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6대 비극
도서정보 : 윌리엄 셰익스피어 | 2023-04-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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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다양한 고전 문학 가운데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나라와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명작이며, 한 편 한 편모두가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고유한 삶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진 ‘햄릿’ · ‘오셀로’ · ‘리어왕’ · ‘맥베스’ ‘아테네의 타이먼’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바로 이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이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작품들 안에는 시대를 아파하는 셰익스피어의 우울한 심사와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세계관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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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8대 희극
도서정보 : 윌리엄 셰익스피어 | 2023-04-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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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희극은, 지적이며 실질적인 풍속 희극과 정적이며 몽환적인 낭만 희극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독자적으로 개척한 것은 두 요소를 완전히 융합시킨 <한여름 밤의 꿈>을 기점으로 하는 낭만 희극이다. 셰익스피어 희극의 진수는 풍자보다도 너그러운 웃음을 담은 낭만에 있다 하겠다. 극에 있어서 행위는 등장인물의 내부에서부터 발생하는데 대하여 극 구성은 작가가 외부에서 부여하는 것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행위의 추구가 비극의 성립 조건이라면, 다수의 등장인물을 움직이는 교묘한 구성은 희극의 필수조건이다.
구매가격 : 4,000 원
특성 없는 남자 1 (세계문학전집 225)
도서정보 : 로베르트 무질 | 2023-04-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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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개인은 해체되고 삶은 추상화된 현대, 그 몰락을 사유하는 한 인간의 서사시적 행보
일차대전 발발 1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무대로 한 『특성 없는 남자』는 세기 전환기에 새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이들의 드라마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무질의 역작이다. 기계화된 합리적 이성이 개별 인간을 소외시키는 새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나가는 사유의 모험이자, 자연과학자의 분석적인 눈으로 파편화된 인간의 실존을 문제 삼는 한 편의 문학적 사고 실험인 셈이다. 오늘날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모더니즘 문학의 3대 정전으로 손꼽히며 쿤데라, 바흐만, 쿳시 등을 비롯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무질이 20여 년 넘게 집필에 매달려 있던 이 미완의 작품은 무엇보다 그 방대한 분량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유고의 내용을 제하고, 생전에 작가의 손을 거쳐 출간된 3부 38장까지를 완역했다. 맥락을 명쾌하게 짚어낸 세심하고 유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로 작품 속 풍성한 사유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왔다. ★ <르몽드> 선정 ‘20세기 책 100선’ ★ 독문학 전문가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
‘세계의 정신적 극복’을 꿈꾼 미완의 기획
한 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독일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어 소설을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제치고 첫자리를 차지한 것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다. 이러한 평가에 걸맞게 무질은 오늘날 더욱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전집이 새로 발간되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도 한결 높아졌다. 작가로서 생전에 충분히 받지 못한 평가와 인정을 이제는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특성 없는 남자』의 배경은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하고 새로이 ‘현대’가 도래한 20세기 초 유럽(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일명 ‘카카니엔’)이다. 실증주의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은 분해 가능한 요소들의 합으로 해체되어 통계상의 수치로 환원되고, 중요한 일도 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관해 종합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각자 자신의 관점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이러한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의 정신적 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무질은 20여 년을 매달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으나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1919년부터 ‘스파이’ ‘구원자’ ‘쌍둥이 남매’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집필을 시도한 끝에 1930년 『특성 없는 남자』 1·2부, 이어서 1932년 집필중이던 3부의 앞부분을 출간했고 이때만 해도 머지않아 작품을 끝맺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집권과 잇따른 이차대전이 작가의 삶과 작품의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시대의 소요 속에 소설의 방향성은 여러 번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정치적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다. 1938년 3부의 속권을 출간하기로 어렵게 결정하지만 미처 교정쇄를 다 확인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고 출판사도 망명길에 오르며 계획도 무산된다. 무질 역시 기존에 작성했던 스케치와 초고를 챙겨 스위스로 망명해 작업을 이어갔으나 출판 금지와 금서 지정으로 작가로서의 입지가 좁아진 탓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1942년 무질이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특성 없는 남자』는 1만 1천여 장에 달하는 유고를 남긴 미완의 소설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은 풍자가 아니라 확실한 공식이다. 고백이 아니라 풍자다. 심리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사상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쉬운 책도 어려운 책도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열할 필요 없이, 어떤 책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읽는 것이 최선이다. 작가인 나를 비롯해 타인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직접 읽기를 권한다.” _로베르트 무질
무질은 작품을 구상하던 단계에서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을 폐기하지 않고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간직했다. 비록 완성된 형태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작품에 관해 남긴 방대한 기록을 통해 그 방향성과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1926년 로베르트 무질은 “내가 표현하는 대항적 흐름, 세력 그리고 운동의 모든 총합이 바로 전쟁이었고, 전쟁일 수밖에 없었으며 여전히 그렇다”고 언급했다. 끝내 실현되지 못한 소설의 결말에 관해서는 “모든 노선은 전쟁으로 치닫는다”고도 썼다. 『특성 없는 남자』는 기계 이성의 힘이 최고조로 발현된 시대에 일차대전에 이어 이차대전의 전쟁을 불러온, 유럽 정신의 몰락과 문명의 야만을 예고하는 역사적 궤적이 담긴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개념으로 추상화된 현대의 삶을, 파편화된 이 세계의 무질서를 정신적으로 극복해내기 위한 대담하고 야심찬 기획으로 이 소설을 썼다.
사유하는 주인공, 에세이즘의 탄생
성(姓)도 없이 시종일관 이름으로만 불리는 주인공 울리히에겐 ‘특성 없는 남자’라는 별명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개성이 없다는 말과 같아 보이지만 실제 맥락상의 의미는 정반대에 가까워서, 식별 가능한 특성이 없어 유형화시킬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개별 인간이 여러 속성과 기능의 총합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분해되고 조립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존재는 유별나다고 여겨진다. 사실 울리히는 현대적인 삶에 요구되는 모든 능력을 전부 갖춘 탓에 어떠한 가능성이든 내포하고 있는, 확정되지 않은 존재다. 그 의미도 애매한 ‘위대한 남자’가 되고 싶어 군인, 공학자의 길을 거쳤고 지금은 수학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학적 사고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인데, 수학의 정밀한 눈으로 삶을 꿰뚫어보고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과 다른 식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기 삶에서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른바 ‘삶으로부터 일 년 동안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아들을 염려하는 현실적인 아버지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살필 겨를도 없이 여러 유력 인사가 조직한 애국대운동에 관여하게 된다. 이 운동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줄거리를 구성하는 사건으로 작용한다. 이웃나라 독일에서 빌헬름 2세의 즉위 삼십 주년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대항적인 의미에서 더욱 성대하게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칠십 주년을 기념하려는 의도를 담은 까닭에 ‘평행운동’으로 불리는 운동이다. 『특성 없는 남자』가 1920년대 들어 집필되기 시작한 작품이고 전쟁의 경험을 계기로 쓰인 작품임을 감안하면, 일차대전으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해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시점에서 제국과 황제의 평화와 영광을 기리는 ‘평행운동’을 서사의 주축으로 삼은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이 운동이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품 속에 담긴 풍자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온갖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장은 실상 비슷비슷한 내용 일색이고, 사람들은 회의를 보람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무엇이 됐든 상관없이 결론 내린다. 어마어마하게 밀려드는 민중의 소망을 정리한 두 개의 서류철에도 지표나 방향이 없이 각각 ‘○○로 돌아가자’와 ‘○○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시대는 나아가야 할 곳을 잃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옛것으로 회귀하거나 진보로 나아가기를 부르짖는다. 누구도 제대로 된 상이 없는 채로 각자 현상의 일면만 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울리히는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다.
“진리를 원하는 사람은 학자가 되고, 주관성의 놀이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아마 작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_1권, 제2부 393쪽
그러다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을 때 울리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아니면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리고 3부에서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고향에서 잊고 있던 ‘샴쌍둥이’ 여동생 아가테를 만나고 나서는 둘만의 독자적인 목표점인 ‘다른 상태’의 도덕적 삶, ‘천년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특성 없는 남자』은 서사나 사건 위주의 전통적인 소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주인공 울리히와 그 주변 인물들의 내적 사유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현실 속에서 사건은 추상적, 간접적, 파편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인데 작가가 여전히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개나 하나의 단일한 서사에 의존한다면 시대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무질은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취한다. 차례에서 보다시피, 장면 단위로 소제목을 상세하게 달아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를 미리 알려주는가 하면, 2부 28장 ‘건너뛰어도 되는 장’이나 68장 ‘여담’에서처럼 뛰어넘고 읽어도 되는 장을 구분해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서사의 진행에 상관없이 주인공 울리히가 어떻게 행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주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이 소설을 진행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이 인물들의 내적 독백이 담긴 문장들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세계의 무질서, 유폐당하고 분열된 개인의 실존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런 에세이적 성격은 사건보다 사유의 흐름이 중요한 이른바 ‘사유 소설’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발한다. 작품에서 에세이를 “하나의 대상을 여러 절(節)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삶과 세계의 모습도 에세이를 닮아야 한다고 한 대목이 있다.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에세이야말로 개별적인 것의 가치를 담보하면서도 총체성에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기 위한 작가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민족 이중 국가체제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배경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세계의 합일을 꿈꾸던 인물들의 여정을 다룬 내용 면에서도, 기존 소설 형식의 한계를 극복한 독창적인 에세이즘적 글쓰기를 택한 구조 면에서도, 내용과 형식 사이의 합일을 도모해나가는 이 과정에서 무질은 오늘날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을 남겼다. 같은 장을 스무 번씩 고쳐 쓸 정도로 자신의 현실과 일치하는 소설을 쓰고자 집요하게 노력한 무질과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남게 된 울리히의 지치지 않는 탐구가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안타깝게도 사유하는 인간만큼 문학작품 속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했으나, 무질은 이 소설을 통해 이를 획기적으로 입증해냈다.
마지막으로 150여 권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온 박종대 번역가는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핵심 인물에 대한 소개를 곁들인 상세한 해설을 3권 말미에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독일에서 ‘무질의 노벨레’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1996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논문을 마저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이 번역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이제야 학문과 연결된 삶의 한 시기를 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질을 떠나보낼 수 있을 듯하다”고 밝힌 개인적 소회에서 보다시피, 번역가는 무질의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의 한국어판을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내놓기까지 꼬박 십 년간 이 책 번역에 매진했다.
구매가격 : 14,000 원
특성 없는 남자 2 (세계문학전집 226)
도서정보 : 로베르트 무질 | 2023-04-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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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개인은 해체되고 삶은 추상화된 현대, 그 몰락을 사유하는 한 인간의 서사시적 행보
일차대전 발발 1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무대로 한 『특성 없는 남자』는 세기 전환기에 새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이들의 드라마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무질의 역작이다. 기계화된 합리적 이성이 개별 인간을 소외시키는 새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나가는 사유의 모험이자, 자연과학자의 분석적인 눈으로 파편화된 인간의 실존을 문제 삼는 한 편의 문학적 사고 실험인 셈이다. 오늘날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모더니즘 문학의 3대 정전으로 손꼽히며 쿤데라, 바흐만, 쿳시 등을 비롯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무질이 20여 년 넘게 집필에 매달려 있던 이 미완의 작품은 무엇보다 그 방대한 분량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유고의 내용을 제하고, 생전에 작가의 손을 거쳐 출간된 3부 38장까지를 완역했다. 맥락을 명쾌하게 짚어낸 세심하고 유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로 작품 속 풍성한 사유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왔다. ★ <르몽드> 선정 ‘20세기 책 100선’ ★ 독문학 전문가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
‘세계의 정신적 극복’을 꿈꾼 미완의 기획
한 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독일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어 소설을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제치고 첫자리를 차지한 것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다. 이러한 평가에 걸맞게 무질은 오늘날 더욱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전집이 새로 발간되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도 한결 높아졌다. 작가로서 생전에 충분히 받지 못한 평가와 인정을 이제는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특성 없는 남자』의 배경은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하고 새로이 ‘현대’가 도래한 20세기 초 유럽(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일명 ‘카카니엔’)이다. 실증주의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은 분해 가능한 요소들의 합으로 해체되어 통계상의 수치로 환원되고, 중요한 일도 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관해 종합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각자 자신의 관점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이러한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의 정신적 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무질은 20여 년을 매달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으나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1919년부터 ‘스파이’ ‘구원자’ ‘쌍둥이 남매’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집필을 시도한 끝에 1930년 『특성 없는 남자』 1·2부, 이어서 1932년 집필중이던 3부의 앞부분을 출간했고 이때만 해도 머지않아 작품을 끝맺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집권과 잇따른 이차대전이 작가의 삶과 작품의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시대의 소요 속에 소설의 방향성은 여러 번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정치적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다. 1938년 3부의 속권을 출간하기로 어렵게 결정하지만 미처 교정쇄를 다 확인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고 출판사도 망명길에 오르며 계획도 무산된다. 무질 역시 기존에 작성했던 스케치와 초고를 챙겨 스위스로 망명해 작업을 이어갔으나 출판 금지와 금서 지정으로 작가로서의 입지가 좁아진 탓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1942년 무질이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특성 없는 남자』는 1만 1천여 장에 달하는 유고를 남긴 미완의 소설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은 풍자가 아니라 확실한 공식이다. 고백이 아니라 풍자다. 심리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사상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쉬운 책도 어려운 책도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열할 필요 없이, 어떤 책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읽는 것이 최선이다. 작가인 나를 비롯해 타인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직접 읽기를 권한다.” _로베르트 무질
무질은 작품을 구상하던 단계에서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을 폐기하지 않고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간직했다. 비록 완성된 형태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작품에 관해 남긴 방대한 기록을 통해 그 방향성과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1926년 로베르트 무질은 “내가 표현하는 대항적 흐름, 세력 그리고 운동의 모든 총합이 바로 전쟁이었고, 전쟁일 수밖에 없었으며 여전히 그렇다”고 언급했다. 끝내 실현되지 못한 소설의 결말에 관해서는 “모든 노선은 전쟁으로 치닫는다”고도 썼다. 『특성 없는 남자』는 기계 이성의 힘이 최고조로 발현된 시대에 일차대전에 이어 이차대전의 전쟁을 불러온, 유럽 정신의 몰락과 문명의 야만을 예고하는 역사적 궤적이 담긴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개념으로 추상화된 현대의 삶을, 파편화된 이 세계의 무질서를 정신적으로 극복해내기 위한 대담하고 야심찬 기획으로 이 소설을 썼다.
사유하는 주인공, 에세이즘의 탄생
성(姓)도 없이 시종일관 이름으로만 불리는 주인공 울리히에겐 ‘특성 없는 남자’라는 별명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개성이 없다는 말과 같아 보이지만 실제 맥락상의 의미는 정반대에 가까워서, 식별 가능한 특성이 없어 유형화시킬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개별 인간이 여러 속성과 기능의 총합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분해되고 조립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존재는 유별나다고 여겨진다. 사실 울리히는 현대적인 삶에 요구되는 모든 능력을 전부 갖춘 탓에 어떠한 가능성이든 내포하고 있는, 확정되지 않은 존재다. 그 의미도 애매한 ‘위대한 남자’가 되고 싶어 군인, 공학자의 길을 거쳤고 지금은 수학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학적 사고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인데, 수학의 정밀한 눈으로 삶을 꿰뚫어보고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과 다른 식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기 삶에서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른바 ‘삶으로부터 일 년 동안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아들을 염려하는 현실적인 아버지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살필 겨를도 없이 여러 유력 인사가 조직한 애국대운동에 관여하게 된다. 이 운동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줄거리를 구성하는 사건으로 작용한다. 이웃나라 독일에서 빌헬름 2세의 즉위 삼십 주년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대항적인 의미에서 더욱 성대하게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칠십 주년을 기념하려는 의도를 담은 까닭에 ‘평행운동’으로 불리는 운동이다. 『특성 없는 남자』가 1920년대 들어 집필되기 시작한 작품이고 전쟁의 경험을 계기로 쓰인 작품임을 감안하면, 일차대전으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해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시점에서 제국과 황제의 평화와 영광을 기리는 ‘평행운동’을 서사의 주축으로 삼은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이 운동이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품 속에 담긴 풍자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온갖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장은 실상 비슷비슷한 내용 일색이고, 사람들은 회의를 보람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무엇이 됐든 상관없이 결론 내린다. 어마어마하게 밀려드는 민중의 소망을 정리한 두 개의 서류철에도 지표나 방향이 없이 각각 ‘○○로 돌아가자’와 ‘○○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시대는 나아가야 할 곳을 잃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옛것으로 회귀하거나 진보로 나아가기를 부르짖는다. 누구도 제대로 된 상이 없는 채로 각자 현상의 일면만 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울리히는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다.
“진리를 원하는 사람은 학자가 되고, 주관성의 놀이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아마 작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_1권, 제2부 393쪽
그러다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을 때 울리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아니면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리고 3부에서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고향에서 잊고 있던 ‘샴쌍둥이’ 여동생 아가테를 만나고 나서는 둘만의 독자적인 목표점인 ‘다른 상태’의 도덕적 삶, ‘천년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특성 없는 남자』은 서사나 사건 위주의 전통적인 소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주인공 울리히와 그 주변 인물들의 내적 사유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현실 속에서 사건은 추상적, 간접적, 파편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인데 작가가 여전히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개나 하나의 단일한 서사에 의존한다면 시대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무질은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취한다. 차례에서 보다시피, 장면 단위로 소제목을 상세하게 달아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를 미리 알려주는가 하면, 2부 28장 ‘건너뛰어도 되는 장’이나 68장 ‘여담’에서처럼 뛰어넘고 읽어도 되는 장을 구분해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서사의 진행에 상관없이 주인공 울리히가 어떻게 행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주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이 소설을 진행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이 인물들의 내적 독백이 담긴 문장들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세계의 무질서, 유폐당하고 분열된 개인의 실존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런 에세이적 성격은 사건보다 사유의 흐름이 중요한 이른바 ‘사유 소설’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발한다. 작품에서 에세이를 “하나의 대상을 여러 절(節)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삶과 세계의 모습도 에세이를 닮아야 한다고 한 대목이 있다.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에세이야말로 개별적인 것의 가치를 담보하면서도 총체성에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기 위한 작가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민족 이중 국가체제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배경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세계의 합일을 꿈꾸던 인물들의 여정을 다룬 내용 면에서도, 기존 소설 형식의 한계를 극복한 독창적인 에세이즘적 글쓰기를 택한 구조 면에서도, 내용과 형식 사이의 합일을 도모해나가는 이 과정에서 무질은 오늘날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을 남겼다. 같은 장을 스무 번씩 고쳐 쓸 정도로 자신의 현실과 일치하는 소설을 쓰고자 집요하게 노력한 무질과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남게 된 울리히의 지치지 않는 탐구가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안타깝게도 사유하는 인간만큼 문학작품 속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했으나, 무질은 이 소설을 통해 이를 획기적으로 입증해냈다.
마지막으로 150여 권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온 박종대 번역가는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핵심 인물에 대한 소개를 곁들인 상세한 해설을 3권 말미에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독일에서 ‘무질의 노벨레’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1996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논문을 마저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이 번역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이제야 학문과 연결된 삶의 한 시기를 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질을 떠나보낼 수 있을 듯하다”고 밝힌 개인적 소회에서 보다시피, 번역가는 무질의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의 한국어판을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내놓기까지 꼬박 십 년간 이 책 번역에 매진했다.
구매가격 : 14,000 원
특성 없는 남자 3 (세계문학전집 227)
도서정보 : 로베르트 무질 | 2023-04-2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개인은 해체되고 삶은 추상화된 현대, 그 몰락을 사유하는 한 인간의 서사시적 행보
일차대전 발발 1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무대로 한 『특성 없는 남자』는 세기 전환기에 새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이들의 드라마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무질의 역작이다. 기계화된 합리적 이성이 개별 인간을 소외시키는 새 시대 속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나가는 사유의 모험이자, 자연과학자의 분석적인 눈으로 파편화된 인간의 실존을 문제 삼는 한 편의 문학적 사고 실험인 셈이다. 오늘날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모더니즘 문학의 3대 정전으로 손꼽히며 쿤데라, 바흐만, 쿳시 등을 비롯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무질이 20여 년 넘게 집필에 매달려 있던 이 미완의 작품은 무엇보다 그 방대한 분량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유고의 내용을 제하고, 생전에 작가의 손을 거쳐 출간된 3부 38장까지를 완역했다. 맥락을 명쾌하게 짚어낸 세심하고 유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로 작품 속 풍성한 사유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왔다. ★ <르몽드> 선정 ‘20세기 책 100선’ ★ 독문학 전문가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
‘세계의 정신적 극복’을 꿈꾼 미완의 기획
한 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독일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어 소설을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여기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제치고 첫자리를 차지한 것이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다. 이러한 평가에 걸맞게 무질은 오늘날 더욱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전집이 새로 발간되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도 한결 높아졌다. 작가로서 생전에 충분히 받지 못한 평가와 인정을 이제는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특성 없는 남자』의 배경은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하고 새로이 ‘현대’가 도래한 20세기 초 유럽(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일명 ‘카카니엔’)이다. 실증주의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개인은 분해 가능한 요소들의 합으로 해체되어 통계상의 수치로 환원되고, 중요한 일도 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관해 종합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각자 자신의 관점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은 현대인의 이러한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의 정신적 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무질은 20여 년을 매달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으나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1919년부터 ‘스파이’ ‘구원자’ ‘쌍둥이 남매’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집필을 시도한 끝에 1930년 『특성 없는 남자』 1·2부, 이어서 1932년 집필중이던 3부의 앞부분을 출간했고 이때만 해도 머지않아 작품을 끝맺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나치의 집권과 잇따른 이차대전이 작가의 삶과 작품의 운명을 크게 바꿔놓았다. 시대의 소요 속에 소설의 방향성은 여러 번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정치적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다. 1938년 3부의 속권을 출간하기로 어렵게 결정하지만 미처 교정쇄를 다 확인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고 출판사도 망명길에 오르며 계획도 무산된다. 무질 역시 기존에 작성했던 스케치와 초고를 챙겨 스위스로 망명해 작업을 이어갔으나 출판 금지와 금서 지정으로 작가로서의 입지가 좁아진 탓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1942년 무질이 뇌졸중으로 사망하면서 『특성 없는 남자』는 1만 1천여 장에 달하는 유고를 남긴 미완의 소설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은 풍자가 아니라 확실한 공식이다. 고백이 아니라 풍자다. 심리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사상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쉬운 책도 어려운 책도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열할 필요 없이, 어떤 책인지 알고 싶다면 직접 읽는 것이 최선이다. 작가인 나를 비롯해 타인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직접 읽기를 권한다.” _로베르트 무질
무질은 작품을 구상하던 단계에서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 중 많은 부분을 폐기하지 않고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간직했다. 비록 완성된 형태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작품에 관해 남긴 방대한 기록을 통해 그 방향성과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1926년 로베르트 무질은 “내가 표현하는 대항적 흐름, 세력 그리고 운동의 모든 총합이 바로 전쟁이었고, 전쟁일 수밖에 없었으며 여전히 그렇다”고 언급했다. 끝내 실현되지 못한 소설의 결말에 관해서는 “모든 노선은 전쟁으로 치닫는다”고도 썼다. 『특성 없는 남자』는 기계 이성의 힘이 최고조로 발현된 시대에 일차대전에 이어 이차대전의 전쟁을 불러온, 유럽 정신의 몰락과 문명의 야만을 예고하는 역사적 궤적이 담긴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전형적이고 도식적인 개념으로 추상화된 현대의 삶을, 파편화된 이 세계의 무질서를 정신적으로 극복해내기 위한 대담하고 야심찬 기획으로 이 소설을 썼다.
사유하는 주인공, 에세이즘의 탄생
성(姓)도 없이 시종일관 이름으로만 불리는 주인공 울리히에겐 ‘특성 없는 남자’라는 별명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개성이 없다는 말과 같아 보이지만 실제 맥락상의 의미는 정반대에 가까워서, 식별 가능한 특성이 없어 유형화시킬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개별 인간이 여러 속성과 기능의 총합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분해되고 조립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존재는 유별나다고 여겨진다. 사실 울리히는 현대적인 삶에 요구되는 모든 능력을 전부 갖춘 탓에 어떠한 가능성이든 내포하고 있는, 확정되지 않은 존재다. 그 의미도 애매한 ‘위대한 남자’가 되고 싶어 군인, 공학자의 길을 거쳤고 지금은 수학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학적 사고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인데, 수학의 정밀한 눈으로 삶을 꿰뚫어보고 새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지금과 다른 식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기 삶에서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이른바 ‘삶으로부터 일 년 동안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아들을 염려하는 현실적인 아버지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살필 겨를도 없이 여러 유력 인사가 조직한 애국대운동에 관여하게 된다. 이 운동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줄거리를 구성하는 사건으로 작용한다. 이웃나라 독일에서 빌헬름 2세의 즉위 삼십 주년 행사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대항적인 의미에서 더욱 성대하게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칠십 주년을 기념하려는 의도를 담은 까닭에 ‘평행운동’으로 불리는 운동이다. 『특성 없는 남자』가 1920년대 들어 집필되기 시작한 작품이고 전쟁의 경험을 계기로 쓰인 작품임을 감안하면, 일차대전으로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해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된 시점에서 제국과 황제의 평화와 영광을 기리는 ‘평행운동’을 서사의 주축으로 삼은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이 운동이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품 속에 담긴 풍자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온갖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장은 실상 비슷비슷한 내용 일색이고, 사람들은 회의를 보람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무엇이 됐든 상관없이 결론 내린다. 어마어마하게 밀려드는 민중의 소망을 정리한 두 개의 서류철에도 지표나 방향이 없이 각각 ‘○○로 돌아가자’와 ‘○○로 나아가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시대는 나아가야 할 곳을 잃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옛것으로 회귀하거나 진보로 나아가기를 부르짖는다. 누구도 제대로 된 상이 없는 채로 각자 현상의 일면만 보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울리히는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다.
“진리를 원하는 사람은 학자가 되고, 주관성의 놀이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아마 작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_1권, 제2부 393쪽
그러다 어느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을 때 울리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아니면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리고 3부에서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다시 찾은 고향에서 잊고 있던 ‘샴쌍둥이’ 여동생 아가테를 만나고 나서는 둘만의 독자적인 목표점인 ‘다른 상태’의 도덕적 삶, ‘천년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특성 없는 남자』은 서사나 사건 위주의 전통적인 소설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주인공 울리히와 그 주변 인물들의 내적 사유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현실 속에서 사건은 추상적, 간접적, 파편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인데 작가가 여전히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개나 하나의 단일한 서사에 의존한다면 시대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무질은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취한다. 차례에서 보다시피, 장면 단위로 소제목을 상세하게 달아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를 미리 알려주는가 하면, 2부 28장 ‘건너뛰어도 되는 장’이나 68장 ‘여담’에서처럼 뛰어넘고 읽어도 되는 장을 구분해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서사의 진행에 상관없이 주인공 울리히가 어떻게 행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주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이 소설을 진행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이 인물들의 내적 독백이 담긴 문장들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세계의 무질서, 유폐당하고 분열된 개인의 실존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런 에세이적 성격은 사건보다 사유의 흐름이 중요한 이른바 ‘사유 소설’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발한다. 작품에서 에세이를 “하나의 대상을 여러 절(節)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삶과 세계의 모습도 에세이를 닮아야 한다고 한 대목이 있다.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에세이야말로 개별적인 것의 가치를 담보하면서도 총체성에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기 위한 작가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민족 이중 국가체제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카카니엔’)을 배경으로 분절되고 파편화된 세계의 합일을 꿈꾸던 인물들의 여정을 다룬 내용 면에서도, 기존 소설 형식의 한계를 극복한 독창적인 에세이즘적 글쓰기를 택한 구조 면에서도, 내용과 형식 사이의 합일을 도모해나가는 이 과정에서 무질은 오늘날 모더니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을 남겼다. 같은 장을 스무 번씩 고쳐 쓸 정도로 자신의 현실과 일치하는 소설을 쓰고자 집요하게 노력한 무질과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남게 된 울리히의 지치지 않는 탐구가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안타깝게도 사유하는 인간만큼 문학작품 속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했으나, 무질은 이 소설을 통해 이를 획기적으로 입증해냈다.
마지막으로 150여 권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온 박종대 번역가는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 핵심 인물에 대한 소개를 곁들인 상세한 해설을 3권 말미에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독일에서 ‘무질의 노벨레’로 박사학위논문을 쓰던 중, 1996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논문을 마저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이 번역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이제야 학문과 연결된 삶의 한 시기를 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질을 떠나보낼 수 있을 듯하다”고 밝힌 개인적 소회에서 보다시피, 번역가는 무질의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의 한국어판을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내놓기까지 꼬박 십 년간 이 책 번역에 매진했다.
구매가격 : 15,400 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도서정보 : 히가시노 게이고 | 2023-04-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미스터리의 부활을 꿈꾸며” 한계를 넘어선 거장의 색다른 연작
위험천만한 트릭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여성 그리고 눈속임으로 관객을 탄복시키던 쇼맨의 마술쇼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관객의 예리한 눈, 이성 그리고 감성까지 마비시키는 매력적인 쇼
맨십에서 착안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했다. 대학교수, 형사를 주인공으로 통상 이삼
년에 한 편씩 시리즈 신간을 발표하던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일여 년 만에 신간을 소개하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블랙 쇼맨’ 시리즈가 바로 그것, 이번 신간은 작가가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도서 시장
과 미스터리의 부흥을 위한 염원을 담아 쓴 단편을 엮었다. 과거 잘나가던 마술사 가미오 다케시, 지금
은 도쿄 후미진 골목에 있는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면서 손님들을 응대하던 그가 다시 한번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참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날리는 최선의 반격
가족의 스토킹을 멈추고 싶은 미망인, 평생을 함께할 상대로 오늘 저녁 처음 만난 사람을 감별해달라
는 손님, 죽어버린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죽은 남편의 유산을 물 쓰듯 한다는 비
난을 받을까 봐, 돈만 밝히는 속내를 간파당할까 봐,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과거가
들춰질까 봐 이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실상 자신을 갉아먹는 현실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해 돈에
의해서든, 사랑을 이뤄서든 각자의 인생에 새로운 출구를 찾지만, 주위 시선이 여전히 매서워 번번이 망
설일 뿐이다. 견딜 수 없다면 태세를 전환하는 게 상책.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간절한 이들의 열망에
화답하기 위해 다케시가 등판한다. 짐짓 타인의 사정에는 관심 없다는 듯 손님을 응대하지만, 절망에 빠
진 이들이 보내는 SOS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물심양면 도와준다. 그는 각종 칵테일을 능숙하
게 만들어 이들에게 내어주며 위로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손짓 하나로 결말을 바꿔치기하고, 생면부지
의 사람이 꾸민 음모를 밝혀낼 정도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속도감 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하며 속임
수는 속임수로 갚아주는 다케시의 일침에 이야기의 재미는 한껏 달아오른다.
오직 히가시노 게이고만 구현할 수 있는 세계
1985년 데뷔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구
축해온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의 공식 출간 기록을 보면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서너 편의 책을 써왔다
고 할 정도의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새 원고를 받기 위해 일본 출판계 담당자들은 지금
도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판권 경쟁이 치열
하다. 매년 스스로 전성기를 갱신한다고 할 만큼 변함없이 독자들의 성원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본격 미스터리를 비롯해 서스펜스, SF 심지어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에도 능통한 그는 ‘과연
한 사람이 쓰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색다른 방식으로 집필해왔다. 문장
은 명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되, 절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끔 촘촘히 조형해온 그의 작품 세계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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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촌극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과 악을 엄정한 도덕적 잣대
로 판별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의 원형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는 데에 능통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분량은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담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일들에 휘말리는 인간의 일상사를 특별하게 풀어내는 그의 필력에 독자들은 어김없이 탄복하
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4,400 원
길상문연화루 중
도서정보 : 텅핑 | 2023-04-1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모든 게 수상쩍고 이상하잖아.”
“그 일에는 아주 재미있는 진실이 감춰져 있을 거야……”
2023년 최고의 기대작 <연화루>의 원작
시리도록 명징한 추리와 묵직하고 장쾌한 무협의 화려한 대서사!
검을 휘두르면
온 산하가 긴 꿈에 빠지고 강물도 붉게 변했다.
그 빛은 검광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무협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중국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젊은 작가 텅핑. 2000년 『쇄단경(鎖檀經)』으로 제1회 ‘화여몽’ 전국 로맨스 소설 공모전에서 1위에 오른 후 본업인 경찰 일과 함께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나가는 그녀는 로맨스 시리즈 『구공무(九功舞)』와 『호미천하(狐魅天下)』, 현대 추리물 『야행(夜行)』, 판타지 소설 『미망일(未亡日)』 등을 발표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다층적인 작가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가 이번에는 무협과 추리를 씨줄과 날줄 삼아 또다시 장르적 변화를 꾀했다. 무협과 추리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작가의 창작 궤적에서도 큰 변곡점이 된『길상문연화루(吉祥紋蓮花樓)』(전3권)를 통해서다.
이층짜리 목조 누각 길상문연화루의 주인이자 강호의 신의(神醫)로 이름난 이연화와 그의 곁을 지키는 방다병 등 『길상문연화루 상』에서 이야기의 큰 줄기와 배경이 소개되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길상문연화루 중』에선 은밀한 도살장, 토막 난 시신, 인육을 먹는 마을, 피부에 수놓인 그림 등 한층 더 본격적이고 복잡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이렇듯 이연화는 더 끔찍하고 잔혹해진 흉계와 기괴하고 비밀스러운 배후를 맞닥뜨리지만 그럼에도 밀도 높은 추리로 곳곳에 놓인 작은 단서들을 촘촘히 짜맞추어 사건의 내막을 드러낸다. 이에 질세라 방다병은 그를 따라 점점 똑똑해지며 환상 호흡을 자랑한다. 한편, 사건 현장에는 절묘하고 놀라운 내공을 펼치고서 홀연히 사라지는 백의검객이 등장하는데……
구매가격 : 11,500 원
길상문연화루 하
도서정보 : 텅핑 | 2023-04-1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지옥에 떨어져도 반드시 기어나와
복수하겠다고 맹세했지.
어느 날 문득 네 생각이 났을 때는
널 미워하는 이유조차 잊어버린 뒤였어.”
2023년 최고의 기대작 <연화루>의 원작
시리도록 명징한 추리와 묵직하고 장쾌한 무협의 화려한 대서사!
세월 따라 강산도 수없이 변하니
가야 할 것은 결국 가고,
와야 할 것은 또 결국 오는 법.
무협과 추리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화제가 되며 중국 현지에서 10만 부가 판매되고, 드라마 <연화루>로도 제작되어 방영을 앞둔 『길상문연화루(吉祥紋蓮花樓)』(전3권), 그 마지막 권을 선보인다. 『길상문연화루 하』에선 그동안 등장했던 사건과 복선들이 정리되는 한편, 예상치 못한 이연화와 방다병의 모습이 그려진다.
천하를 누비는 절대 무공의 소유자 이상이. 화려한 명성과 강호의 정의를 세우겠다던 약속은 돌이킬 수 없는 결투 후 깊은 원한과 증오와 후회로 변한다. 십수 년이 흐른 뒤, 촌스럽고 의뭉스러운 이연화는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을 자신의 과거를 마침내 죽임으로써 극적인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데……
구매가격 : 11,500 원
벌들의 음악
도서정보 : 아일린 가빈 | 2023-04-1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알맞은 온도로 지속되는 우정의 힘,
꿀벌에게서 얻는 지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함께 손잡고 만들어가는 연대의 이야기
★ 굿모닝 아메리카 북클럽 선정 도서
★ 라이브러리 리즈 선정 도서
★ 인디넥스트 선정 도서
★ <피플> <워싱턴 포스트>
『벌들의 음악』은 작가이자 양봉가이기도 한 아일린 가빈의 소설 데뷔작으로, 각자의 아픔을 지닌 세 사람이 함께 벌을 키우며 우정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기분좋은 온기와 반짝이는 희망, 서로를 지켜주는 우정, 그리고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마음으로 가득한 이 소설은 2021년 출간되어 전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굿모닝 아메리카 북클럽, 라이브러리 리즈, 인디넥스트 선정 도서에 이름을 올리며 독자들의 커다란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피플> <워싱턴 포스트>
불운한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 열여덟 살 제이크,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상실감에서 회복하지 못한 마흔넷의 앨리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른 뒤 불안과 자책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린 스물넷의 해리.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인 이들 세 사람은 우연한 사고와 예기치 못한 기회로 함께 지내며 특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이 우정은 세 사람 모두의 마음을 위로하며 이들의 삶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가져온다. 직업도 없고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휠체어를 타는 “특이하게 망한” 제이크도,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깨달음으로 온몸이 묵직하게 아파오는 앨리스도, 스스로를 “A급 멍청이”라고 자조하는 해리도, 정교한 밀랍으로 빚어진 벌집처럼 이들을 보호하며 자라나는 우정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며 슬픔의 긴 터널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벌들과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상처 입은 마음속 텅 빈 공간에 벌꿀 색깔의 따스함을 더하고, 그 따뜻함은 독자의 마음으로도 이어져 특별한 울림을 선사한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묘사는 팍팍한 일상에 잔잔한 휴식과 위로가 되고, 각자의 결핍과 슬픔 속에서 손잡고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더불어 꿀벌의 생태와 아름다움에 대한 문장들은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포근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벌통들 앞에 앉아 가슴에서 울리는 윙윙 소리를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벌들의 음악소리가 선사하는 평온함을 만끽하면서.
타인과 연결될 뜻밖의 길과 새 출발이라는 반짝이는 약속,
그리고 자신만의 벌집을 찾는 황홀한 여정
봄을 맞아 새로운 꿀벌을 분양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던 앨리스는 어두운 도로에서 휠체어를 뒤늦게 발견하고 급히 반대편으로 핸들을 꺾는다. 그 바람에 트럭 짐칸에 실려 있던 벌통 일부가 도로로 떨어지고 꿀벌 수백 마리가 혼란스러워하며 벌통을 빠져나온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이는 산책을 나왔던 제이크. 파티가 열린 친구 집 2층 지붕에서 장난을 치다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하반신마비가 된 제이크는 사고 이후 친구들을 피하기 위해 과수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날은 음악을 들으며 휠체어를 움직이다 뒤에서 트럭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렇게 조우한 십대 소년과 사십대 여성은 서로의 무탈함을 확인하다가 벌통과 꿀벌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고, 뜻밖에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앨리스는 카운티 개발 부서에서 일하며 취미로 벌을 키우는 양봉가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첫 데이트에서 선물한 벌통 하나로 시작해 현재는 스물네 개의 벌통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 여름까지 벌통의 수를 백 개로 늘리기 위해 파트타임을 구하는 공고를 낸 상황이었는데, 제이크가 아버지로부터 불쾌한 대우를 받는 걸 목격하고 충동적으로 소년을 고용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여기 공고를 보고 찾아온 해리가 합류한다.
해리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어릴 때부터 남에게 잘 속고 자신의 것을 쉽게 빼앗겨온 아이였고, 급기야는 친구들 꾐에 넘어가 도둑질을 하다 혼자만 도망가지 못하고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얼마 전 가석방된 뒤 삼촌의 트레일러에서 지내던 중 앨리스가 낸 채용공고를 발견한다.
제이크는 무거운 것을 들거나 자유로이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양봉복이나 장비 없이도 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양봉에 큰 재능을 보이고 심지어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 여왕벌의 소리를 구분하기도 한다. 해리는 묵묵하게 일하며 제이크가 휠체어를 탄 채로도 작업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작업대를 만들어주는 등 힘을 보태고, 언제까지나 혼자일 줄만 알았던 앨리스는 의외로 이 청년들과 함께 지내는 일상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앨리스가 출근한 뒤 혼자 벌통을 탐구하던 제이크는 이웃 과수원 근처의 벌통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다. 앨리스는 퇴근 후 제이크와 함께 벌통들을 살펴보고 남편이 처음 사준 벌통을 포함해 가장 오래 보유해온 벌통의 벌들이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웃 과수원에서 ‘수프라그로’라는 대기업에서 홍보를 위해 무료로 배포한 살충제를 며칠 전에 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앨리스는 수프라그로의 살충제가 다른 지역에서 벌들의 집단 폐사를 일으켰다는 정보를 접한 후 그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죽은 벌들의 검사를 의뢰하고, 양봉협회 모임에 나가 과수원들이 수프라그로 살충제를 사용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구매가격 : 11,900 원
버지스 형제
도서정보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2023-04-1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워싱턴 포스트> <굿 하우스키핑> NPR 선정 올해의 책(2013)
퓰리처상 수상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람을 통해 삶을 말하는 작가라는 따뜻한 수식어가 더욱 잘 어울리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첫 장편소설인 『에이미와 이저벨』부터 최근작『내 이름은 루시 바턴』까지 독자와 평단이 스트라우트의 작품에 꾸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온 이유 역시 그가 삶의 박동이 느껴지는 문장을 통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버지스 형제』는 스트라우트가 『올리브 키터리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201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중년의 삼 남매가 고향 마을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에서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포함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인간 내면의 탐구에 더해 그 인간들이 발을 딛고 몸을 부딪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세상으로 시야를 넓힌다. 『버지스 형제』는 미국 사회에 뿌리박힌 계급 문제와 더불어, 2006년 메인 주 루이스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소말리족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차별 의식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온전히 마음을 줄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에서 내칠 수도 없는 결함 있는 인물들을 통해, 타자에게 저지르는 폭력이 악의적인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을 포함해 평범한 ‘우리’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스트라우트 소설이 언제나 그랬듯, 『버지스 형제』가 던지는 비판의 밑바닥에는 각자의 한계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온기 어린 시선이, 삶을 긍정하는 희망의 목소리가 깔려 있다.
익숙한 풍경 위에 도드라진 낯선 얼굴들과
익숙한 얼굴 위에 드리워진 낯선 그림자.
그해 겨울,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이었다.
버지스 집안의 삼 남매 짐, 밥, 수전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것. 아버지는 어린 삼 남매를 태운 차를 언덕 위에 놓고 잠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밥이 장난을 치다 페달을 밟는 바람에 굴러내려간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공식적인 사건의 전말이었고, 짐이 여덟 살, 쌍둥이인 밥과 수전이 네 살 때의 일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의 일이지만 그날 이후 가슴속에 씻지 못할 죄책감을 품게 된 밥은 자존감 낮고 소심한 사람으로 자라고, 짐의 상습적인 구박과 모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잘생기고 똑똑한데다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짐은 맏이로서 집안의 가장이자 해결사 역할을 도맡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인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를 벗어나고 싶어하던 버지스 형제는 도망치듯 뉴욕으로 떠나고 수전만 고향에 남는다.
그리고 현재 중년이 된 삼 남매는 각자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짐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내 헬렌과 함께 뉴욕에 살면서 거대 로펌의 유명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반면 밥은 변호사를 그만두고 법률구조협회 항소부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아내 팸과도 이혼한 상태다. 수전은 남편과 이혼한 뒤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홀로 열아홉 살 아들 재커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짐과 밥은 어느 날 수전의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재커리가 마을의 소말리족 난민 공동체가 신성시하는 이슬람교 사원에 잘린 돼지 머리를 던져넣었다는 것이다. 재커리의 행동이 증오범죄로 규정되면서 이 사건은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재커리는 연방 검찰에게 기소당할 위기에 처한다. 짐과 밥은 조카를 돕기 위해 수년 만에 고향 셜리폴스로 향하지만 사태는 예상과 다르게 계속 악화되기만 하고, 오랜만에 만난 남매와 주변 가족들 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급기야 심리적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짐은 밥의 인생을 뒤흔들어놓을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삶과 삶이 충돌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순간들,
그 저변에 깔린 계급과 차별을 이야기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저는 언제나 계급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제 모든 작품을 통해서요.”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의 중심에는 크게 두 가지 갈등이 있다. 소말리족 난민들과 메인 주 셜리폴스 주민들 간의 갈등. 그리고 버지스 가족 내의 갈등. 전자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충돌이고, 후자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인 충돌이라는 점에서 일견 둘은 아주 다른 종류의 갈등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은 사적인 갈등처럼 보였던 버지스 가족의 충돌 뒤에 숨겨진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계급적인 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버지스 가족 간의 충돌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충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 간의, 삶과 삶의 충돌이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일,
이해와 공감의 도구로서 문학의 힘
“작가로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선’이나 ‘악’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모호함과 우리 삶의 한결같은 불완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인간다움(humanness)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스트라우트는 소설이라는 매체가 타인을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소설 읽기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고, 낯선 이의 삶을 상상하고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서란 ‘이해’를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스트라우트는 인물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놀랍도록 생생하고 탁월하게 느려내는 작가다.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인물들이 품고 있는 비밀과 욕망의 문앞에, 그들 내면의 문간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한동안 그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 있다보면 책을 덮어도 우리의 일부가 어딘가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스 형제』에도 역시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스트라우트는 그들의 입장과 심리를 끈질기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이는 마치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누구도 독자에게 타자로서 남겨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작가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소말리족 남성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난민들을 조사하고 취재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타자로 남게 될 것 같아서였다”고 밝혔다.
외부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에 소설의 대부분을 할애하던 이전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버지스 형제』는 분명 스트라우트의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 밀려드는 감정은 한결같다. 그 감정은 역시나, 여전히, 스트라우트의 작품은 따뜻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스트라우트가 하는 일은 현실의 차갑고 단단한 땅에 소설이라는 따뜻한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씨앗이 독자의 마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멀리 뻗어나가 우리 모두를 조금 더 가까이 묶어줄 수 있기를, 더 따뜻하게 감싸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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