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볼과 별난 도둑
도서정보 : 신원우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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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양보’라는 말은 모두
‘비겁하다’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었다.
그렇다. ‘양보’라는 말은 이 두 선수에게도 그런 뜻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격렬한 부딪힘은 당연했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있어 양보란 정정당당한 자세로 시합에 임하는 것일 뿐이다. 비겁하지 않게 싸우고, 지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지고, 상대방이 약하다고 하여 놀려먹지 않고, 약한 상대방을 봐주는 것은 그 팀 전체를 욕보이는 것이기에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않고…. 오직 규칙과 실력으로만 정정당당하게 싸운다. 이것 외에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정정당당한 플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던 티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다가 끊기고 끊기는가 싶으면 다시 또 떠올랐다.
- ‘본문’ 중에서 -
구매가격 : 10,800 원
프랑켄슈타인
도서정보 : 메리 셸리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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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초판본으로 만나는『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19세 여성 작가의 천재적 상상력이 빚어낸 과학소설의 백미
『프랑켄슈타인』은 두 판본이 있다. 첫 판은 1818년 런던에서 출판되었고, 1831년 많은 부분을 고쳐 개정판을 냈다. 1818년 초판이 영국에서 출간될 당시 작가는 익명이었고, 책 제목은『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였다. 영문학자이자 여성학 박사인 멜러Anne K. Mellor는 <어떤 프랑켄슈타인 텍스트로 가르칠 것인가>에서 1818년판과 1831년 개정판을 비교하면서, 메리 셸리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생겨난 비관주의로 인해 1818년 텍스트에서 두드러졌던 메리 셸리의 철학적 견해가 1831년 개정판에서는 모두 사라졌다고 쓰고 있다.
‘원전으로 읽는 ?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로 출간된『프랑켄슈타인』은 1818년판을 정본으로 삼아 번역했지만, 독자들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제목은『프랑켄슈타인』으로 하고, 표지에 원래 영문 제목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를 표기했다.
여지희 번역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간혹 어떤 문장의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 내용에 덧붙여진 분위기를 전달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질 때마다 그 문장을, 그 문장에 쓰여진 단어 하나하나, 문장부호 하나하나를 한참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닌 바로 그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그 자리에 쉼표를 찍거나 찍지 않은 작가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옮겼다고 밝혔다.
정확하고 바른 번역으로 원전의 표면적인 의미는 물론 감추어진 맥락과 저자의 의도까지 그대로 담아낸『프랑켄슈타인』을 통해 과학소설과 공포소설이 융합한 걸작으로 초판이 출간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 어울릴 수 없었던 괴물의 고독과 절규,
그를 향한 혐오와 폭력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원리에 관한 호기심에서 자연과학의 이론을 깊이 탐구하다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을 시작하고 마침내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가 탄생시킨 생명체가 흉측한 몰골을 한 괴물임을 확인하고는 도망치고 만다. 괴물은 그를 향한 혐오와 분노, 폭력에 맞닥뜨리며 인간 사회에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거절당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괴물은 끝내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잔인한 복수를 결심하고 프랑켄슈타인의 막냇동생과 아끼던 하녀, 친구와 아내의 목숨을 차례대로 빼앗는다. 괴물은 또 다른 창조물로서 자신과 똑같은 이성을 만들어달라고 프랑켄슈타인에게 간청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그를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의 세계를 파괴하는 괴물을 악의 화신으로만 몰아갈 수 없는 것은 끝내 고독한 존재로 남겨진 그에게 연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에 대해 독자들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만큼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깊고 오묘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도덕적 책임에 대해
인류에 던지는 경고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은 관자놀이에 나사가 박힌 흉측한 몰골을 한 거대한 몸집의 괴물이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낸 과학자 이름이며, 정작 괴물은 이름이 없다. 이 같은 괴물 캐릭터는 1931년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 『프랑켄슈타인』은 이후 영화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등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과학자가 자신의 결과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저버린 결과, 끔찍한 재앙이 닥친다는 설정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로 인한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돌아보게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지만, 인간 사회에 어울릴 수 없었던 괴물 캐릭터는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잣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내적 성장, 고독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에게는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소설이 출간된 지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류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최고의 과학소설이라는 문단의 평가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구매가격 : 7,700 원
공허한 십자가(개정판)
도서정보 : 히가시노 게이고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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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거장의 걸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虛ろな十字架)』가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공허한 십자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압도적인 밀도감과 예측할 수 없는 파격적 전개로 단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딸을 잃은 주인공 나카하라가 형사로부터 전부인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시작된다. 20년 전 두 사람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침입한 강도에게 딸 ‘마나미’가 살해당하자, 그들은 더 이상 부부로서의 삶을 살 수 없어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나카하라의 전부인인 사요코마저 살해당하고만 것이다. 그녀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은 일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백발이 무성하고 야윈 노인이다. 그의 범행 동기는 우발적 충동. 그리고 범인의 가족으로부터 ‘장인의 범행을 용서해달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과연 죽어 마땅한 자들이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속죄와 형벌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구매가격 : 10,500 원
잠자는 추억들
도서정보 : 파트릭 모디아노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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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
작품세계의 정점에서 운명처럼 다시 돌아보는 그해 여름 파리의 미스터리
“이건 나쁜 꿈이야. 그저 나쁜 꿈일 뿐이라고……”
잊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 모디아노 소설의 미덕으로 가득한 작품.
_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잠자는 추억들』은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가 수상 이후 발표한 첫 작품이자, 청년기에 스치듯 만난 사람들과 그 시절의 바스러져가는 기억, 그리고 우연히 연루된 사망 사건을 되짚어가는 자전적 소설이다. 모디아노는 젊은 날의 추억들이 훗날 자신과 함께 영원히 묻혀버릴까봐 염려하듯 잠자는 추억들을 하나씩 흔들어 깨우고, 망각의 층을 뚫고 떠오른 새로운 이름들과 얼굴들에 숨을 불어넣으며, 한없이 불안하고 유약했던 젊은 날 파리 곳곳에서 만난 매혹적인 여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전체 스물한 개의 짧은 장(章)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 섬세하게 기록해나간다. 작은 퍼즐조각처럼 흩어져 빈틈이 많은 기억을 그러모으고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 되살아나는 단편들을 꿰맞춰가면서 독자는 화자인 장 D.의 기억의 탐정이 되어 수수께끼 같은 과거를 추적하고 완성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모디아노는 언론 인터뷰도 거절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었고, 한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상 삼 년 만인 2017년, 가장 모디아노다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잠자는 추억들』을 발표했다. 작가에게 최고의 영예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세계의 정점에 선 그가 꽤 길었던 침묵을 깨고 또다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모디아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결정적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도 떨칠 수 없는, 운명처럼 돌아보게 되는 뤼도 F.라는 남자의 미스터리한 사망과 탈주의 기억을 마침내 마주한다.
나는 마침내 그녀에게 혹시 그 안에 뤼도 F.의 시신을 넣은 건 아닌지 물었다. 그녀는 그저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농담을 그다지 좋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농담이라고? 가끔씩 나는 꿈속에서, 그리고 심지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지금은 다 아물었지만 겨울철이나 비 오는 날이면 옛 흉터가 욱신거리듯이 내 오른손에 그 트렁크의 무게감이 생생하다. 오래된 회한일까?
구매가격 : 9,800 원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서정보 : 임솔아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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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일상을 꿈꾸는 일곱 편의 싱그러운 이야기!
2010년 제정된 이래 해를 거듭하며 문단과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젊은작가상이 13회를 맞았다. 데뷔 십 년 이하의 작가들이 각자의 언어와 형식으로 일구어낸 아름다운 문학적 성취를 축하하고자 마련된 젊은작가상은 지난해까지 모두 54명에 이르는 새로운 얼굴을 소개하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올해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린 수상 작가는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이다.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담은 치열한 작품을 선보이며 이 상의 수상자로는 처음 이름을 올린 임솔아 김병운 서수진의 등장이 반갑고, 특히 남다른 시선과 독특한 문체로 꾸준한 주목을 받아온 임솔아의 대상 수상이라는 쾌거가 뜻깊다. 작품세계를 경신하며 작년에 이어 또 한번 수상을 이뤄낸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의 단편들은 이 상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한다. 끝나지 않은 팬데믹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 온전한 일상으로 한 걸음 나아갈 희망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여기 도착했다.
구매가격 : 9,800 원
겨울에 대한 감각
도서정보 : 민병훈 | 2022-04-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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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두 번째 작품으로 민병훈 작가의 『겨울에 대한 감각』이 출간되었다. “아직 명명되지 않은 세계의 유일한 작가” 민병훈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는 세상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재인식’되는 것이므로, ‘구성’이 아닌 ‘재구성’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신작 『겨울에 대한 감각』에서도 익숙함을 거부하고 “이미지는 진술하고 서사는 침묵하는”(해설, 박혜진 평론가)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한다. 이처럼 “익숙한 세계의 작가이기를 거부”한 민병훈 작가는 이미 “만들어진” 보편적 세계가 아닌 “만들어질” 세계를 선보인다.
구매가격 : 8,400 원
악착같은 장미들
도서정보 : 이우연 | 2022-04-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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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가 만들어낸 의미의 집적,
주체하기 어려운 격정
그 위에 그려진
묵직하고 충격적인 세계
◎ 도서 소개
새로운 소설의 등장!
작가는 광인이거나 천재이거나
한국문학에 새로운 유형의 소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개성의 소설가가 등장헸다. 말 그대로 ‘약관’의 나이에 이토록 독특하고 담대한 소설을 상재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한 힌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악하는 히스테리 짐승들의, 즉흥적인, 음탕한, 불결한 소음들의 장소다. 동물들의, 동물일 수 없는 여자들의, 너무 느끼는 자들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자들의, 내가 발견한 실종자들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안내에 따라 소설의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밀림처럼 빽빽한 언어의 가시덤불 속에서 옴짝달싹해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돌아서지도 못한다. 작가가 쌓은 단어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장은 수많은 의미를 집적한 채 독자들의 움직임을 옭아매고 있다.
어찌 보면 1930년대 이상의 모더니즘 작품 구성 같기도 하고, 니체가 구사한 단절과 연계의 의미망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힘겹게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방향은 모르지만 점점 더 깊은 사유의 숲으로 빠져드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우리 문단에서 이처럼 들끓는 용광로와 같은 아이디어와 열정을 이렇게 토해낸 작가가 또 있었을까.
이 험난한 소설에 대해 평론가 김종회는 이렇게 안내한다. “의식의 정제된 절차를 따라 선형적으로 읽기를 포기하고 비선형성의 방식을 따라가면, 곧 의미의 외형적 정렬을 놓아 버리면 이 작가의 글은 한결 쉽고 재미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은 독자가 그러한 독서 패턴으로 따라와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 소설, 장편소설로 명명된 이 작품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장편소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 전개의 순차적인 항목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하자면 중심 인물과 그와 연관된 인물의 구성 그리고 그들이 엮어나가는 사건 구조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우연은 당초부터 그렇게 소설을 쓸 의향이 없었다. 만약에 억지로라도 하나의 연속성을 포착하자면, 여러 항목 가운데서 단절 없이 사유하고 발화하는 존재 자아의 지위를 지목할 수밖에 없다.“
글쎄,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이 글을 안내하는 평론가의 권유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껏 우리 문단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작가와 작품이 등장했다는 것이고, 이 책은 문학의 정의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 추천의 글
참으로 오랜만에 정좌(正坐)하고 읽어야 하는 소설을 만났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잡는, 대상에 대한 존중의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상한 글 읽기의 태도나 각오로서는 그 깊은 바닥을 두드려 보기 어려운, 실로 만만찮은 작품과 대면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아직 그렇게 귀에 익지 않은 이름의 이우연이라는 작가가 ‘악착같은 장미들’이란 표제를 붙여 쓴 장편소설이다. 제본된 원고의 첫 장을 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딱히 문장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읽기 어려운 비문(非文)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눈길을 옮겨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_김종회 문학평론가
◎ 책 속에서
소녀는 남자이고 싶었다. 남자가 되어 여자를 갖고 싶었다. 어째서 그녀는 내 것이 아니지? 어째서 그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지? 어째서 나는 그녀를 가질 수 없지? 하고 소녀는 생각했다. 그러한 의심이 소녀를 불행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소녀는 파멸적인 의문들을 던졌다. 어째서 나는 바닷가로 나가지 않았지? 난 그녀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는데 그녀와 함께 놀고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눈만 바라보아도 좋은데 어째서 그녀는 내 것이 아니지? _11쪽
양계장에서의 마지막 밤, 여자는 그녀를 훔쳐 달아났다. 죽음 직전의 암탉들처럼 자궁이 조금 삐져나오고 골다골증에 시달리며 돌이킬 수 없이 늙어버린 그녀를. 그러나 그녀는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삶이 끝난 뒤에도, 알을 낳을 수 없게 된 뒤에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산란 이후의 삶을 가르쳐줄 수 있는 암탉은 없었으니까.
철판 위에서, 끓어 넘치는 태양과도 같은 광폭한 열기 위에서 그녀는 흐느끼면서 주춤거렸다. 골절된 날개로 그녀는 어디로도, 심지어 여자의 둥근 어깨 위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관중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토록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암탉처럼 흐릿하고 지친 얼굴들. _47쪽
남자 비서가 사냥꾼 그라쿠스가 돌아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날 조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령에 대한 연구를, 실패로 끝났음에도 영원히 실패할 것임에도 내가 아직 놓지 못한 연구를 비웃고 있다고요. 실제로 어젯밤에 난 유령과 리바의 기후,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하인은 내 앞에서 내가 십 년 동안 연구한 페이지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부어버렸죠. 커피 필터와 오렌지 껍질, 바퀴벌레의 찢겨진 날개와 뭉그러진 날벌레들과 함께 뒤얽힌 내 밤들, 치명적으로 오염된 밤들, 그러나 오염된 것이 내 연구인지 벌레들인지는 모를 일이죠, 부인. 난 내 실패한 연구로 그 미물들의 가여운 죽음을 조롱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차마 버리지 말라고 붙잡지는 못했지만 연구를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물론 어제 낮까지만 해도 연구를 끝내야겠다고, 날 비참하게 하고 철저하게 몰락시키며 파멸시키는 연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죠. 리바의 시장 직무와 리바의 귀신 연구를 함께 할 수는 없어요. 리바에 남아 리바의 시장으로 살거나 리바를 떠나 리바의 귀신에 대해 연구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했죠. 하지만 난 이미 시장이고 리바 역사상 리바의 귀신을 연구하기 위해 시장직을 그만둔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난 리바의 시장이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거예요. 이상한 일이죠, 부인. 난 리바의 시장직에 자원한 적이 없는데도 리바의 시장직에 선출되었어요. _144쪽
아무도 그의 범행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오직 그녀만이. 누구에게도 증언할 수 없는, 돼지의 비명과 돼지의 아가리와 돼지의 혀만을 가진 그녀만이 그를 기억할 것이었다. 그는 결코 자백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고통스럽게 되뇌었다. 그는 그녀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숲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는 검은 숲으로 갈 때마다 그녀를 찾을 것이고 그녀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그녀를 간직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와 다시 마주친다고 해도 그는 첫 번째에 그렇게 하였듯 그녀를 외면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 그녀가 그에게 끈질기게 보내는 혹독한 외면을 이번에는 그가 그녀에게. 하지만 그는 그녀를 쏘았고 그녀는 죽은 채 그의 손 아래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삶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르게 부패해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총을 내려놓고 그녀를 지나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지나칠 수 있었을까? 그녀를 두고 두 번째 사냥감을 찾아갈 수 있었을까? 그가 그녀를 외면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곧고 적막한 시선을 미소를 외면할 수 있었을까? _220~221쪽
그는 아직 그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믿을 수 있는, 그에게 연결된 신체 기관을 움직여 불청객들을 쫓아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제 그의 것이었으니까. 누군가의 훼손된, 이제는 누구도 원하지 않을 그 잘려나간 왼손, 인간은 먹지 않을 썩어가는 고기는 그의 것이었으니까. 그가 가진 것은 경멸스러운 푸른빛으로 녹아내릴 듯 번쩍거리는 낚싯배 한 척과 군데군데 삭아서 튿어진 더러운 그물, 그리고 그가 찾아낸 보물들밖에는 없었다.
보물들. 그는 밝은 햇빛을, 바스러지는 노란 빛의 분말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찾지 않을, 폐수와 끔찍한 화학 물질, 기화되어 인체에 어떠한 작용을 할지 알 수 없는 역겨운 독과 방사성 폐기물이 침전된 버려진 강가에서 보물들을 찾았다. 낚싯배와 낚시 그물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낚는 데에 그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항상 삶이 어려웠고 살아 있는 것들이 거북했고 살아 있음이 두려웠다. 물고기들은, 정해진 행로와 습관에 몸을 맡기고 일상의 궤적을 건너가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살아 있었다. 낚싯바늘에 꿰뚫린 미끈한 몸, 관통당한 심장에서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는 붉은 육즙, 눈꺼풀 없는 눈의 투명한 막에서 비어져나오는, 절망적으로 짠 소금기, 헐떡거리며 음탕하게 뻐끔거리는 아가미. _376~377쪽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줄이 적은 어트랙션을 골라 타기 시작했다. 4D 영상관이나 거울 미로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검거나 검지 않은 머리들의 숫자를 셀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걸어들어가 이용할 수 있었다. 거대한 검은 거미들이 나비의 배 위에 올라가 나비의 두 눈을 꿰뚫었다. 나비는 간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키득거리면서 발을 저었다. 너무 크게 웃었다간 거미 여왕이 잡아갈 것이라고 언니가 속삭였고 나비는 놀라 입을 다물고 숨을 참았다. 불꽃의 소년들이 거미들의 왕궁을 찾아 들어갔다. 왕궁은 투명하고 날카로운 거미줄로 정교하게 짜내려간 것이었다. 나비는 손끝을 스치는 희미하고 스산한 바람을 느꼈다. 소년들은 거미 여왕이 알들을 숨겨 두는 은밀한 거울 방 속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수백 개의 얼굴들로 증폭된 그들의 붉고 아름다운 거울상을 보았다. 소년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고 그들의 미지근하고 축축한 눈물이 나비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나비는 그녀의 얼굴 위에 이마를 맞대고 있는 흰 여자를 떠올렸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소년들은 곧 용기를 되찾고 바르작거리는 축축한 배아들에 불을 질렀다. 거미의 알들, 미래를 앞두고 있는 작은 아기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갛고 뜨거운 화염에 타들어갔고 눈처럼 부드러운 재가 소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소녀는 얼굴을 덮는 고요한 천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었다. _464쪽
구매가격 : 15,840 원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도서정보 : 천희란 | 2022-04-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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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악몽이 두렵지 않다. 이 사랑은 모두의 유산이 될 것이다.”
_강화길(소설가)
이지적인 문장, 광휘 어린 사유, 야심찬 서사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던 우리를 향한 천희란식 응답
삶과 죽음, 예술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성의 시선에서 깊이 있게 천착해온 천희란의 두번째 소설집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가 출간되었다. 첫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과 경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를 연이어 출간하며 대체할 수 없는 문장과 매혹적인 자기 세계를 펼쳐내는 데 두각을 드러낸 천희란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로 2017년 제8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걸출한 신예 작가의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여성의 언어를 복원해내는 일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2019년 가을)에 선정된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등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천희란은 믿고 읽는 작가로 거듭났다.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는 그러한 천희란이 삼 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으로, 유려한 문장과 절묘한 내러티브의 솜씨가 한껏 발휘되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불신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천희란식 응답이 여기 도착했다.
구매가격 : 10,200 원
누이동생을 따라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66)
도서정보 : 최서해 | 2022-04-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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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2월 《신민》에 발표된 최서해의 단편소설.
사 년 전 여름, 나는 김 군과 해운대에 갔다가 이 얘기의 주인공을 만났다. 그것도 그때에 비가 오지 않아서 예정과 같이 떠났다면 나는 이 얘기의 주인공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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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노파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67)
도서정보 : 계용묵 | 2022-04-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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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 《야담》에 발표된 계용묵의 단편소설.
모습을 몰라보고 혹시 지나쳐 버리지는 않을까, 거의 20년 동안이나 못 뵈온 덕순 어머니라, 정거장으로 마중을 나가면서도 나는 그게 자못 근심스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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