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지
도서정보 : 정인택 | 2020-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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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가느무골 풍경
짧은 겨울 해는 어느 새 꼴딱 지고 벌써 땅거미가 기어들기 시작하였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정말 실뱀이나 빠져나갈 가느무골 좁다란 골목으로 어지럽게 들어선 이필주(李弼柱) 씨는 분명코 오늘도 대취하였다.
낡은 갓을 모로 재껴 쓴 이필주 씨는 작달막한 키에 응구바지를 해가지고 옹색한 길을 가까스로 휘젓고 있었다. 위태위태하면서도 용하게 걸어 들어가는 것은 이필주 씨 자신이 아니라 이마를 맞대일 듯한 좌우편 담장이 간신히 그를 걸려주는 때문이었다.
염낭 끝 꼬부라지듯한 가느무골 샛길을 한도래 돌아 나가자면 고작해야 담배 두 대쯤 피울 그런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으니 그렇기 때문에 동리 사람들의 말썽거리가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비록 골목은 누추하고 좁았으나 행인의 잦은 발길은 그야말로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몹시도 빈번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체로 이 가느무골이란 동리를 형성한 종족들의 생활이 즉 그네들의 호흡이, 그렇게 잔숨 찬 것이기 때문이다. 제법 네모가 반듯한 기와집들이 추녀를 나란히 한 골목이라면 그것이 기생촌이고 양반촌이고간에 그 골목이란 으레 한산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나, 바로 이 가느무골과 같이 됨됨이가 널판대기, 양철 조각, 영(이엉) 나부랭이 흡사 조각보처럼 얼맞추어 놓은 주택 지대란 그들의 색다른 직함이 가리키듯 남 유달리 부산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타보로, 뚜쟁이, 은근짜, 날탕패(마루이치 패), 이런 특수한 계급들이 덕지덕지 모여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씨근숙덕거리는 것이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래도 명색에 걷고는 있는 이필주 씨의 뒤를 닿기나 하는 듯이 한 패의 조무래기떼가 ‘와아’하고 악을 쓰며 골목 안으로 좇아 들어왔다.
“이놈들!”
호기를 보이며 악을 쓰려던 이필주 씨는 주책없이 그대로 털썩 길목에가 주저앉고 말았다.
...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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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가방 속
도서정보 : 플로렌스 매리에트 | 2020-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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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면서 감각적인 작품을 추구했던 작가의 심리 스릴러.
런던 외곽 한적한 시골 속 대저택, 몰튼 체이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한 손님들이 모여든다.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손님은 집주인 부인의 사촌인 블랑슈 데이머 부인과 그 남편, 헨리 데이머 대령이다. 집주인의 부인, 벨라와 블랑슈는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단짝과도 같은 사이이다. 드디어 몰트 체이스 저택에 도착한 블랑슈 데이머 부인.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가 챙긴 것은 이중 자물쇠가 달린 검정 가방이다. 자신에게서 그 가방이 떨어지는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블랑슈 데이머 부인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의아함을 느낀다.
구매가격 : 2,700 원
숨춤
도서정보 : 강만홍 | 2020-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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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느냐.
현실이 아닌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해 보는 재미로 가 보는 것이다.
신명을 다해 한판 하고 가는 것 아닌가.
가다가 그님을 만나면 춤을 추어라.
그님이 아니 오시면, 저님 맞이 춤을 또 추어라.
가고 또 해 보며, 기다리고 또 달려가면서 신명을 다하거라.
좋은 꿈도 꿈이요, 나쁜 꿈도 꿈이 아니던가.
꾸었으니 깰 것이요, 왔으니 또 가야 한다.
갈 때 가볍고, 깨달은 여정이면 아름다운 것이다.
- 〈머리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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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visible Man
도서정보 : H. G. Wells | 2020-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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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man of substance of flesh and bone fiber and liquids?and I might even be said to possess a mind. I am invisible understand simply because people refuse to see me." The Invisible Man is a science fiction novel by H. G. Wells. Originally serialized in Pearson s Weekly in 1897 it was published as a novel the same year. The Invisible Man to whom the title refers is Griffin a scientist who has devoted himself to research into optics and who invents a way to change a body s refractive index to that of air so that it neither absorbs nor reflects light. He carries out this procedure on himself and renders himself invisible but fails in his attempt to reverse it. A practitioner of random and irresponsible violence Griffin has become an iconic character in horror fiction. The novel is considered influential and helped establish Wells as the "father of science fiction".
구매가격 : 4,500 원
Tarzan of the Apes
도서정보 : Edgar Rice Burroughs | 2020-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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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 were indeed more foolish and more cruel than the beasts of the jungle! " Tarzan of the Apes is a 1912 novel by American writer Edgar Rice Burroughs the first in a series of twenty-four books about the title character Tarzan. The story follows Tarzan s adventures from his childhood being raised by apes in the jungle to his eventual encounters with other humans and Western society. So popular was the character that Burroughs continued the series into the 1940s with two dozen sequels.
구매가격 : 5,700 원
Dracula
도서정보 : Bram Stoker | 2020-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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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 knows till he experiences it what it is like to feel his own life-blood drawn away into the woman he loves.” Dracula is an 1897 Gothic horror novel by Irish author Bram Stoker. It introduced the character of Count Dracula and established many conventions of subsequent vampire fantasy. The novel tells the story of Dracula s attempt to move from Transylvania to England so that he may find new blood and spread the undead curse and of the battle between Dracula and a small group of people led by Professor Abraham Van Helsing. Dracula is an epistolary novel written as a collection of realistic but completely fictional diary entries telegrams letters ship s logs and newspaper clippings all of which added a level of detailed realism to the story a skill which Stoker had developed as a newspaper writer. At the time of its publication Dracula was considered a "straightforward horror novel" based on imaginary creations of supernatural life. "It gave form to a universal fantasy ... and became a part of popular culture."
구매가격 : 7,900 원
회랑정 살인사건(최신개정판)
도서정보 : 히가시노 게이고 | 2020-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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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화재, 동반자살, 두 번 살해당한 여자……
탐욕이 들끓는 회랑정에서 벌어진 기묘한 복수극
눈을 떠보니 나, 기리유 에리코가 가장 사랑하는 지로는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지로는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를 유일하게 사랑해 주었던 남자였다. 경찰은 그가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죽였다는 사실에 비관하여, 회랑정에서 나와 동반자살하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게 거짓이었다. 그는 동반자살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난 잘 알고 있다. 이치가하라 집안사람들이 회랑정이라는 료칸에 모인 날 밤, 유산에 눈이 먼 그들 때문에 지로는 자살당했다.
사랑하는 지로를 앗아간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는 노파로 분장하고 회랑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재벌 이치가하라가 남긴 막대한 유산의 행방이 공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범인의 방에 숨어 들어가 목을 힘껏 졸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미 죽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노렸던 범인을 죽인 또 다른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왜 범인을 죽여야만 했을까?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 중 가장 논란이 많은 결말
유산상속, 복수극, 변장, 동반자살…… 그리고 특정한 공간에서 추측할 수 있는 한정된 용의자들. 《회랑정 살인사건》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끝을 거치면서 독자들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수차례 반전을 거듭하며 온갖 트릭에만 몰두하게끔 보였던 복수극은 마지막 장에서 진실이 밝혀지며 그 모습을 달리한다. 이렇듯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의 특별함은 보는 각도를 달리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 그중 《회랑정 살인사건》은 그 매력이 특히 두드러진 작품으로, 마지막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서사가 변주된다.
‘회랑정’이라는 우아한 일본 전통 료칸의 겉모습과 달리, 그 안에서는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 그가 남긴 유산의 행방에만 주목하는 친족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의 잔인한 복수 뒤에 그 증오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더없이 충격적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건은 점점 입체적으로 변하며 독자들은 어느새 ‘사건’ 자체보다 인물의 사연을 궁금해하게 된다. 그리고 ‘살해 동기의 의외성’에서 반전을 일으킨다. 단순히 범인을 쫓던 독자들이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의 힘이자, 발표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유이다.
한 인터뷰에서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 데에 특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에 매료된 독자라면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회랑정 살인사건》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평
“뻔히 보이는 결말이라고 자만했으나, 허를 찔렸다.” _총*★★★★★
“궁금함과 긴박감으로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_2nu***★★★★★
“읽고 난 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애처로움과 충격이 밀려왔다!” _sma***★★★★★
구매가격 : 12,600 원
학병수첩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9-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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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이 사람을 죽였다.
이 주판이나 놓고 편지나 쓰고 하던 맵시나고 아름다운 손이 사람을 죽였다!
전쟁 마당에서 한 병정이 적병 몇 백쯤을 죽였다니기로서니 무엇이 신기하고 무엇이 이상하랴만 이 맵시나는 손으로 잡은 총검이 적인 호주 출신의 영국군의 가슴에 쿡 틀어박혀서 그를 즉사하게 한 것이다.
무슨 은원이 있을 까닭도 없고 무슨 이해관계가 있을 까닭도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 단지 나는 …… 일본군의 한 사람이고, 저는 영국군의 한 사람이라는 인연으로 오늘 내 칼 아래 가련한 죽음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칼이 만약 10분의 1초만 늦었더라면 그의 칼이 내 가슴에 박혀서 내가 도리어 가련한 죽음을 할 것이 아니었던가.
전쟁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그를 왜 죽였나. 그는 왜 나를 죽이려했는가. 이런 소리는 너무도 평범하다. 다만 검티티하고 태산 같은 호주인이 납함(?喊)을 하며 우리를 향해 습격해오고, 우리 역시 돌격 호령 아래 적진을 향하여 쇄도할 때에…… 무아무중으로 달려간 뿐이지 이 전쟁 이겨야 하겠다든가 져서는 안 된다든가 그런 생각은 할 여지가 없었다.
적과 우리와의 간격이 열 간으로 다섯 간으로 한 간으로 줄어들어가는 순간순간 다만 들리는 것은 폭포 소리 같은 납함뿐이요, 보이는 것은 태산이 내게 부서져 내리는 듯한 적병의 쇄도뿐이었다.
최후의 순간…… 적과 백병전이 벌어지려는 그 순간 내 옆구리에 힘 있게 낀 총검은 적의 가슴을 향하여…….
깜짝 놀랐다.
사람을 죽인다! 사람이 죽는다!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나는 본능적으로 내 옆구리에 꼈던 총검의 방향을 휙 오른편으로 돌렸다. 그러나 시기는 이미 늦었다. 내가 총검의 겨냥 방향을 돌리는 순간, 손과 팔로는 무슨 육둔한 탄력을 감각하였다.
호주병이 내 칼에 찔린 것이었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내 칼을 낚아당기나 방금 나를 향하여 납함하며 달려오던 호주병은 내 칼에 끌려서 앞으로, 땅으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다만 멍하니 서버렸다. 이곳이 전장이라는 것도 잊고 방금 나와 한 적병이 단병 접전을 하여 내가 이겼다는 것도 잊고 다만 망연히 서버렸다. 우군이며 적군이며 연하여 내 곁으로 , 혹은 내 앞으로 무엇이라고 부르짖으며 달려간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역시 한 전투원으로 활약해야 할 나는 망연자실하여 내 앞에 쓰러진, 나의 피해자인 호주병만 굽어보고 있었다. 서른 살 안팎의 젊은이였다.
무사히 개선하기를 부모처자가 얼마나 기다리랴. 전장에 내보낸 아들이요 남편이거니, 혹은 죽을지도 모르리라는 각오야 했겠지. 그러나 사람이란 도대체 욕심꾸러기로서 가망 없는 데서도 무슨 회망점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동물이니, 더구나 전쟁이 나가면 꼭 죽는다는 것도 아닌 이상에야 호주병의 친척인들 왜 생환을 꿈꾸지 않았으랴. 그것은 마치 나의 부모가 나의 생환은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거늘 그는 여기서 그가 예상도 안 했을 ‘조선 출신의 학병’인 나의 총검을 받고 즉사하지 않았는가.
호주인인 그는 영국 황제를 위해서 싸웠고, 영국 화제를 위해서 죽은 것이다. 그를 죽인 사람, 나는 일본 황제를 위해서 싸웠고, 지금도 계속해 싸우는 중이다. 목숨이라 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배거늘 전쟁이라는 것은 무엇이길래 내게 이해관계 없는 일에 목숨을 빼앗으며 빼앗기며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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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흙과 흰 얼굴
도서정보 : 정인택 | 2020-09-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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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인 줄만 알았더니 역 밖에 내려서서 보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장마 때 모양으로 주룩주룩 쏟아졌다.
“많이 오는군요?”
안내역으로 만척(滿拓) 출장소에서 보내준 김군이 앞서 대합실 처마 밑으로 뛰어들며 당황해 하는 목소리다.
철수도 부산하게 뒤를 따라 껑충 뛰면서,
“글쎄요……….”
우장을 꺼낼 생각은 채 못 하고 손수건으로 수선스럽게 어깨를 털고 얼굴을 닦고나서,
“탈 게 있을까요?”
겨우 숨을 돌리고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김군을 쳐다보았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걱정인 양이다.
그러나 채 김군이 무엇이라 대답하기 전에 웬 시커먼 만주 사람이 그들 앞으로 달음질 쳐 오며 고함을 지른다. 손짓하는 꼴이 그들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말은 못 알아들었으나 철수는 직감으로 그것이 마차꾼인 줄 깨달았다.
“타래지 않습니까?”
“네, 됐습니다. 농촌에 가는 마찬가봅니다.”
김군도 덩달아 무엇이라 두어 마디 만주말로 고함을 치고나서 무척 반가운 낯으로
“타시지요.”
하고는 질척거리는 길을, 골라 디딜 여유도 없이 역앞 마을 거리를 향하여 내닫는다. 철수도 비를 무릅쓰고 처마 밑에서 뛰쳐나왔다.
역앞 마을이라야 한 2,30호 될까말까했다. 대개가 흙으로 만든 너절한 객주집 아니면 음식점인데다 그것이 비에 젖어 처량하기 짝이 없는 주위의 풍경이다. 길거리에는 그저 수없는 돼지떼와 만주 토견이 제 세상인 듯이 우쭐거리고 쏘다닌다.
‘── 혼자 왔드라면 혼날 뻔했군!’
철수는 달음질 치면서 맘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에 내려서기만 하면 조선 사람이 눈에 띈다고 하얼빈에선 듣고 왔는데 길거리엔 온통 남루하게 차린 만주 사람들뿐이다. 말을 한마디도 모르고 더구나 만주시골에 처음 발을 디디는 철수는 공연히 고독하고, 공연히 불안했다. 의지할 곳이라곤 김군밖에 없었다.
‘── 마차라두 얻어 탔으니 망정이지 그나마두 없었단……’
혼자 왔으면 그 마차나마 잡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금방 김군이 다시 없이 고마운 사람같이 철수에게는 여겨졌다.
그들이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마차꾼은 자리 밑에서 시퍼런 빛깔의 우산 두 개를 꺼내어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연해 손짓을 하면서 수다스럽게 무엇인지 떠들어댄다. 철수는 그쪽은 보지도 않고 우선 우산을 펴서 받았다.
제법 큰 우산이었다. 아직 헐지는 않았으나 무척 오랜 우산인 듯싶었다.
쇠로 만든 굵다란 대 때문에 무게도 꽤 나간다. 그것을 받아들고, 이윽고 철수는 너털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중국 병정과 우산 ── 만주 마차꾼과 우산 ── 그것이 전연 다른 사실인 것 같지 않아서 철수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김군도 우산을 펴서 받고, 어이가 없는 듯이 철수를 돌아본다.
“하하하하, 우산을 둘씩 준비해가지구 댕기는 게 공연히 우습군요. 하하하하 이 사람들은 늘 이렇게 우산을 가지구 댕깁니까?”
“그런 게지요, 하하…… 좀 기다리라는군요. 또 탈 사람이 있대나요.”
“기다려야죠. 별수 있습니까?”
비는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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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도서정보 : 정인택 | 2020-09-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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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지 안 자는지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진 덕윤(德允)이는 꼼짝도 안 하고 숨소리만 가쁘다. 핏기라곤 없는 얼굴은 종이장같이 희었다.
침대 앞에서 발을 멈춘 채 기가 막힌 듯이 한참 들여다보기만 하던 천박사는 이윽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찬다. 애처롭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한 모양이다.
“수술헐 수 있겠습니까?”
창준(昌俊)은 천박사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생사라도 결단할 듯한 거센 어조로 이렇게 묻고나서,
“수 ── 수술 말예요.”
채 무엇이라 대답도 떨어지기 전에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부지중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박사가 어린애 몸엔 손하나 대지 않고 그렇게 물끄러미 보고만 섰는 것이 약간 비위에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그보다도 어젯밤 한잠 못 잔 피곤한 몸엔 그 천박사의 표정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반응되어 저도 모르게 초조함에 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린 것이다.
그러한 창준의 노리는 듯한 시선을 의식하는지 못하는지 외과 수술의 제1인자라는 천박사는 한참 그대로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더니,
“틀림없군.”
다시 한번 혀를 끌끌 차고나서 과학자다운 냉정한 태도로 뒤에 따른 조수들에게 이렇게 외마디 말을 던지고 이윽고 창준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잠깐…….”
이리 오라고 고개를 끄떡한 후 뚜벅뚜벅 앞서서 병실을 나가는 것이다.
천박사에게 최후의 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덕윤이에 대신할 것을 다시는 바랄 가망이 없는 창준이 부부에게는 그 조그마한 생명 하나가 둘도 없는 금이요 옥이었던 것이다.
밤 늦은 병원 복도에는 어두운 구석과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한 때문인 듯이 군데군데에 촉수 얕은 전등이 맥없이 껌벅이고 있을 뿐, 깊은 산 속같이도 고요하여 두 사람의 발자취 소리만이 유난스럽게 크게 울린다.
그 발자취 소리가 딱 그치자 밀물이 모래 위의 발자국을 지워 없애듯 다시 대령했던 고요함이 빠른 속도로 창준의 전신을 에워싸는 것이다.
“늦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울려 나오는 마귀의 소리같이 천박사의 말이 창준의 귀를 때렸다.
“늦었다니요?”
별안간 탁 가라앉은 목청에서 겨우 웅얼웅얼 이런 반문이 쏟아져 나왔다.
“늦었습니다. 입때까지두 수암(水癌)으루 치료허셨겠지요?”
“네.”
“지가 보기에도 틀림없는 수암입니다.”
“그럼……저……수, 수술해두…….”
“글쎄요. 수술 못 헐 건 없지만 했대야 소용 없을 것 같습니다.”
그예 마지막 선고가 내리고 말았다. 창준은 또 바시시 몸을 떨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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