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은 병인가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9-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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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앙.”
뺑 하는 날카로운 고동 소리와 와앙 하는 우렁찬 고동 소리 ― 기차의 고동에 두 가지가 있다. 와앙 하는 우렁찬 고동 소리를 지르며 인천을 떠난 객차는 경성역에 도착하였다. 아침 열시.
‘남녀노소’라 하면 가지각색의 사람을 다 한꺼번에 설명하는 것이다. 기차가 경성역에 도착되면서 거기서 쏟아져나오는 남녀노소 가운데 이등객실에서 서구(徐九)가 내렸다.
동행이 있었다. 스무 살이라 보기에는 좀 앳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모양은 작으나 좌우간 양쪽(洋髮)을 하였으니 미세스인지 미스인지 알 수 없다.
서구가 그 여인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아야 알 것이다.
서구는 먼저 기차에서 폼으로 내려서서 여인이 내리려는 것을 부축하려는 듯이,
“미스 홍, 잡으세요.”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인은 부끄러운지 그 손을 잡지 않고 자기 혼자서 뾰족한 구두로 빼뚝거리며 내렸다.
“인천이란 참 평범하고 속(俗)되죠?”
구는 미스 홍이라는 여인과 나란히하여 서서 출찰구 쪽으로 향하여 가면서 단장을 휘두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네.”
여인은 간단히 대답하였다. 얼굴을 붉혔다. 이것은 기쁘다는 표정이다. 서구와 나란히하여 갔지만 약간 틈이 있었다. 이것은 수저워한다는 증거다.
‘남녀노소’들은 이 한 쌍 남녀를 힐끔힐끔 본다.
서구의 나이(서른이었다)며 그의 능청스러운 태도는 남편다운 데가 있었지만 여인의 부끄러워하며 수저워하는 꼴은 아내나 소실이나가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동일한 이유로서 남매간이거나 친척간도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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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알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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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삼태기가 넘게 짊어 놓은 자갈을 만금은 지고 일어섰다. 뼈마디가 졸아드는 듯이 짐은 무겁게 내려누른다. 누르는 맛이 아침결보다 차츰 더해오는 것은 피로에 지친 까닭인가, 발자국을 떼니 걸음까지 비친다.
그러나 만금은 지게 작대기에 몸을 실어 가며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짚는다. 열 살 난 아이에게는 확실히 과중한 짐이다.
부르걷은 무릎마다 아래로 튀어질 듯이 불근거리는 두 개의 종아리, 자식의 그것을 뒤에서 좇아오며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꽤 애처로왔다. 자식의 짐을 좀 헐하게스리 자기가 좀더 갈라 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순간 미쳤으나 그것은 애처로움에서의 정뿐이요, 이미 광주리 전이 넘도록 인 자기의 돌 광주리만 해도 목이 가슴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이 거북한 것을 뒤미처 느낄 땐 오직 그만한 억센 힘을 못 가진 것만이 안타까웠다.
아버지나 생존해 계셨으면 자식은 아직 이런 고생은 아니 하고도 지내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보며 고르지 못한 산등의 사탯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와 후유 하고 한숨과 같이 걸음을 세우고 숨을 돌리며,
“얘, 만금아 좀 쉬어서 가지 않겐?”
하고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가요.”
만금은 귓바퀴에 진땀을 쭉쭉 흘리면서도 힐끗 한 번 어머니를 돌아다보았을 뿐 배칠배칠 그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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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절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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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을 접어들면서 우제는 아버지가 자기를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다. 믿지는 않으면서도 그래도 전에 같으면 가다가 한 번씩이라도 가사에 관한 의논은 있을 것이 일체 없어진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좀더 자세히 말하면 자기라는 인간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로 여긴다는 말도 되는 것이라, 아니 이렇게까지 자기를 천단해 버린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꼬 생각할 때 우제의 마음은 앞뒤가 꼭 막힌 듯이 답답했다.
아버지가 자기를 이심으로 밉게 보아서 그런다면 반감이나 생길 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나 오히려 편안할는지도 모를 것인데, 사랑은 하면서도 아니 사랑하길래 큰 소리 한마디 없이 아들이 없는 줄 아자꾸나 하고 인제는 아예 의논을 말려는 것인 줄은 아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본시 성질이 남달리 뚝하여 아들에게도 말 한마디를 곰살갑게 하여본 일이 없는 아버지였건만 자기를 누구보다도 알뜰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우제가 모르는 배 아니었다. 오륙 식구를 거느리고 오십이 넘은 아버지가 혼자 이것들을 벌어먹이기에 사철 다리를 부르걷고 진날 마른날 없이 감탕 속에 무젖어나며 농사를 짓기가 오죽 힘들련만 모 한 대같이 꽂아 주기는커녕 섬대가리 한번 맞들어 주지 않고 남의 일같이 눈 한번 거들떠보는 법 없이 밤낮 손 싸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으로 씨름을 하는 것이 아니면 하릴없이 뒷짐이나 지고 산등성이나 거니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이었건만 이렇다 쓴소리 한마디 아니하던 그 아버지였다.
사실, 그 아버지 자신도 우제가 삼십이 되도록 책이 아니면 붓대나 들고 고이 놀리던 손끝으로 일(농사)을 하리라고는 애초에 믿지부터 않았다. 공부를 하였거니 취직을 한다든지 무엇이나 한 자리 해서 돈 벌이를 하여 집안 식구를 먹여살릴 것이겠거니, 그리하여 어떻게 찌그러져 가는 가정을 바로 세워 놓았으면 하는 생각은 은근히 있어 왔다. 이것은 우제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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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41)
도서정보 : 채만식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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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문장》에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소설.
경성역에서 출발할 때부터 분잡한 기차에 겨우 자리를 잡은 경희는 낯모를 남자들과 서로 맞대 앉다시피 해 밤새도록 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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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42)
도서정보 : 이익상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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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6월 《문예운동》에 발표된 이익상의 단편소설.
주인공 명수는 최근 일 년 동안 밤늦게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곤히 잠든 가족들을 깨우는 게 미안해 앞으로 밤출입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작심삼일이다. 오늘 밤도 얼근하게 취해 집 문을 두드리는데 아내로부터 시골에서 조카 석호가 왔다는 뜻밖의 말을 듣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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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43)
도서정보 : 지하련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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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3월 《춘추》에 발표된 지하련의 단편소설.
순재는 일요일도 아닌데 난처한 표정으로 찾아온 문주가 순재의 남편 이야기를 꺼내자 가슴이 철썩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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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용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44)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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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월 《조광》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주인공 '진내련'은 무역 도시인 번화한 대광동(大廣東)의 떠나갈 듯한 소란스런 시가를 뚫고 달음박질을 해 목적한 집에 이르렀지만, 그 집 앞에는 순포 두 명이 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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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45)
도서정보 : 김남천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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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발표된 김남천의 단편소설.
저녁 무렵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나'를 정 군과 최 군은 갈빗집으로 안내하고 그들은 서울 생활에도 변하지 않은 '나'의 식성에 기뻐한다. 배를 채운 뒤 무산관이라는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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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도서정보 : 김멜라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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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번호 9번에 윙포워드, 머루, 차콜그레이 그리고 인터섹스다.”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 김멜라 첫 소설집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풍부한 현실 감각과 강렬한 생명력의 매개자”(황광수 문학평론가)라는 평을 받고 등장한 작가는 연이어 문제작을 발표해오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표제작인 「적어도 두 번」은 “당대 사회의 가망과 한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그래서 그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익숙한 가치판단과 해석의 방식을 물음에 부치는”(인아영 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2018년 9월호) 문제작으로 호명되며 소외된 주체들을 적극적으로 문학사에 기입하려는 2020년대의 흐름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논의되었다. 표제작 외에도 소설집에 수록된 총 일곱 편의 단편은 각양각색의 이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데,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호르몬을 춰줘요」)라는 소설 속 발언을 이어나가며 작가는 생물학적 신체성으로 젠더 범주를 재단하려는 시각을 전복한다. 이성애로 한정된 삶을 강요하고 그 외부를 허용치 않는 가족주의적 생애 모델을 인간의 숙명으로 설명하는 언어 또한 뒤집는데, 일상 곳곳에서 퀴어적 생활과 퀴어적 정동, 퀴어적 삶의 방식과 인식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시도가 매혹적이다. 아울러, 김멜라 소설은 여성이 겪는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때론 얼음 같은 문장으로 때론 유쾌하고 무구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만 익숙한지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여기 한국문학에 새롭고 낯선 목소리가, 김멜라의 소설이 지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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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을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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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뜻깊은 만찬이었읍니다. 차차 절박하여 오는 사정은 다시 그로 하여금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 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때때로 이르는 믿는 자들의 아룀으로 말미암아,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제 사장이 지사(知事) 본디오 빌라도에게 참소를 하고, 갖은 힘을 다하여 그를 잡으려는 것을 알았다. 가롯 유다?그의 문도의 하나인?는 벌써 제사장에게 매수된 것도 알았다. 이틀 있으면 이를 유월절 전으로 그를 꼭 죽이려고 계획한 그것을 알았다. 오늘 이제로 가버나움이나, 막달라로 달아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손에 잡혀서 죽든지?다시 말하자면, 그가 아직 모든 괴로움을 뚫고 하여 오던 일을 성공 직전에 허물어 버리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이것이 그의 앞에 놓인 운명이다. 전자를 취하자면, 십자가 위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찬 뒤에 취미(醉味) 좋은 포도주에 녹아서, 베드로에게 머리를 찍히우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예수는 저편에서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발소리에 후덕덕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제, 제사장들이! 횃불?과 뭉치들을 가지고……」
「응? 사냥개같이 빨리 찾아내는 자들이로군.」
예수는 고즈너기 말하였다.
「베드로!」
「왜 그러십니까?」
「감람산으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는 그리로 갈께, 빨리!」
이 말을 좀 숨이 차게 한 그는, 가만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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