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새벽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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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조용하진 못한 마나님인데 겸하여 역정이 난 참이고 보니 그 야단스런 품이 미상불 생철동이를 뚜드리는 만큼이나 자못 시끄럽다.
“아니 그래…… 어떡허면 그래……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동네가 벌컥 뒤집하게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다. ‘절구통마나님’이라고도 또한 별명하는 그 육중스런 몸집을 연해 휘둘러싸면서 푸짐한 넋두리가(아들 준을 두고 하는 넋두리가) 한바탕 벌어지던 것이다.
“으응?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그래…… 어떡허면 그래…… 고따위루 응? 고따위루……”
마침 메주를 쑤었다. 큰 가마솥에다 큰 대시루를 걸고 푸욱신 삶은 메주콩을 바가지로 퍼억퍽 큰 대소쿠리에다 퍼담는다.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오고 집 안팎으로 구수한 메주콩내가 흥건히 풍긴다.
마나님 ? 강부인 ? 은 일변 메주콩을 퍼 담으면서 일변 넋두리로 입은 쉴 새 없이 바쁘면서, 이윽고 소쿠리가 수북하게 차자 불끈 집어들고는 쭈르르 마당으로 달려나온다. 거뜬거뜬한 게 뚱뚱한 체집 보아서는 딴 사람 같다. 몸도 연가벽거니와 소쿠리 밑에서 메주물이 찌르르 함부로 쏟아지건만 그 한 방울도 치마 앞자락이나 버선등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새색시 적부터도 일솜씨 깔끔스럽기로도 고을 일판에서 소문 있던 부인이다. 나이 오십이로되 젊었을 적 솜씨가 여전하고 가시지 않는다.
마당에는 절구와 절굿대, 안반 등속 메주 찔 채비를 마침 다 차려놓았다.
“대체 어떡허다 이 내 속에서 그런 자식이 나왔드란 말인고? 으응?…… 천하 농통허구, 근경속 없구, 잔망스럽구……”
당자 준은 고사하고 옆에서 누구 한 사람(하다못해 귀덕어멈이라도) 듣고 있는 이조차 없건만, 그러니 매양 강 건너 눈흘기기요 혼자의 푸념이건만, 그런 건 다 상관 아니었다.
들고 온 메주콩을 메 소쿠리째 절구에다 엎는다.
“제발 좀 외탁을 하겠지? 외탁을 했으면야 사람녀석이 고대두룩야 농통스렀으리 ?…… 세상 주변성 없구, 고정하기만한 즈이 으런 승미 고대루 닮어가지구는…… 그 으런은 그래두 고집이나 없었지! 고집이나……”
좌우를 휘휘 둘러본다. 당연히 등대하고 있었을 귀덕어멈이 간 곳 없고 보이지 않는다.
“아 귀덕어머엄 ?”
불러도 대답하고 나오는 싹도 없다.
“방정이 그새 어디루 또 싸아나갔담 ?”
조금 역정이 더했고, 그 길에 절굿대를 치켜들려다가 또 생각이 나서 일단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시추뚜껑을 덮어놓는다.
“야숙한 놈! 천하에 모질구두 매정스런 놈!…… 그 놈이 비상보담두더 독한 놈이어든!…… 제가 그러구서두 복을 받을까?”
부엌을 다녀와서는 서슴지 않고 곧 절굿대를 집어들고 메주방아를 찧기 시작한다. 부자는 아니라도 오륙백 석 추수를 하여 쓰고 밀리는 성세요, 편안히 지내도 좋을 팔자이었지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메주방아쯤 찧기를 주저치 않는다.
젊은 장정 못지 않게 절굿대가 기운차게 오르내린다.
“싯 싯.”
그리고 무딘 절구 소리가 그에 화할 뿐, ‹두리가 잠깐 끊긴다.
서향한 옆채의 처마 끝에 수정 발을 드리운 듯 주렁주렁이 매달린 고드름이 맑은 햇빛에 영롱히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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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낙조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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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별식으로 닭 국물에 칼국수를 해서 식구가 땀을 흘려가며 먹고 있는 참이었다.
“이런 때 느이 황주 아주머니나 오셌다 한 그릇 훌훌 자섰드라면 좋을걸 그랬구나…… 말이야 없겠느냐마는, 그 마나님두 인저 전과 달라 여름 삼복에 병아리라두 몇마리 삶아 소복이라두 하구 엄두를 낼 사세가 되들 못하구. ……내남적없이 모두 살기가 이렇게 하루하루 쪼들려만 가니…….”
어머니가 생각이 나 걸려해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의가 좋고 해서 그러던 것이지마는 어버지는 어머니와 달라, 황주 아주머니가 별반 직성이 맞지를 않는 편이었다.
“그래두 그 마나님넨 느는 게 있어 좋습니다.”
“온 영감두. 지금 사는 그 일본집두 30만 환에 내놨다는데 그래요?
한30만 환 받아, 삭을세집을 얻든지, 문 밖으루다 조그만한 걸 한 채 장만하든지 하구서, 남겨진 가지구 얼마 동안 가용이라두 쓰구 할영으루다……”
“느는 게 조음 많으우?…… 자아, 몸집이 늘지. 희떠운 거 늘지. 시끄런 거 늘지. 말 능란한 거 늘지. 따님 양개화(洋開化) 늘지. 아마 그 마나님은, 한때 그 국회의원이라드냐 하는 걸 선거하는 데 내세우구서, 누굴 추천하는 연설 같은 걸 시켰으면 아주 일등으루 잘 했을 거야.”
“난 또 무슨 말씀이라구……”
어머니는 그만 웃고 만다.
아버지도 따라 웃으면서
“난 정말이지, 그 생철동이, 하두 시끄러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아따, 생철동인 생철동이루 씨어먹게스리 마련 아니우? 세상 사람이나 세상 일이 다 그렇게 제제끔이요, 제곬이 있는 법 아니우?”
어머니는 이렇게 원만하였다.
어머니가 만일 원만치 못한 어른이었다면 그런 대답이 나오는 대신
“영감두 말씀 마시우. 황주 마나님더러 느느니 몸집이네, 희떰이네, 시끄럼이 네, 말 능란해 가는 거네 하시지만, 영감은 느느니 괴벽과 편성입디다. 난 영감, 그 남 비꼬아대기 잘하는 거, 미운 소리 잘하는 거, 하두 박절해 골치가 아파 못하겠읍디다.”
하고 오금을 박았을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말이 오고가고, 티격태격하다 필경 싸움이 되고, 결과는 불화가 일고.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렇듯 원만함은 우리 집의 고마운 보배였다. 솔성이 심히 박절하고 옹색한 아버지를 모시어 규각이 나지 않고, 잘 평화가 지탱되어 나가기는, 오로지 어머니의 그렇듯 남의 흠점이나 과실을 찬하지 않고 너그러이 보는 원만함의 덕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가리켜 어머니의 성정을 닮아 세상 만사를 좋도록만 보려 들고, 그래서 사나이 자식이 소견이(視野가) 좁고 진취성(積極性)이 적으니라고 하였다.
미상불 나는 내가 생각하여도,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한 성품보다 어머니의 너그럽고 원만한 성품을 물려받은 것 같고, 따라서 모든 사물을 호의적으로만 보면, 인하여 시야가 좁고 진취성이 적음도 사실인 성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닮았음을 복되게 여기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편협하고 박절함은 유난한 것이 있었다.
아무 이해상관이 없는 일이거만, 당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든가 눈에 거슬린다든가 한다는 것으로, 미운 소리을 하고 비꼬아 대고 하여 남에게 실 안심을 하고 경원을 당하고 하였다.
아버지는 크고 작은 일에 있어 당신이 보기에 그른 것에 대하여 둘러 생각을 한다거나 관용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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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지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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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하수인이었다던 이가 해방 후 애국애족을 외치며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모습을 그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적 현실을 묘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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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일단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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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모본단 보료를 깐 아랫목 문갑 앞으로, 사방침에 비스듬히 팔꿈치를 괴고 앉아서 주인 박(朴)주사는 펼쳐 든 조간신문을 제목을 훑는다.
잠잠한 채 방안은 쌍미닫이의, 납을 먹여 마노빛으로 연한 영창지가 화안 하니 아침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밝고 쇄려하다.
주인 박주사는 방이 밝고 쇄려하듯이 사람도 또한 정갈하고 호사스런 의표와 더불어 신수가 두루 번화하다. 기름을 알맞추, 반듯이 왼편에서 갈라 빗은 짤막한 머리가 우선 단정하다. 마악 아침 소쇄를 하고 난 얼굴이 부윳이 희고 좋은 화색이다. 마흔여섯이라지만 갓 마흔에서 한두 살이 넘었다고 해도 곧이가 들리겠다. 코 밑으로 곱게 다듬어 세운 가뭇한 코밑수염이 한결 그러해 보인다. 아래턱은 면도 자죽만 푸르고 마고자도 조끼도 민으로 은회색 공단이다. 저고리와 바지는 삼팔. 두둑한 솜버선에 대님은 그것도 은회색이다.
갖추 이렇게 화려 선명하고 어둔 그늘이 없다.
방안을 차린 범절은 그러나 판연히 대조가 되는 두 갈래로 낡은 것과 새로 운 것이(의좋게) 함께 있곤 하여, 그래서 언뜻 보매 심히 동떨어지고 어색한 느낌이 없지가 못하다. 가령 윗목으로 친 팔폭 병풍은 추사의 대가 분명한데, 반만 접은 그 병풍 뒤로 크막하니 섰는 책장에는 한세대 전의 법학생들이 교과서 혹은 참고서로 쓰던 여러 가지 법학서적이 가득 들여쌓여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금자박이의 양서까지도 서너 권 섞여 있고. 그리고 더욱 진기하기는 저 주천백촌의 ‘유명하던’ 『연애지상주의』이것을 비롯하여 하목수석의 『나는 고양이로다(我輩は猫てある)』니, 하천풍언의 『사선을 넘어서니』니 승서몽 번역의 신조사판인 톨스토이의 『부활』이니 하는 문학 서적과 몇 권씩의 《학지광》이며 《개벽》 등 옛 잡지를 곁들인 것이다.
무릇 솜버선 마고자에, 책상 대신 연상(硯床)과 문갑을, 문갑 위에는 몇 종류의 한서가 놓였고, 안락의자가 아니라 사방침에 기대앉아서 퇴색한 추사의 대를 즐기며 심심파적 삼아 한문 고전낱도 뒤적이고 하는 고풍의 중년 신사 박주사에게는 그러므로, 세계를 달리한 듯싶은 이 장서 들이었지만, 그러나 일변 그가 항용 출입을 할 적이면 자못 화사한 넥타이에다가 과히 유행에 뒤지지 않는 양복을 차리고 나선다는 사실을 참작할진댄 그러한 부조화도 저윽이 덜 무안할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시 그가 약 이십여 년 저 짝, 비록 전문부요, 이년쯤 하다가 중도폐지는 했을망정 XX 대학에 학적을 둔 적이 있는 동경유학생의 한 사람이었다는 경력을 고려한다면 그 부조화는 상당히 존재의 이유를 주장한달 수가 있을 것이다. (책상을, 맨 밑의 서랍을 뒤져본다치면 무수히 블랭크가 치여, 문맥이야 닿지 않으나마 『법학총론』이니 『민법원론』이니 등속의 필기 노트가 꽤 여러 벌 들어 있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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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방아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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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조선일보 연재 중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연재 중단된, 농촌의 현실을 그린 채만식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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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일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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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까지(어제 밤 여덟시부터 꼬바기) 앉아서 쓴 것이 장수로 넉 장, 실 스물일곱 줄을 얻고 말았다.
그 사이, 노싱을 한 봉 반씩 네 차례에 도합 여섯 봉을 먹었다.
간밤에 새로 뜯어논 스무 개 들이 가가아끼 한 곽이 빈탕이 되었다.
재털이가 손을 못 대게 낭자하다. 성냥 한 곽을 아마 죄다 그었나 보다.
하루 평균 치면 네 개피나 다섯 개피가 배급 표준이라는데, 그러니 조선도 성냥 전표 제도가 생겼다가는 큰 야단이 나겠다.
원고용지를 파지를 내기 백 매짜리로 거진 한 축. 픽픽하는 갱지가 되어서 더 헤프기도 하지만, 둘러보니 완연 휴지 속에 파묻혀 있는 형용이다.
원고용지 구하기가 원고 쓰기보다 더 힘이 드는 이판에, 이대도록은 너무 심하다.
골치가 멍멍, 언 살을 만지기 같다. 딱 시장은 하면서도 혀가 깔깔하고 밥 생각은 나지를 않는다.
이렇게 해서 얻은 그 넉 장에 스물일곱 줄이나마 제대로 성할 테냐 하면, 이따가 저녁이면 십상 또 작대기를 북북 주고서 번연히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할 것.
한숨이 후유 나온다. 내가 생각을 해도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다.
써야지건 말건, 일곱시 반의 전등이 꺼질 때까지는 붙잡고 느는 게 항용이지만, 부엌에서들 우세두세 새벽밥을 짓느라고 설레는 소리가 나서 가뜩이나 정신이 헛갈려, 웬만큼 걷어치운다. 네째형이 요새로 매일같이 서울을 들러 광나루의 공사장 현장엘 통래하느라고 첫차를 타기 때문에, 늘 새벽조반을 먹어야 하던 것이다.
다섯시 반이 조금 지난 걸 보고 건넌방으로 올라갔다. 형은 불빛이 아직도 밤중인 듯 휘황한 전등 밑에서 벌써 입맛 없는 밥술을 뜨고 있었다.
얼굴이 부석부석한 게, 과로와 소화기관에 장해가 생긴 징조인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겨울에도, 지질한 그 노심초사와 극도의 피로 끝에 필경 몸져 누워서는 삼동 내내 중병을 앓던 일이 생각히면서, 더럭 마음이 무거웠다.
“국물이 뜨듯하니 한술 놔서, 먹구 자렴?”
형은 밥상머리로 가 쪼글트리고 앉는 나를 건너다보며 권을 하다가 그이면서 문득 얼굴이 어두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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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이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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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화산…… 아우성…… 비명…… 아우성…… 돌덩이…… 돌가루……도망질…… 혼잡 혼잡…… 피피피피…… 초산 냄새…… 신음소리……말굽소리…… 구보…… 철그럭철그럭…… 처벅처벅…… 줄 내린 모자……누런 각반……
의사…… 들것…… 호외…… 수배(手配)…… 수색 수색……호외……검거…… 긴장 긴장 긴장 긴장
─ 셋?
─ 넷…… 허구 부상이 일곱.
─ 묘허지?
─ 이(? 잡듯 헌다지?
긴장 긴장 긴장 긴장……
탕 탕…… 안동 아방궁(安東阿房宮)…… 피…… 포위, 일대 사백(一對四百)…… 탕탕탕탕탕탕탕탕
……탕탕탕탕탕탕탕탕탕탕…… 피피피…… 호령…… 탕…… 피……
─ 아깝다.
─ 장쾌하다.
─ 도보로?
─ 하르빈에서.

호외
××××과 ××××××의 통일제휴…… 주소 씨명 원적 직업 전연 불명…… 연령 이십사오 세…… 소지품 전무…… 시체 화장……

사 년 전.
웬만큼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이었었다. 아침부터 구죽죽하게 내리는 비는 가을날의 싸늘한 기운을 한층 더 도와 추레하고 음산한 기분이 사람의 마음을 무단히 심란하고 궁금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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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식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12-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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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위에 벌여놓인 (大地) 모든 물건들을 꿰뚫을 듯이 더운 불볕이 내려쪼이는 삼복 여름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학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다가 마침 주인집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서 칠복(七福)의 어머니 최씨부인을 문득 만났다.
나는 그이를 보자 곧 ‘칠복의 소식을 듣고 올라온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칠복의 얼굴과 그 다리를 걷어치고 앉아 아편주사를 하던 모양이며, 까치 뱃바닥 같은 흰 손이 다시 서대문 감옥의 우중충한 붉은 담과 그 안에서 누렁 옷 입고 쇠사슬 차고 노역(勞役)을 하고 있을 그의 죽어가는 듯할 형상이며-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주마등과 같이 연상하였다.
그이(칠복의 어머니)는 몇 해 전에 칠복을 찾으러 서울까지 한번 올라와본 일은 있었으나 결코 다른 무슨 볼일을 본다든지 혹은 구경을 하려고 일부러 서울까지 올라올 그럴 팔자는 못되었었다. 그때에 내 앞에 서 있는 그이의 행색도 과연 세상의 가난과 고생은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는 듯이 야속하게도 초라하고 곤궁하게 보였다. 그이의 몸에 걸친 옷-땟물이나 빨아 입었는지 뚫어지고 해어지고 때묻고 땀에 녹아 몸에 칭칭 감기는 낡은 삼베치마와 적삼은 옷이라 하기는 너무도 걸레조각만도 못하였다. 희끗희끗 반백이나 된 머리털은 화투 바구리같이 부풀어 뜨고, 먼지가 소복히 앉은 버선발에는 뒤축 없는 짚신 한 짝과 다 찢어진 고무신 한 짝을 짝맞춰 끌었었다.
이 차림차리로 얼룩덜룩한 보퉁이 하나를 옆에 끼고 불붙여 지지는 듯한 칠월 노양(老陽)에 사라질 듯이 낡은 참대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서 무엇을 찾는 듯이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 듯이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을 맥없이 바라보는 총기 없는 눈동자며,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보이는 햇빛에 그을은 그 얼굴의 추렷이 슬픈 듯한 표정이며, 모두가 일부러 그처럼 차리고 꾸미려 하여도 할 수 없을 만큼 지긋지긋한 빈궁의 특수한 기분이 그 주위에 떠돌았었다.
누구나 깊은 느낌이 있어 옛날 박진사(朴進士: 칠복의 선친) 집의 호화롭던 부귀와 삼십 년이 채 못 간 오늘날 그 유족의 모진 영락(零落)과의 기수로운 대조(對照)를 볼 때에 성쇠의 무상함을 안타까와하는 비애의 눈물을 흘리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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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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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순사가 동양의 대현이라는 맹자님과 어떤 혈통의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또 우리 나라 명재상 맹고불이 맹정승과는 제 몇대손이나 되는지, 혹은 아무것도 안되는지, 그런 것은 상고하여 보지 못하였다.

“칼자루 십 년에, 집안 여편네 유똥치마 하나 못해 준 주변에, 헐 말이 무슨 헐 말이우?”
증왕의 순사 아낙에 세 가지 특색이 있으니, 가로되 언변 좋은 것, 가로되 건방진 것, 가로되 옷 호사 잘하는 것이라고. 실로 이 계집의 허영으로 인하여, 순사들이 얼마나 더 악착히 ‘순사질’을 하였음인고. 맹순사의 아낙 서분이도 미상불 언변 좋고, 똑똑하고(즉 객관적으로 바꾸어 치면 건방지고) 하기로는 좀처럼 남에게 질 생각이 없으나, 오직 옷 호사 한가지만은 어엿이 고개를 들 자신이 와락 없었다. 천하에 순사의 아낙 되어 옷 호사를 못하다니, 유감이 깊을지매. 자못 동정스런 노릇이었다.
그러나, 서분이가 순사의 아낙으로 옷 호사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결단코 서분이 스스로의 무능한 소치거나 과실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소위 칼자루 십년에?실상은 팔 년이었다?팔 년 순사에, 집안 여편네 유똥치마 한 벌도 해주지 못할 지경으로, 남편 맹순사란 위인이 지지리 주변머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8?15 바로 후에 칼을 풀어놓았고, 그래서 시방은 순사 적이라는 것이 이미 옛말 같이 된 터이었지만, 그러니 놓친 찬스를 두고두고, 심하여는 임종하는 자리에까지 내내 미련겨워하기를 마지 아니하는 것이 항용 아녀자의 넓지 못한 속…… 해서 오늘 아침만 하여도 하찮은 일로 시초가 되어, 쫑쫑대고 생동거리고 하던 끝에 필경은 나오는 것이 그 유똥치마의 푸념이요 주변 없음의 공박이요 하였던 것이었었다.
“거, 옷은 그대지 많이씩 장만해 무얼 하는구? 입구 벗을 꺼면 고만 아냐? 난 참, 여자들 그러는 속 모르겠드라.”
부드럽고 조용한 말씨다. 이와 정반대로 서분이의 음성은 높고 가시같다.
“입구 벗을 옷이 어딨어? 날 언제 옷 해줬길래, 옷 많이씩이냐는 건구?”
“아니, 해필 임자가 옷이 많다는 게 아니라, 보통 여자들이 말야,”
“넉살두 좋으이. 날 같으믄 입이 꽝우리 구멍이래두 헐 말 없겠네. 바보, 빈충이, 천치.”
“못난 남편 싫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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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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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강변으로 장작이든 무얼 좀 살까 하고 나갔다가 허행을 하였다.
강에는 많은 뗏목이 내려와 밀렸고, 일변 뜯어 올려다 쌓고 하였다. 강언덕은 온통 뗏목 뜯어 쌓은 걸로 묻히다시피 하였다.
장작도 마침 큰 배로 두 배나 들어와서 한편으로 푸면서, 한편으로 달구지에다 바리바리 실으면서 하고 있었다.
뱃장작을 도거리로 산 당자인 듯, 자가사리수염에 마고자짜리가 이럭저럭 분주히 납뛰고 있어
“장작 좀 살 수 있을까요?”
하였더니, 선뜻
“네, 몇 차나 쓰시렵쇼?”
하면서 굽실한다.
시재라야 이십 원밖에 없었다. 그중 십 원은 가용을 써야 하고, 십 원으로 장작이면 한 오십 관, 솔가지 같으면 한 삼십 단 살 요량이었는데, 더럭 몇 ‘차’냔 소리에 그만 오갈이 들어, 오십 관 말은 차마 못 내고 “한, 백 관만……”
하기를, 그나마도 무서무서히 하였다.
“배액 관입쇼?”
자가사리수염은 아니나다를까, 잔뜩 그렇게 시뻐하면서, 이 근친스런 나그네를 위아래로 한 번 씻어보더니
“그런 장거린 드릴 수 없음다……”
하는, 말보다 먼저 저리로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다. 공으로 나무를 얻으러왔다가 거절이나 당한 것처럼, 얼굴이 화틋 달고 무렴하였다.
뗏목은, 뜯어쌓은 지가 오랜 걸로, 잘 말라서, 켜가지고 빠개기만 하면 곧 땜즉한 것도 무더기 무더기 많이 쌓여있었으나, 장작을 백 관 따위는 잔거리라서 팔지 않는다는데, 황차 뗏목이리요. 물어보기조차 부질없는 노릇, 이내 발길을 돌이키고 말았다. - 그러고서 돌아와 하릴없이, 헌 궤짝을 쭈그리고 않아 부서뜨리고 있자니, 심사 자못 울적치 아니치 못하였다.
이사할 때 잔 세간을 넣어가지고 온 희연 궤짝 두개다. 두 개를 죄다 부서뜨렸자 하루 뗄 나무가 될까말까한 것이 소리만 동네가 떠나가게 요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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