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계문학전집 237)
도서정보 : 알랭 로브그리예 | 2023-11-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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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로망’의 선구자이자 전방위 예술가
알랭 로브그리예의 실험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진』은 20세기 중반 파격적인 문학 실험으로 ‘누보로망(새로운 소설)’을 선도한 프랑스 작가 알랭 로브그리예가 198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양성적 매력을 지닌 젊은 여성 진Djinn에게 이끌려 비밀조직의 요원으로 활동하다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 시몽 르쾨르의 기묘한 행적을 강렬한 필치로 그려냈다. 수수께끼의 인물이 거듭 등장하고, 방향 감각을 잃은 이미지와 혼란스러운 시공간이 펼쳐지는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주인공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점점 가중시키면서 압도되어가는 느낌을 선사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프랑스어 교수 이본 레너드의 요청을 받아, 미국 대학생들을 위한 프랑스어 문법 교육용 텍스트로 집필한 『면접』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덧붙여 새로이 펴낸 소설이라는 점이 특이한데, 총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프랑스어 문법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애초에 프랑스어 문법 학습서로 집필되었으나 오락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소설로 탈바꿈한 『진』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은 로브그리예의 실험정신이 낳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어 문법을 소설의 원동력으로”
마침내 실현된 로브그리예의 오래된 프로젝트, 『진』
누보로망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고무지우개』로 1954년 페네옹상을 수상하고 『엿보는 사람』으로 1955년 비평가상을 수상한 이래 『질투』 『미궁 속으로』를 발표하며 누보로망의 대표 작가로 자리잡은 알랭 로브그리예. 줄거리의 명시적 전개나 성격의 주관적 묘사, 연대기적 질서 없이, 사물과 인물을 시각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전지적 작가를 전제하는 전통 소설에 반기를 들어, 앙티로망(반反소설)이라고도 불리는 누보로망의 기수로 일컬어진다. 당시로선 생경한 문학 실험으로 열렬한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그는 누보로망을 대변하는 작가이자 문학이론가로서 세계 각국을 누비며 강연 활동을 벌여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한국에도 1978년과 1997년에 찾아와 각각 ‘누보로망과 누보시네마’ ‘누보로망에서 새로운 자서전으로’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을 정도다. 『진』은 로브그리예의 이런 국경을 넘나드는 활약에서 비롯한 작품으로, 그가 예순을 앞둔 1981년에 출간되었다.
2001년 발표한 『여행자, 텍스트와 한담 그리고 인터뷰』에서 그는 『진』의 집필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는 무모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현대소설에 관한 강의를 했었어요. (……) 거기서 저는 미국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데 사용되는 책에 대한 문학적인 관심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프랑스어 교수들을 만났죠. 난이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문법을 소개하기 위해 위대한 작가들의 텍스트를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5년 이상 떠올려온 제 오래된 프로젝트들 중 하나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어 문법을 소설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었어요.”
결정적으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프랑스어 교수 이본 레너드의 요청을 받은 로브그리예는 프랑스어를 익히려는 미국 대학생들이 활용할 만한 일종의 ‘교과서’로 『면접』을 집필하고 1981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학기당 8주에 해당하는 여덟 장에 걸쳐서 프랑스어의 문법적 난이도가 규칙적으로 증가하고, 이야기가 문법 활용과 맞물려 전개되는 이 책에는 각 섹션마다 연습문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는 『면접』에서 연습문제를 덜어내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뒤로 덧붙인 후 제목을 ‘진’이라 바꾸고는 프랑스의 미뉘 출판사를 통해 다시 선보였다. 프랑스어 학습용 교과서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전개로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진』은, 집요한 묘사가 지속되어 지루하다거나 읽기 난해하다고들 하는 누보로망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색적인 걸작이다.
“시간을 벗어나, 나 자신 행방불명이다”
나와 너, 꿈과 현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이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세계
다른 이름으로 된 여권과 구십구 쪽 분량의 타자 원고를 남기고 시몽 르쾨르라는 청년이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다. 미국인 학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가르치다가 돌연 종적을 감춘 그가 남긴 문제의 원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몽은 구인 광고를 보고 약속 장소인 어느 황폐한 창고에 찾아가 보스턴 악센트를 지닌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미국 여성 진을 만난다. 그녀는 시몽에게 자신이 속한 조직(기계화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을 위해 미션을 수행할 것을 지시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즉시 밝혀지진 않는다. 진의 지시에 응한 시몽은 임무를 수행하려 파리 북부역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걷다가 소년 장이 불쑥 뛰어나와 넘어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죽은 듯 쓰러진 장을 품에 안고 건물에 들어간 시몽은 장의 누이인 소녀 마리를 만난다. 장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한다며 황당무계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마리는 진의 편지를 시몽이 읽게끔 유도하고, 진의 지령에 따라 두 아이는 시몽을 레스토랑에 데려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데……
여성인지 남성인지 혹은 마네킹인지 로봇인지 모를 모호한 캐릭터의 등장, 거울 속에서처럼 반복되는 이미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혼재 등이 특징인 『진』은 독자들에게 혼란스럽고 혼미한 시공간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런 느낌을 더욱 심화시키는 데는 특유의 시점과 프랑스어의 시제 변화도 일조한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가 누구인지 모를 ‘나’의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졌다면 제1장에서는 1인칭 화자(시몽 르쾨르)가 현재시제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현재시제에다 제2장에는 복합과거, 제3장에는 반과거, 제4장에는 단순과거와 대과거 시제가 등장하며, 문법 난이도를 높여가는 식으로 서술된다. 제6장과 제7장은 제5장까지와는 다르게 3인칭 과거 시점으로 시작했다가 1인칭 현재 시점으로 바뀌고, 다시 3인칭 과거 시점으로 돌아온다. 제8장에서는 느닷없이 여성 화자가 등장해 1인칭 시점으로 여러 시제를 구사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키기도 한다. 프롤로그와 마찬가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 ‘나’의 내레이션이 담긴 에필로그로, 이 소설은 풀리지 않은 의문을 독자에게 수수께끼로 남긴 채 마무리된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도 일세를 풍미한 로브그리예의 작품답게 『진』은 강렬하고 인상적인 상황 연출과 신비로운 분위기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선글라스를 착용한 인물, 폐기 처분된 상품과 고장난 기계장치로 가득한 마네킹 창고, 폐가들 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길 등의 이미지가 거듭 등장하거나 혼령 같은 캐릭터가 무시로 출몰하며 독자들의 뇌리에 잊히지 않는 잔상을 새기는 식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곡가 린지 비커리는 『진』에서 영감을 받아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오페라 누아르 〈면접〉(2001)을 만들어 상연하기도 했다.
『진』은 1993년 세계사에서 발간한 『어느 시역자』에 표제작과 함께 ‘진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바 있는데, 이 책은 무려 30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번역이다. 2011년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엿보는 자』 이후 12년 만에 번역 출간된 로브그리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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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방패
도서정보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 2023-11-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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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본: 저본: 『倫敦塔・幻影の盾』(1952) 新潮文庫, 新潮社
중세 유럽을 무대로 아서 왕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이야기다. 아서왕 시대 어딘가에 신비한 ‘환영(幻影)의 방패’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가진 자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또한 전투에 임할 때 과거, 현재, 미래에 관여하여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방패를 가진 윌리엄이라는 기사가 그가 섬기는 백성(白城)의 성주(城主)인 랑(狼)과 야아(夜鴉)의 성주 루퍼스 사이에는 사소한 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려 한다. 윌리엄은 사랑하는 클라라가 있는 야아성(城)과의 싸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조상이 북방의 거인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환영의 방패’에 소원을 빌었다. 윌리엄의 동료인 시월드도 클라라를 구하기 위한 계략을 세웠지만 실패로 끝나고 마침내 전투가 시작된다.<중략> 방패 속 세계에서 윌리엄과 클라라는 상춘의 남국에서 결국 재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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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데이
도서정보 : 지니 | 2023-11-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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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오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걸까.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그랬다. 두 번째 뇌졸중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난 지금 수술실 앞에 있는 거구나. 내가 누워 있는 침대의 바퀴가 굴러간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퀴의 진동을 따라 내 몸이 흔들흔들 움직인다. 수술 준비실에 들어왔나 보다. 이곳은 너무 춥다. 수술방의 냉한 기운에 몸이 덜덜 떨려온다. 안 떨고 싶어서 힘을 꽉 주어도 내 몸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워한다. 이불이라도 좀 따뜻한 걸로 덮어 주면 좋으련만 얇은 홑겹의 린넨 이불인지 춥다. 옆 침대에서 남자 말소리가 들린다. 나 말고도 다른 수술 환자가 있는 건가. 다른 사람의 침대인지 바퀴 소리가 들린다. 수술방으로 이동하는 건가? 내 침대 쪽으로 온 남자 목소리가 말한다. “들어 올립니다. 하나, 둘, 셋….” 침대보 양쪽 네 귀퉁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더니 나를 옆으로 옮겨 놓는다. 데굴데굴 바퀴 소리. “자, 마취약 들어갑니다. 하나, 둘, 셋, 넷….” 의식이 점점 흐릿해진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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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달 공주
도서정보 : 최병진 | 2023-11-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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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로, 지구 둘레를 도는 단 하나의 위성이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하나뿐인 존재다.
달 표면의 중력은 지구의 6분에 1이므로, 6kg이 달에서는 1kg의 무게로 작용한다.
나는 엄마 배 속, 축소된 우주에서 떠 있다.
달은 지구 중심으로 돌고, 지구는 태양 중심으로 돌기 때문에 달이 태양을 가리면 달의 그림자가 지구에 비치는 지역은, 태양 빛이 들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일식.
아버지와 엄마 또 오빠는 보이지 않는 나의 자리를 만들고 준비한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므로 태양의 빛이 닿는 부분만이 빛을 낸다. 그 빛은 태양이 주지 못하는 곳에 대신하여 밝은 빛을 주는 덕에, 태양에게 기쁨을 주는 달이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신이 주는 보름달 같은, 내 이름은 주달이다.
최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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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초판 완역본) - 세계교양전집 13
도서정보 : 나쓰메 소세키 | 2023-11-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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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금 또한 다르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
정의 구현 도련님, 부조리한 세상에 원초적 한 방을 날리다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면
진심으로 후회할 때까지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성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도련님》은 그의 실제 교직생활을 바탕으로 엮어낸 성장소설이다. 발표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작품임에도 오늘날 전혀 무리 없이 읽히는 까닭은 지금을 사는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를 다짜고짜 노려보며 원초적 응징으로 권선징악을 끌어내는 좌충우돌의 스토리는 그래서 유쾌할뿐더러 통쾌하다.
타고나기를 불도저 같은 성격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손해만 본 말썽꾸러기 ‘도련님’은 부모를 여의고 다소 성장하면서 유일하게 사랑해주는 늙은 하녀 기요를 떠나 한 시골 학교의 수학 선생으로 생의 터전을 옮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곳은 한마디로 부조리하고 치사하고 부도덕한 난장판의 세상이다. 무모하고 단순하지만 정의로운 성깔을 지닌 ‘도련님’은 불의와 위선이 가득한 그곳의 인물들과 참으로 융통성 없게 충돌하고 대립한다. 기어코 그들을 응징한 ‘도련님’은 교직을 가뿐히 내던지고 누구보다 고귀하고 청렴한 기요에게 돌아간다.
득실을 따지지 않고 부정한 세상을 고지식하게 마구 들이받는 ‘도련님’은 그야말로 정의 구현의 화신이다. 이 ‘도련님’은 우리의 그릇된 세상에도 한 방을 날리며 ‘이런 세상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유쾌하면서도 자못 진중히 자문하게 만든다.
구매가격 : 6,900 원
나폴레옹 1
도서정보 : 막스 갈로 | 2023-11-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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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프로메테우스적인 영웅을 만나다
막스 갈로의 소설
구매가격 : 10,500 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도서정보 : 은희경 | 2023-11-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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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먼저 배신하고,
사람보다 먼저 떠나가라
은희경식 낭만 없는 연애소설의 시작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개정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삶의 이면을 통찰력 있게 포착해내며 오랜 시간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작가 은희경의 두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낭만과 감상을 걷어내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빛나는 통찰로 완성해낸 이 소설은 은희경식 ‘낭만 없는’ 연애소설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1998년에 출간된 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작가는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물과 관습 중에는 이미 사라진 것들도 많다. 이 소설이 처음 실렸던 신문의 연재소설 지면도 이제 없다”(345쪽)고 말한다. 많은 것이 변했음에도 이 소설이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그에 반해 어떤 변화는 너무나 느리다”(같은 쪽)고.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과 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계속 읽혀온 게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 ‘진희’는 지고지순하고 고상한 순정으로서의 사랑을 뒤엎는 ‘순정의 역학’을 노래하며 오랜 시간 끝나지 않는 사랑의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삶이라는 긴 노래가 끊어질 때까지
가벼운 걸음을 옮겨가며 추는 사랑의 춤
은희경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진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진희는 바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새의 선물』 속 진희가 성장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삼십대의 진희는 여전히 삶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진희는 어른스럽고 냉철한 태도로 또래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른스럽게 관망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진희도, 진희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진희는 더이상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이 올 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에 대비하는 모습은 애처로운 마음마저 들게 한다. 냉철하고 다소 비관적이었던 어린 진희의 곁에서 그를 보듬어주었던 할머니와 이모도 이제는 없다. 곁에 있는 것은 언제든 떠나버릴 것만 같은 애인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학교 동료들, 그리고 어딘가 조금씩 이기적인 친구들뿐이다. 진희는 이중 어느 곳에도 마음을 깊이 두지 않는다. 그게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진희는 “삶이라는 상처를 덮어갈 소독된 거즈”(147쪽)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여러 애인을 동시에 사귄다.
진희는 애인이 셋은 되어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환상에서 벗”(7쪽)어날 수 있으며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8쪽)고 말한다. “만날 남자가 둘 더 있기 때문에”(같은 쪽) 다른 한 남자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희는 자신의 주장대로 세 명의 남성과 만난다. 첫번째 남자는 현석이다. 현석은 진희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창생으로, 진희의 동생인 애리가 짝사랑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현석은 미소년의 용모를 가졌지만 자신의 아름답고 나약한 모습을 싫어해 언제나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은 소심하고 자기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진희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와 만나는 걸 아는 그는 관계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진희를 독점할 수 없기에 끝없이 불안함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진희의 두번째 남자는 종태이다. 종태는 진희와 연애를 하던 중 다른 여자와 결혼했지만 그후에도 진희와의 만남을 지속해나간다. 조용하고 소심한 현석과는 반대로 종태는 제멋대로 갑자기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버리는 저돌적이고 변덕스러운 남자다. 하지만 진희는 종태의 이런 가벼움 때문에 오히려 종태와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희의 마지막 남자는 전남편인 상현이다. 상현과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 끝났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진희는 약속 장소에서 상현을 기다린다. 진희가 이미 끝을 낸 상현과의 만남까지도 받아들이려는 듯한 이런 모습은 진희가 사랑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랑은 금방 오고, 또 금방 떠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아닌, 사랑을 계속 하는 것 그 자체이다. 춤의 상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춤이 계속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 진희의 관심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진희는 전남편인 상현과도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춤 역시 계속되어야만 하므로.
“모든 게 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춤이 아닌 것은 없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춤도 없다. 단지 춤뿐이다.”
애인은 셋 정도 되어야 하고, 누구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랑에도 얽매이지 않고 또다른 사랑으로 나아간다. 진희의 이런 사랑 방식은 사랑의 낭만성과 독점성, 그 안에 깃든 사회적 규범을 모두 거침없이 부수고 있기에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진희는 오히려 자신에게 가해지는 오해들에 “타당한 오해”(237쪽)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쁜 소문에 시달리고 익명의 비난 전화들을 받으면서도 진희가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날카롭게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가볍게 살고 싶”(267쪽)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정착을 꿈꾸지 않기 때문에 진희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다.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는 것이나 교수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큰 목표이자 도착점이라고 생각될 법한 일들 역시 진희는 가벼운 걸음으로 유유히 지나쳐버린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으며 “삶은 흘러가는 것”(295쪽)이기 때문이다. 진희에게 이 모든 사건들은 춤을 이어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춤을 멈출 만큼 크게 상처받지도 않는다. 누군가 진희에게 묻는다. “괜찮아요?”(296쪽) 진희는 대답한다. “아직은요.”(같은 쪽) 그렇기에 진희는 계속 춤을 출 수 있다. 삶이라는 긴 노래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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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 걸기
도서정보 : 은희경 | 2023-11-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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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새롭게 펼쳐보는 은희경 소설세계의 시작점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나의 질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등단 이후 단 한순간도 과거의 이름으로 물러난 적 없이 전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의 오늘을 그려온 소설가 은희경의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를 27년 만에 새롭게 펴낸다. 지난해 100쇄를 돌파한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을 비롯해 은희경의 초기작이 오랜 시간 끊임없이 읽힐 수 있는 것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더불어 작품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스스로도 “이 소설들을 거쳐서 나의 다음 소설이 쓰”였으며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우리가 타인이라는 존재에게 말을 거는 데 서툴거나 폭력적이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개정판 작가의 말’에서)고 말했듯 등단작 「이중주」를 포함해 총 9편의 중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가히 은희경 소설세계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이번 개정판을 준비하며 작가는 그간 바뀐 시대상과 사회의식을 예민하게 반영해 작품을 전체적으로 손보고, 그 아래 있는 여전히 생생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 보이는 데 집중했다. 소통이 요원해 보이는 현대사회 속 사랑과 낭만이라는 꿈에서 깨어난 여성들의 자리를 돌아보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타인에게 말 걸기』는 쓰인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선득하도록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던진다. 그간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지, 지금 우리는 타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있는지. 가장 뜨거운 냉소와 가장 서늘한 농담으로 무장한 그 질문은 책을 읽는 우리 역시 스스로의 자리를 돌아보게끔 만들 것이다.
“남에게 말을 걸 때 우리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녀는 좀 이상하다.
남을 부를 때 모든 사람들이 하듯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번 개정판에서 또하나 주요하게 달라진 점은 작품 순서로,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지닌 「타인에게 말 걸기」와 「빈처」 등을 비롯해 지금의 독자들에게 좀더 긴요하게 느껴질 만한 작품을 앞에 배치하는 등 모든 작품을 새로운 순서로 배치했다.
표제작 「타인에게 말 걸기」는 “등을 보인 자에게 아예 말 걸기를 포기하는” 화자 ‘나’와 타인을 부를 때 다른 사람들이 하듯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제멋대로 제가 지어낸 별명이라든지 저만 아는 호칭”(9쪽)을 사용하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의 소통 방식은 극적으로 다르지만, 그것이 그들을 고독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타인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녀’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냉소와 침묵만을 내놓는 ‘나’, 그들의 단절과 소통의 불능은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소통의 불능은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빈처」의 화자 ‘나’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보았다가 스스로를 직장에 다니고 있고 애인이 있는 미혼 여성으로 표현한 일기들을 발견한다. ‘나’는 자신이 아는 아내와 딴판인 일기 속 아내의 모습에 당황하지만, 이내 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토대로 아내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 밖에도 소설집에는 “결혼은 아무나하고 하는 거”(86쪽)라 말하던 언니의 옛 편지를 전달받고 처음으로 언니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인 「연미와 유미」, 옛 사랑의 추억이 어린 절에서 머무는 동안 사랑이란 미혹에 불과하며 영원한 합일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치게 되는 ‘그녀’의 이야기인 「그녀의 세번째 남자」, 그리고 한 커플의 뻔할 만큼 보편적인 연애담을 통해 사랑이 어떻게 ‘특별하고도 위대하게’ 포장되어 사람을 현혹게 하는지를 희극적으로 묘파하는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집의 마지막에는 등단작 「이중주」가 놓여 있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병문안을 간 ‘인혜’는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는 엄마 ‘정순’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혜는 어떤 부당함이든 인내하며 기나긴 결혼생활을 지탱해온 정순을 쉬이 이해하지 못하고, 정순 역시 결혼도 이혼도 쉽게 결정하는 듯한 딸 인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둘은 서로의 곁에 머무는 동안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남편/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모녀의 연대를 그려내는 이 작품은 희망적인 온기를 남기며 소설집의 문을 닫는다.
은희경은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에는 세상은 이러저러하다고 반듯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반듯함이 세상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소설을 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소설의 위악은 삶의 그 허상을 걷기 위한 방법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뿌리깊은 가부장제가 자리하고 있던 1990년대, 그는 『타인에게 말 걸기』를 통해 현실을 과감하게 비틀고 이를 향해 경쾌한 냉소를 던짐으로써 사회의 위선과 허상을 폭로하고 나아가 여성들에게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넸다. 2023년에 이르러 새롭게 펼쳐보는 『타인에게 말 걸기』는 우리 사회가 그간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또는 얼마큼 바뀌지 않았는지 가늠해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걸어나가야 할 길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소설가 백수린)이라는 말로 모든 설명이 가능해진 은희경의 소설세계, 그 눈부신 시작점이 우리 앞에 다시 한번 도착했다.
구매가격 : 12,500 원
노인과 바다
도서정보 : 어니스트 헤밍웨이 | 2023-11-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노인과 바다》는 1952년에 발표한 헤밍웨이의 대표 걸작으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 투쟁과 그 불굴의 의지를 작가 특유의 절제된 문장으로 처절하게 그려냈다.
멕시코 만류에서 물고기를 잡는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한 마리도 낚지 못한다. 지독히 운이 없는 ‘살라오’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림 속에서 그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이웃의 사내아이 마놀린뿐이다. 홀로 배를 타고 홀로 고기를 잡을 수밖에 없는 그는 85일째 되던 날, 쓸쓸히 그러나 결연히 바다로 나아간다. 그러고는 한순간 상상을 초월한 거대 물고기와 낚싯줄을 매개로 조우하고 대치한다. 바닷속의 실존체와 바다 위의 실존체 간의 힘겨루기는 존경심과 연민 그리고 정복욕이 뒤얽힌 가운데 처절한 사투로 이어진다. 극한의 극한을 거듭한 끝에 그는 거대 물고기를 굴복시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거대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고 돌진하는 상어 떼의 또 다른 극한 상황 속에서 다시금 사투를 벌인다.
노인 어부 산티아고는 존재의 생명력을 생생히 드러내며 우리의 생을 대변한다. 한 마리 거대 물고기를 잡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상어 떼의 습격 속에서 그는 생의 신념과 용기, 도전 정신을 우리의 삶에 처절히 투영한다.
구매가격 : 5,400 원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
도서정보 : 클레이븐 | 2023-11-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록스타 로봇의 자살 분투기』는 자칫 무겁고 조심스러울 수 있는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볍고 재치 있게 그려낸다. 티코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가 자살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살을 해야 한다는 그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민수는 돈 까밀레오의 특명을 완수하고, 티코는 자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혀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로봇의 케미를 자랑하며 이야기는 두 로봇의 운명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
구매가격 : 9,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