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뻐진 그 여름 2

도서정보 : 저자명 : 제니 한 역자명 : 이나경 | 2023-07-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시리즈
제니 한 작가의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원작 소설


★★★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 ★★★
★★★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작가 소설 ★★★
★★★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드라마 방영 중 ★★★



◎ 도서 소개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작가 소설
프라임 비디오 시리즈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원작 소설

2022년 여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방영 이후 하이틴 로맨스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은 드라마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의 원작 소설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작가인 제니 한 작가의 이 소설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이후 또 한 번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2023년 7월 14일, 시즌2 방영을 앞두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그랬듯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역시 달달한 연애 소설임과 동시에, 부모님과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가족, 인생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다루고 있다. 두 세대를 아우르는 성장 스토리가 매우 조화롭게 펼쳐지는 매력적인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제니 한 작가 특유의 로맨스의 정석을 드러내는 주인공들의 감정선 묘사는, 드라마와는 또 다르면서도 드라마보다 더 세심하게 건드려 주고 있다. 또한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의 과거로. 해마다의 여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회상을 통한 스토리 연결은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와 그 내면을 공감하는데 충분하다.
특히 2권에서는 콘래드와 제러마이아의 시점이 더해져, 삼각관계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감정을 더 이해하기 쉬워졌다.
현재, 소녀 벨리처럼 수줍지만 당돌한, 아프지만 설레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겪고 있는 10대와 20대뿐만 아니라, 풋풋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성인 독자들의 연애 세포를 충분히 깨워줄 것이다.
총 3부작인 『내가 예뻐진 그 여름』 시리즈 중 1, 2편이 2023년 7월 동시 출간되며, 마지막 3편은 2024년 여름,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시즌3 공개와 함께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그 여름, 그곳,
그들이 있어야 진짜 여름이야.

콘래드와의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 후, 처음으로 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 벨리. 보트 파티, 수영장에서의 태닝, 새로운 남자 친구 소개 등 친구 테일러는 벨리를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벨리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콘래드가 사라졌다는 제러마이아의 전화 한 통이 또다시 벨리를 움직인다. 이후 모든 길이 벨리를 커즌스의 여름 별장으로 이끄는 것 같다.
벨리는 또다시 콘래드를 향한 여름을 보내게 될까? 이젠 정말 그를 놓아주게 될까?
엇갈린 진심과 오해로 가득한 커즌스. 그 속에서 흔들리는 벨리와 두 형제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한여름의 뜨거운 해변으로 함께 떠나 보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링크]
https://www.primevideo.com/detail/0KOOM3YETHAW6PDAN2LBHJ0CC1/ref=share_ios_season




◎ 책 속에서

내 평생 여름을 커즌스에서 보냈다. 단 한 번의 여름도 빠진 적이 없었다. 17년 가까이 나는 언젠가는 그들과 어울릴 나이가 되기를 바라며 지냈다. 드디어 그때가 됐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마지막 여름날 밤, 수 영장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다시 모이자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무서우리만큼 쉽게 깨졌다. _14쪽

그래서 12월의 멋진 밤이 더욱 달콤해졌다. 콘래드와 나는 다시 커즌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우리 둘이서만. 완벽한 밤은 참 드문데,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정말 완벽했다. 기다릴 가치가 있는 밤이었다. _17쪽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밖이 아직 어두울 때였다. 물론 나쁜 소식이었다. 급하게 오는 소식은 모두 나쁜 소식이었으니까.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순간 잠결에도 알 수 있었다. 수재나 아줌마가 떠났음을. _34쪽

콘래드가 떠났다는 생각이 두렵고, 잘못을 만회할 의지가 확고하더라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고 생각하니 다시 겁이 났다. 이 세상에 콘래드처럼 나를 흔들어 놓는 사람은 없었다. _49쪽

나는 평생 벨리를 알고 지냈다. 벨리를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우리 가족이자 내 친구였다. 그녀를 잠시나마 다른 눈으로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_61쪽

“콘래드는 이 모든 상황을 힘들어하고 있어. 감당하기 힘든 일이거든.” 아줌마는 말을 멈추고서 내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열을 재듯 이마에 손을 댔다. 아픈 사람은 나라는 듯.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나라는 듯. “그 애가 널 밀어내지 못하게 하렴. 그 애한테는 네가 필요해. 그 애가 널 사랑하는 걸 알잖니.” _69쪽

“우리가 끝났다는 말. 우리 사이가 뭔지 몰라도, 끝났다는 말. 끝난 거, 맞지?” 나는 울고 있었고, 콧물이 흘러 빗물과 섞였다.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_84쪽

우리는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도 모르게 소파에서 그렇게 키스했다. 그날 밤 우리가 한 것은 키스가 전부였다. 콘래드는 부서질까 두려운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나를 조심스럽게 만졌다._106쪽

나는 모래 위에 앉아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들었다가 쿠키 위를 장식한 하얀 아이싱처럼 부서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곳에 간 것은 실수였다. _117쪽

나는 부모님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사랑이 오래된 흉터처럼 언젠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 사랑은 영원히 타오르기를 바랐다._177쪽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졌지만, 콘래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키스할 만큼 가까워졌다. 나는 예전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숨을 참고 있었다._196쪽

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했다. 벨리를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면서. 하지만 형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용기를 내지 못했다. 형은 그런 남자가, 벨리에게 필요한 남자가 될 수 없었다. 벨리를 위해 곁에 있어 주고, 벨리가 기댈 수 있는 남자가. 나는 될 수 있었다. 벨리가 허락만 한다면, 나는 그런 남자가 될 수 있었다._201쪽

나는 눈을 살짝 들어 그를 보며 생각했다. ‘돌아와. 내가 사랑하고 기억하는 그 콘래드가 되어 줘.’_238쪽

제러마이아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정말 보고 싶어. 엄마 돌아가신 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더 오래된 느낌이야. 그리고 방금, 어제 일어난 일 같기도 해.”_249쪽

“아직도…….” 좋아해. 내 생각을 해. 날 원해.
제러마이아는 거칠게 말했다. “응, 그래, 아직도.”
그리고 우리는 다시 키스했다._253쪽

흰 드레스를 입고서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차로 달려가는 내 모습. 나보다 앞서 달려가 조수석 문을 여는 그의 모습.
“확실해?” 그가 내게 묻는다._266쪽

구매가격 : 13,440 원

미스 델핀의 환상 사무소

도서정보 : 도미니크 메나르 | 2023-07-1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누구에게나 잠깐의 휴식,
때로는 깊은 꿈도 필요하니까요.

무엇이든 이뤄주는 에이전시로 오세요!

★ 프랑스 서점대상 수상작 ★

당신을 위해 꿈과 욕망을 이뤄주는 조금 특별한 에이전시가 있다. 2009년 프랑스 서점대상 수상작 『미스 델핀의 환상 사무소』는 어떤 이에겐 거짓말이나 환상이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낙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주인공 델핀 M.이 사람들의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주는 에이전시 ‘당신을 위해’를 열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을 만나며 마침내 자기 자신의 새로운 꿈과 욕망을 발견해나가는 뭉클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델핀은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보통의 직업소개소처럼 가정부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사소한 심부름을 해주는가 하면, 손녀나 딸, 엄마, 애인, 보호자 등 다양한 역할을 대행하며 그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치매에 걸린 노인에게는 손녀이자 요양보호사, 더이상 만날 수 없는 두 연인에겐 비밀 우편배달부, 자기만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소년에게는 사회화를 돕는 안내자가 되어주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를 위해서는 그들의 아이를 대신 낳아주려고도 한다. 고객들을 위해 때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위태로운 일도 마다않고, 어떤 역할이든 받아들이면서 델핀은 자신만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 존스가 찾아온다. 델핀의 옛 고객이었던 아도르노의 애인이다. 그가 아도르노가 남긴 유언이자 연애편지와도 같은 다섯 권의 공책을 들고 델핀의 사무실로 찾아와 빈 곳을 채워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의뢰한다. 델핀은 크게 동요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객의 의뢰를 거절한다. 델핀과 아도르노 사이엔 어떤 계약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존스는 이 계약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환상을 위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여자 델핀, 그녀가 비로소 자신의 꿈과 욕망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회복해가는 감동적인 여정이 펼쳐진다.

구매가격 : 11,900 원

휴가지에서 생긴 일

도서정보 : 마거릿 케네디 | 2023-07-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애거사 크리스티, 대프니 듀 모리에와 함께 기억될 이름
마거릿 케네디 국내 최초 출간!

영미 문학계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20세기 중반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이 복복서가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근래 작가의 주요 작품들이 재출간되며 새롭게 주목받는 가운데 특히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독특한 서스펜스, 도덕극과 미스터리와 코미디를 엮는 능란한 스토리텔링, 캐릭터 스터디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등장인물, 정교하게 짜여진 플롯 등이 찬사를 받으며 지금의 독자들에게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무너진 절벽 아래 흔적 없이 사라진 호텔,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
우정과 로맨스, 왁자지껄 소동 속 차례로 폭로되는 죄
재난이 일어나기까지 그 여름 해변의 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 갑자기 절벽이 붕괴되어 그 아래 위치한 호텔이 매몰된다. 소설은 사망자들의 장례식 설교를 준비하던 신부가 생존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려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참사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남겨진 편지와 일기, 대화, 장면 등을 통해 그 일주일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누가 죽었고 왜 죽었으며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여름 휴가를 앞두고 펜디잭 호텔에 모여든 투숙객과 직원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다.
이기적인 귀족, 나태한 궤변론자, 괴상한 성직자와 위축된 그의 딸, 몽상하는 아이들, 심술궂은 객실 책임자, 각자의 우울에 빠져 있는 부부, 위악적 소녀, 예술가인 척하는 작가와 그녀의 어린 정부 등등.
이들은 만나자마자 부딪히고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질투하고 매력을 느끼는 등 여러 감정을 품게 된다. 설전이 오가고 갈등이 폭발하며 한편으론 우정과 로맨스가 싹트는 가운데 처지가 다른 두 집안의 아이들이 그들만의 기이한 방식으로 어울리면서 해변에는 기이한 소동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심판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것은 불가항력, 즉 신의 행위인가 아니면 인간이 초래한 일인가?

인간군상의 입체적 초상이자 죄와 구원에 대한 경쾌하고 예리한 탐구

1950년에 첫 출간된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탐정과 범인이 등장하는 정통 미스터리와는 달리 ‘죽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왜 죽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촉발된 서스펜스가 중심인 독특한 작품이다.
1937년 구상 당시,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를 현대의 인물들로 형상화하여 당대의 강박을 다루고자 했던 이 소설은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평범한 일상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해버린 폭격의 공포와 물자 부족으로 인한 고통, 삶과 죽음이 순식간에 갈린 데에서 비롯된 실존적 공포 등 런던대공습 직후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게 된다. 이는 천재지변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하여 작품 속에서 흥미롭게 변주되는 바다.
동시에 교만, 시기, 나태, 탐식, 분노, 정욕, 탐욕 등 일곱 가지 대죄가 소설 속에 선명히 드러나지만 선악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캐릭터 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다채롭다. 한편 일곱 가지 대죄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죄명과 똑같은 알파벳으로 시작하는데 이렇듯 작가가 숨겨놓은 일종의 퍼즐을 맞춰보는 재미도 있다.
짓궂은 코미디와 고전적 도덕극이 결합된 이 소설에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악의가 손에 잡힐 듯 묘사되지만 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은 구원의 가능성이다. 이는 코브가 아이들을 축으로 따뜻하게 표출된다. 돌봄 받지 못하고 극도의 내핍 속에 살아가면서도 편견 없는 관용의 마음을 보여주는 아이들. 그리고 삶을 포기하려다 휴가지에서의 인연으로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페일리 부인의 이야기 역시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이라 할 것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재출간 당시 ‘휴가철 꼭 읽어야 할 책’ 혹은 ‘여름에 읽기 좋은 책’으로 사랑받았던 만큼 부담 없이 즐기면서도 곱씹을수록 풍성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인간성의 유쾌하지 않는 이면을 직시하는 작가의 꼿꼿한 정신은 작품 속 모든 농담과 뾰족한 디테일에서 여지없이 빛나며 인물들이 빚어내는 생생한 희비극은 눈 앞에서 연극을 감상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면서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재난을 숙명적으로 앞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숙고하게 하는 작품이다.

구매가격 : 13,000 원

마지막 이야기들 (세계문학전집 230)

도서정보 : 윌리엄 트레버 | 2023-07-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열 편의 이야기

나는 언제나 트레버를 읽고 또 읽는다.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영어권에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윌리엄 트레버 사후에 출간된, 총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천재 소년을 제자로 받아들인 피아노 선생님, 환경미화원에게 시신으로 발견된 중년 부인, 기억장애에 시달리며 거리를 헤매는 그림 복원가 등 얼핏 평범해 보였던 등장인물들이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선사하며 삶에 대한 그리고 소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넌지시 드러낸다. 트레버를 그리워했을 많은 독자와 작가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이 마지막 단편집은 민승남 번역가의 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경이로운 수준으로 ‘언어의 경제’를 보여주는 트레버의 문장을, 역시 담담하면서 절제된 문장으로 옮겼다.

단편소설의 거장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들, 그 조용한 위안과 희망

모파상, 체호프, 조이스의 뒤를 잇는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 무려 백 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한 그는 드물게도 장편과 단편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다. 그럼에도 자신을 단편 작가로 소개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뉴요커〉의 찬사처럼 ‘영어권에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단편 작가’였다. 생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그가 2016년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 독자와 작가들이 그를 추모하며 아쉬워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듯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들’ 열 편을 모은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이 사후인 2018년 출간되었다.
『마지막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먼저 쓸쓸한 분위기를 느낀다. 트레버의 많은 작품에서 그렇듯, 등장인물은 혼자 살고 있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외로워하며, 누군가는 있던 곳을 떠나고 누군가는 그곳에 남겨진다. 그런 인물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평생 ‘아웃사이더’로 산 작가 트레버가 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프로테스탄트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학교를 열세 군데나 옮겨 다녔고, 나중에는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 시골 마을에 정착한 트레버. 그는 언제나 사건의 중심이나 감정의 소용돌이에 직접 가닿기보다는 거리 두기를 택한다. 어쩌면 방에 앉아 폭풍우를 창밖으로 내다보는, 활짝 핀 정원의 꽃을 커튼 너머로 바라보는 감각과도 비슷할 것이다. 트레버 작품에서는 삶의 기쁨도 슬픔도 직접적이고 강렬한 주장이 아니라 관조적인 시선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 쓸쓸함 가운데서 조용한 위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이야기들』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은 20페이지 내외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문체도 아니며, 평범한 세상 속 평범한 인물들을 다룬다. 트레버는 아주 짧은 묘사로 등장인물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많은 부분을 감추며, 그로 인해 미스터리가 만들어진다. 불륜, 절도, 사기, 심지어는 살인까지. 너무 평범해서 하찮아 보이기까지 했던 인물들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도 미스터리는 완벽하게 해소되지 못한다. 「조토의 천사들」에서 기억장애를 앓는 그림 복원가가 찾고 있던 것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크래스소프 부인」에서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된 부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평소 트레버는 공원 벤치에 앉아 타인들의 대화를 자주 엿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대화를 끝까지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까지 들은 부분만으로 나머지를 상상하기 좋아했다고 한다. 모든 진실을 알 수 없는 것, 트레버에게는 이것이 바로 삶이고, 바로 소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존 밴빌, 힐러리 맨틀,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수많은 작가의 찬사

2016년 11월 20일 윌리엄 트레버가 눈을 감았을 때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작가들이 애도를 표했다. 압축된 문장과 절제된 단어 사용으로 놀라운 경지에 도달한 ‘언어의 경제’를 보여준 트레버는 다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존 밴빌, 줄리언 반스, 줌파 라히리, 힐러리 맨틀, 무라카미 하루키, 조이스 캐럴 오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콜럼 토빈 등 수많은 작가가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런 트레버 단편소설의 정수가 담긴 『마지막 이야기들』은 2018년 5월 24일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이 출간된 2023년 5월 24일도, 그가 살아 있었다면 아흔다섯을 맞이했을 생일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평처럼 이 책은 “트레버를 아는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마무리가 될 것이고, 트레버를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찾아 읽게 할 좋은 이유가 될 것”이다.

구매가격 : 9,800 원

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도서정보 : 로절린드 스톱스 | 2023-07-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살인을 결심한 건 그 남자를 알게 된 지 이틀 만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는 법.
위험에 처한 소녀를 구하려는 세 할머니의 품위 있는 살인 결심!

누구나 마음속에 죽이고픈 사람 한 명쯤은 있잖아요?
온순한 세 할머니가 무자비한 악질을 만나 살인 결심을 하기까지

메그, 대프니, 그레이스. 전부 일흔 살이 넘은 이 세 주인공은 필라테스를 하고 카페에 모인 늙은 여자들일 뿐이었다. 어느 날, 카페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온 소녀 니나.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아이를 구해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얼른 카페 화장실에 아이를 숨겼다. 뒤이어 들어온 두꺼비처럼 생긴 남자. 그는 딸아이를 찾는다고 했지만 그 말에는 손톱만큼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남자가 떠난 뒤 이들은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메그네 집으로 향했다. 그후 그 남자를 족치겠다는 건 이들 인생 최고의 결심이었다. 대단하고 또 대담했다. 살다보면 우리 인생에는 죽이지 못한 사람이 여럿이다. 예전에는 왜 이런 해결책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꼭 초보자로 돌아가는 것 같네, 그렇지 않아?” “우리는 초보자지만 똑똑하잖아. 다 부숴버릴 거야.” 이제 그 두꺼비 남자를 처리하러 갈 시간이다.

Beginner 1 메그
자기 그림자에도 놀라는 심약한 성격.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는 편. 런던 도심의 멋진 집에 살지만 왠지 시골 할머니 분위기를 풍김. 오랜 세월 자신을 학대한 남편이 마침내 죽었으나 여전히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경험하고 있음.

Beginner 2 대프니
컬러풀한 패션감각의 소유자. 다양한 걱정 전문가. 화려한 외양에 비해 소심하게 웃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예의를 지킴. 아시아인 모친과 백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

Beginner 3 그레이스
매사에 확실하고 자신감이 넘침. 고향 자메이카를 떠나 런던에 와서 교사로 일했음. 웃음소리가 호탕함. 교사 시절에 자신이 한 학생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늘 괴로워함.

The Target 두꺼비 남자
어린 여자들을 납치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죽어 마땅한 인간. 평범한 세 할머니가 살인 결심을 하게 될 정도로 아주 악질이며 무자비함.


“살인을 계획한다면 한 팀으로 삼고 싶은 이들을 생각하며 썼다.”
자신의 아픔을 거울삼아 남에게 다정함을 발할 줄 아는 이들의 살인법

『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로 마음먹는 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흔 살이 넘은 노인들이다. 만약 사건이 벌어진다면 용의선상의 맨 마지막으로 밀려날 듯한 이들은 밤에 눈도 침침하고 가만히 정차한 차에 올라타는 것도 힘겹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에게는 그 긴 세월을 겪고도 결코 개운히 잊어버리지 못할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살인을 계획하고 그것을 위한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그 아픈 기억들은 수시로 끼어들어 이들을 방해하고 괴롭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경험이 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사려 깊은 동료이자 오히려 탄탄한 살인팀으로 만들어준다.

대프니가 울음을 터뜨리려는 게 눈에 보였고, 대프니가 울면 나도 울 것만 같았다. 내 울음은 늘 그런 식이었다. 눈물이 몸안에서 대기하고 있고 나는 으레 그걸 억누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슬퍼하기 시작하면 그걸로 상황 종료였다. 말 그대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정신 차려, 그럴 때마다 헨리가 말했다. 못하겠어, 사방에 마음이 흩어져 모이질 못하는걸, 나는 늘 그렇게 답하고 싶었다. (본문 11p)

그건 간밤에 재워주고 곁에 앉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인사 같았다. 대가로 뭔가 보답해야 한다고 느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정보를 무시하고 아이가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았다는 듯 굴어 취약해진 기분이 들지 않게 해야 할지, 아니면 방금 들은 말을 받아들이고 그걸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몇 초 없었고 나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누군가 더 물어봐주고 관심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말을 꺼냈는데 굳은 침묵만 돌아올 때의 기분이 얼마나 끔찍한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본문 116p)

작가 로절린드 스톱스는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은 살인을 계획한다면 한 팀으로 삼고 싶은, 내가 알아온 모든 여성을 생각하며, 또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썼다. 당신은 자신의 진가를 알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 소설은 실제로 써먹을 수 있게 확실하고 실용적인, 혹은 기발한 살인법을 제공하진 않는다. 다만 우리 자신이 정말 살인을 결심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그 동기와 동력은 무엇일지, 그 큰일을 감행할 자기 자신은 어떤 경험과 가능성으로 이뤄진 존재인지에 대해 한번쯤 사유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살인이라는 행위를 단어 그대로 보지 않고 좀더 폭넓게 해석한다면, 긴 세월 자신을 옭아맨 무언가를 끊어내고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더욱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따뜻하게 품어 그려내는 스토리텔러이자
반전 매력을 지닌 스릴러 작가, 로절린드 스톱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로절린드 스톱스는 64세에 첫 장편소설을 출간하며 이름을 알린 작가다. 장성한 자녀 다섯과 손자녀 셋을 두었고, 평소 수많은 사람과 강아지에 둘러싸여 생활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수년간 장애아동 및 그 가족들을 위해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정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긴장감 넘치고 촘촘한 스릴러물을 탄생시키며 깊이 있고 다채로운 작가적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듦과 장애를 소재로 한 데뷔작 『그녀가 알았던 낯선 사람』, 세 노년 여성의 살인 이야기를 그린 『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에 이어 또 어떤 울림이 있는 작품을 선보일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노년 작가다.

구매가격 : 11,600 원

하객 명단

도서정보 : 루시 폴리 | 2023-07-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고립된 섬, 한 구의 시체, 용의자는 참석자 전원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하는 자, 누구인가?

★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뉴욕 타임스> 선정 올해의 스릴러
★ 리즈 위더스푼 북클럽 선정 도서
★ 굿리즈 초이스 어워즈 수상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애거사 크리스티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 루시 폴리의 신작 『하객 명단』(2020)이 출간되었다. 루시 폴리는 첫번째 추리 스릴러 소설인 『헌팅 파티The Hunting Party』(2019)가 <선데이 타임스>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후더닛 스릴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으며 이어 발표한 『하객 명단』이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뉴욕 타임스> 올해의 스릴러에 선정되며 그 입지를 굳건히 했다. 27주간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킨 『하객 명단』은 고전적인 후더닛과 밀실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심리 서스펜스적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 읽는 재미를 더한 작품이다.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되는 이 소설은, 아일랜드 연안의 한 외딴섬을 배경으로 호화로운 결혼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예측을 거듭하게 되지만, 그 예측은 모두 틀렸다”는 리뷰가 보여주듯 거듭되는 반전이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각자의 비밀을 품은 인물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강력한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힘있게 나아간다.


외딴섬으로부터 도착한 한 통의 초대장
핏빛 맹세가 울려퍼지는 이곳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작품의 배경은 청록색 바다와 궁전 같은 성, 불길한 늪지와 묘지가 공존하는 아일랜드 연안의 외딴섬, 이니시 안 앰플로라. 대자연의 절경을 만끽하기에 앞서, 불길한 새의 번뜩이는 눈과 불어닥치는 강풍이 당신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토탄으로 뒤덮인 지표면 아래엔 과거에 벌어졌던 대학살로 인해 버려진 시체들이 가득하다. 괴기하고도 아름다운 이 섬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이 열린다. 결혼식 장소로 이 섬을 선택한 비상한 주인공들은 <밤중에 살아남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셀러브리티가 된 윌과 온라인 잡지사 <다운로드>의 대표인 줄스다. 두 사람은 웨딩플래너와 함께 이곳을 끝내주는 파티 장소로 변신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내 거친 물길을 가르며 ‘하객 명단’ 속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섬으로 모여든다.

작품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포함해 (등장 순서대로) 웨딩플래너 이파, 부부 동반 참석자 해나, 신부 줄스, 신랑 들러리 조노, 신부 들러리 올리비아, 신랑 윌의 시점까지 총 7개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진행된다. 하객들은 상기된 분위기에 맞춰 웃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다. 신부 줄스는 최근 이상한 편지를 받았다. “그와 결혼하지 마.” 평소 짓궂은 악성댓글에도 개의치 않는 그녀지만 우편함으로 배달된 이 편지는 어쩐지 섬에 온 이후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줄스의 오랜 친구인 찰리의 아내로 참여한 해나는 섬에서 찰리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씁쓸해한다. 남편 찰리는 속도 모른 채 줄스와 선 넘는 애정표현을 해대고, 윌의 사립학교 동창 무리와 어울린다. 소외감을 느끼는 해나 앞에 우연히 줄스의 이부동생인 올리비아가 나타나는데, 둘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친근함을 느낀다. 한편 올리비아는 남자친구에게 차인 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줄스는 언제나처럼 올리비아와는 사뭇 다른 완벽한 모습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만 올리비아는 그런 언니의 강박적인 태도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과 화려한 드레스도 불편하기만 하다. 한편, 윌의 오랜 친구이자 사립학교 동창 중 한 명인 조노는 실수로 결혼식에서 입어야 했던 정장을 육지에 두고 온다. 언제나처럼 윌에게 아부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최근 시작한 위스키 사업에 대해 허황된 이야기를 떠벌리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꾸며낸 것처럼 과장되고 어색하기만 하다. 말하지 못할 비밀이라도 안고 있는 사람처럼.

파티가 시작되자 이들 사이 숨겨왔던 질투와 증오, 그리고 과거의 추악한 비밀들이 하나둘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차일 아래 불길한 기운을 드리운다. 결혼식 당일,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레 정전이 일어나고, 숨막히는 어둠을 가르며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고립된 섬, 끔찍하게 살해된 시체, 그리고 용의자는 이 섬에 발을 디딘 모든 사람이다.


탄탄한 구성, 흥미로운 소재, 섬뜩한 심리 묘사
가장 현대적인 애거사 크리스티식 추리 스릴러

『하객 명단』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즐겨 읽던 추리 스릴러 독자라면 친숙하게 느낄 ‘밀실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은 전세 선박을 타야만 출입할 수 있는, 그마저도 거친 파도를 넘어 힘겹게 오가야 하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이 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선장 매티나 웨딩플래너 이파 같은 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물에게 이곳은 완전히 낯선 공간이다. 오랜 친구, 동창, 가족…… 각자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속내를 숨긴 채 파티를 즐기던 중,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루시 폴리는 정석적인 플롯 안에서 견고하고 꼼꼼한 퍼즐을 구현해내고, “완벽한 속도로”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독자는 질문한다. 살해당한 자는 누구인가? 누가, 왜, 그자를 죽였는가? 허나 “규율을 가장 존중하는 이들일수록 규율을 깨는 데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하객 명단』은 익숙한 듯 느껴지는 구조를 변주하며 독자의 예상을 배반하고, 곳곳에 흥미로운 소재와 요소를 배치하면서 안정적인 필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간, 이름, 신분으로 구성되어 마치 진술서처럼 짜인 장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시간의 간극이 좁혀지며 점차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구성은 집중도를 높인다. 불법 촬영, 학교 폭력, 자극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의 문제적이고 시의적인 소재들은 이야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다양한 시점으로 구사되는 탁월한 심리 묘사 역시 압도적이다. 휴가지에 챙겨갈 한 권의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으스스한 ‘하객 명단’에 이름을 올려보는 건 어떤가. 단숨에 ‘가장 현대적인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찬사를 납득하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1,900 원

신의 숨겨진 얼굴

도서정보 : 후지사키 쇼 | 202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

“선생님이 살인을 저지르다니 말도 안 돼…….”
과연 그는 완벽한 교육자인가, 잔혹한 범죄자인가

신에 빗대어 이야기할 만큼 완벽한 교육자였던 쓰보이 세이조가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비통하게 이루어지던 장례식 경야. 동료 교사와 제자, 그의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던 세입자와 이웃 들은 고인을 추억하던 중에 그가 어마무시한 범죄자가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살의의 대담』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 후지사키 쇼의 데뷔작 『신의 숨겨진 얼굴』이 출간되었다. 제2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신의 숨겨진 얼굴』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것같이 완벽해 보이는 교육자가 사망하면서 장례식 경야에서 그를 추억하던 조문객들이 실은 그가 범죄자가 아닐지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조문객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인물의 모습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예상치 못한 반전과 재미를 선보인다.

●그의 진정한 모습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참교육자. 진정한 스승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교육자 쓰보이 세이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장례식장에는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수의 조문객이 찾아온다. 친자식만큼이나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에게도 열과 성을 다하던 그의 생전 모습을 조문객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완벽한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학생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쓰보이의 딸 하루미, 쓰보이의 제자이자 하루미의 동급생으로, 쓰보이의 가르침 덕에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던 사이키, 쓰보이의 동료 교사로 그와 정반대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지만 제법 친분을 유지하던 네기시, 쓰보이 옆집에 살면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주부 고무라, 쓰보이의 제자이자 그가 운영하던 연립주택의 세입자로 학창 시절이나 졸업한 이후나 쓰보이에게 신세를 졌던 아유카와, 역시 연립주택의 세입자로 무명 개그맨인 데라시마 등, 가까웠던 조문객들의 과거 회상을 통해 그가 숨겨왔던 다양한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로 치부했던, 혹은 그동안 몰랐던 사소한 연결점이 밝혀지면서, 쓰보이는 이내 교활한 이중인격자, 태연한 사이코패스, 냉혹한 살인마로 변모한다. 한번 뻗어나간 생각의 가지는 확장되어 걷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영락없는 참교육자였던 쓰보이의 지난 모습들이 살인마의 모습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었다고 생각하면, 평소의 한없이 자상했던 모습만큼 충격은 배가된다. 과연 그는 진정 살인마인 것일까?

●한계점을 알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후지사키 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요양사 자격을 취득하는가 하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집필해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여 작가 데뷔를 이루어냈다. 『신의 숨겨진 얼굴』이 바로 그 작품이다. 사람의 이미지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각도로 변화한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장례식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곱 명의 화자의 입을 빌려 고인인 쓰보이 세이조의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리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이제는 운명을 달리해 어떤 주장에도 반박할 수 없는 고인이기에, 조문객들의 주장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한계점을 모르고 내달린다. 이들이 겪은 생생한 추억들은 이중 삼중의 반전을 선사하며 마지막에는 경악할 만한 진상을 쏟아낸다. 복선과 반전의 진수를 선사했던 『살의의 대담』처럼 『신의 숨겨진 얼굴』 역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복선과, 차근차근 쌓아 올려진 이야기를 한 번에 무너뜨리는 반전들이 일품이다. 또한 자신의 독특한 이력을 『살의의 대담』에서 십분 활용했던 것처럼, 무명 개그맨으로 등장하는 데라시마 유라는 인물을 통해 실제 무명 개그맨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인위적인 재미와 희열은 후지사키 쇼를 여타의 미스터리 작가들과 구분시킨다. 작정하고 철저히 흥미 본위의 엔터테인먼트적인 미스터리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신의 숨겨진 얼굴』과 『살의의 대담』을 통해 후지사키 쇼는 벌써 작품 활동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매가격 : 10,500 원

해부학자 (세계문학전집 067)

도서정보 : 페데리코 안다아시 | 202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강박관념인 여성의 쾌락을
은밀하게 해부한 작품.” _ 라우라 에스키벨

기발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아르헨티나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실존 인물인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면서도 위험한 ‘발견’을 그린 소설이다. 여성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신체기관인 클리토리스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악마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견을 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해부학자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안다아시는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 재생산해내고, 해부학자의 발견을 ‘이단’으로 규정한 가톨릭 권력을 조롱함으로써 중세의 음울하고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종교적 금기, 인간의 무지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댄다. 이 작품은 1997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여성의 몸에서 발견한 천국과 지옥의 열쇠,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소설은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라는 감탄문으로 시작된다.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이 발견한 실체를 성이 같은 탐험가가 찾아낸 ‘아메리카’에 비견했다. 탐험가의 ‘아메리카’에 비하면 해부학자의 아메리카는 한량없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한층 도발적이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한번쯤 꿈꾸는 것으로,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열쇠이며 여성의 변덕스러운 의지를 정복하는 도구이다. 해부학자는 자신의 아메리카에 ‘비너스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이 바로 ‘클리토리스’이다.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은 두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가 흠모했던 베네치아의 고급 창녀 모나 소피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성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정결하고 신심이 깊은 젊은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의 몸에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여자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기관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발견은 악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가톨릭 신앙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결국 마테오 콜롬보는 이단죄, 위증죄, 신성모독죄, 미신 숭배죄, 악마 숭배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해부학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과 그것을 기록한 책 『해부학에 관해』에 대한 교회의 격렬한 반응과 종교재판정에서 행한 마테오의 변론이다. 이 변론에서 안다아시는 르네상스 시대를 꿰뚫는 방대한 지식과 내공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체에 대한 인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경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펼쳐지고, 여자의 육체에 대한 해부학적 설명이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연결된다. 또한 마테오 콜롬보를 내세워 중세의 서슬 퍼런 종교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하기도 한다.

구매가격 : 7,400 원

인공호흡 (세계문학전집 045)

도서정보 : 리카르도 피글리아 | 202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보르헤스를 잇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라틴아메리카에 불어온 거대한 역사적 변환 가운데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페론주의자였던 아버지로 인해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을 목격하며 성장했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쿠바 혁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변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가던 때였다. 또한 1970~80년대에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군사 정권의 독재 아래 신음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피글리아는 문학이 사회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문학을 더 근원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다. 즉 문학을 통해 정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문학 자체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광기의 시대에서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과 나아갈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피글리아 작품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다양한 텍스트를 다른 각도에서 읽고 사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와 새로운 문학 형식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1975년 출간된 『가명』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로베르토 아를트의 미간행 원고를 둘러싼 문제를 풀어가면서 아를트 문학의 핵심 주제인 돈과 허구의 문제를 드러낸다. 아르헨티나 최대의 문학상인 플라네타상 수상작인 『타버린 돈』(1997)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신탁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밝혀내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 관점과 경향으로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충실한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보르헤스 이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대표 작가로 등극했다.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인공호흡』은 1977년에서 1979년 사이에 쓰여 19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기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세력이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인권 탄압 사건인 ‘추악한 전쟁’을 자행하던 때였다. 군사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수만 명의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납치, 고문, 암살했으며, 정치 세력 탄압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숨은 저항의식까지 씻어버린다는 의도로 시민들의 정신적 영역까지 침범했다. 이에 따른 문화 말살 정책으로 각종 검열과 검문이 강화되어, 많은 지식인과 작가들은 해외 망명의 길을 택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살벌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목숨을 유지하면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기존의 문학 형식과 언어를 해체하고, 과학소설·탐정소설·메타픽션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서술전략을 통해 작품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공호흡』의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 역시 군부의 혹독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의 주류적 견해였다.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역사의 신음, 혹은 패배자들의 목소리

『인공호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주인공 에밀리오 렌시(이 사람은 피글리아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로, 작가의 ‘알터 에고(alter ego)’의 역할을 한다)가 외삼촌인 마르셀로 마기의 삶에 얽힌 비밀을 소재로 한 첫 소설 『현실의 지루함』(1976)을 출간한 후, 렌시와 마기 사이에 이루어진 서신 교환으로 시작된다. 당시 변방인 콩코르디아에서 은거하던 마기는 19세기의 애국자인 엔리케 오소리오의 모순적인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엔리케 오소리오는 19세기 아르헨티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지만, 역사적 운명 탓에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인물이다. 마기는 오소리오의 삶에 “시대의 모든 역사적 진실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불행과 오욕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무엇을 드러내주는지” 포착하기 위해 그의 전기를 쓰고자 한다. 즉 그에게서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다 파멸을 맞은 자유 지식인의 운명을 보고, 그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족적을 풀어나감으로써 아르헨티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렌시와 편지를 교환하며 렌시에게 ‘역사적 시선’을 가질 것을 당부하던 마기는 자신의 장인이자 엔리케 오소리오의 손자인 루시아노 오소리오를 만나보라고 렌시에게 부탁한다. 상원의원이었던 루시아노 오소리오 역시 아르헨티나 역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독립 혁명 기념식장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괴한에게 저격을 당해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마기에게 엔리케 오소리오의 원고 등 그가 남긴 족적을 전해주며 역사의 비밀을 밝히라고 한 사람이 바로 루시아노 오소리오이다. 작가는 전신마비 상태로 독방에 갇혀 환각 증세를 보이는 루시아노를 통해 폭력으로 사지가 절단된 아르헨티나의 현재를 암시하면서, 그의 환각적인 독백을 통해 ‘역사적 시선’이 어떤 것인지 드러낸다.
뒤이어 마기가 가지고 있는 엔리케 오소리오의 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독재자인 로사스의 개인 비서로서 일하면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비밀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망명길에 올랐던 엔리케는 뉴욕에 정착하여 ‘유토피아’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 즉 1979년(이 시기는 렌시와 마기가 편지를 교환하는 시점과 일치한다)의 아르헨티나와 만나는 것이 올바른 유토피아적인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과거를 부정당하고 현재의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소설을 통해 그는 미래로 자신의 열망을 보내 미래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미래 시대의 사람들이 주고받은, 맥락이 닿지 않는 편지들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이어진다. 가슴에 송신장치가 박혀 있어 계속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광경을 본다고 주장하는 여인의 편지, 오빠의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는 여학생의 편지, 미사 도중에 강도를 당한 남자의 하소연, 엔리케 오소리오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나열된다. 여기에는 상원의원에게 조카가 찾아갈 거라고 알리는 마르셀로의 편지와 외삼촌에게 곧 찾아갈 것을 약속하는 렌시의 편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 검열관으로 추정되는 아로세나라는 인물이 개입해 편지에 숨겨진 비밀 메시지를 판독해내려고 노력한다. 그의 등장은 세대를 거듭하도록 시대의 폭력(독재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보여준다.

광기의 시대, 폭력의 사회를 향한 인공호흡

제1부를 통해 ‘역사적 시선’을 제시했다면, 작가는 제2부에서 ‘문학적 시선’으로 초점을 이동하여 현실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문학의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2부는 렌시가 마기를 만나기 위해 콩코르디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외삼촌은 ‘부재’ 상태이며,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폴란드 망명자인 타르뎁스키가 마기를 대신하여 렌시를 맞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 문학 전통과 유럽주의(유럽의 모델을 따라 아르헨티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눈다. 아르헨티나 작가 도밍고 사르미엔토의 『파쿤도』에서부터 시작되어 1880년대 ‘정통 유럽의 관점’을 표방하며 아르헨티나 문화계를 쥐락펴락했던 폴 그루사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출발부터 잘못된 유럽주의가 아르헨티나 문학을 심각한 병폐에 빠뜨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올 것이라고 했던 마기가 도착하지 않는 가운데, 렌시와 타르뎁스키는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는데, 타르뎁스키는 자신이 아르헨티나로 망명하는 계기가 되었던 우연한 발견, 즉 아돌프 히틀러와 카프카의 (가상적)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르뎁스키는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총애를 받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사서의 착오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게 되었고 그 책의 주석을 통해 무명 화가이자 병역기피자였던 히틀러가 프라하에 숨어 있을 당시 아르코스 카페에 자주 들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카페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에도 언급된 것을 떠올린 타르뎁스키는 두 사람이 1910년 1월 프라하에서 조우했음을 알게 된다. 카프카는 당시 가진 것이라고는 ‘말과 계획’밖에 없던 히틀러에게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 하인들, 노예들의 절대적 주인, 즉 총통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희미하게 엿볼 수 있었다고 일기에 고백했다.
타르뎁스키는 카프카의 『소송』에서 그려지는 공포의 세계가 아르코스 카페에서 만난 무명 화가 히틀러가 장차 하고자 했던 바를 그보다 앞서 예측한 것이라고 말하며, 카프카의 『소송』과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폭력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하나의 선 위에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이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기도 하고, 상원의원 루시아노 오소리오가 렌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하고, ‘추악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르헨티나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이기도 하다.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역시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렌시가 기다리는 외삼촌 마르셀로 마기는 결국 돌아오지 않은 채 ‘실종’되고, 마기가 하고자 했던 엔리케 오소리오에 대한 연구는 렌시의 몫으로 남겨진다. 엔리케 오소리오, 루시아노 오소리오, 마르셀로 마기는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즉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전신불수의 상태인 아르헨티나에 생명을 부여하는 ‘인공호흡’은 렌시에 의해 계속되는 것이다.

구매가격 : 9,100 원

3인의 명탐정

도서정보 : 레오 부르스 | 2023-06-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또 그놈의 밀실 사건이로군.”
복선과 치밀한 플롯, 교묘한 미스디렉션과 깜짝 결말까지
고전 미스터리를 가장 충실히 패러디한 명작, 국내 첫 출간!

서스턴 저택의 주말 파티에 초대를 받은 타운젠드와 손님들은 탐정소설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벌인다. 그런데 밤이 깊고 모임이 막을 내릴 무렵,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밀실 살인 사건이 실제로 눈앞에서 발생한다!
혼란에 빠진 저택을 찾아온 세 명의 명탐정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사건 조사를 시작한다. 가까이서 수사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타운젠드는 마치 왓슨 박사가 된 기분에 흥분해버리고 마는데……. 과연 세 명탐정 중 누가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영국 미스터리의 황금시대가 완전히 무르익은 시기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 레오 브루스의 『3인의 명탐정』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3인의 명탐정』은 브루스의 탐정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복선과 치밀한 플롯, 교묘한 미스디렉션,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범행의 과정과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깜짝 결말 등, 이미 잘 알려진 고전 추리소설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레오 브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르 법칙을 능숙하게 활용한 유머 감각을 십분 발휘해 기존의 클리셰를 비틀면서 유쾌한 반전으로 독자를 이끈다.
고전 미스터리의 풍요 속에 차려진 패러디 성찬
『3인의 명탐정』에서 화자인 타운젠드는 지인인 서스턴 박사의 주말 파티에 초대를 받아 그의 저택을 방문한다. 그런데 밤이 깊어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 갑작스레 서스턴 부인이 자택에서 살해당하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이 경찰에 알려지기 무섭게 서스턴 저택으로 속속 모여든 세 명의 명탐정은 제각기 개성 있는 방법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추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운젠드는 그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그들에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하며, 때로는 의외의 모습에 실망한다.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명탐정은 영미 추리소설 황금기의 유명 탐정들을 패러디한 인물로, 각각 도러시 세이어스의 ‘피터 윔지 경’,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G. K.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를 원본으로 삼고 있다. 레오 브루스는 그들의 외모만이 아니라 말투, 행동, 사고방식과 관심사, 그로부터 비롯하는 추리 방식까지 원본을 훌륭하게 모방해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해결했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화가 삽입되는 등, 세 명탐정과 친숙한 독자일수록 웃음을 터뜨릴 만한 재미 요소가 배가된다.
작중 등장하는 밀실 트릭에 대한 추론과, 추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심도 있는 이해도 주목할 만하다. 레오 브루스가 추리소설 작가로서 활동하던 때는 이미 영국의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이 거의 완성된 시기로, 『철교 살인 사건』의 로널드 녹스가 만든 ‘녹스의 탐정소설 10계’나 S. S. 밴 다인의 ‘탐정소설 작법 20법칙’처럼 정통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규칙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레오 브루스는 화자 타운젠드의 입을 빌려서‘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범인 찾기’에 경도된 당시의 미스터리 장르에서 발견되는 맹점과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장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곳곳에서 미스터리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찰의 흔적이 드러난다.
엘릭시르의‘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이번에 출간된 레오 브루스의 『3인의 명탐정』은 ‘미스터리 책장’시리즈의 36번째 작품이다.
2012년 첫 출간된 ‘미스터리 책장’은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 전집이다. 이전까지 일서 중역과 축약본으로밖에 읽을 수 없었던 전설의 미스터리, 미처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믿을 수 있는 전문 번역가의 번역과 멋진 장정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본격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스릴러, 유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힘써왔다.
지난해 ‘미스터리 책장’은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리부트되었다. 엘릭시르는 미스터리 초심자부터 장르 문법에 익숙한 마니아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펼쳐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채로운 미스터리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구매가격 : 11,2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