서, 마치 조선왕조 말기 청나라의 ‘위안 스카이’나, 일제강점기의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이 교차됨은 실로 기괴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여행기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고려를 여행할 따름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을 살핀다면, 서긍에게 고려는, 그저 별반 가보고 싶지 않은 여행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유년시절에 교육받은 대로 상상하는, 국제 지향적 고려의 화려한 先進文化를 견문하는 내용일 것이라는, 상상된 고려도경의 내용과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우리는 현대의 대한민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적인 문명국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럽인들은, 한국인들이 未開人처럼 ‘개고기를 먹는다’며 딴지를 건다. 어쨌거나 개고기를 먹으면, 왜 미개인으로 분별되는 것인지, 실로 의문이다.
나아가 유럽이나 미국의 대다수는, 아예 대한민국을 알지 못하거나, 북한과 뭉뚱그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라도, 서긍의 경우처럼, 부득이 어떤 빌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强大國의 입장에서 弱小國에 대해 굳이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다. 이는 人之常情이다. 無法律의 國際政治의 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弱肉强食의 원리가 작동할 따름이다.

“현실세계에서, 인간존재는 아무래도, 늘 온갖 사이에만 머문다.
하늘과 땅 사이, 시작과 끝 사이, 시간과 공간 사이, 신과 악마 사이, 사람과 짐승 사이, 나와 너 사이, 개인과 집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 존재와 존재자 사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 진실과 거짓 사이, 죄와 벌 사이, 선과 악 사이,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 사랑과 증오 사이, 만남과 이별 사이 등, 온갖 변화와 순환의 사이에만 머문다.
그래서 결국, ‘사이의 사람[人間]’이다.
이러한 온갖 사이에서, 나 바깥의 어떤 대상에게 좀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수록, 나 자신의 본래적인 의미와 가치는 더욱 감소하며, 상실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체험적인 사실은, 아무래도 부득이하게, 현실세계의 온갖 사이에만 세워지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집단대중은 적어도 시작이 있었다면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는 낡은 전제처럼, 온갖 사이에서 부유하는 불안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는 안정 속에 머물고 싶어 한다.
집단대중의 이러한 안정 지향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림자권력은, 어느 집단공동체에도 당최 소속되지 않으려고 하거나, 도무지 소속될 수 없는 채로 온갖 사이만을 떠돌며, 다만 예술가적인 자기만족과 자기완성의 일탈과 탈주를 모색하는 자라면, 대체로 反집단적인 이방인이나 방랑자인 것으로 판정하고서, 미래의 생존을 빌미로 지속적인 소외와 제거를 명령한다.
부득이했지만, 출생 이후 지속적인 훈육으로써, 이러한 명령에 이미 충분히 길들여진 탓에, 집단대중은 더욱 사이의 시공간은 아무래도 잠시 떠도는 곳이지, 결코 오래 머물만한 곳은 되지 못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맹신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온갖 사이에서, 떠돎의 삶으로부터 되돎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일 따름이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그러한 떠돎과 되돎의 뒤엉킴 속에서, 인간존재의 유한한 일회성의 삶과 죽음보다도 오래도록, 온갖 사이에만 머무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과 빛’ 사이에서 생성되는 그림이다.”(탁양현: 단편소설 ‘여행담’)

온갖 사이[間]를 떠도는 자로서 여행자는, 늘 마지막 到着地를 豫備하며 당최 마감될 것 같지 않은 여행을 지속한다. 물론 죽음이라는 마지막 도착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실상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저 출생 이후,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나’가 체험될 수 있을 따름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너무도 풍족한 시대이다. 혹자는 ‘Hell朝鮮’을 외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그렇게 地獄과 같은 상태에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는 ‘헬조선’의 상태를 체험하지 않은 세대이다. 그래서 兩班士大夫, 奴婢, 일본순사, 부산 피난민, 라이 따이한, 보릿고개 등의 개념들은, 그저 역사 속의 片鱗으로서 인식될 따름이다.
기껏 필자의 실제적 기억을 소급해봐야, 새마을운동 쯤이 아련한 기억으로 무의식 저편에 배치되어 있다. 어쨌거나 필자는 군부독재에 대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을 즈음의 기억이 선명한, 그야말로 現代人이다. 그런 필자가 어떤 계기에서 저 먼 古代로부터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명료히 分別되지 않는다.
이미 적잖은 삶의 여정을 걸어왔고, 이제 죽음이라는 終着地가 그다지 멀지 않은 상태이다. 한때 필자는 실제적인 여행자가 되어, 동아시아 이곳저곳을 10여 년 넘도록 표류하듯 헤매돌던 시절이 있다. 이제 그런 시절도 기억 저편으로 잠겨버렸다. 물론 별다른 의미는 있지 않으며, 다만 그저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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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도서정보 : 정도전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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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峯 鄭道傳의
洪範九疇와 Ideologie 政治學
그리고 佛氏雜辨



三峯 鄭道傳의 政治哲學을 大別하는 槪念은 洪範九疇와 Ideologie다. 정도전의 시대에, 세계의 覇權國은 두말할 나위 없이 中國이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政權의 簒奪을 위해 중국과의 外交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정도전의 시대는, 高麗王朝에서 朝鮮王朝로 易姓革命이 實行되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당시의 혁명은 理念革命의 성격이 짙다. 그 이념혁명의 주된 대상은 佛敎思想이었다. 그 실제적인 검증자료는 말할 나위 없이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불교사상을 정치철학적으로 論破함으로써, 새로운 政權의 정당성을 모색한 것이다. 물론 佛敎만이 王朝交替의 빌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혁명의 動力으로 삼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지극히 현대적인 革命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봉 정도전의 혁명론은, 그 전반적인 이념적 바탕을 書經의 洪範九疇에 두고 있다. 나아가 정도전이 활용하는 홍범구주는 箕子朝鮮에 사상적 기원을 둔다. 때문에 정도전은 자연스레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자조선에 두게 된다. 이는 역성혁명 당시 朝鮮이라는 國號가 결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書經 甘誓’에서는, ‘五行’이 ‘서경’의 시대로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임금’의 아들 ‘啓’는, ‘우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세습 받는다. 그런데 庶兄 ‘有扈氏’가 그 왕위계승에 不服하자 정벌을 감행한다. ‘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보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호씨’가 ‘五行’의 원리를 저버리고, ‘三正’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水火木金土의 오행’의 원리나, ‘天地人 三才’의 바른 도리로서의 ‘삼정’은 지극히 철학적인 원리들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거부가 정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오행’과 ‘삼정’을 해석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불복에 대한 보복이라는 실제적인 정벌 이유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계’는 만약 ‘命’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벌의 대상인 ‘유호씨’는 물론이며, ‘하’나라 朝廷의 신하일지라도 아주 가혹한 刑罰을 부과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계’의 명령은 ‘天命’에 따라 ‘天罰’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의 시대에는 응당 이러한 논리를 信念하므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그 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철학적 원리를 거론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므로 지극히 정치철학적이다. 더욱이 가혹한 형벌의 부과가 가능한 것은 ‘오행’이나 ‘삼정’의 권위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示唆한다.

‘조선왕조’에서 ‘五行’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선왕조’ 前期 ‘徐居正’은 ‘四佳集’에서 이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거정’의 ‘陰陽五行’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에게서 일반적인 것이다. ‘서거정’은, ‘聖人’에 의해 제작된 ‘홍범구주’나 ‘주역’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내재된 철학적 理致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로 점을 쳐서 ‘吉凶’이나 ‘善惡’을 결정하는 일은 排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행’이라는 것은 천지자연에서의 삶의 조화를 목적하여 도출된 철학적 사유방식이며, 그것으로써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점을 치더라도, 그것은 ‘홍범’에서 이르는 ‘稽疑’나 ‘庶徵’의 경우처럼 일종의 幾微이며, 그러한 기미를 잘 살펴서 ‘天命’을 좇아 ‘人性’을 올바르게 하는 삶의 방향을 摸索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거정’은 태어난 歲月日時의 ‘四柱’로써 ‘세 가지 등급의 운명[三命]’ 따위를 거론하는 牽强附會를 例로 들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甘誓’의 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오행’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임금’의 아들 ‘계’는 ‘禪讓’이 아니라 ‘世襲’으로써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러한 ‘夏’나라의 政治權力的 변화는,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며 ‘조선왕조’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오행’의 해석과 활용에 있어 ‘감서’의 시대와 ‘조선왕조’가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왕조’에서는 ‘오행’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확장하여 ‘道敎’나 ‘佛敎’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배척한다. ‘조선왕조’가 政權의 정통성을 보장 받기 위해 ‘事大主義的 儒學’을 國是로 삼았으며, 때문에 ‘도교’나 ‘불교’의 경우처럼 ‘유학’ 이외의 학문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異端이나 邪道로 규정하고서 탄압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이는 ‘오행’ 개념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10일 乙亥日 2번째 기사(1400년, 明 建文 2년)에는, ‘定宗’이 ‘經筵’에서 강론하는 내용이 있다. 이 記事로써,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이 ‘부처’를 귀신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定宗’은 자기의 실제적인 체험을 거론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나 ‘民間信仰’으로 분별되는 것에 대한 ‘河崙’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부처’가 주장하는 ‘慈悲’와 ‘不殺生’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륜’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은 당시 ‘西域’의 상황에서 유효할 따름이며, ‘불교’의 핵심 敎理인 ‘輪迴’나 ‘報應’ 역시 ‘유교’의 철학적 인식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이제 談論은 神話의 차원으로 飛躍한다. ‘정종’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정종’은 ‘부처’의 ‘誕生說話’와 ‘死後地獄說’에 대해서 묻는다. ‘정종’은 동생 ‘李芳遠’에 의해 왕위에 오른 탓에, 아무런 實權이 없는 왕이었다.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寶位를 ‘이방원’에게 넘겨주고 ‘上王’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기사 내용이 재위 2년에 발생한 일을 기술한 것이므로,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지 않다. 여하튼, ‘정종’의 질문에 대한 ‘하륜’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소박하며 신념에 차 있다. ‘부처’가 사람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사람이 죽으면 地獄으로 간다는 것은, 한갓 似而非의 惑世誣民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하륜’의 論理를 살필 때, 그가 발언하는 ‘음양오행’이 似而非的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 역시 신화적인 神異의 차원에서 작동할 때에는, 그 폐해가 별다를 게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륜’은, 당시 ‘정종’의 정치적 立地나 ‘조선왕조’ 초기의 政局을 思慮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답변에 대해 수긍하는 ‘정종’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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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매천 황현의 죽음의 미학, 매천집

도서정보 : 황현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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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殺의 悲劇 죽음의 美學 그리고 梅泉 黃玹



매천 황현의 죽음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藝術的인 사건이다. 自殺이라는 죽음의 形式으로써, 자기의 삶 자체를 하나의 藝術作品으로서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藝術作品性은 그의 絶命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은 매천 황현의 절명시 4편이다.

난리 속에서 어느덧 백발의 나이가 되어버렸네
亂離滾到白頭年
몇 번이고 죽어야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네
幾合捐生却未然
오늘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의 촛불만 밝게 하늘을 비추네
輝輝風燭照蒼天

요사스런 기운이 자욱해 황제의 별이 옮겨 가니
妖氛晻翳帝星移
침침한 궁궐에선 시간마저도 더디 흐르네
九闕沉沉晝漏遲
임금의 명령일랑은 이제 더 이상 없을 테니
詔勅從今無復有
종이 한 장 채우는 데도 천 줄기 눈물뿐이네
琳琅一紙淚千絲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더니
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이미 물속에 잠겨버렸네
槿花世界已沉淪
가을날 등불 아래서 책을 덮고 먼 옛날 회고하니
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 지식인 노릇 참으로 어렵기만 하네
難作人間識字人

짧은 서까래만큼도 지탱한 공 없었으니
曾無支厦半椽功
단지 살신성인일 뿐 충성은 아니라네
只是成仁不是忠
결국 송나라 윤곡의 자살을 흉내 내고 있으니
止竟僅能追尹穀
그때 진동처럼 저항치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네
當時愧不躡陳東

고독한 자살 여행자 매천 황현의 죽음을, 대체로 殉國, 絶命, 自決로써 표현한다. 어쩐지 自殺이라는 표현은, 不敬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는 분명 飮毒自殺했다. 절명시에서 드러나듯, 황현 자신도, 보다 적극적인 獨立運動이나 義兵抗爭을 하지 못하고서, 그저 자살의 형식을 취하는 無力함을 한탄한다.
乙巳條約을 乙巳勒約으로, 韓日合邦을 庚戌國恥로, 閔妃를 明成皇后로 표현한다고 해서, 지난 歷史의 汚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歷史的 解釋은 달라지게 된다. 植民史觀을 지녔는가, 民族史觀을 지녔는가에 따라, 事大主義史觀을 지녔는가 등에 따라, 사용되는 표현은 응당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설령 歪曲되어버린 역사일지라도, 기존의 역사 자체를 消失시켜서는 안 된다. 왜곡된 역사 역시 망각되어서는 안 될 역사다. 다만 역사적 해석의 측면에 있어, 명료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황현의 죽음을 순국이라 하든, 절명이라 하든, 자결이라 하든, 자살이라 하든, 다만 적어도 그 죽음 자체의 實在를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近來에도 어느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逝去와 自殺이라는 표현으로써 論難이 紛紛했다. 어느 國會議員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런데 실상 둘 다 그릇된 표현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이 지닌 現象的 事實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죽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를 따름이다. 그러니 서거라고 주장하는 측과 자살이라고 주장하는 측의 역사는, 모두 그 자체로서 保傳되어야 한다.
다음은 매천집 중에서, ‘졸고를 초록한 책 뒤에 써서 중삼에게 주다’라는 글이다.

나는 어린 시절 더러 총명하다는 추임을 받아, 일찍부터 쓸데없는 과거 공부에 매달렸다가, 스물에야 비로소 近體詩를 익혔고, 서른에 비로소 散文을 배웠다.
선배나 長老 가운데, 大家로 칭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손을 꼽아 그 나이를 따져 보고는,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되겠지.’ 하고 외람되이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이 되어, 이렇게 빈손이 된 뒤에야, 문장은 정해진 운명이 있으며, 나이로 논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중삼을 보면, 번번이 내 어린 시절의 일이나, 당대 대가들의 나이가 얼마인지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의 생각이 내 지난날과 같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

매천은 당대의 秀才였다. 조선왕조에서 매천 황현과 같은 재능을 지녔다면, 응당 立身揚名을 도모키 마련이다. 그런데 生來的으로 시대와 不和했던 매천은, 철저히 世間을 외면하고 은둔하며, 빈곤 속에서 자기의 학문을 지속해 간다. 그러면서 자기의 학문이 完成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悔恨한다. 이러한 태도는, 조선왕조의 사대부에게서 쉬이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필자로서는, 자꾸만 황현의 삶의 旅程에 필자의 형편이 오버랩된다. 다만 필자는 황현 같은 수재가 아니며, 어린 시절부터 실로 鈍才이다. 그저 황현처럼 학문을 좋아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에 매이지 않으며, 필자 나름의 學問旅程을 걷다 보면, 차츰 나아져서 일정한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황현의 회한에 공감하는 나이가 되고보니, 왜 황현이 위와 같이 吐露했는지 알 듯하다.
인간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는 존재는 아니다. 애당초 나아질 만한 人材라면, 이미 어릴 적부터 그 幾微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니 자기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최 이룰 수도 없는 허망한 일에, 온통 인생을 저당잡혀 虛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朝鮮王朝로부터의 弊害的 慣性을 논할 때, 兩班에 대해 곧잘 거론한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旣得權을 지닌 지배세력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조선왕조를 비판할 때는, 不得已 王室이나 兩班士大夫가 그 주된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할 때에는 양반을 욕하면서도, 정작 자기 家門을 소개할 때는, 어떻게든 由緖 깊은 兩班家이고자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 인구의 40% 가까이는 奴婢였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平民이거나 中人이었다. 본래 양반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5% 남짓이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전쟁 이후, 혼란기를 틈타 신분 세탁을 하여, 조선왕조 후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니 현대인의 절대다수가 양반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조선왕조가 이미 몰락해버린 시절인데도, 여전히 兩班家이고자 하는 심리상태는, 참으로 기괴할 따름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집안도 상놈집안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祖上이 농민이나 노동자로서 상놈이란 사실이 부끄럽고 싫은가. 그러면서도 平等이나 人權 따위를 논할 때에는, 농민이나 노동자 편에 서서 주저없이 양반을 욕한다.
梅泉의 시대로부터 다소 세월이 흐른 후, 양반사대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필자로서는 어쩐지 매천을 回想케 된다. 매천이야말로, 조선왕조를 통털어 몇 안 되는, 양반다운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그의 ‘양반다움’이, 결국 그의 삶을 자살의 비극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탓에, 그의 비극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삶 자체로서 顯現해낸 가장 숭고한 예술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은 中國人인 江謙이 쓴 梅泉集 序文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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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국제정치, 임진왜란 1권, 신립과 선조와 이순신

도서정보 : 조선왕조실록(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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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申砬의 自決, 宣祖의 播遷, 李舜臣의 거북선



온갖 美辭麗句를 동원하여 美化하고, 갖은 理論과 言說로써 정당화하더라도, ‘백성의 삶’을 보장하지 못 하는 정치는 실패한 정치다. 곧 ‘天命’을 저버린 정치다. 그러므로 응당 새로운 ‘천명’에 의한 征伐이나 革命으로써 변화되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하는데, 현대사회에 이르도록 대부분의 정치철학적 관점들은, 强大國이 되어서 강력한 覇權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 일반론인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 방법론에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가 현실정치에 적용되어야 함은 별다르지 않다.
저 먼 ‘堯舜夏殷周’의 시대로부터 현대의 21세기에 이르도록, 정치는 ‘名分’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實利’에 의해 작동한다. 현실정치에서 작동하는 ‘명분은 실리의 도구’일 따름이다. ‘명분’을 목적하는데 ‘실리’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실리’를 목적하는데 ‘명분’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현실정치는 결코 나아지지 못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사’에서 가장 ‘명분’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조선왕조’의 정치를 분석함으로써 명확히 검증될 것이다. 실상 ‘조선왕조’의 정치야말로 다분히 ‘실리’를 추구한다.
예컨대, ‘이성계’와 ‘정도전’이 ‘威化島 回軍’을 감행하고,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를 선언함으로써 政權의 안정을 도모한 것은, 응당 ‘실리’를 추구한 것이며, ‘명분’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명분’을 추구했다면, ‘遼東 征伐’을 실행하여 우리 민족 본래의 영토를 되찾으려는 ‘거대한 명분’에 충실하였을 것이다. 단지 ‘조선왕조’의 정권이 아니라, ‘고구려’, ‘발해’, ‘고려’ 등으로 이어지는 웅대한 민족적 숙원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명분다운 명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는 물론이며 현대에서도, 그러한 정치적 선택을 ‘명분’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러한 선택이 ‘명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명분과 실리’를 恣意的으로 誤用함으로써 大義名分를 왜곡하는 것일 따름이다.
아울러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명분’의 대표 개념으로서 흔히 강조하는 ‘春秋大義’도, 대체로 그 실제적 활용은 ‘중국’ 중심으로 국가 間의 세력판도를 구축하려는 ‘尊王攘夷’의 ‘실리적 정책’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slogan’이었을 따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 역대 왕들을 중심으로 기술한 歷史書이며, 역대 왕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最高權力者로서 代表政治家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된 내용들이 지극히 정치적일 것임은 明若觀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서이므로, 歷史學의 전유물이어야만 한다고 쉬이 豫斷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참된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 타당하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대표적 역사서인 ‘司馬遷의 史記’는, 3,000여년의 역사를 526,500글자로 압축하여 인물의 傳記를 위주로 하는 ‘紀傳體’로 기술되었다. 때문에 史實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하다. 따라서 자칫 誤讀할 수 있다.
반면에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로부터 ‘哲宗實錄’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매시간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는 ‘編年體’로써 기록하여, 1,893권 888책이라는 방대한 텍스트를 구성하였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정치적 상황을 아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日帝’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高宗實錄’과 ‘純宗實錄’에서도 유용한 자료들을 취할 수 있다. 특히 ‘政治史’의 측면에서라면 말할 나위 없다.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1월 25일 庚申日 1번째 기사(1395년, 明 洪武 28년)에는, ‘鄭道傳’과 ‘鄭摠’이 ‘高麗史’를 편찬하여 바치자, ‘太祖’가 내린 ‘敎書’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태조의 교서’를 살피면, ‘조선왕조’ 最高權力者의 ‘실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이 的確히 지켜질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태조’는 ‘고려왕조’의 史料가 부실하였음을 지적한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왕조는 결국 망각되어버리기 때문이다. ‘先史와 歷史’의 분별을 좇는다면, ‘역사의 시대’에 역사에 존재하지 않음은 곧 역사적 멸망인 것이다.
예컨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적 문헌이 부재하거나 부실한 탓에 ‘檀君朝鮮’, ‘夫餘’, ‘沃沮’, ‘渤海’ 등은 그 國家 역시 역사적으로 부재하게 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모두 逸失되어버린 역사적 상황을 복원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 ‘上古史’의 재정립이 難題인 까닭이다.
‘태조’의 인식처럼, 역사는 후대의 龜鑑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히 기술하여야 한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대표적인 역사 記述法으로서 제시되는 것이 ‘孔子의 春秋筆法’이다. 그러나 ‘공자’와 같은 ‘聖人’의 ‘春秋直筆’을 좇는 경우마저도, 지나치게 大義名分을 앞세우며, 오히려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역사를 왜곡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후대의 ‘申采浩’는 ‘朝鮮上古史’에서 ‘춘추필법’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朝鮮上古史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아무 맛없는 ‘어느 임금이 즉위하였다’, ‘어느 대신이 죽었다’ 하는 등의 年月이나 적고, 보기 좋은 ‘어느 나라가 사신을 보내왔다’ 하는 등의 사실이나 적은 것들이요, 위의 두 節과 같이 시대의 본색을 그린 글은 보기 어렵다. 이는 ‘儒敎徒’의 ‘春秋筆法’과 ‘외교주의’가 편견을 낳아서, 전해 내려오는 ’古記‘를 제멋대로 고쳐서, 그 시대의 사상을 흐리게 한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결코 容易한 것이 아니다. 우선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는 정치철학의 정립이 동시적으로 요구된다. ‘춘추필법’을 원칙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도, 그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그러해서는 歷史書로서 가치를 부여받기 어렵다. 그러나 ‘三國史記’나 ‘高麗史’에 비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술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歷史書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흔히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왕조가 멸망한 뒤에 다음 왕조에서 이전 왕조 전체에 대해서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前朝事’라고 한다. 또 하나는 각 王이 죽은 뒤에 다음 대에서 前任 왕에 대해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實錄’이라고 한다.
‘실록’이 ‘조선왕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도 있다. 예컨대, ‘일본’의 ‘文德皇帝實錄’과 ‘三代實錄’, ‘베트남’의 ‘大南寔錄’, ‘중국’의 ‘大明實錄’과 ‘淸實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타의 ‘실록’이 ‘宮中史’ 위주인 데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민간의 정치적 상황까지도 赤裸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조선왕조실록’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토록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부터 ‘哲宗實錄’까지, 25대 472년에 걸쳐 총 1,893권, 888책이 간행되었다. ‘日帝强占期’에 ‘高宗實錄’ 52권 52책, ‘純宗實錄’ 22권 8책이 간행되었지만, 대체로 이 두 ‘실록’은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고종실록’ 後期부터는 ‘大韓帝國’의 역사서이므로, ‘조선왕조’의 역사서와는 차별적이라고 할 것이다. 廢位된 왕에 관한 기록은 ‘실록’이라고 부르지 않고 ‘日記’라고 불렀다. ‘魯山君日記(端宗實錄)’, ‘燕山君日記’, ‘光海君日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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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3,000 원

사서재

도서정보 : 고봉진 | 2018-09-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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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재란 무엇인가? 책을 읽고(독서) 중심문장을 찾아 옮겨 쓰고(초서) 내용을 체화하여 글쓰기를 실천하며(저서) 비로소 끝없는 배움을 위한 실천적 학문 탐구(무자서)를 하게 된다. 수불석권(手不釋卷)과 필일오(必日五)는 ‘인생살이’에도 적용됩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장편소설과도 같습니다. 그 책에는 인생의 굴곡이 있고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죠. ‘인생이라는 큰 책’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인생이라는 큰 책’은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고 제일 중요한 책입니다. -머리말 발췌 법학과 교수 고봉진의 《사서재―읽고 옮겨쓰고 글쓰고 공부하는 삶》는 독서를 발판으로 저자이자 실천적 인문학도가 되는 법을 소개한다. 1000여 권의 초서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진솔한 에피소드로 이야기한다. 실천적 인문학도로서의 삶이 궁금하다면 한번 살펴보자.

구매가격 : 9,000 원

탁월한 사유의 시선(개정판)

도서정보 : 최진석 | 2018-09-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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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수업, 우리가 기다려온 통찰!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출간!


◎ 도서 소개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철학 없는 시대를 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 혁명!

★★★★★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 통찰로 가득한 매 문장들이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 멈추기 힘들 만큼 흡입력 있는 철학서!

철학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뒤흔들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이 출간됐다.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철학의 탄생과 의미를 파고들며,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던 이 책은, 우리에게 ‘인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새롭게 출간된 개정판은 신선한 디자인과 양장 제본으로 소장 가치를 더했으며, 최진석 교수의 명료한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도록 문장과 내용을 면밀히 손보았다. 또한 초판이 출간된 이후에 전개된 국내 사회 정치의 현실과 전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한 소론까지 서두에 추가하여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동하며, 행동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철학은 개인에게는 꿈을, 국가에는 미래를 담보한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높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좀 더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




◎ 도서 소개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실제 삶의 영역과는 다른 학문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왔다. 우리는 철학을 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철학이란 모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왔고 직접 철학을 생산해본 경험도, 생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최진석 교수는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직접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치 또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철학의 4단계

진정한 철학은 ‘부정(否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냐”는 최진석 교수의 말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해결책을 가진 선언이 되는 이유다.


◎ 본문 중에서

앎이 늘어갈수록 내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삶의 의미가 우주의 넓이로 확장되는 것이 바로 완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상하는 능력으로 힘을 발휘하며 사는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일을 동양의 선현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 등의 어법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보다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한다. (6~7쪽)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 좌판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눈뜨고 이렇게 펄떡거릴 뿐이다. (7쪽)

철학 수입자들은 창백한 이론을 진실이라고 하지, 울퉁불퉁한 역사와 육체를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사유를 사유하려 들지 세계를 사유하려 들지 않는다. 이와 달리 철학 생산자들은 직접 세계를 사유한다. 사유를 사유하지 않는다. (9~10쪽)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수입한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야기한다. (32쪽)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이다. 이 높이에서는 기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도전할 수 있다. (35쪽)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한다. 전면적인 부정이 새로운 생성을 기약한다. 새로운 생성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여는 일이다. (74~75쪽)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이다.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인 높이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108~109쪽)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장르를 만들지 못하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그 힘으로 앞서나간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된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이다. (114~115쪽)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118쪽)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항상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서 고도의 추상적인 이론으로 구조화한 체계다. (144~145쪽)

반역은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것, 이미 있는 것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더 궁금해하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도전, 이것이 반역의 삶이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다. (153쪽)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으로만 ‘다음’이나 ‘너머’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197~198쪽)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온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214쪽)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한다.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무아(無我)’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 다. (…) 자기살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나’, 이런 참된 자아를 독립적 주체라 한다. (216~217쪽)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한다. (250쪽)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 정해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수 없다. 자기만의 진리를 구성해보려는 능동적 활동성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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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 스피치다

도서정보 : 신유아 | 2018-09-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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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학교 학원 회사 아르바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면접을 외친다. 이런 수많은 면접 속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스펙이 높은 사람일까? 물론 고스펙자가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펙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한방 역전의 기회가 있다. 면접은 곧 자기PR이고 자기PR을 잘하기 위해선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세운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순간 한방 역전의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이 기회를 활용하게 되면 인생이 바뀐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시작이 남들보다 늦었던 사람 소심해서 실전에 약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이들이 신유아 원장과의 만남을 통해서 어떻게 인생이 바뀌어 가는지를 볼 수 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기술이 있다 유명한 MC들은 각자 자신만의 스피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스피치를 하는 것일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화술 주변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술 언뜻 실례될 수도 있는 말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화술 등 그들의 기술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신유아 저자는 이러한 MC들의 스피치 기술에 주목했다. 그들의 기술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스피치 스킬을 찾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냈다. 스피치는 오감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좋은 스피치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면서 하는 손짓 발짓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도 모두 스피치에 포함된다. 이처럼 스피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기본이 되는 신체적 기술을 오감으로 정리하여 풀이하였다. 말에는 맛과 향이 있다. 자신의 스피치가 어떤 맛을 내는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알아보고 그 맛과 향을 더욱 살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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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리더와 리더십

도서정보 : 정현욱 | 2018-09-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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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지도자상 제시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와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이 책은 리더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리더의 자질과 역할은 가변적인 것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 해답을 21세기의 특성인 3S 즉 은막(screen) 속도(speed) 전문화(specialization)와 관련시켜 제시한다. 현대인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인기 스포츠가 경기 규칙을 바꿔 속도감을 더하는 경기로 만들고 스크린은 넘치는 볼거리로 재구조화하여 수용자에게 스릴 넘치는 흥미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런 사회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읽는 재미를 가중시킨다. 저자는 “급속한 사회 변화에 필요한 리더십은 시민과 공유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이는 ‘현대인의 기본 소양(basic materials)’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갖춰야 개인적인 자질로 이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리더의 출현이나 그가 행사하는 리더십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21세기의 리더는 과연 어떤 사람의 몫일까. 그 리더가 발휘하는 리더십은 어떠한 것일까. 독자에게 이런 점을 사색하게 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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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페소아

도서정보 : 김한민 | 2018-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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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쓰고자 했던 시인”

120여 명의 이명 작가가 되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로
시, 소설, 희곡, 평론에 걸쳐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펼친 페르난두 페소아의 신비로운 미로 속으로!

기이한 천재 작가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에서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며 ‘페소아들’을 만나다!

- 서구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는 페소아를 만나는 특별한 문학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예술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문학 비평의 세계적 권위자 해럴드 블룸은 저서 『서양 문학의 정전The Western Canon』(1994)에서 유구한 문학사에서 단 26명의 작가를 엄선한 명단에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 등과 나란히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 페소아는 세계 문학계에 더 이상 낯선 인물이 아니다. 또한 『불안의 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페소아는, 수집해둘 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넘치는 이 독특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카몽이스와 더불어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손꼽히는 페소아의 작품들은, 이미 유럽과 서구 문화권을 넘어 베트남어, 스와힐리어, 우르드어 등 4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네 번째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의 저자 김한민은,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 기이하고도 천재적인 작가에게 일찍이 매력을 느끼고 국내에 페소아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급기야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 수년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리스본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하나이자 여럿인 이 신비로운 인물을 깊숙이 탐구했다. 여행기라기보다 체류기에 가까운 이 책은 저자 김한민이 100여 년 전의 인물 페소아와 동시대인으로 만난, 밀도 높은 시간의 기록이다.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복수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
하나이자 동시에 수십 명, 그 이상이었던 작가

페소아는 자신의 본명 말고도 여러 사람의 다른 이름으로 창작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집계된 이름만 120여 개 이상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명 삼인방으로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를 들 수 있다. 가명을 사용해 창작 활동을 한 작가는 문학사에서 여럿 있었지만, 페소아처럼 각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설계하고 각각의 작품 세계가 독립적인 성향을 띠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까지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명’이라는 요소를 빼놓고 페소아라는 작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페소아에게 매료되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이명”이라고 저자 역시 가장 먼저 손꼽는다.
페소아는 이미 여섯 살 무렵부터 다른 이름의 인물을 삶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것이 더더욱 본격화되어 이명의 이름으로 작품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고, 1914년 그의 대표 이명 삼인방이 등장한 이래 그의 창작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저자는 이명들의 작품을 통해 페소아가 지녔던,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에는 너무도 다양했던 창작욕을 가늠해본다. 페소아에게 이명은 “단 한 명의 나에 갇힐 뻔한 ‘다양한 나들’을 해방시킨 창작 기계”였다.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했던 것도 페소아이지만, 이 모두에게 무대를 내주고 자신을 비우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 것 역시 그였다. 한마디로 그는 잘 놀았던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인이었다.”
또한 페소아에게 이명은 문학적 인물 그 이상이었다. 페소아의 이명들은 페소아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페소아의 현실 인물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세계를 총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페소아라는 ‘사람’
그리고 페소아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리스본 사람들

‘페소아Pessoa’라는 그의 성은 포르투갈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다. 그 어원인 페르소나가 ‘가면’을 의미한다는 점, 문학적 정체성이 여럿인 사람이 하필이면 그리 흔하지도 않은 이 성을 타고났다는 것도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페소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 ‘페르손느personne’가 되고 이는 ‘아무도 없음nobody’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 등은 문학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흥미진진한 인물,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시인에 대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방에서 발견된 트렁크 속에 들어 있던 약 3만 장의 원고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 트렁크는 그러나, 종이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읽던 사람, 그가 알던 사람, 그가 섬기던, 그가 무시하던, 그가 질투하던, 그가 모방하던, 그가 사랑하던 사람…….
저자는 리스본에 머물면서 페소아가 남긴 원고와 자료들, 여타 페소아에 대한 연구들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페소아라는 사람, 페소아가 창조해낸 사람, 페소아가 만났던 사람을 종합하며 ‘페소아’라는 인물 그 자체에 다가갔다. 또한 저자는 페소아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리처드 제니스Richard Zenith 등 리스본의 페소아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다채로운 시각을 공유했다.

페소아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
그 신비로운 미로 속을 걷다

저자는, 페소아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그 작품 세계의 풍부함 덕분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할 이야기가 하도 많아 고르고 편집하는 데 품이 들 뿐”이라고. 페소아의 삶도 그렇다.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극적인 요소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작품 세계 못지않게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문예지 활동가’로서 페소아의 활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페소아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뜻이 맞는 동료 작가들과 모여 문예지를 만들었다. 그에게 1915년은 단연 잡지 『오르페우』의 해였다. 『오르페우』는 단 두 호만 발행되었음에도 포르투갈 모더니즘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르페우』를 이끌고 『오르페우』를 통해 발굴된 ‘오르페우 세대’는 향후 포르투갈 문화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9년 페소아는 평생의 유일한 연인 오펠리아를 만난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그가 만났던 사람은 오펠리아뿐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고, 오펠리아는 페소아가 사망한 지 3년 뒤에야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한편 페소아는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비전주의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던 중 영국의 마법사 알레이스터 크롤리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그와 교류하기에 이른다. 알레이스터 크롤리와 ‘지옥의 입구’에서 벌인 가짜 자살극 사건은, 페소아의 그러한 성향이 불러온 기이한 일화라 할 수 있다.
페소아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과 절친했던 시인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의 자살일 것이다. ‘포르투갈의 랭보’, 20세기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사-카르네이루는 『오르페우』의 핵심 멤버로 페소아와 문학적 이상을 공유했으며, 페소아와 깊은 우정을 나눈 거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사 -카르네이루가 파리로 간 이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사 -카르네이루는 스물여섯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페소아라는 인물을 이루는 그의 생각, 그의 사랑, 그의 친구, 그의 사상, 그의 관심사 등 페소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종횡무진 아우르며 탐구했다. 그렇게 저자는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인물을 ‘동시대인’으로 받아들이며 이 책을 완성했다.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을
‘여행 없이’ 여행하다

어머니를 따라 남아공 더반으로 떠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소아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리스본으로 돌아온 뒤, 마흔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스본을 떠나지 않았다. 리스본은 페소아에게 삶과 문학의 무대였다. 저자는 이곳에 체류하면서 페소아가 걸었던 길, 페소아가 살았던 곳, 페소아가 다녔던 리스본 대학, 페소아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곳들을 일상 속에서 느끼며 ‘페소아 되기’를 실천하고자 했다.
페소아는 평소에 여행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작가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의 여행에 대한 비판들을 못 들은 척하고 일반적인 기행문을 쓸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책이 반쯤은 페소아에 관한 에세이 혹은 연구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그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기행문보다는 다소 묵직하고 깊이 있게 페소아의 삶과 문학을 담게 되었다.
페소아의 작품을 읽어본, 이 천재 작가에게 이미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페소아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페소아를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에게 이 책은, 조금 낯설지만 대단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페소아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삶이 책을 읽고 페소아가 읽고 싶어져서 페소아의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몸으로 하는 여행이든 머리로 하는 여행이든 말이다.
_「프롤로그」 중에서


◎ 책 속에서

나는 내가 영향받을 사람과 환경을 최대한 능동적으로 택하고 싶었고, 고민과 타협 끝에 포르투갈과 페소아를 선택했다. 다행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영향의 초기 인자들일 뿐, 그 결정의 의미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페소아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모른다. 나도 한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을 이만큼 내 삶에 깊숙이 받아들이게 될 줄 몰랐다.
- 〈프롤로그〉 중에서

페소아에게 다가가고자 들어선 거대한 텍스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붙잡았다. 정확한 길을 안내해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한 명 한 명에게서 얻은 작은 이야기 조각들을 잘 맞추면 어렴풋하게나마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흘러 다녔을 뿐이다. 그 사람들 중에는 실존한 인물도 있고 가공의 인물도 있었으나, 페소아라는 회로를 통과할 때마다 그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이미 잘 알려진 페소아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들을 지워내고, 페소아가 만들어낸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표현처럼 ‘안 배워’내면서 페소아와 가능한 한 직접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좀 더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그렇게 나는 페소아의 주변을 가득 둘러싼 사람들의 벽을 뚫고 헤쳐나가며 페소아를 만나려고 했다. 때로는 자꾸만 다른 가면을 쓰고 등장해 혼란을 일으키는 페소아 본인에게조차 “잠깐 비켜봐”라고 말해야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딴사람의 이름으로 쓰기, 아니 아예 딴사람이 되어 쓰기—이것은 페소아가 거의 평생에 걸쳐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지속한 일이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또 자아로부터도 ‘유체 이탈’하여, 과거 이력까지 정교하게 만들어낸 어느 타인의 관점을 취한 상태에서 시심을 발휘하는 행동. 그렇게 지어진 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디도 아닌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그 시의 시선은 온전히 캄푸스의 것도, 페소아의 것도, 시인이 아닌 실존 인물 시민 페소아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복수의 시선들이 탄생하고, 그 시선들이 서로 어지러이 교차한다.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페소아의 도시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운문이라는 씨줄과 산문이라는 날줄로 짜인 문학의 매트릭스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내판들이 ‘거짓말’들로 점철되어 있고, 통로들이 끝이 없거나 막다른 골목이며, 길을 물어볼 행인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문제다. 그의 리스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내가 발을 디딜, 재방문하는 리스본. 이 두 도시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길을 찾고,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이명은 그만의 ‘창작 기계’였다. 그것은 창작의 연료이자 동력, 스파크였다. “복수 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이라는 그의 모토처럼, 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던 그의 놀라울 정도로 큰 문학적 꿈은,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 어려운 너무나 다양한 창작 욕망들로 꿈틀거렸다. 게다가 워낙에 까다롭고 높은 기준 때문에 극단적인 과작寡作 작가가 되기 딱 좋은 인물이 바로 페소아였다.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배치해 그들만의 방 안에서 가능한 한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한 그만의 ‘분리 장치’가 없었다면, 이만큼의 작품들이 탄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명들이 대거 탄생한 시기(1914~1915년)를 전후해 그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 〈2장 하나이자 여럿인 사람〉 중에서

페소아에게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단순 가공해서, 혹은 촉매제로 이용해서 시인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종류의 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같은 현실의 재료라도 그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재배치했고, 늘 약간의 ‘속임수’를 양념처럼 추가하여 색다른 맛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이 과정을 ‘비인격화’라는 방법론으로 이름 붙이며 이론화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현실과 문학 사이의 긴장 속에는 그 둘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쉽게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사람들을 찜찜하게 또는 당혹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쯤 되면 페소아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리스본에서 살면 살수록,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 작가라는 내 말이 독자에게도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리진 않을 것이다.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열여섯 살의 소년이 있다. 유럽 포르투갈 출신의 이 어린 시인은, 아프리카 남아공에 살면서, 미국 보스턴에 사는 시인을 발명하여,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보내고, 그가 여정 중 오세아니아의 호주에 들러 광부들과 어울리며 쓰는 시를 상상을 하며 창작을 한다. 그리고 영국 이름을 가진 또 다른 필자를 만들어내 그를 신문 독자들에게 그럴싸하게 소개한다. 다섯 대륙을 넘나드는 이 현기증 나는 여로라니! 얼마나 일찍부터 이 사람이 상상과 시, 그리고 지도만으로 여기저기 정신없이 여행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유별난 아이였으니, 아주 작은 실제 경험의 ‘불씨’만으로도 큰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발전시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력과 분석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면서.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페소아와 친구들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관광지로 잘 알려진 카페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Café Martinho da Arcada 와 카페 브라질레이라Café A Brasileira 이다. 이 두 카페는 당시 로시우 광장에 각각 분점이 있었는데, 페소아 일행이 주로 드나들던 곳은 현재 남아 있는 본점보다 사라지고 없는 분점들이었다. 시내 한복판의 목 좋은 시아두 지역에 자리 잡은 탓에 늘 북적거리는 브라질레이라 본점은, 한때는 페소아도 왕래를 했으나 곧 발길을 끊은 곳이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오르페우』의 아방가르드적 실험에 공헌한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페소아와 사–카르네이루라는 쌍두마차가 이뤄낸 문학적 성취와 독창성은 나머지 멤버들을 압도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이 둘의 천부적 재능과 돈독한 우정이야말로 잡지의 핵심 동력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페소아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서 실로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불안의 책』에서 진짜로 불안한 것은 그 책의 존재 방식이다.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유품인 트렁크 속에서 원고 뭉치로 발견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페소아의 작품을 논할 때도 편집의 문제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관련 글이나 논문도 많아 『페소아 편집하기』라는 본격 연구 책자가 있을 정도이다. 에밀리 디킨슨 역시 대부분의 원고를 미발표, 미완성 상태로 남겨놓고 가서 비슷한 문제로 후대 연구자들이 골치를 썩는다고 한다.
- 〈5장 파편과 폐허의 미학〉 중에서

비록 ‘정신적’으로는 그녀가 선수를 쳤지만 ‘육체적’으로 첫 발자국을 뗀 것은 남자 쪽이었다. 회사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한 어느 날이었다. 마침 모두 다른 볼일을 보러 나가고 사무실에는 단둘만 남아 있었다. 페소아는 기름 등불을 밝혀 오펠리아의 책상에 놓아주며, 퇴근 시간 즈음해서 “먼저 가지 말고 있어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미 페소아의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던 그녀는 은근히 기대를 품은 채 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퇴근 시간이 되어 업무 정리를 하고 외투를 입고 있을 때 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별안간 페소아는 마치 햄릿이 오펠리아에게 하듯, 지극히 중세적인 혹은 연극적인 방식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 〈7장 모든 연애편지는 바보 같다〉 중에서

세상이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을 손에 쥐여줄 수 있음에 무지한 어린아이도, 세상은 어차피 내가 주문한 대로 나오는 법이 없다고 단정한 어른도 아니었던 페소아. 그 중간쯤의 회색 영역 어딘가에서, 세상과 더불어 영원한 의문과 호기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치러야 할 대가는 치른 채, 그저 볼멘 내면의 목소리 혹은 시를 중얼중얼거리며,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보도블록 ‘칼사다 포르투게사Calçada portuguesa’가 깔린 골목을 지나 어느 언덕 너머로 사라졌던 사람……. 리스본 시민 페소아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 〈10장 리스본 사람들〉 중에서

페소아의 마지막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항상 의문이었다. 마흔일곱의 나이인데 벌써 일흔은 되어 보인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조로하게 만들었는가? 술과 담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아니면 그의 말처럼 “너무나 많은 철학과 시학을 살아내느라?”
- 〈12장 페소아와 정치〉 중에서

눈썰미 좋은 여행자라면 창문턱에 몸을 걸치고 따로 하는 일 없이 물끄러미 바깥 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유난히 많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포르투갈어에는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도 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라기보다 문학적 표현에 가깝지만 말이다. 한때 한국의 정서를 특징지었던 ‘한恨 ’처럼,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사우다드saudade’의 정서를 일상에서 보여주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창문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 〈에필로그〉 중에서

페소아의 광대하고 독창적인 세계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은 그의 안목이었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세자리우 베르드를, 카밀루 페사냐를, 안젤루 드 리마를 알아보는 눈 말이다. 우리는 어떤가? 언젠가 평론가 에두아르두 로렌수가 따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페소아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전에 몰라보고 이제 와서 칭송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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