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 어머님
도서정보 : 김동인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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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안이 서울로 이사를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만 6년 전이다.
그 전해 가을부터 심한 신경쇠약에 불면증을 겸하여 고생하던 나는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혼자서 서울로 올라와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나의 가족이라는 것은 나의 아내와 아들 하나와 딸 둘(아들과 큰딸은 전처의 소생이다) 이었다. 그 가족들을 평양에 남겨두었는데, 그들 위에는 늙은 어머님이 계셨고, 아직 시집가지 않은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다.
지금껏 평양 있을 동안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은 어머님의 약간의 토지에서 수입되는 나락과, 미약한 나의 원고료 수입에 의지하여 지탱해왔다. 그러던 것이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병치료를 하고 있게 되매 나의 원고료 수입이 치료비에도 도리어 부족이 될 형편이라 일이 딱하게 되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맏형을 찾아갔다. 그리고 맏형께 내가 서울에서 치료를 하는 동안 어머님을 비롯하여 내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아주기를 부탁 하였다.
그해, 진실로 적적한 과세를 하였다. 잠 못 드는 긴 밤을 외로운 여사에서 새우고…… 흥분되는 일과 음식 등을 의사에게 금지당하였는지라, 이웃집 곁방 등에서 술 먹고 윷 놀고 화투하고 좋아하고 야단들 하는 신구세(新舊歲) 교환절기를 나는 자리에 누워서 눈이 꺼벅꺼벅 밤을 새우고 하였다.
길고 지리한 밤을 새운 뒤에 들창에 훤히 새벽 동이 트면 그렇게 기쁜 일이 다시 없었다. 인젠 낮이로다. 나다닐 수도 있고 사람의 얼굴을 볼 수도 있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낮이로다. 길고 지루하던 밤도 이제는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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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도서정보 : 김남천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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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평 칠합(二坪七合)이 얼마만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똑똑히 알지 못하였었다. 말로는 한 평 두 평 하고 세어도 보고 산도 놓아 보았지만 두평 칠합 하면 곧 얼마만한 면적의 지면을 가리키는지 똑똑히 느껴 본 적은 없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길이와 넓이를 한 치도 틀리지 않게 두평 칠합을 전신에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도 손으로 세거나 연필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 몸뚱이를 가지고 그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두평 칠합의 네모난 면적 위에 벌써 날수로 일곱 달이나 살아온 것이다. 두평 칠합을 전 몸뚱이를 가지고 느껴지는 것은 그 덕택이었다. 내가 이 두평 칠합에 살기 전에 석 달 동안 두평 칠합을 절반 가른 조그만 방 안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었다.
그런데 그 조그만 방은 어쩐지 공연히 넓고 엉성하던 것이 그보다 배 곱이나 되는 이 두평 칠합이 이렇게 좁아 보이고 질식할 듯이 빼곡 차서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것은 어떤 연고일까?
별로 힘든 연고는 없었다.
조그만 방에 생활할 때는 영하 십오륙도를 상하하는 추운 동지 섣달이었고 또 게다가 별로 짐도 없는 방 안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까닭이며 지금 이 방에는 열세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리고 또 시절이 구십도나 되는 여름이었다. 이 외에 별다른 연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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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서정보 : 김유정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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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재소에까지 가게 될 때에는 나에게도 다소 책임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아무리 고처 생각해봐도 나는 조곰치도 책임이 느껴지지 안는다 복만이는 제 안해를 (여기가 퍽 중요하다) 제손으로 즉접 소장사에게 팔은 것이다. 내가 그 안해를 유인해다 팔았거나 혹은 내가 복만이를 꼬여서 서루 공모하고 팔아먹은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우리 동리에서 일반이 다 아다싶이 복만이는 뭐 남의 꼬임에 떨어지거나 할 놈이 아니다. 나와 저와 비록 격장에 살고 숭허물없이 지내는 이런 터이지만 한번도 저의 속을 터말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나뿐이랴 어느 동무구간 무슨 말을 좀 뭇는다면 잘해야 세마디쯤 대답하고 마는 그놈이다. 이렇게 구찮은 얼골에 내천짜를 그리고 세상이 늘 마땅치않은 그놈이다 오즉 하여야 요전에는 즈안해가 우리게 와서 울며 불며 하소를 다 하였으랴. 그 망할 건 먹을게 없으면 변통을 좀 할 생각은 않고 부처님같이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었기만 한다고. 우두커니 앉었는것보다 싫은 말 한마디 속선히 안 하는 그 뚱보가 미웠다. 마는 그러면서도 안해는 돌아다니며 양식을 (꾸)어다 (여)일히 남편을 공경하고 하는것이다.
이런 복만이를 내가 꼬였다 하는것은 번시가 말이안된다. 다만 한가지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날 매매 계약서를 내가 대서로 써준 그것뿐이다.
점심을 먹고 내가 봉당에 앉어서 새끼를 꼬고 있노라니까 복만이가 찾아왔다 한손에 바람에 나부끼는 인할지 한장을 들고 내앞에 와 딱스드니
「여보게 자네 기약서 쓸줄아나?」
「기약서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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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모순
도서정보 : 양건식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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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 밝을 임시에 어수선 산란한 꿈을 꾸고 이내 깨어 자리 속에서 뒤치적거리다가 일어나면서부터 머리가 들 수 없이 무거워 무엇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심기가 슷치 못한 나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서재(즉 침방)에 꾹 들어앉은 채로 멀거니 서안(書案)을 대하고 앉았다. 이즘 애독하던 『虐[학]げられし人[인]?(학대받는 사람들)』이라는 소설도 그 앞에 놓여 있건마는 아주 볼 생각도 없어 돌연히 연속하여 오륙본이나 아사히(朝日[조일])를 피웠다. 하자 어느덧 그 푸른 연기가 용트림을 하여 몽몽하게 방중에 자욱하여 점점 더 머리를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다. 잠깐 일어서서 창틈으로 밖에를 내어다보니 청랑(晴朗)한 하늘이 보인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서편 벽에 걸려 있는 초상함 ── 노동복을 입은 노국(露國) 문호 막심 고르끼의 반신상이 눈에 번뜻 뜨인다. 나는 별안간 정신이 아뜩하여 푹 주저앉았다.
그리하자 오포(午砲)가 텅 하며 점심상 보아놓았다고 어머니께서 미닫이를 여시고 얼굴을 내어놓으신다.
“벌써 점심이에요? 아직 밥 생각 없에요.”
하고 나는 무뚝하게 대답을 하고 방 안을 다만 무의식하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즉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는 듯이
“아이구그 얘야, 오늘은 아침밥을 다른 날보다도 일께스리 뜨는 둥 마는 둥 하구두 그리네.”
하시며 훌쭉하게 살이 빠지신 자안(慈顔) 에 미소를 띠시고 계시다.
나는 그저 뚱하고 성낸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래 아니 먹으려느냐? 아주 한술 더 뜨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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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놀이
도서정보 : 이광수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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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어느 아침. 날이 맑다. 그러나 대기 중에는 뽀유스름한 수증기가 있다. 첫여름의 빛이다. 벌써 신록의 상태를 지나서 검푸른 빛을 띠기 시작한 감나무, 능금나무 잎들이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뚱땅뚱땅하는 소고 소리와 날라리 소리를 들었다.
『오늘이 사월 파일이라고 조의 일 하는 사람이 길놀이 떠나는 거야요.』
이것이 작은 용이의 설명이다.
다섯 살 먹은 딸 정옥이가 작은 용이를 끌고 소리나는데로 달려간다.
『조심해서 가!』
하고 나는 돌비탈길을 생각하면서 소리를 지르고서는 여전히 원고를 쓰려 하였으나, 소고 소리와 날라리 소리가 점점 가까와 올수록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허, 나도 마음이 뜰뜨는군.』
하고 혼자 웃고, 나는 대팻밥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끌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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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도서정보 : 이무영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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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못 채셨어요. 그런 눈칠?”
밑도끝도없이 불쑥 말을 하는 것이 아내의 버릇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돌아다보려니까, 아내는 마구리도 빠진 헌 맥고모자에 모기장을 어깨까지 뒤집어쓰고는 몸이 달아서 왕봉을 찾고 있다. 언제 누가 얘기를 걸었더냐 싶게 소광(巢?) 양 귀퉁이를 엄지와 둘째손가락으로 가벼이 들고 뒤 적인다. 인제 아주 손에 익은 솜씨다. 벌〔蜂[봉]〕들은 자기들만의 세계를 뒤집어놓았다고 끄무레한 날씨 탓도 있기는 하지만 적의 본거지를 발견한 전투기처럼 아내의 머리를 에워싸고 법석이다.
그도 아내의 그런 물음에는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버릇이 되어 있는 터라, 그저 “응?” 코대답을 하고는 날로 파래 가기는 하면 서도 어딘지 아직 여름다운 하늘의 뜬구름을 지칠 줄 모르고 바라다보고 있었다. 우수(雨水) 때부터 물이 못나게 일을 한 농부들도 밭걷이도 대충 끝내고 논물도 빼고서 한숨 돌릴 무렵의 어느 날 오후였다. 하늘도 가을다워 여름의 그 초조해하는 기색이 없다. 그것은 마치 한가로운 소떼들이 끝없는 대초원을 유유히 거닐며 풀을 뜯고 있는 그림에 흰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향취 있는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스무 개에 십육전짜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꿀처럼 달다.
“요 맛이라니…”
아내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눈치더니 다시 소광으로 눈을 옮기다가,
“아이, 따궈라.”
소리를 친다. 한 방 쐰 모양이다.
“한낮에 봤어야 할걸, 아이그, 아퍼!”
하면서도 열심히 찾더니,
“있어요! 있어! 그러면 그렇지 죽었을 린 없거든.”
하고 왕봉을 알려준다.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내는 소초를 한 장 한 장 되집어넣으면서 제 딴에는 아까 이야기의 계속인 듯이,
“남 선생님 요새 좀 수상하잖습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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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도서정보 : 지하련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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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노닷게 정거장엘 드러서 대ㅅ듬 시게부터 바라다보니, 오정이 되기에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었다. 두 시 오십 분에 떠나는 기차라면 앞으로 느러지게 두 시간은 일즉이 온 셈이다.
밤을 새워 기대려야만 차를 탈 수 있는 요즘 형편으로 본다면 그닥 빨리 온 폭도 아니나, 미리 차표를 부탁해 놨을 뿐 아니라, 대단히 느진 줄로만 알고, 오 분 십 분 이렇게 다름질처 왔기 때문에, 그에겐 어처구니없이 일 즉 온 편이 되고 말었다.
쏠려 지는 시선을 땀띠와 함께 칙면으로 느끼며, 석재(碩宰)는 제풀에 멀─숙 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까시아나무 밑에 있는, 낡은 u취에 가 털버덕 자리를 잡고 앉으니까 그제사 홧근하고 더위가 치처오르기 시작하는데, 땀이 퍼붓는 듯, 뚝뚝 떠러진다.
수건으로 훔첫댓자 소용도 없겠고, 이보다도 가만이 앉어 있으니까, 더 숨이 맥혀서 무턱대고 이러나 서성거려 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었으나, 그는 어데가 몹시 유린되어, 이도 후지부지 결단하지 못한 채 무섭게 느껴지는 더위와 한바탕 지긋 ─ 이 씨름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목덜미가 욱신거리고 손바닥 발바닥이 모도 얼얼하고 야단이다.
이윽고 그는 숨을 도르키며, 한 시간도 뮈헐 텐데, 어쩐다고 거진 세 시간이나 헷짚어 이 지경이냐고, 생각을 하니 거반 딱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허긴 여게 이유를 들랴면 근사한 이유가 하나 둘이 아니다. 첫재 그가 이 지방으로 “소개”하여 온 것이 최근이었음으로 길이 초행일 뿐 아니라, 본시 시골길엔 곳잘 지음이 헷갈리는 모양인지, 실히 오십니라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칠십니는 톡톡이 된다는 사람, 심지어는 거진 백니 길은 되리라는 사람까지 있고 보니 가까우면 놀다갈 셈치고라도 위선 일직암치 떠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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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기록
도서정보 : 이상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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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생활을 갖지 못한 것을 나는 잘 안다. 단편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생활 비슷한 것’도 오직 ‘고통’이란 요괴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이것을 알아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생활력을 회복하려 꿈꾸는 때도 없지는 않다. 그것 때문에 나는 입때 자살을 안 하고 대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나는 말하고 싶다만.
제2차의 각혈이 있은 후 나는 어슴푸레하게나마 내 수명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였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나는 작은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맥박 125의 팔을 안은채, 나의 물욕을 부끄럽다 하였다. 나는 목을 놓고 울었다. 어린애같이 울었다.
남 보기에 퍽이나 추악했을 것이다. 그러다 나는 내가 왜 우는가를 깨닫고 곧 울음을 그쳤다.
나는 근래의 내 심경을 정직하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만신창이의 나이건만 약간의 귀족 취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남듣기 좋게 말하자면 나는 절대로 내 자신을 경멸하지 않고 그 대신 부끄럽게 생각하리라는 그러한 심리로 이동하였다고 할 수는 있다. 적어도 그것에 가까운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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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도서정보 : 이상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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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圖解)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으로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오월 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입늬까요?"
서투른 서도(西道) 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캉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싸각 깎는다.
"요곳 봐라!"
내 입 안으로 침이 쫘르르 돌더니 불현듯이 농담이 하고 싶어 죽겠다.
"가시내애요, 날쭘 보이소, 나캉 결혼할랑기요? 맹서(盟誓)듸나? 듸제?"
또,
"융(尹)이 날로 패아 주뭉 내사 고마 마자 주울란다. 그람 늬능 우앨랑가? 잉?"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다. 시간은 분명히 밤에 쏟아져 들어온다. 손으로 손을 잡고,
"밤이 오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탄식한다. 기대하지 않은 간지러운 경험이다.
낄낄낄낄 웃었으면 좋겠는데―― 아― 결혼하면 무엇 하나, 나 따위가 생각해서 알 일이 되나?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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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강냉
도서정보 : 이태준 | 2020-07-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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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 부벽루(浮碧樓)라, 빛 낡은 편액(扁額)들이 걸려 있을 뿐, 새 한 마리 앉아 있지 않았다. 고요한 그 속을 들어서기가 그림이나 찢는 것 같아 현(玄)은 축대 아래로만 어정거리며 다락을 우러러본다.
질퍽하게 굵은 기둥들, 힘 내닫는 대로 밀어던진 첨차와 촛가지의 깎음새들, 이조(李朝)의 문물(文物)다운 우직한 순정이 군데군데서 구수하게 풍겨 나온다.
다락에 비겨 대동강은 너무나 차다. 물이 아니라 유리 같은 것이 부벽루에서도 한 뼘처럼 들여다보인다. 푸르기는 하면서도 마름〔水草〕의 포기포기 흐늘거리는 것, 조약돌 사이사이가 미꾸리라도 한 마리 엎디었기만 하면 숨쉬는 것까지 보일 듯싶다. 물은 흐르나 소리도 없다. 수도국 다리를 빠져, 청류벽(淸流壁)을 돌아서는 비단필이 훨적 펼쳐진 듯 질펀하게 깔려 나갔는데 하늘과 물은 함께 저녁놀에 물들어 아득한 장미꽃밭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광정(練光亭) 앞으로부터 까뭇까뭇 널려 있는 마상이와 수상선들, 하나도 움직여 보이지 않는다. 끝없는 대동벌에 점점이 놓인 구릉(丘陵)들과 함께 자못 유구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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