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문학소론
도서정보 : 김내성 | 2018-10-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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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론’은 1956년 《새벽》지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비밀(秘密)의 문(門)》(문성당) 刊(1958)에서 ‘이단자의 사랑’, ‘악마파’, ‘백사도(白蛇圖)’, ‘벌처기(罰妻記)’ 등과 함께 수록하였다.
《탐정문학소론》은 1939년에 방송 강연을 하였던 원고로 탐정문학을 개괄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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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반反하다
도서정보 : 조윤민 | 2018-10-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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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에 돌 던지고, 궁궐에 불 지르고
서울 창의문 밖에 사는 조만준은 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평민이었는데,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어가에 느닷없이 돌을 던진다. 관아에서 잡일을 하는 하인 박중근은 지엄한 궁궐 마당에서 칼을 빼들어 자살을 기도하고 평민 장득선은 아들과 함께 능에 불을 지른다.
절치부심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해온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 형제는 13년째 되던 해 마침내 옛 상전을 죽인다. 충주 주민들은 수령을 대신한 인형에 화살을 쏘며 욕설을 퍼붓고, 경희궁을 수리하던 목수들은 포도청에 난입해 관리를 구타한다. 농부와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온 백성이 의적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부잣집 재물을 취한다.
그 시대에도 불온한 자들이 있었다. 지배세력과 사상이나 신념을 달리한 인물들이다. 임진전쟁을 계기로 집안이 몰락한 길운절과 서얼 출신 소덕유는 제주 주민을 선동해 반란을 기도한다. 승려 여환은 무당, 지관과 함께 북한산에서 대홍수의 날이 오기를 빌며 변란을 도모한다.
『정감록』 예언을 퍼뜨리며 10년 동안 반란을 준비해온 문인방은 유배지에서 역모를 꾀한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 정계 진출이 좌절된 이들과 함께 말이다. 관아 노비인 김재묵은 10만 병사가 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괘서를 성문에 붙이며 민심을 어지럽힌다. 유랑지식인 김치규는 홍경래 무리와 합세해 조선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유언비어로 하층민을 선동한다.
저항의 파편들이 모여 거대한 역류를 이루다
벗어나고 거스르던, 파편과도 같은 이런 저항의 흔적은 결국 지배층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역류의 항쟁으로 거듭난다. 19세기 들어 백성은 평안도와 삼남에서, 마침내 조선 전역에서 대규모 무력 투쟁에 들어간다. 몰락한 양반 가문과 한미한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 앞장서고, 안목을 갖춘 개혁 성향의 평민이 의로움을 외친다. 지주의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병작농민과 땔나무를 해다 파는 초군이 동참한다. 머슴과 임금노동자가 항쟁 대열에 합류한다. 가구 만드는 장인과 소금 파는 행상도 뛰어든다. 뜨내기와 광대가 창과 총을 들고, 노비도 관리와 토호를 징치하는 관아 마당으로 진군한다.
백성의 이러한 저항 행위는 대부분 대역부도나 역모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극히 불충한 소행으로 단정됐다. 도덕과 사회윤리 측면에서도 도道에 어긋나는 짓거리로 매도당했고 말이다. 목숨과 집안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지배세력은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무력과 폭력을 동원했으며, 제도와 관습의 틀을 공고히 하고, 때로는 사상을 주입하거나 교화정책을 펴며 그 소행과 짓거리를 억누르려 했다. 이는 위력과 사회자산을 모두 동원해 지배체제를 지키려 한 사실상의 총력전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내내 그 소행과 짓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과 혈육까지 내던질 수 있게 했을까?
모멸감을 느끼는 삶에 대한 성찰과 반추
벗어나고 투쟁한 백성 또한 인력이자 생산자로 조선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쉽게 무시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지배층의 눈에는 무지몽매한 자였으며 무뢰배이자 흉포한 잡배였다. 때로는 도적과 화적, 폭도로 불렸고 기껏해야 가르치고 이끌어주어야 할 모자라는 백성이었다. 지배층의 권력 투쟁 와중에 명분을 쌓기 위한 민본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하지만 그건 말의 성찬일 뿐, 이들을 위한 정책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들은 지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원인 관직과 토지를 갖지 못했으며 신분과 사회 지위도 미미한 편이었다. 지배 계층의 이념이나 사회경제적 영향력 아래 종속돼 차별과 억압을 받는 백성이 대부분이었다. 지배층으로의 진입이 인정되지 않거나 아예 지배세력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 자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통로를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사회 주변부를 떠돈 이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또한 무시당하면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뢰배와 도적이라 매도하는 모욕에 가슴 아파했다. 울분과 의분을 가진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의義와 도道를 주창하고 자신들만이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 지배층의 허위가 드러나자 마침내 이 분노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그토록 당당하게 외친 그 의를 행하라며, 그토록 근엄하게 설파한 그 도를 실현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제 자신들이 그 의와 도를 이루겠다며 나선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조선 사회에 의로움을 세우고 시대의 도를 높이는 의병이었다.
이 책은 조선 사회의 주류 흐름과 지배세력에 맞서 이탈하고 전복하고 봉기한 자들에 대한 사연을 담았다.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를 흔들고, 통치체제에 균열을 내며, 지배이념을 거스르며 맞서 싸운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 펴낸 『모멸의 조선사』에서 지배세력의 통치에 대응해 회피하고 반항하는 양상을 보인 백성을 단편적으로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탈과 불온, 역류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루고 저항과 항쟁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침으로써 이전 책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분명한 차별을 꾀했다.
역사의 난장판에 외부자들의 발언 무대를 마련하다
저자는 이들이 외치는 절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칠지만 정직한 그 몸짓을 겸허하게 짚어본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생각과 꿈까지 헤아려볼 것이라고 <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르짖음을 두둔하고 행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선과 악의 잣대만을 들이대거나 호불호의 구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만이 조선 역사의 큰 줄기라 여기지도 않으며 이들만이 변혁의 주체라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만, 명징과 미혹이 교차하고 진전과 좌절이 함께하는 역사의 난장판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외칠 자리 하나를 마련하려 합니다. 압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거듭난 이들의 몸짓을 헤아리면서 조선 지배층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 한 자락이나마, 천리와 윤리의 얼굴 뒤에 숨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만날 수 있는 몸짓은 힘없는 자들의 한풀이나 넋두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들의 저항이 결국은 좌절되지 않았나 하는 자조의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역사의 유산에서 실패를 되새길 때 다가올 역사의 도전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고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다. 시대의 부조리와 지배의 야만에 맞섰던 조선 백성이 행한 그 역류의 바람이 오늘 이 시대를 질타하는 칼이 되었으면 한다.
1부 “일어서는 자 벗어나는 이”의 핵심 개념은 “반항(혹은 항거)”이며, 드러난 행위 측면에서 보면 “피지배층의 이탈과 일탈”이다. 떡장수, 목수, 떠돌이 노동자, 품팔이, 관노, 사노, 성균관 노비, 농부, 화전민 등 하층민이 주인공이다.
1부에서는 권력 행사의 부당함과 상전의 억압, 관료의 수탈에 대응해 기물파괴와 방화, 복수살인, 상전살해, 폭력 대응, 소요, 난동, 도적질 등으로 맞서나간 행위와 사건을 다룬다. 대체로 개인 단위로 행해진 저항으로, 여기에는 가족과 집안 구성원 규모의 저항도 포함된다. 민란 규모에는 이르지 못한 관아 난동과 도시폭동, 군도 등 소규모 무리의 소요와 일탈 행위까지 다룬다.
2부 “불온한 자 거스르는 이”의 핵심 개념은 “불온”이다. 현실에서는 “정권 탈취를 위해 변란을 기도한 불온한 자들의 모반”으로 드러난다. 몰락 양반, 유랑지식인, 평민지식인, 저항지식인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2부에서는 집권세력의 부당한 통치 행위와 민생정책 실패, 관료의 억압과 수탈 등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기치로 일으킨 정치변란 사건을 다룬다. 임진전쟁과 병자전쟁 뒤에 일어난 백성들의 변란, 미륵신앙과 생불신앙에 기반을 둔 민간신앙 성격의 변란, 정감록을 중심으로 한 민간사상에 바탕을 둔 역모사건, 괘서 유포와 같은 유언비어 사건(커뮤니케이션 반란) 등을 살핀다.
이들 정치변란은 전투를 치르거나 지배층과 실제로 맞서는 봉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모의와 기도 단계에서 발각돼 실패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3부 “역류 — 풀과 바람과 칼”의 핵심 개념은 “대규모 항쟁”이다. 이들 항쟁은 실제로 봉기에 성공한 민란과 변란 성격이 강한 반란 사건이며, 지배체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항쟁을 이끈 몰락양반과 평민지식인 등 저항지식인과 봉기군의 주축을 이룬 기층 민중이 주인공이다.
3부에서는 19세기에 일어난 대규모 민중 항쟁과 기층 민중을 동원해 봉기한 변란 성격의 반란을 다룬다. 먼저,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를 위시한 백성들의 봉기(홍경래의 난), 1862년 삼남에서 일어난 백성들의 항쟁(임술민란)을 살핀다. 이어, 1869년에 광양 읍성을 점령한 광양변란과 1871년에 영해 읍치를 장악했던 이필제의 변란을 알아본다. 하층민의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성과를 이뤄낸 1882년 서울 하층민의 반란 사건(임오군란)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접근한다.
구매가격 : 12,800 원
유럽 맥주 여행
도서정보 : 백경학 | 2018-10-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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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에서 맥주 마니아가 되다
언젠가부터 맥주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게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맥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맥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예쁜 디자인의 것을 골라 마시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맥주는 어느 나라 맥주지?
우리가 편의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들을 이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유럽 맥주 여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시원한 맥주를 한 잔 손에 들고 맥주로 유명한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맥주를 맛보고 문화, 역사, 인물을 탐방한다. 이 책의 저자 백경학은 소문난 맥주 덕후이자 마니아다. 그는 CBS, 한겨레신문,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한 언론 재단의 지원으로 뮌헨대에서 독일 통일 문제를 연구할 기회를 얻어 온 가족이 함께 독일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때부터 맥주 덕후의 길이 열렸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슈바빙 거리의 비어가르텐에서 마시는 맥주가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딸은 어려서부터 부부의 맥주 파티에 동참하더니, 각국을 대표하는 맥주를 다 외우고는 ‘백세주’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뮌헨에 머물 때 자주 찾던 슈바빙의 오래된 맥줏집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가 하인리히 뵐과 토마스 만의 자취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중세 맥주 양조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수도원과 맥주 공장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독일에서 3년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독일에서 만난 동료와 함께 국내 최초로 하우스맥주를 생산하는 맥줏집 ‘옥토버훼스트’ 종로점을 열었다. 그게 벌써 15년 전인 2003년의 일이다. 현재는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비영리단체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유럽 역사 속 맥주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의 맥주 여행은 여름휴가 때마다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맥주 안내서가 아니다. 글에는 다분히 기자로서의 분석적인 시각과 함께 인문학적인 배경지식이 녹아 있다. 맥주의 맛이나 특징을 소개하기보다는 유럽 역사 속에 녹아 있는 눈과 코와 입이 즐거운 맥주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유럽사 속 맥주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고대 맥주에서 수도원 맥주까지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그 시초는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리와 밀이 발효된 술을 발견한 이집트인에게 맥주는 신이 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보릿가루와 야자열매, 캐머마일 잎사귀를 버무려 며칠을 두면 고소한 냄새가 나는 액체 위로 누런 거품이 넘쳐흘렀다. 그들은 사후 세계에서도 맥주를 마신다고 생각해 피라미드에 맥주를 넣어두기로 했다. 맥주는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 또한 단순히 기호품을 넘어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노동의 대가로 맥주를 지급받기도 했다. 지위에 따라 맥주의 양과 도수가 달라졌다.
수메르인들 또한 우연히 맥주를 발견해 마시게 되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법은 수메르의 것으로, 기원전 1800년에 만들어진 점토판에 새겨진 ‘난카시 찬가’에 그 제조법이 남아 있다. 인류 최초의 맥주 레시피인 셈이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야만인 엔키두가 빵과 맥주를 먹고는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 44)의 이야기에도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도시국가였던 로마를 세계적인 제국으로 이끈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을 순시할 때 원주민인 켈트족이 밤마다 모여 이상한 음료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켈트인들은 오크나무로 만든 둥근 통에 든 보리로 만든 이상한 술을 즐기고 있다.” 와인이 아닌 오줌 빛의 밍밍한 술을 마시는 켈트인들의 모습이 당시 카이사르에게는 야만인의 문화로 보였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맥주를 우습게 봤다. 그러다가 맥주는 중세 게르만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적인 술로 변모하게 된다. 맥주를 널리 보급한 사람은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정복해 정치적·종교적 통일을 이뤄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742?~814)였다. 그는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전쟁 때만큼은 달랐다. 전쟁터에 맥주 오크통을 가지고 다닌 그에게 맥주는 전술적 무기였다. 병사들과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는 무서운 괴력을 발휘해 대승을 거두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유럽 곳곳에 세워진 수도원 30여 곳에 맥주 양조 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 수도원에 일반 양조장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었다. 수도원 양조장의 명성은 성지 순례자들의 입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스위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독일 트라피스트 수도원 등이 대표적이다. 중세 때부터 이어져온 수도원 맥주의 전통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204년에 세워진 벨기에 수도원 맥주인 레페, 프라이징 수도원에서 현재 뮌헨공대 양조학과로 이어져 생산되는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에서 민간으로 상표권이 넘어간 파울라너와 프란치스카너 등이 중세 수도원 맥주의 전통을 잇고 있다.
영국은 펍, 독일은 비어가르텐으로
유럽에서는 다양한 맥주 관련 축제가 열린다.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장소와 시기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매년 9월 셋째 토요일에서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독일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다. 독일에서는 매년 3월, 새로 메르첸비어를 빚는다. 메르첸비어는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되는 9월에 대비해 봄에 새로 수확한 보리와 밀로 빚는 옥토버페스트용 맥주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뮌헨에서 열린 막시밀리안 1세의 왕태자 루트비히 왕자와 작센의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에서 유래했다. 공주의 이름을 딴 테레지엔 광장이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텐트촌이 되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국적불문 옥토버페스트는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영국과 아일랜드로 갈 경우, 맥주를 마시는 장소는 ‘펍pub´이다. 우리말로 하면 선술집이다. 펍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간다. 영국을 정복한 고대 로마 군인들이 도로 정비에 나섰을 때 그들에게 술을 파는 선술집에서 펍이 생겨났다.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해 동방 원정에 나선 기사들이 묵었던 여인숙도 훗날 펍으로 발전했다. 펍이 주로 서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곳이라면 독일의 맥줏집은 맥주와 요리를 함께 즐기는 음식점의 형태다. 특히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맥주를 즐기는 야외 카페 ’비어가르텐‘이 등장한다. 그림 속에 맥주를 담은 수많은 작품 가운데 막스 리베르만의 「뮌헨의 비어가르텐」이 비어가르텐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아일랜드인에게 맥주는 영혼과도 같은 존재다. 맥주 없이는 아일랜드 문학이 탄생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일랜드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행복한 왕자』와 『걸리버 여행기』는 읽어봤을 것이고, 부드러운 흑맥주 기네스도 알 것이다. 기네스 맥주에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등 당대 문인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최초로 동성애자라는 죄목으로 징역을 살았다. 그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맥주와 성경, 그리고 7대 죄악이 영국을 이 꼴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특권은 몇 개비의 담배와 약간의 맥주뿐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맥줏집,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뮌헨에 가면 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줏집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빼놓고는 독일 맥줏집을 이야기할 수 없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1516년 ‘맥주 순수령’을 발표한 빌헬름 4세의 손자 빌헬름 5세가 1591년 뮌헨 한복판에 세운 왕궁 직영 맥주 공장이다. 처음에는 왕과 귀족만이 출입할 수 있었지만 1830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맥주 순수령은 가짜 맥주를 근절하고 질 좋은 맥주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맥주의 순수성과 품질을 지키고자 하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19세기 북부 독일은 신선한 맥주를 빚기 위해 시냇가에서의 시민들의 배변 활동까지 제한할 정도로 순수한 맥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소위 ‘핫플’이었다. 특히 히틀러는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사랑했다. 히틀러는 딱히 애주가가 아니었음에도 꼭 모든 집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그의 첫 연설 무대 역시 호프브로이하우스였다. 그에게 맥줏집은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을 선동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나치 창당식, 중요한 정치 행사, 심지어 뮌헨 폭동 때도 예외 없이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렇듯 당시 독일인들에게 맥줏집은 단순히 술집을 넘어 정보를 교류하는 역할을 했다. 모차르트 역시 호프브로이하우스와 인연이 깊은데, 그는 성인이 되면서 아예 뮌헨으로 이주해 호프브로이 근처에 살면서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작품 「이도메네오」 「가짜 여정원사」 등도 이때 작곡했다고 알려진다.
그 외에도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며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아우구스티너 켈러, 옥토버페스트 때 가장 화려한 텐트를 여는 것으로 유명한 하커 프쇼르, 이탈리아 성인 프란체스코 디파올라를 기리는 수도원이 운영하는 파울라너, ‘사자 양조장’ 뢰벤브로이, 매년 전통적으로 옥토버페스트 개막을 알리는 슈파텐 등이 있다. 고대 맥주의 발견에서 뮌헨의 6대 맥줏집까지, 본격적으로 유럽 맥주 산책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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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
도서정보 : 민이언, 박상규 | 2018-10-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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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CEO와 철학도의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바라본,
여전히 이상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더 이상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에 관한, 다시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약 30년 직장생활 끝에 대기업 CEO가 되었다는, 인문학을 즐겨 읽는 기업인과 교직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철학도의 길을 걷게 된 작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어린 왕자》 동화의 장면들로 해석해 보고 상실과 망각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의 욕망과 환상을 들여다본다. 《어린 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는 철학, 정신분석, 사회학 등의 인문학을 통해 열린 텍스트로서《어린 왕자》를 다시 살펴보고,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잃어가고, 잊어가고 있는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잃어버린 시간에 두고 온, 잊어버린 나 자신을 만나다!
열린 텍스트로서 나만의 어린 왕자를 만나는 시간~
‘말로 내뱉으면 소중한 뭔가가 빠져 나갈 것만 같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모든 고독을 달래주고, 세상의 장엄한 신비를 이해하게끔 인도하는 위대한 시인의 메시지’라는 마르틴 하이데거, ‘위대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증언이다’고 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의 이야기처럼《어린 왕자》는 단순한 고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동화이다. 이미 전 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음에도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고, 그 해설서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어린 왕자》가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있는 텍스트라는 방증이다.
《어린 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기본 포맷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어린 왕자의 결론적 해설을 지양한다. 지금 나와 있는 많은 인문학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답만을 내놓으려 하는 모순에 빠져 인문학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기업인과 간간이 용을 배출했던 개천도 이젠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낼 지경임에도 구조의 문제를 감안하지 않는 성공의 신화들이 인생의 필생 공식이라고 믿는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철학도의 시선으로 《어린 왕자》를 열린 텍스트로서 새롭게 바라본다.
기술은 발전하고 생활 방식이 다양해진 시대에 오히려 고유한 나만의 스토리텔링은 사라지고 모두가 보편화된 스토리텔링으로 행복조차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커뮤니티는 늘어나지만 커뮤니케이션에는 점점 서툴러지는 아이러니 속에 생텍쥐페리가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누구나 자신의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우리는 다시 꺼내들어야 한다.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별이다.
또한 우리가 떠나온 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는
그 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적은 이 말처럼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렸으며, 떠나온 별에서 지금의 어른이 된 자신을 돌아보며 나만의 어린 왕자를 만나고, 나만의 《어린 왕자》가 전해주는 지혜를 발견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기를 바란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 왔던,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풍경이, 그 시절과는 다른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지나고 보면 다 맞는 이야기라던 어른들의 말이, 한참을 지나서 돌아보아도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처럼….
-p.23
학문이란 묻는 일을 배우는 행위이다. 사장님께서 가장 공감하신다는 인문학의 정의가 곧 학문의 정의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 이는 인문적 양분이 부족한 한국의 풍토에 던져야 할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모범답안이 도래하기만을 기대한다.
-p.27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신념으로, 자신이 확신하는 대답을 다시 겪을 뿐이다. 그 결과, 자신이 아는 것으로 모르는 것에까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른의 시간은, 생각의 성장판도 닫혀 있다.
-p.42
나이키에 눈을 뜨고 난 이후에는 나이키 운동화를 사면 행복하지만, 나이키에 눈을 뜨기 전의 우리는 나이키 운동화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았다. 맨발로라도 나가서 놀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키 운동화가 없어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시절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기도 하다.
-p.61
누구나 보고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나타나지 않는 것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 왕자》의 어록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자면, 정말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문제들에 무뎌져 있는 ‘이상한 어른들’에 대한 충고이다. 어른들은 그게 왜 당연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삶은 원래 그런 거니까.
-p.64
《어린 왕자》는 정신분석으로 해석하기에는 참 좋은 텍스트인 것 같아요. 어떤 해석도 가능한 상황들을 던져 주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생텍쥐페리가 정신분석을 공부했을 것 같진 않아요. 당대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생텍쥐페리도 함께 고민했던 거겠죠.
-p.75
다수와 소수는 수의 차이가 아니라, 헤게모니를 쥐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에요. 역설은 다수의 담론은 소수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죠.
-p.88
내가 어느 별에서 온 왕자 혹은 공주가 아닐까를 상상해 보기도 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엔, 아빠와 엄마가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 왕자 혹은 공주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사막에서 조난을 당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느 시절의 우리를 마주하게 될까? 그 과거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결여의 증상인 동시에, 우리의 무의식이 추구하고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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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도서정보 : 제랄드 게를레 | 2018-10-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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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꼭 한번 읽어 봐야 할 인권의 바이블, 세계인권선언 전문 수록
만 2년 동안 무려 1400여 번의 투표를 거쳐 만들어진 30개 조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자유와 동등한 권리를 상세히 명시했다. 이후 수많은 나라의 헌법과 법률이 세계인권선언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수많은 인권 국제조약들이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매년 12월 10일은 인류가 진보를 향해 내딛은 첫걸음을 기념하고자 ‘세계 인권의 날’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리들이 처음부터 당연하지는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을 아직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다면, 또는 읽어 본 적 있지만 어렵고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면, 새로이 출간된 『세계인권선언』을 펼치자. 목수정의 번역을 통해 오늘날 한국 시민들에게 쉽고 명료한 언어로 재탄생한 『세계인권선언』은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2. 카를 마르크스, 에밀 졸라, 시몬 베유, 말랄라 유사프자이, 나혜석, 전태일, 조영래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유와 권리를 외친 역사적 인물들의 말과 글 수록
세계인권선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성과지만, 모든 사람의 권리를 최대한 다 인정하기 위해서 다듬고 벼린 문장들이기에 구체적이기보다는 포괄적인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때로는 선언문의 행간에서 실제 ‘삶’을 읽어 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인권선언』에는 선언의 각 조항에 더하여 역사적 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함께 담겼다. 카를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빅토르 위고, 시몬 드 보부아르 등 그 이름만으로도 우뚝한 인물들의 책, 연설문, 편지 중 인권과 관련된 부분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와 권리를 외친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도 벅찬 감동을 안겨 준다. 역자 목수정의 말대로, “30개 조항의 선언문을 직접 다듬고 정리한 것은 9인의 초안 작성 위원회였지만, 선언에 담긴 인권에 대한 의지는 빅토르 위고, 카를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의 목소리에 담긴 의지와 같고 세종대왕, 최시형, 전태일이 실천해 온 생각과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세계인권선언』 한국어판에는 세종, 나혜석, 전태일, 조영래, 박래군, 한상균, 류은숙, 박경석 등 한국 인권의 역사를 만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추가로 수록되었다. 대한민국헌법 조항, 416연대의 선언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성명문 등 한국 독자들에게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갈 문헌 또한 대거 발췌 수록되었다.
시대적 맥락과 각 발화자의 정체성-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생생히 드러내는 ‘살아 있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올 때, 비로소 보편의 단어로 이루어진 세계인권선언은 그 의미를 확장하여 우리 삶에 더욱 밀접하고 긴밀한 언어로서 다가올 것이다.
3.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시민 99명의 권리 선언문 특별 수록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70년. 우리는 여전히 안녕하지 않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 그러나 2018년의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개개인의 폭로와 외침과 선언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세계인권선언』의 앞뒤 면지에는 여섯 페이지에 걸쳐 한국 시민 99명의 목소리가 실렸다. “충분히 놀고 쉴 권리”를 외치는 12세 시민, “의견을 가질 권리”를 외치는 15세 시민,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31세 가정주부, “관음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24세 여성,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바라는 40세 채식주의자….
세계인권선언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번역을 맡은 목수정의 말처럼, “불의가 세상에 차고 넘칠 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항거한 이름 없는 시민들”의 부단한 외침이 쌓이고 쌓였을 때에야 세계인권선언의 선포와 같은 역사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인류는 진보를 향해 큰 한걸음을 내딛는다.
『세계인권선언』에 수록된,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들의 목소리는 서로의 용기가 되고 함께 나아갈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 ‘인권의 역사를 만든 목소리’가 진정으로 가리키는 것은 오늘날 권리의 주체가 되어야 마땅한 모든 시민들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4. 세계가 주목하는 동시대 아티스트 30명의 일러스트레이션까지
제랄드 게를레, 마르크 부타방, 카롤 트레보르, 세바스티앵 플롱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 30명이 선언의 각 조항에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또한 『세계인권선언』 독자들에게 또 다른 연대의 목소리가 되어 준다. 언론, 어린이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아티스트들이 지금의 현실을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으로 담아 낸 일러스트가 세계인권선언의 함의를 더욱 풍성하게 전달해 줌은 물론이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 프랑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언론 테러로 들끓고 있었다. 테러범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공포를 이겨 내고, 프랑스 시민들은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신성한 권리들을 외쳤다. 이 책이 당시 프랑스에서 크게 주목받은 것은 단순한 책 그 이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목소리에도 기꺼이 힘을 실어 줄 『세계인권선언』이 한국에 출간되었다.
구매가격 : 9,800 원
요하문명과 황제의 나라 고려, 고려사 고려사절요 정인지 김종서 1권
도서정보 : 정인지, 김종서(탁양현 엮음) | 2018-10-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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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文明(遼河文明)과 黃帝國 高麗
韓民族은, 만주대륙을 비롯한 중국대륙 東部地域에 대해, 항상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다분히 生來的인 것이다. 굳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갖게 되는 鄕愁다. 본래 그곳이 우리 한민족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親中主義나 事大主義인 것으로 自己誤解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이 본래 우리 민족의 영토이므로, 향수를 갖는 것과는 명료히 분별되어야 한다. 비록 朝鮮王朝 이후 중국에게 빼앗겨버렸지만, 언제라도 그곳은 收復해야 할 우리의 영토이다.
그 故土는, 漢族이 차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민족의 始祖인 東夷族(東夷族 聯盟)의 영토였다. 중국인들은 흔히 黃河文明(西紀前 2,500)이라는 신석기문명이 漢族의 시조이므로, 중국대륙이 중국인들의 영토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동이족은 遼河文明(西紀前 5,500) 시절부터, 그곳을 영토로 삼았다. 그래서 그 故土에 대한 鄕愁가 遺傳的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古朝鮮, 夫餘, 高句麗, 渤海 등에 의해, 여전히 그곳은 한민족의 영토로서 지배되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 이후, 불과 6백여 년 정도, 수천 동안 지배하던 그곳을 중국에게 빼앗긴 상태이다. 그러니 현재 대한민국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은, 국제정치의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국제법적 질서로써 존속시키기 위한 不得已일 따름임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그런 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를 자기의 영토라고 선언한다고 해도, 국제법적으로 대항키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핀다면, 응당 ‘대한민국의 영토는 만주대륙과 한반도로 한다’는 것이 마땅하다.
나아가 東夷族과 百濟의 영토였던 중국대륙 동부지역과, 新羅와 伽耶의 영토였던 일본열도 서부지역까지도, 우리 영토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그러한 속내를 결코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植民史觀을 지닌 親日主義者들이나, 事大主義史觀을 지닌 親中主義者들은, 어떻게든 韓民族의 疆域을 韓半島로 한정하려고 劃策한다. 더욱이 한민족이 현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는, 한반도 내에서도 남한지역에 한정되며, 북한지역은 傀儡政府에 의해 불법적으로 强占된 상태이다.
북한지역의 人民들이 韓民族임은 자명하지만, 남한지역에서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를 추종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主體思想과 共産主義를 추종하는 북한의 勞動黨政府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판단에는, 우선 역사적 지식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黃河文明은, 중국의 황허강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문명의 성립이란, 일반적으로 國家·靑銅器·文字의 성립 등이 요소가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황하문명의 성립기는, 수메르문명(메소포타미아문명, 西紀前 3,500)나 인더스문명(西紀前 3,000)보다 늦은, 西紀前 2,500년 경이라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세계 4대 문명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長江文明(西紀前 3,500) 등, 다양한 문명이 중국 각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4대 문명에 황하문명만을 채택하지는 않으며, ‘黃河 및 長江文明’이라 한다.
黃河文明은, 黃河流域에서 나타난 중국의 고대 문명을 통틀어 나타내는 말로서, 揚子江文明과 함께 중국의 고대 문명을 대표한다. 新石器 시대에 나타난 仰韶文化와 竜山文化 등을 거쳐, 商과 周의 青銅器 문화로 발전하였다.
1921년, 중국의 河南省 澠池縣 仰韶에서, 신석기 시대의 대규모 취락지가 발굴된 뒤, 黄河 유역에서는 新石器와 靑銅器 시대와 관련된 고고학적 발견이 잇달아 이루어졌다. 그 뒤 학계에서는, 黄河文明을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중국 문명이 黄河流域에서 시작되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 뒤, 중국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유형의 신석기 문화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학설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1973년, 浙江省 寧紹 평원의 河姆渡에서는, 벼농사와 高床式 건축물 등의 遺蹟이 발굴되어, 揚子江 유역에서 仰韶 문화와 비슷한 시기에, 黃河文明과는 다른 계통의 수준 높은 신석기 문화가 발달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東北 지방의 遼河流域에서도, 黃河文明과 다른 계통의 신석기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그것이 바로 遼河文明이다. 이 요하문명은 분명하게 韓民族의 始祖에 의한 東夷文明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은 東北工程으로써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대체로 先史時代 中國人의 생활구역은, 黃河流域 지대의 산기슭에 있는, 물이 솟아나는 지대에 많으며, 수해를 피하기 위하여, 段丘 위에 거주했다. 나일 강이나 인더스 강 유역에서는, 하천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인한, 비옥한 흙의 퇴적을 이용한 관개 농업이 성립했으나, 이 점은 중국 농업의 성립 조건과는 다르다.
黃土는 잿빛이 나는 황색의 石英이나 長石 등의 微粒의 퇴적으로서, 빗물 속의 석회질을 모아, 땅이 비옥하고 부드러워서, 농경 생활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했다. 이 황토 지대에서,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기초로 문명은 성립된 것이다.
長江流域에 古文明이 성립하지 않은 이유는, 高溫多濕하기 때문에 초목이 무성하여, 철기시대 이전에는 개간이 곤란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최근 장강 中·下 유역의 문화 유적의 발굴 조사가 진척 중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황하문명의 하부 문화는 다음과 같다.
‘페이리강 문화(裴李崗文化, 西紀前 7,000?~西紀前 5,000?)’의 대표 유적은 허난성 화 현의 페이리강 유역에 있다. 이들은 원형·방형의 움집에 살았으며, 조 등의 밭농사 농업을 하고 있었다. 홍갈색의 陶器나 磨製石器 등을 특색으로 한다.
‘라오관타이 문화(老官台文化, 西紀前 6,000?~西紀前 5,000?)’의 대표 유적은 샨시성 화 현(웨이난 시)의 老官台이다. 이들은 원형의 움집 주거에 살며, 조 등의 밭농사 농업을 하고 있었다. 암적색의 협사도기를 특징으로 한다.
‘베이신 문화(北辛文化, 西紀前 6,000?~西紀前 5,000?)’의 대표 유적은, 산둥성 텅저우 시의 베이신이다. 황갈색의 도기를 특징으로 한다.
‘츠산 문화(磁山文化, 西紀前 6,000년~西紀前 5,000?)’의 대표 유적은, 허베이성 우안 시의 츠산이다. 이들은 원형, 타원형의 움집 주거에 살며, 조 등의 밭농사 농업을 하고 있었다. 홍갈색의 협사도기를 특징으로 한다.
‘양사오 문화(仰韶文化, 西紀前 4,800?~西紀前 2,500?)’는, 1921년 허난성 몐츠 현 양사오촌에서 발견된, 붉은 바탕에 채색 한 토기(칠무늬토기)를 특색으로 하는 문화이다.
前期(西紀前 4,800)는, 紅陶가 주류로 대표 유적은 산시성(섬서성) 시안 시 반파, 양샤오 반파 유형 문화라고 불린다. 모계 제도로 농촌의 계층화가 보인다. 기원전 4000년경에, 녹로의 사용을 볼 수 있는 양사오 묘저구유형 문화가 나타났다.
後期(西紀前 3,500)에는, 반파 후기 유형, 시왕촌 유형, 대사공 유형, 진왕색 유형의 4종의 문화로 크게 분류되어, 빈부의 차이가 보이는 사회 분업, 계층화가 진행되었다.
‘허우강 문화(後岡文化, 西紀前 5,000?~西紀前 4,000?)’의 대표 유적은, 허난성 안양 시 허우강이다. 베이신 문화를 계승 발전했다.
‘다원커우 문화(大漢口文化, 西紀前 4,300?~西紀前 2,400?)’는, 1959년 산둥성 닝양현 보투오 촌에서, 유적이 처음 발견되었다. 후에 산둥성 타이안시 타원커우에서도 유적이 발견되고, 이쪽이 대표 유적이 되었다.
전기는 홍도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후기에는 흑도, 회도가 주류로 나타났다. 후기의 란곡흑도의 고병배 무늬도기는, 정교하고 아름다워 산둥 룽산문화에 계승된다.
‘룽산 문화(龍山文化, 西紀前 2,500?~西紀前 2,000?)’는, 중국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에 의해서, 1930년 산둥성 장추시 룽산진에서 발견된 흑도(흑색 토기)나 회도를 특색으로 하는 문화이다. 흑도는 얇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흑색의 토기로, 제작에는 소성 온도는 약 1,000도 이상 되는 녹로가 사용되었다.
후기에는 청동기의 주조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원 룽산 문화(섬서 룽산문화, 진난 요서 룽산문화, 허난 룽산문화)와 산둥 룽산문화로 나뉜다. 중원의 룽산문화는, 양사오 후기 문화를 계승해 灰陶가 주류를 이루며, 뼈가 갈라진 특징을 가진다. 산둥의 룽산 문화를 계승하여, 黑陶가 주류를 이룬다.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西紀前 2,000?~西紀前 1,600?)’는, 1959년 허난성 옌스시 얼리터우에서 발견되었다. 유적은 약 2km 사방에서 뻗어있고, 중심부에는 두 개의 궁전 자취가 있다. 이 유적의 사람들은, 진난 요서 룽산문화, 허난 룽산문화를 계승하였으며, 청동 주조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上記한 문화들이, 대체로 黃河流域과 長江流域을 중심으로 형성된, 中國文明의 始原이다. 그런데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고대문명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遼河文明이다. 그것은 韓民族의 始祖인 東夷族 聯盟에 의한 東夷文明이다.
‘훙산 문화(紅山文化, 西紀前 9,000)’는 중국 만리장성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 시대의 문화이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와 랴오닝 성 조양시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큰 특징인 玉器는, 한반도 강원도 고성군 패총에서 출토된 옥 귀걸이(7천년 전)와 전남 여수 안도리(6천년 전) 등지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 귀걸이와 유사점이 있어, 古朝鮮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홍산문화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연대는 西紀前 9,000년 경으로, 지금까지 赤峰, 凌源, 建平, 朝陽 등 500여 곳의 유적을 찾아내어, 발견 지역은 옌산 산맥의 北 랴오허 지류의 西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興隆窪文化, 紅山文化, 趙寶溝文化, 新樂遺跡 등의,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문화(culture)의 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civilization)으로 간주하여, 遼河文明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현재 중국은, 요하문명을 東北工程으로써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토를 빼앗기고서, 역사까지 빼앗기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한나의 역사스캔들
도서정보 : 최한나 | 2018-10-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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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한 지식, 어두운 야사까지 파헤치는 통렬한 용기
전혀 예기치 못한 한나의 ‘가슴 설레는 역사’를 만나다!
역사 전문 크리에이터 한나의 「역사스캔들」은 10년에 걸쳐 진행된 방송으로도 유명하거니와, 누적 조회 수 약 2천만 뷰를 넘긴 인기 절정의 역사 강좌이기도 하다. 한국사의 뒤안길에 널려 있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정사와 야사 스토리만을 모아 이 한 권의 책이 태어났다. 그녀만의 10년 내공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우리네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쉽고 명쾌한 설명으로 정점을 찍다
삼국시대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우리 역사 속 이야기를 재미있고 명쾌한 설명으로 풀어나갈 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과도 의미심장하게 연결시켜준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그렇기에 읽다보면 마법처럼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를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역사를 읽는 통찰력까지 느끼게 되는 스스로에게 놀랄 것이다.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부터 짜릿한 야사까지
자야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
생전에 기자들이 언제 백석이 생각나는지 물었더니,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죠.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 앞에 서니 평생 한 남자를 그리워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 애잔했습니다. (『백석과 자야, 길상사에 깃든 러브스토리』 중에서)
왕들이 즐겼던 엽기 보양식?
왜 옛날 사람들에게 동물의 고환이 인기가 많았을까요? 고환이란 것이 알다시피 정자를 만드는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먹으면 분명히 ‘나도 정력이 좋아질 것이다’라는, 그런 직관적인 느낌이 추가되었다고 봅니다. (『왕의 정력을 지켜라, 임금님의 보양식』 중에서)
이태원의 이름의 기원이 세 가지나 된다고?
그러면 이태원의 세 번째 이름은 무엇일까요?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하네요. 너무도 가슴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태원이 배나무 골 말고 다른 한자로도 사용된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요.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이태원을 ‘異胎院’이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태가 다르다’는 뜻이죠. 다시 말해 이방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들이 있는 사원이라는 뜻입니다.
『이태원 지명에 담긴 아픈 역사, 그리고 환향녀』 중에서
고려와 조선의 최고 패륜왕은?
파렴치한 폭군으로 역사의 해석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두 임금을 소개할게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각각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으로 연산군이 있다면 고려시대 최대 패륜아는 충혜왕을 꼽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패륜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들입니다.
『희대의 패륜왕 빅매치! 충혜왕 VS 연산군』 중에서
구매가격 : 13,300 원
클래식 클라우드 - 헤밍웨이
도서정보 : 백민석 | 2018-10-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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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패배하지 않은,
영광과 비참을 모두 겪은 초인 같은 작가”
4대륙 20여 개의 나라에 흔적을 남긴 헤밍웨이.
프랑스 파리에서 스페인 팜플로나와 마드리드, 이탈리아 밀라노와 베네치아, 쿠바 아바나까지 그의 작품을 찾아 떠나는 독특한 문학여행
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 작가, 헤밍웨이를 따라 걷다
- 헤밍웨이의 작품과 함께 배경지를 탐방하는 특별한 문학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문학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그대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이니.”
-헤밍웨이,『태양은 다시 뜬다』 중에서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에서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고, 『태양은 다시 뜬다』로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을 유행시킨 작가,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스페인 내전과 중일전쟁 등에도 참전해 부상을 입기도 하고 훈장을 받으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 경험을 작품에 생생하게 구현시킨 작가. 헤밍웨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태양은 다시 뜬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무기여 잘 있거라』의 작가이자, 20세기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세계 온갖 장소에 족적을 남겼다.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던 헤밍웨이는 말년까지 바다낚시와 아프리카 사파리 사냥, 권투, 투우 같은 위험한 스포츠를 즐겼고, 40대부터는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위스키를 매일 1리터씩 마신 알코올중독자였다.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헤밍웨이의 문화적 유산을 소비하고 있다. 하드보일드 미학을 표방하는 소설과 영화, 모히토와 다이키리 같은 칵테일, 영화나 드라마에서 황소들에게 쫓겨 다니는 사내들의 모습까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때문에 쿠바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강의실에서 이야기를 생략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누군가 가르친다면, 1920년대에 헤밍웨이가 이미 그렇게 했다는 사실도 함께 배우고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실상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고, 그의 복잡한 삶의 세부에 관해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삶에 대한 하나의 전기,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서
이 책을 쓴 소설가 백민석은 4개국 20여 개 도시에 흔적을 남긴 헤밍웨이를 따라 프랑스 파리에서 이탈리아 밀라노와 베네치아, 스페인 팜플로나와 마드리드, 쿠바 아바나까지 네 나라, 여섯 도시에 있는 그의 행적과 작품들과 자취들을 직접 따라간다. 저자는 헤밍웨이의 시, 희곡, 단편소설, 장편소설, 에세이, 논픽션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출간된 다양한 작품들을 읽으며 분석하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힘겨운 삶 속에서도 꿋꿋이 도전하며 살아 나가는 헤밍웨이의 모습을 그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헤밍웨이의 작품들에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 삶과 문학을 따로따로 읽는 것이 오히려 오독이 될 수 있다며, 독자들이 스스로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가능한 다양한 단서들을 찾아내 이 책에 담아내고자 했다. 이 책은 저자가 헤밍웨이의 흔적을 좇아 거주지와 카페와 호텔들을 찾아다닌 문학 기행이자, 초인 같은 그의 삶에 대한 하나의 전기이자, 다양한 그의 작품들에 관한 상세한 해설서이다.
죽음을 갈망했던 했던 뛰어난 소설 미학의 작가
헤밍웨이는 평생 네 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보다 더 많은 연인을 사귀었다. 그는 성공적인 작품을 낼 때마다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고 다른 대륙으로 이사를 했다. 헤밍웨이는「노인과 바다」를 16년 동안 고쳐 썼고, 『무기여 잘 있거라』의 표현을 바로잡느라 마지막 페이지를 서른아홉 번이나 고쳐 썼다고 한다. 글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념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밍웨이의 문학은 지금의 시각에선 어쩌면 낡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고전의 가치란 그가 실존했던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데 있다. 실제로 저자는 사방에서 헤밍웨이의 흔적들을 본다.
저자는 또한 헤밍웨이의 소설 미학으로 알려진 입말체 대화법, 빙산 이론, 하드보일드 스타일, 남성중심주의 미학의 작품들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그의 뛰어난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리의 산책로, 잃어버린 원고, 카페 셀렉트, 명언들, 투우의 상징적 기원, 헤밍웨이 스타일 칵테일인 다이키리와 모히토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함께 그려낸다.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비참과 영광을 다 겪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그 영광 뒤에 숨겨진 삶
평생 사고를 서른두 번 당했고 질병은 서른여섯 번을 앓고, 비행기 사고가 두 번, 뇌진탕을 다섯 번 겪었을 뿐만 아니라 눈 질환이나 전장에서 입은 부상 등으로 수시로 재발하던 고질병이 많았던 헤밍웨이는, 젊었을 때부터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 속에서도 계속 죽음을 갈망하면서 쫓아다녔다. 그러나 일생 동안 심한 육체적 고난을 겪은 헤밍웨이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일도 그의 뜻대로 쉽사리 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헤밍웨이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3년간 헤밍웨이를 쫓아다니고 읽고 쓰면서, 비로소 그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게 되었다고. 헤밍웨이는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과 비참을 모두 겪었다는 점에서도 초인이었다고 말한다. 헤밍웨이의 문학은 죽음이 어땠든 파멸되지도 패배하지도 않고 더더욱 풍부해지고 있다고 끝맺는 이 책은, 헤밍웨이의 삶과 문학에 관한 다채로우면서 독특한 또 하나의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어떻게 그는 그 많은 글을 쓰고,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사고를 당하고, 그 많은 병을 앓고, 그 많은 여행과 이사를 다니고, 그 많은 연애를 하고, 그 많은 전장을 쫓아다닐 수 있었을까.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 하루, 일 년은 내게 주어진 한 시간, 하루, 일 년과 다른 길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_「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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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15,040 원
B급 세계사 : 알고 나면 꼭 써먹고 싶어지는 역사 잡학 사전
도서정보 : 김상훈 | 2018-10-2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 그게 그런 거였어?”
무릎을 치면서 읽는 역사책
알쏭달쏭한 상식에 날개를 달다!
사소하고 꼬질꼬질한 것들의 역사
역사 연표에 가려진 이야기에 돋보기를 들이대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뭔가 억울하고
‘안다’고 하기엔 확신이 서지 않는 애매한 상식들…
우리의 일상과 촘촘하게 엮인 역사의 실타래를 풀다!
우리나라 사람은 역사를 좋아한다. 역사책은 꾸준한 판매량을 보인다.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에서 역사는 단골 메뉴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본 것 같은 주제와 소재들이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애매하게 아는 것이 문제다.
『B급 세계사』는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하고, 안다고 하기에도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며, 알아 두면 입이 근질거릴 55가지 흥미로운 역사의 장면을 담았다. 오늘날까지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물과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근현대와 중세, 고대를 종횡무진 오가며 ‘오늘’의 기원을 밝힌다. 가십거리는 물론 지적인 대화를 위한 도구로서도 매우 적절하다. 이 책을 통해 통사(通史)와 연표에 가려진 사소하고 꼬질꼬질한 역사가 가진 매력과 재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1,000 원
하룻 밤에 읽는 이탈리아 문학사 (개정판)
도서정보 : 유럽문학연구회 편엮 | 2018-10-2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하룻 밤에 읽는 이탈리아 문학사 (개정판) 세계 고전문학사 이탈리아 문학 바이블(Bible) 인문학 특강 2016년 출간도서 (표지)리커버 및 개정판!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며 신라틴어 즉 로망스어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변천하여 그당시 이탈리아 각 지방의 방언이 수세기의 부화기를 거친 뒤에 문학어로서의 이탈리아어로 발전해 나왔다.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초기까지 피렌체의 경제적 정치적 생활을 지배하게 된 칼리말라(arte di calimala 조합)의 영향으로 인문주의의 요람기가 싹트기 시작하여 교회와 봉건영주의 정권을 벗어난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 등 자유 도시국가들은 실천적 학문인 법률과 의학에 흥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철학 예술 등에도 관심을 가져 고유한 문학을 찾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국민문학의 형성에 있어 전통적인 라틴 문학은 물론이요 프랑스 문학의 영향도 크게 입었다. 남부 이탈리아 반도와 여러 섬의 방언이 혼연일치 되어 시칠리아어를 이루어 이탈리아어로서의 최초의 시어(詩語)를 구성했다. 즉 13세기 전반 프랑스 남쪽의 서정시가 시칠리아 섬에 있는 페데리코 2세의 궁전에 전파되어 이탈리아 문학어로 된 연애시가 각 지방으로 유행되어갔다. 1250년 페데리코 2세가 사망하자 그당시 상공업의 융성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민주적 자유도시를 이루고 있던 토스카나 지방에 문화가 재흥되어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이 문학어는 점차적으로 북상하여 토스카나 지방인 볼로냐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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